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일곱번에 걸쳐서, 천수천안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결국은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에 대해서
말씀드린 것입니다만, 저로서는 그래도 '천수천안'을 설명드리려고 애를 썼습니다.
이제는 '관세음보살'입니다.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천수경(=독송용 천수경)에서는 "천수천안 관자재보살 광대원만 무애대비심 대다라니"라고 말하지요? 이것이 "천수경"의 본래 제목입니다. 이 긴 제목을 줄여서 "천수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장경 안에 보면 "천수천안 관세음보살 광대원만 무애대비심 대다라니경"이라는 제목의 경이 있습니다. 이 역시 '천수경(=원본 천수경)입니다. 이 두 종류의 천수경이 서로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서는 차차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여기서 여러분께서 주의해 주셔야 할 것은 "관자재보살"과 "관세음보살"로 서로 다르게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 그리고 관자재보살은 같은 보살입니다. 관세음보살을 관자재보살이라고도 말하고, 또 관자재보살을 관세음보살이라고도 말합니다. "반야심경" 같은 데에서는 관자재보살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중국에서 경전이 번역될 때, 이렇게 두 용례로만 번역된 것은 아닙니다. 다양합니다. 광세음(光世音)보살이라고도 하였고,
관세음자재보살이라고도 하였습니다. 관세음자재보살이라는 표현은 '원본 천수경'에서도 드러납니다.
그럼 인도에서는 무엇이라 하였을가요? Avalokiteshvara(아발로끼떼쉬와라)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어떤 분은 관세음보살이라고 옮기고, 또 어떤 분은 관자재보살로도 옮긴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다르게 번역한 것은 Avalokiteshvara라는 말을 서로 다르게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반야심경"을 번역한 현장스님 같은 분은 관자재보살이라고 번역하기를 좋아했습니다만, 이 분이 이해한 것은 Avalokita + Ishvara로 보았습니다. 앞의 Avalokita는 '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Ishvara는, 음, 이 말은
인도에서는 신을 가리킵니다. 흔히 자재신이라고, 지금의 학자들도 그렇게 번역합니다. 그러니 현장스님께서는 관자재보살이라고 옮긴 것이겠지요.(산스크리트에서 모음 a와 모음 i가 만나면 e가 됩니다.)
그렇다면 관세음보살이라고 번역한 것은 어째서일까요? Avalokitesvara는 원래는 Avalokitasvara에서 왔다고 봅니다. 그래놓고 보면, Avalokita는 "본다"는 말에서 왔으니까 '관'(觀은 볼 관, 입니다.)이라 옮기고, svara는 소리라는 말입니다. 정확히 '音'이라 할 수 있지요.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에 보면, 관세음보살은 고통받는 중생들이 "관세음보살"이라고 이름을 부르게 된다면 즉시 나타나셔서
해탈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그 경전의 맥락은 관세음보살님께서는 중생들의 소리를 관찰하시는 분이라는 이미지가 있는 것이지요. 그런 점을 생각할 때, 관세음보살이라는 번역이 관자재보살이라는 번역보다 더 널리 유통되게 된 이유를 알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천수경(+독송용 천수경)에서 이미 "관자재보살"과 "관세음보살"이 함께 쓰이는 것을 보면, 우리는 관세음보살과 관자재보살이 같은 보살이고 어느 쪽으로 쓰더라도 좋다는 점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은 산스크리트까지 나와서 좀 어려웠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잘 생각해 보시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