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츠
무르강(도나우강의 지류,89KM)
양쪽 기슭에 시가지가 전개되며, 헝가리와 슬로베니아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9세기에 건설한 도시로 시의 이름은 슬라브어로 '작은 요새'라는 뜻이다. 1240년 무렵 자치권을 얻었고, 중세 시대에는 슈타이어마르크지방의 중심지가 되었다.
빈(Wien)에 이어 오스트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대학 도시로써 6개의 대학과 4만 여 명의 학생들이 있다. 중부 유럽에서 가장 보존이 잘 되어있는
것으로 알려진 구시가지는 1999년에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록되었다.
14세기 후반에는 레오폴드 합스부르크왕가의 지배를 받았으며 17∼18세기에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나폴레옹전쟁이 진행되었던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 프랑스군이 여러 차례 점령하였으며, 1850년 시가 되었다.
도시 주변에는 임산물과 광산물이 풍부하며 곡물·과일·포도주 등을 생산한다. 상공업과 관광산업이
발달하였고, 철강·기계·제지·직물 등의 공장이 있으며, 인쇄·석판술도
유명하다. 1586년 설립한 그라츠대학교를 비롯하여 1811년
세운 그라츠기술대학·오페라극장·주립박물관 등을 갖춘 교육·문화의 중심지이다.
시 왼쪽 기슭에 있는 슐로스베르크산(해발고도 475m)은 성터와 산꼭대기에 16세기의 유적인 시계탑과 종각이 있으며 1839년 공원이 되었다. 옛 시가지에는 르네상스양식의 주청사 란트하우스와 17세기 중반에
지은 병기고, 15세기에 건립한 바로크양식의 잔크트아이기디우스성당을 비롯하여 페르디난트 2세의 묘 와 에겐베르크성 등이 있다.
그라츠의 상징으로 알려진 시계탑(Uhrturm)과 대성당,
지금은 15세기의 갑옷과 무기가 전시된 박물관으로 사용중인 중세 무기고(Landeszeughaus)등이 유명하다. 그라츠의 새로운 명물로
자리잡은 무어 섬(Murinsel)은 무어 강 위에 떠있는 길이
50m, 넓이 20m의 구조물로 2003년에
완공되었다.
지멘스(Siemens)나 다임러 크라이슬러(DaimlerChrysler)등
유명한 기업들의 본사와 지사들이 있으며 1906년부터 해마다 그라츠 가을 박람회(Grazer Herbstmesse)를 개최해 20만 명이 넘는 방문객들이
찾아온다.
그라츠
대성당
그라츠 대성당이라고도 한다. 1464년에
건설한 고딕성당으로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3세(Friedrich
III, 1831~1888) 당시 황실 부속 성당으로 지었으며, 1786년에는 주교좌가
있는 대성당으로 승격하였다. 성당 정문에는 프리드리히 3세를
나타내는 문장이 장식되어 있다. 성당 남서쪽 모퉁이에는 1485년에
제작한 프레스코화 <재앙의 그림>이 있는데, 이 벽화는 1480년 그라츠가 겪은 대 재앙 즉 페스트, 투르크족의 침공, 메뚜기떼 등을 묘사하고 있다.
16세기 말 성당이 예수회에 넘겨지면서 성당 내부 장식은 원래의 고딕 양식에서 바로크 양식으로 바뀌었다. 성가대에 있는 2개의 성유물함은 만토바(Mantova) 공작부인 소유의 함인데, 함 외부를 이탈리아 시인
페트라르카의 시로 장식해 놓았다. 성당 바로 옆에는 황제들의 묘가 안치되어 있는 대영묘(Mausoleum)가 있다.
여행자의 수호성인 성 크리스토퍼
무어인젤
2003년 그라츠 시가 유럽문화도시로 선정되면서 함께 지은 건축물이다. 위쪽에서
봤을 때 입을 반쯤 벌린 조개나 강물의 소용돌이를 형상화한 모양이며, 강수량에 따라 높이가 조절되도록
설계하였다. 인공섬 외부는 약 230㎡ 규모의 야외무대로
꾸며져 있어 소규모 콘서트와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리는 장소로 쓰이고, 안쪽에는 투명유리 공간으로 된
카페가 있다.
그라츠 출신의 미술전문 기획자 로버트 푼켄호퍼(Robert Fukenhofer)와 뉴욕의
건축가 비토 아콘치(Vito Acconci)가 설계하였는데, 다리의
용도를 사람들이 편리하게 지나다니는 것에서 그라츠의 신, 구시가를 연결하고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여가를
보낼 수 있는 장소로 탈바꿈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예술적 디자인과 효율성이 알려져 세계
각지에서 매달 약 2~3만 명의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쿤스트
하우스
현대미술관인 쿤스트하우스는 오스트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그라츠가 2003년 유럽의 문화도시로 선정된 것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지어진 건축물이다.
