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봉산
1.산행구간 : 신평2리 여근곡 전망대-유학사-여근곡-오봉산-주사암-마당바위-신평2리
2.산행일자 : 2008. 4.13(일요일)
3.산행거리 :
4.산행참가자 : i 영남알프스 4월정기산행
5.구간별 시간:
◎ 경주 서라벌 대학 원석웨딩홀(12:00)
◎ 건천 신평2리 여근곡 전망대(12:30)
◎ 주차장(12:50)
◎ 유학사(13:05)
◎ 유학사 출발(13:10)
◎ 여근곡(13:13)
◎ 부산성 안부 (13:50)
◎ 전망대(13:56)
◎ 휴식(14:10)
◎ 임도(14:16)
◎ 오봉산(14:27)
◎ 주사암(14:30)
◎ 마당바위(14:35)
◎ 주사암(14:42)
◎ 임도(14:52)
◎ 신평2리 주차장(15:48)
오전 11시
영알의 권총무님 며느님 보는날입니다.
평소 검은색의 산행복장만을 보다 새로운 한복의 고운자태는 영락없이 한여인네를 가르킵니다.
참여하신 하객들중 산행하시다 만난 인연등 여러가지 인연이야 있겠지만 부부의 인연을 맺는 그들의 인연이 진짜의 연이지 싶습니다.
그리고 참여하신 하객분들중 밀양의 백원장님 부부, 그리고 포항의 여러분들을 보니 또한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
오히려 항상 산행복장만을 보다 정장을 차려 입은 그들의 모습이 어쩐지 어색하게 보일뿐입니다,
식사후 곧장 이어지는 오후 산행길
처음 12일 토오일 실시되던 정기산행을 13일 오후에 잡은것도 결혼식 하객으로서의 의무(?)감을 다하자는 속셈이지만
어째튼 많은 사람들을 참여시키는게 저의 주된 목표였을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정기산행을 모든사람들의 관심지라는 여근곡의 오봉산을 선택합니다.
여근곡
야사에 설이 많았던 곳
지도에 보면 섭뜰이라고 되어있지만
사람들은 이 들판을 "썹뜰“이라고 부르지만 어떤 사람들은 ”씹뜰“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이는 마을 뒷산을 신라 때부터 흡사 여자 성기의 골짜기와 같다고 해서 일찍부터 이 골짜기 마을을 두고 여근곡(女根谷)이라고 불렀다는데, 이 능선의 계곡이 흡사 여성의 그 곳을 닮아서 하여 많은 풍자해학이 나오는곳입니다.
삼국사기의 선덕여왕 5년 문헌를 보면
봄 정월(正月)에 이찬(伊飡) 수품(水品)에게 벼슬을 주어 상대등(上大等)을 삼았다.
3월에 임금이 병에 걸렸다.
의원(醫員)의 치료와 기도(祈禱)가 다 소용없었다.
황룡사(皇龍寺)에 백고좌(百高座)를 설치(設置)하고
중(僧)들을 모아 인왕경(仁王經)을 강독했다.
[백성 중에] 중이 되는 것을 100명 가량(度) 허락하였다(許).
여름 5월에
궁궐(宮闕) 서쪽 보지못(玉門池)에 두꺼비(蝦蟇)들이 떼로 모였다.
임금이 그 사실을 듣고서
좌우(左右)를 보며 가로되
"두꺼비(蝦蟇)들의 부릅뜬 눈(怒目)은
병사(兵士)들의 모습(相)이다.
내가 일찍이(嘗) 들으니(聞) 서남쪽 변경(邊境)에도
보지골(玉門谷)이라는 지명(地名)이 있다고 한다.
혹시(或) 이웃나라 병사(隣國兵)가
그 안으로(其中) 몰래 들어오지는 않는가(潛入乎)?"라고 하셨다.
이에(乃) 장군 알천(閼川)과 필탄(弼呑)에게 명(命)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그곳을 수색(搜)하게 하였다.
과연(果) 백제(百濟) 장군(將軍) 우소(于召)가
독산성(獨山城:忠州)을 습격하려고(欲襲)
갑옷 병사(甲士) 5백명을 거느리고
그곳(其處)에 와서(來) 잠복(伏)해 있었다.
알천(閼川)이 기습공격(掩擊)하여 모두(盡) 죽였다.
자장법사(慈藏法師)가 당나라(唐)에 가서 불법(法)을 구하였다.
라는 사고에 의하면 선덕여왕은 꽤나 총명했던 분이라는것은 야사에서도 밝혀오고 있던 사실입니다.
야사에 의하면 아버지인 진평왕과 마야부인 사이에 아들이 없이 아버지가 죽자 차녀인 덕만이 선덕여왕으로 왕을 이어받았는데,
선덕여왕은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고 영리했든 모양입니다.
대내외적으로 당에 사신을 보내는 등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백제와 고구려와는 영토분쟁이 잦아 늘 전쟁의 와중에 있었읍니다.
초기에는 나라를 부흥시키고 문화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지만 여자가 왕이란 이유로 민심의 동요도 있었고
특히 이웃국가의 침략이 잦아 김유신 김춘추의 도움으로 물리치곤 했었지만,
왕위에 오른지 16년만에 가냘픈 여자의 몸으로 반란의 동요에 휘말려 헤어나지 못하고 다음 왕위를 물려줍니다.
그리고 또하나의 야사에 의하면
어느날인가부터 왠지 선덕여왕 자신의 성기가 가려웠다고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지만 내놓고 이야기 할수도 없는 사실이라 걱정이었답니다.
그렇다고 남자를 가까이 하지도 않았고 특별히 병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몇일이 지난후 선덕여왕은 성기가 가려운 이유를 알았답니다.
그래서 군사를 뽑아 서쪽 교외의 어느 곳(여근곡)으로 가서 백제의 군사를 잡으라고 명했다는데,
군사들은 어아해 하면서 왕명이라 거역도 못하고 시키는데로
그곳에 가니까 과연 백제의 군사가 숨어서 우물에 긴 막대기를 쑤시고 있었다고 합니다.
선덕여왕은 이 우물에 백제군사가 쑤심을 가하자 성기가 가려웠던 것이라는데,
야사지만 믿거나 말거나 한이야기, 하지만 선덕여왕의 총명하고 슬기로움에 감복할뿐이랍니다.

