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림신학교로 가는 길에 길림에 있는 중식당에 들러 점심을 해결하였다. 길일이라 그런지 오늘은 어디를 가나 결혼식 폭죽이 터지고 결혼 커풀을 태울 웨딩카가 넘쳐 난다. 이 식당에도 홀 마다 결혼 피로연으로 정신없다. 아무 곳에서나 피는 담배 냄새로 여간 고역이 아니다. 그리고 실내 바닥은 엉망이다. 점심을 해결 한 후 길림 신학교에 도착하여 중국에서 유명한 성모 동굴을 찾았다. 성모동굴은 중국 천주교 성지에 들어 가는 곳이다.
신학교의 공식명칭은 길림성 천주교 신철학원이다. 사제가 되려면 신학생 시절 철학과 신학을 연이어 배워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나는 길에 세 자매님을 정문 앞에 세운 후 사진을 찍었다.
성모동굴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 이곳 성지에 대하여 신부님께 설명을 듣은 후, 잠시 기도의 시간을 갖었다. 그리고 묵상의 시간을 보내며 분심을 경계하였다. 화살기도를 만들어 드린 후 돌아서자 수녀님과 어느 중국자매님이 산책을 하시는 모습이 보였다.
수녀님과 평신도 한 분이 산책을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발 빠르게 다가 가 알맞는 구도를 기다렸다. 하늘 배경이 너무 근사하고 명암도 환상적이었다. 속사로 서 너장을 찍으며 두 사람은 무슨 의미의 산책을 하는 걸까? 추론을 하기 시작하였다. 성직! 참으로 어려운 길이고 힘든 고행이며 고단한 삶이다. 늘 깨워 있어야 한다. 한 순간도 잠들고 기도를 놓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수많은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모든 것은 마음으로 다스려야 한다. 모든 유혹의 감각은 전부 닫고 오로지 구도심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성직의 생활이다. 이토록 어렵고 힘든 길을 조선의 세 소년은 고향과 부모를 등지고 수 천리 길을 걸어서 마카오에 도착한다. 최방제 소년은 꿈도 피지 못하고 풍토병으로 사망한다. 남은 두 소년은 부제에 이어 사제가 되지만 대건소년은 새남터에서 순교를 하고 양업소년은 문경새재와 이화령 아래 진안리 주막거리에서 장티프스로 사경을 헤매다 예수 마리아를 부르며 선종한다. 그를 우린 땀의 순교자라 부르지만 대건 소년에겐 피의 순교자 한다. 그들은 부활하여 후대 신자들의 신앙적 길에 등대가 되어 지켜 주고 계신다. 만주와 북간도 일대를 찾아 온 이유도 바로 두 신부님의 발자취를 따르기 위함이 아니던가! 안드레아 신부님! 토미스 신부님! 하고 불러 보았다.
숲이 우거져 빛이 차단되다 보니 길이 미끄러웠다. 십사처를 찾아 주모경을 받치는 것으로 갈음하고 성직자 묘원을 참례하였다.
길림교구 천주교 신직묘원이라 이름이 이채롭게 느껴졌다. 신직은 분명 성직자들을 뜻한다. 신의 대리자! 를 말하는 것이다.
십자가를 바라 보면서 우측은 수녀님 묘원이고 좌측은 신부님들 묘원이라 한다.
보이는 건물이 바로 신학교 건물이다. 커다란 땅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체계적으로 발전할 수 없었던 이유는 정치적 탄압의 결과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나만 중미수교 후 개방정책을 통하여 신앙은 숨통을 트게 되고 올림픽 이후 점진적으로 발전되어 가는 단계다. 지금은 전교를 할 수 없는 사회지만 향 후 이또한 섭리의 영향으로 활활 타오를 것이라고 확신한다.
묘원에서 참례 일정을 마친 후 신학교로 이동하였다.
길림시가 신학원에서 한 눈에 들어 왔다. 담장 넘어 하늘, 구름이 너무 근사하였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뭉게구름이었다.
감탄하며 조망하다 신학원 경당에 들어서서
신학원에 대하여 서신부님을 통하여 설명을 들었다. 한국말이 유창하다 주신부님께서 소개하셨는데 틀린 말이 아니었다. 설명을 마치고 나가시는 신부님을 뵙고 작은 성금을 전달해 드렸다. 동행하는 형제, 자매들이 십시일반 모은 작은 정성이다. 그 답례로 식당에서 맛 있는 커피를 끓여 주신다고 서신부님께서 초대해 주셨다.
경당에서 기념촬영을 마친 후 신학교 도서관과 사무실을 경유하며 신학교 면모를 살펴 보았다.
그리고 서신부님께서 끓여 주신 커피를 태이블에 앉아 나누었다. 식당과 붙어 있는 주방과 부속실, 그리고 식당내부도 참 정갈하게 구며저 있었다. 방학중인 신학교라 그런지 신학생은 볼 수 없었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칠품 중 부제품과 사제품을 제외한 모든 소품을 없에 버리고 평신도들도 참여할 수 있는 시종직(侍從職), 독서직(讀書職)을 두고 있으며 학제는 라틴1년, 철학 2년, 신학 4년의 교과 과정 즉 합 7년의 전과정을 마쳐야 하고 신학교 4학년 때 독서직을 대학원 1학년 독서직, 대학원 2년차에 부제품을 받는다.
