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말 용이 승천했다는 못에 터를 잡고 한집두집 모여들어 3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마을 용계리.
용계리(이장 윤중하)는 계곡면 사무소에서 가학산 휴양림 방향으로
5km쯤 가다보면 흑석산(가학산)아래 아담하게 위치한 마을이다.
마을 앞으로 흘러내린 흑석산의 물줄기는 드넓은 마을의 옥답을 적시
고 23세대 70여명의 주민들은 쌀과 보리농사의 주작목과 젊은이들은
시설원예로 부농의 꿈을 일구어 가고 있다.
지금의 용계리는 할아버지 할머니들로 인해 마을의 부귀영화가 추억
으로 이야기 되지만 20~30여년전 해남에서 시설원예를 처음으로 실
시, 부촌으로 이름을 날려 해남 시설원예의 시발점이라고 할수 있는
마을. 용계리의 옛 영화는 마을 경로당에 걸린 표창장을 보면 알 수
있다. 1984년 농수산부 장관 표창, 94년 내무부장관 표창은 복합영농
사업 성공적 추진마을, 특화사업 발굴로 소득원 증대, 활기찬마을 등
으로 용계리를 말하고 있다.
마을 노인들로부터 흘러나온 마을의 옛 이야기는 흥미롭기 그지없다.
마을 앞고랑 ‘장군수'전설은 “용계리에 오씨성을 가진 장사가 살고
있었고 오장사가 오래전 임오년 어느날 저잣거리 대장간에서 쇠스랑
을 손으로 찢는 비석거리 장사를 보게 되어 한판 결투를 신청,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가운데 엄지 손가락으로 땅을 누르니 땅이 푹 꺼지
는 괴력을 발휘해 비석거리 장수가 울고 가더라” 는 이야기로 구전
되고 있다. 앞으로 장군이 날 것이라던 ‘장군수’우물은 85년 경지
정리 사업으로 인해 흔적조차 없어져 버렸다.
‘안사랑 밭사랑' 이야기도 귀를 솔깃하게 한다.
마을 뒷산중턱엔 ‘안사랑 밭사랑'로 불리고 있는 바위동굴이 있는데
밭사랑은 발견을 했는데 수많은 금은 보화가 숨겨져 있다는 ‘안사
랑'은 온산을 찾아 헤맸지만 아직 발견하지 못했단다.
용계리는 매년 섣달 그믐경에 마을 어른들을 위한 경로잔치를 열 정
도로 경로효친 사상이 뛰어난 동네이다.
“용계리는 정말로 살기 좋은 동네요”라고 이야기 하면서 “헌데 마
을 앞으로 기차가 지나가게 된단 말이요, 이것이 문제요 ”라고 이야]
기를 꺼내는 마을 노인들은 어떻게 했으면 좋을까를 놓고 걱정이 태
산이다.
“해남에 들어오게 될 기차가 마을 앞을 통과 해서는 안돼요 간척지
를 통과하게 되는것이 최선의 방법이요”라고 이야기 한다.
마을 이장을 비롯한 주민들은 “마을민들이 데모를 하는등의 볼썽사
나운 일이 발생하기 앞서 해남군과 철도청에서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
지 않도록 대책을 강구해주기를 바란다”고 말 한다.
지금 용계리는 7~80년대의 마을을 일으킨 마을 노인들의 경륜과 명
성을 기반으로 젊고 의욕넘친 윤중하 이장과 부창수 새마을 지도자의
노력으로 부촌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용계리는 마을의 내력만큼이나 많은 전설을 곳곳에 간직하고 있다.>
자료출처 : 해남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