◎ 경주 서라벌 대학 원석웨딩홀(12:00)
경주에서 영천가는 도로를 이용 건천방향으로 길을 잡습니다.
얼마전만 해도 건천을 거쳐서 가겠끔 되어 있지만 요즘은 우회도로가 개설 영천쪽으로 가다보면 포항가는 국도 북건천 IC못미쳐서 오른쪽 천포교차로로 내려섭니다.
그리고 잠시후 건천읍에서 오는길과 마주치는데 옛국도입니다.
다시 영천쪽으로 잠시 가다보면 길가에 여근곡이라는 이정표와 함께 왼쪽으로 마을로 들어서는 길이 있습니다.
잠시 들어서면 철로를 지나 농로길을 잠시 따르면 오른쪽으로 주사암 가는길의 포장도로의 삼거리를 곧장 지나면 왼쪽에 호수가 나타납니다.
이호수의 이름이 불심지라는 것입니다.
여근곡에서 흘러온 물이 모여 부처못을 이룬다나 어쨌다나...
좀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불교 설화에 보는 부처가 마야 부인의 옆구리로 태어났다고 하는데.....
하지만 성인도 역시 여근을 통하지 않고는 나올 수가 없는 것이리라는데 일리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 건천 신평2리 여근곡 전망대(12:30)
신평2리 경로회관 주변에 차를 주차시키고 여근곡 전망대로 들어 섭니다.
물은 없지만 인공호 주변에는 탄생의 신 '삼신 할머니상'이 아기를 안고 서있으며, 그앞에는 남자의 성기모습을 한돌이 있으며
그앞에는삼신할머니 체험장의 안내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줄거리에는 아기를 점지해주시는등 건강과 지혜를 주는 삼신이라는 안내와 6KG이나 되는 돌을 소원을 빌고 돌을 스다듬은후 들어보면
또다른 느낌이라는데 별로 느끼지 못하는 또다른 느낌은 무엇인지 궁금할뿐입니다.
그리고 그 앞 인공호 중앙에는 개구리인지 두꺼비인지 수석이 놓여 있으며 전망대로 올라서려니 쥔장인듯 한분이 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소개합니다.
여근곡을 자연문화재로 건천의 보물로 가꾸어 보겠다는 신념이라 설명이 아주 진지하고 열성적입니다.
몇 해 전에 여근곡이 자리 잡은 오봉산에 산불이 났었는데 주변은 다 불탔지만 여근곡만은 불타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나면 여근곡의 음기가 불을 쫓아 냈다는 것인데, 습한곳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또하나의 가리키는 손길을 따라 여근곡 뒤 오른쪽 산능선을 바라봅니다.
임산부가 손을 배 위에 얹고 누워 있는 모습이랍니다.
합천의 미인산도 그러하거니와 자연의 대한 남다른 의미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은....
그래서인지 이 마을사람들은 정월대보름이면 제사장을 뽑아 동제를 지낸다고 하는데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여근곡 샘을 작대기로 찌르면 마을 여자들이 바람이 나기 때문에 동제를 통해 예방을 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전에는 옆 동네 청년들이 몰래 샘을 후비기도 했으며 이런 일 때문에 한 때는 외지 남자들의 접근을 막기도 했다고 하고
또 이곳은 결혼하지 않은 남자가 죽어서 묻히면 최고의 명당으로 꼽기도 했다는데 이것은 죽어서도 여성과 가까이 있고픈 남성들의 희망사항이 아닐까 싶어집니다.
하지만 죽은 남성의 희망사항과 달리 이곳에 남성의 무덤이 들어서면 틀림없이
비가 오지 않거나 괴질이 돌았다고 하는데, 마을에 이런 변고가 생기면 사람들은 몰래 쓴 무덤을 찾아 없애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옛날에는 서울에서 경주 부윤으로 부임해 내려오려면 이곳을 지나야 하는데 여근곡을 보게 되면 재수가 없다하여 영천에서 안강으로 노팃재를 넘는
먼 길을 돌아 부임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6·25 전쟁 당신 국도변을 따라 행군하던 미군들이 여근곡을 보고 탄성을 지르며 사진을 찍고 야단법석을 떨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는 설명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수석전시장을 방문 이색적인 괴목에 수석에 실로 놀라움을 금할길 없습니다.
그렇지만 시간 관계상 더있을수도 없는 노릇이라 산행을 출발을 알립니다.
이에 이곳 쥔장은 상품 팔기에 열올리는 광경을 목격하다보니 왠지 씁쓸해보입니다.




