일주일 동안 비워둔 집.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지난 주에 봐두었던 새집을 들여다 보았다.
텐트 앞에 고추줄을 백속에 넣어 매달아 두었는데 박새가 여기다가 알을 낳은 것이다. "참 잘도 골랐네. 비도 맞지 않는 이곳에 집을 지었으니..."
지난주에는 알들이 모두 부화하여 들여다보니 저마다 먹이를 달라고 분홍 입을 쩍쩍 벌리고 있었다.
이제는 새끼들이 모두 떠났갔겠지... 새집 안을 들여다보았다. 비어 있을 줄 알았던 고추줄 속에 새끼새 한 마리만 남아 나를 멀뚱히 쳐다본다. "엇! 너는 왜 아직 안 떠났어?" 그러고는 무심히 발길을 돌렸다,
그러다가 문득 드는 생각.
"이놈이 말똥말똥하게 살아 있는 것을 보니 어미가 계속 먹이를 날라주고 있나봐. 근데 딴 놈들은 다 날아갔는데 이놈만 어디가 안 좋아서 날아가지 못했지?"
그래서 새끼새를 집에서 꺼내보았다. 하지만 날아가지 못한다. 자세히 보니 발이 고추줄에 묶여 있다. 새를 풀어줘야 겠구나 하고는 오른손으로 붙잡았다. 아무런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발에는 고추줄이 가늘게 찢어져 가위를 가져와 왼손으로 줄을 잘라 주려했으나 한참을 낑낑거려도 줄을 자를 수가 없다.
할수없이 이웃 신선생님 내외께 구조요청을 하였다. 센스 있게도 멀티툴의 작은 가위까지 가져오셔서 조심스레 고추줄을 하나하나씩 잘라내었다. 고추줄을 잘라보니 한쪽 다리는 오랫동안 고추줄에 묶여 발달이 되지 않아 아예 불구가 되어있다.
새끼 새는 날지 못하고 퍼덕이기만 한다. 고민에 빠졌다. 내버려두면 살 것 같지 않다. 아마 뱀의 밥이 되리라. 새끼새를 내버려두고 집 주위를 청소하기 시작했다.
얼마 동안 시간이 흐른 후 새끼새가 걱정이 되어 다시 찾아가 보니 도망가지 못하고 근처에 앉아 있다.
"집을 만들어 키워서 보내야 하나?"
그러나 낼 모레면 집을 또 비워야 하니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고민하다가 흙집 현관에 넣어두기로 했다. 그곳은 비닐로 사방이 막혀 있어서 안전할 것이다.
오후 4시쯤이었을 게다.
장작을 패고 데크 의자에 앉아 쉬려고 하는데 박새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벨레를 물고 와서는 흙집 현관으로 들어가질 못해 바깥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어미샌가 보다. 새끼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았지?"
어미새가 드나들기 쉽도록 흙집 문을 열어 주었다.
그러자 어미새는 뻔질나게 벌레를 물어 나르기 시작했다.
새끼가 날아가려면 체력이 필요할 거야 하고 흙집에 새끼를 넣어두면서 갈무리해두었던 달맞이꽃씨를 새끼에게 주었는데 내가 준 모이는 거들떠 보지도 않더니 어미새가 주는 벌레는 좋은가 보다. 그리고 다시 나는 장작을 패기 시작했다.
두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쉬려고 하는데 어디서 새 우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린다.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보니 흙집 앞 대나무끝이다.
그곳에 어미가 앉아 쉴새없이 짖어대고 있다.
왜 그럴까 하고 곰곰 생각하다가 "아, 새끼를 부르나 보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흙집 현관을 들여다보니 휴대폰으로 찍으려고 하니 날개짓을 멈추고 가만히 앉아 있다.
어떻게 하나 보려고 한참을 지켜보았는데 새끼새는 날아가지 않는다.
어미새는 장대 위에서 계속 지저귀고 있고... "내가 지켜보고 있으니까 안심이 안되나 보다." 지켜보는 것을 포기하고
십여분 후 돌아와 찾아보니 그새 새끼새가 없어졌다. 엄마와 함께 어디론가 떠나버렸나 보다.
어미새의 지극한 사랑을 보면서 오래전에 어머님이 들려주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서울서 대학을 다니다 방학이 되어 부산의 집에서 쉬던 때였다.
고등학교 다니던 동생이 철부지처럼 구는데 어머님이 늘 감싸기만 하는 게 못마땅하여 하루는 어머님께 "어머님, 쟤가 저러면 따끔하게 야단을 치셔야지 여쭤보았다.
그랬더니 어머님 말씀. "그러지 마라. 막내의 울음소리는 엄마가 구천에 가서도 듣는다고 한다."
난, 말문이 막혀버렸다. 어머님의 막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그 말씀 한 마디에 다 들어 있었다.
어머님과 막내인 동생의 관계는 막내의 울음소리를 구천에서도 듣는다는 것은 어머니의 자식 사랑이 특히 약한 자식에게 더 크게 향한다는 것일게다.
아이를 여럿 키우지만 형들에게 이런저런 구박을 받기 쉬운 막내에게 어머니는 더욱 각별한 사랑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미새 덕분에 하늘에 있는 동생을 추억하게 된 뜻깊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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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신암에서 보낸 편지 원문보기 글쓴이: Lucia Jang
첫댓글 최신판 흥부집 박새이야기 군요, 옛날 흥부와 제비 이야기 보다 감동이 가득합니다, 박새가 호박씨 물어와서 수확하는 2탄 소식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