신학교에서의 모든 일정을 끝내고 인사를 드린 후 발걸음을 정문으로 옮기다 작은 쪽문으로 보이는 예수님이 계셨다. 돌을 원형으로 깍아 만든 의자가 있어 그 곳에 앉아 사진을 찍어 보았다. 새로운 의미를 느껴 보기 위함이었다.
신학교 방문을 끝낸 일행은 다음 행선지를 찾기 위하여 이도로 향하였다. 오늘은 긴시간을 버스에서 보내야 한다. 이도로 가는 도중 휴게소가 있어 잠시 머물다. 떠나기로 하였다. 새로 만들어진 휴게소다. 잠시 쉬며 옥수수를 사서 나누고 맥주 한켄을 사서 데레사 자매께서 주신다. 한모금을 마시자 청량감은 없고 텁텁한 기운이 감돈다. 물의 영향 때문인가.? 물이 안 좋아 차 문화를 활성화 시킨 민족이 중국인들이다. 버스로 돌아오는 길에 근사한 암벽 넘어로 구름이 아름답다. 멀지만 카메라를 들어 스케치 하였다. 여행중 풍경을 챙기는 것도 나의 몫이다.
이번 순례에 처음 참여하신 제노베파 자매님과 필로메나 자매님이 카메라에 잡혔다. 선후배라 하는데 늘 동행내내 참 살갑게 서로 대하신다. 잘 걷고 적응하시는 제노베파님에게 자주 눈 길을 주면서 감사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연세가 있으신데 참 건강하신 자매님이시다.
이번 순례중 회계로 발탁된 수산나 자매님, 십시일반금원을 들고 즐거운 표정이다. 도맡아 챙기신 관계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사료된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지가 휴게소에서 만나 연못, 노을빛이 반영되어 근사한 감이 들어 여러장의 사진을 남겨 두었다. 참 지루한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데레사 자매님의 하모니카 반주에 힘 입어 여러곡의 성가를 부르기도 하고 행동식과 기호식을 나눔하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 후 오후 늦게 이도에 도착하였다. 한정식을 하는 식당에선 상추쌈과 삼겹살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소주와 더불어 늦은 저녁을 챙겼다. 모두 삼겹살 구이가 맛있다 한다. 시장이 반찬이 아닌가! 하면서도 나는 연신 삼겹살 구이 맛에 빠져 들었다. 사실은 소주 맛이 아니던가. 릿다 지매님이 좋은 술 친구가 되어 주셨다. 오고 가며 따르고 받아 마신 술은 이도의 청정한 공기 덕분에 다음날 숙취는 없었다. 숙취를 느낄 만큼의 주량도 아니었지만 ......
순례 3일째를 맞이한 이도 다이너스트 호텔에서 맞이한 아침
백두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호텔, 아침 풍광이 아름다워 서둘러 짐을 챙긴 후 켐프사이드 숲을 찾아 나섰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아침 풍경을 차입할 목적이었다. 너무 청량하였다. 촉촉하게 내린 이슬이 발자국 소리를 숨죽이게 한다. 화산의 영향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작은 돌 알갱이와 검은 빛 흙, 이런것들만 보아도 우린 이미 백두산 줄기에 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양손을 깍지 낀 후 양 손을 들어 긴 호홉을 유도하여 폐부 깊숙히 청량한 공기를 마음껏 마셨다. 공기는 무취라하지만 나는 그 논리에 반대하는 사람이다. 조용히 모든 것을 내려 놓고 가만히 앉아 숨을 고르다 보면 주변 숲의 환경에서 우러나는 냄새가 공기에 섞이게 된다. 나는 지금 백두산 극상림 숲의 맑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중이다. 여러가지 성정으로 쌓여 있던 마음 곳간이 말끔하게 씻어진다. 아~ 상쾌하다. 잘 나왔어. 함께 아침 산책에 동행한 피스칼 형님도 좋와 하신다.
초원에 펼쳐진 갬프사이드 이슬에 젖은 모든 것들이 신선해 보였다. 초목들도 영롱한 이슬방울이 메달려 있어 참 보기가 근사하였다. 이슬방울에 반영되는 모습을 찾으려 숲을 살폈지만 적당한 이슬이 안 보였다.
습지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찾았지만 끝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런 아름다움을 찾으려면 숲에 몇일 동안 머물러야 한다.
말도 조찬을 즐기는지... 고개를 들지 않으며 열심히 풀을 먹고 있었다. 시계를 보자 약속된 시간이 다가와 더 숲에 머물 수 없었다.
우리가 머물던 호텔이다. 시설과 식당이 괜찮은 편이다. 추후 다시 온다면 다시 찾을 것이다.
호텔 로비로 가려고 하자 펠레지아 , 릿다 자매님이 오셨다. 아침 인사로 그네에 앉토록 한다음 사진을 찍어 드렸다. 내거 짠 룸메이트, 두 사람이 잘 어울린다. 아래 사람인 펠레지아 자매님이 살갑게 언니 언니 하는 소리가 참 정겹게 들렸다. 이젠 백두산으로 가기 위하여 절차를 밟아야 한다. 티켓은 이미 순례 가이드 언니가 줄을 서서 입장료와 차 이용 티켓은 구매하였을 것이다. 우린 짐을 챙긴 후 장백산 출발 건물앞 까지만 가면된다. 버스에 올라 장백산 출입통제 건물로 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