◎ 주차장(12:50)
뒤돌아 나와 차를 타고 유학사 가는길 길따라 고속도로의 수로암거를 지나 올라서니 마을 안쪽에 주차장이 있습니다.
몇대의 차량만이 주차해있고 물을뜨는 동네사람들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오봉산 생수라며 "이생수는 4반외인은 1회20L(한말)로 제한함 서기2007.4.1" 이라는 팻말입니다.
그렇다면 이곳까지 와서 생수를 많이 떠가지고 간다는 이야기입니다.


◎ 유학사(13:05)
수도가에 에서 여근곡 유학사라고 쓴 이정표 따라 시멘트 포장길을 올라섭니다.
200M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오른쪽 언덕위에서 나는듯해 보이는 돼지사육장의 고약한 냄새, 그리고 그아래 연못은 물이 뿌였습니다.
아마도 사육장의 오물이 흘러들은듯해보입니다.
하지만 동네 아래도 아니고 윗쪽에 돼지 사육장이라 그리고 고약한 냄새...
영 분위기는 아닙니다.
얼른 지나고픈 마음 뿐입니다.
올라서는 시멘트 포장길의 왼쪽 오른쪽에는 자두와 포도 사과등 재배단지가 있으며 이윽고 오봉산 농장을 오른쪽에 두고 올라섭니다.
그리고 잠시후 Y자의 여근곡 유학사라는 의미심장한 이정표를 지나 유학사에 도착합니다.

◎ 유학사 출발(13:10)
조용하다 못해 아무도 없는 유학사
인기척 하나 없습니다.
목조로 지은 대웅전과 그앞의 석탑, 아무리 봐도 언바란스입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묻혀갈수도 있는 일아마도 석탑은 들어선지 얼마되지 않은듯해 보입니다.
그리고 왼쪽 구석에는 "女根谷淸淨水"라는 돌이정표와 함께 돌로만든 항아리리에 파이프를 연결 물이 솟아나는 모습을 하고 있는 물을 한모금 해봅니다.
여느물맞이나 똑 같습니다.
소문에의하면 여근곡에서 파이프를 연결 여근곡에서 나오는물을 이곳으로 흘러 내리게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 여근곡(13:13)
샘터 옆 여근곡까지 5분, 그리고 300M라는 표지판을 따라 솔숲사이 계단길을 올라서면서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됩니다.
산능선 왼쪽으로 돌아서 개곡을 하나를 건너고 여성 음부에 해당되는 도톰한 둔부에 해당되는 산자락을 타고 오르면 여근곡 옥문지에 도착합니다.
아무런 이정표도 없고 조그만한 설명판에는 여근곡 중심지라는 글과 함께 "이곳의 옥수는 유학사마당에 위치한 미륵담앞에 있으니 이용바람"이라는 글귀가
있는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곳에서 호스를 설치 유학사까지 연결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잠깐 선덕여왕의 설화가 잇는 이곳
선덕여와의 뛰어난 혜안을 신기하게 여긴 신하들이 어떻게 개구리를 통해 백제군이 숨어 있는 줄 알았냐고 묻자
여왕은 개구리는 성내는 형상이니 군사의 상징이고, 옥문이란 여근이요, 여자는 음인데 그 색은 희고 흰 것은 서쪽이라(남-적,북-흑,동-청).
그러므로 서쪽에 군사가 있음이며 또한 남근은 여근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으므로 쉽게 잡을 것을 알았다고 답했다는 야사입니다.
정말이지 믿거나 말거나 한이야깁니다.

◎ 부산성 안부 (13:50)
다시 출발합니다.
옥문지를 지나 길은 계속 남쪽 산허리를 넘어 계곡 하나를 더 건너 산불이 난듯한 지능선을 타고 오릅니다.
다사로운 햇볕에 이내 굷은 땀방울이 흘러 내립니다.
먼저가던 선두의 모습도 휴깃을 가지먄서 얼굴도 보게 되고....
무덤마다 보는 할미꽃도 여태보지 못했던 광경이라 연신 카메라에 담습니다.
다시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서게 되면 다소 경사가 완만해지며 여근곡의 상단부에 올라섭니다.
다시 출발하여 왼쪽 산능선의 왼쪽 사면으로 이어지는가 싶더니 아예 갈지(之)자의 길입니다.
낙엽속에 갈지자의 길이 고도를 높이면서 중강 중간 질러 가기도 해봅니다.
하지만 이도 잠시 주능선에 도착합니다.
유학사를 출발하여 40여분 만에 주능선 고개에 도착합니다.
◎ 전망대(13:56)
다시 산성길따라 안부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능선을 따라 올라서게 되면 소나무가 있는 전망대에 도착합니다.
발 아래로 신평, 아화, 건천일대의 너른 들판이 시원스럽게 보이며 잠시 휴식합니다.
낙동정맥길인이 당고개까지 이어지는 산상 고랭지채소밭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포항의 배냥에서 소초 한병을 내어놓고 모두 둘러 앉아 한잔씩을 합니다.

◎ 임도(14:16)
그러길 10여분 다시 출발합니다.
산성따라 들어서더니 이어 완만한 능선기 오르막길이 이어 집니다.
주변에는 진달래꽃등이 길을 밝히고 있으며 잠시후 무명봉에 올라선다.
그리고 내려서는데 오른쪽에서 올라오는길과 합류 되면서 차량한대가 서있습니다.
이 길은 서면쪽 도계마을이나 건천 신평리에서 주사암까지 오르는 차도로서 상당히 험한 길이라는 설명을 듣고 있었던터라 ....
급커버가 많은 혹은 심한지역이랍니다.
◎ 오봉산(14:27)
그리고 이내 길따라 들어 섭니다.
잠시후 주사암 가는 차도를 따라 100m 가량 나서면 오른쪽으로 들어서 길이 있고 그 초입에 "파평윤씨지묘" 가 있습니다.
그 무덤 뒤로 올라서게 되면 커다란 바위가 건천일대를 내려다 보고 있으며 다시 되돌아 나와 얼마지 않아
산불감시초소가 자리하고 있는 무덤이 있는 오봉산 정상에 올라섭니다.

◎ 주사암(14:30)
경주일요산악회에서 설치한 정상석이 해발 685m를 알리고 있으며,남쪽 건너로 부산성일대의 너른 평원지대가 가스속에 가물거립니다.
잠시 쉬면서 오봉산을 뒤로 하고 주사암을 향합니다.
지붕이 내려다 보이는 주사암까지는 얼마되지는 않습니다만, 아주 멎진자리에 위치해있다는 사실입니다.
주사암은 불국사의 말사로서 신라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하는 조그만 암자인데요,
주사암이라는 요사체를 제외 한창 보수중이라 어수선한 느낌 지울수 없지만 남쪽을 향하는 이곳의 분위기는 그 어느사찰보다 편안해 보입니다.


◎ 마당바위(14:35)
수도로 쏟아져 나오는 생수는 갈증을 해소하기에 충분하며 잠시 휴식후 오봉산의 명물인 마당바위로 향합니다.
먼저 간이들위 마당바위의 풍경은 아주 멋드러지게 그림이 나옵니다.
문헌에 의하면
지맥석(持麥石)이라 불리우는 이 마당바위는 산상 위의 반상으로서
마치 멍석을 깔아 놓은 듯한 암반으로 신라 김유신 장군이 술을 빚기 위하여 누룩을 널었다는 곳으로 술을 빚어
군사들을 대접하던 곳이라 하여 지맥석이 되었다고 전해지며
곳곳에 움푹움푹 패여 들어간 자리들은 말발굽의 흔적이라 합니다.
어째든 바위반석에 서서 이런 저런 이야기와 함께 오랜만에 단체사진을 남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