지역주민들에 의해 '친절한 외계인'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쿤스트하우스는, 하얀 사각 건축물 형태인 일반적인 미술관과는 달리, 전체적으로 푸르스름한 색을 띠고 반짝이는 외형에 하얀 점들이 박혀 있는 무정형 구조물이다.
런던 바틀렛 건축학교의 교수로 재직 중이었던 콜린 포니어(1944년생)와 피터 쿡(1936년생)은
스페이스랩 쿡-포니어라는 팀으로 2000년 열린 국제 공모전에
참가하여, 이 건축물의 설계를 맡게 되었다. 특히, 쿡은 1960년대 아키그램의 주축을 이뤘던 일원으로, 젊은 건축가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준 수많은 건축물을 설계해 왔다. 쿤스트하우스의
형태에도 당시 선보였던 그의 건축 경향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쿤스트하우스의 외형은 철근 콘크리트의 기본 구조 위에 굴곡지고 투명한 푸른색 계열의 아크릴판으로 장식됐다. 내부는 흰 회반죽과 철망으로 꾸며졌다. 변형된 백파이프 모양과 비슷하다고
평가되기도 하는 볼록한 유기적 형태의 쿤스트하우스는 무어강(江) 옆에
세워졌다. 실내의 갤러리는 자동보도(步道)를 통해 연결되며, 지붕의 구멍을 통해 자연광이 스며들어온다. 베를린 소재 디자이너 그룹인 BIX의 솜씨로 만들어진 건축 외형은
밤이 되면 표면에 비춰지는 이미지와 영화 덕분에 생동감이 넘치는 모습으로 변모한다. 쿤스트하우스는 독특한
스타일, 풍부함, 장식적인 화려함으로 감싸져 있고, 옛것과 새것이 공존하는 건축물이다.
슐로스
베르크
원뿔 모양의 바위산으로 시의 왼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원래 그라츠를 지키는 요새였으나 나폴레옹 전쟁 당시 대부분 파괴되고 현재는 성터와 산꼭대기에 16세기에 세운 시계탑과 종루가 남아 있다. 1839년에 공원으로
조성하였으며, 오늘날에는 숲이 우거진 시민공원이자 도시 전체를 조망하는 전망대 역할을 한다.
9~16세기에 세워진 슐로스베르크 요새는 나폴레옹 전쟁 동안 1797년, 1805년, 1809년 3차례에
걸쳐 프랑스군에 의해 점령되었으며, 1809년 침략 당시에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다. 1561년에 만든 시계탑은 시침을 먼저 만들고 분침을 나중에
만들어 일반시계와 달리 시침이 더 긴데, 산 아래에서 보았을 때 더욱 정확하게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한다. 16~19세기에는 화재 감시탑으로 사용되었으며 연인들이 첫 키스를 나누는 명소로도 알려져 있다.
교회가 있던 흔적도 남아 있는데 오랜 세월, 전쟁, 자연재해 등으로 파괴되어 지금은 1588년에 세운 종루만 남아 있다. 이밖에 식수로
사용하기 위해 바위산을 뚫어서 만든 우물, 전쟁에 사용하였던 대포 등도 보존되어 있다.
중앙광장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번화가로 구시가지 중심에 있어 ‘중앙광장’이라고도
한다. 멀리 슐로스베르크가 솟아 있으며 다양한 빛깔로
칠한 18, 19세기 건물 뒤로 옛 약국을 비롯하여 약 50채의
중세시대 건축물들이 흩어져 있다. 약국 건물은 1535년에
지은 것으로 건립 당시의 장식 일부가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1878년에 세운 '요한(Erzherzog von Öster Johann, 1782~1859)의 분수'가
있다. 요한의 동상 주위로 슈타이어마르크 지방을 흐르는 4개의
하천을 상징하는 여신상들이 세워져 있는데, 1918년 이후 행정지역이 개편되어 오늘날에는 무어강과 엔강만이
슈타이어마르크 지방에 포함된다. 광장 남동쪽으로는 백화점, 유명브랜드숍 등이 늘어서 있는 헤렌가세(Herrengasse, 귀족의
거리)가 펼쳐진다.
란트하우스
‘시민회관’이라고도 한다. 오스트리아
르네상스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예전에 슈타이어마르크주의 주 의회가 있었던 곳이다. 슐로스베르크 요새를
지었던 이탈리아 건축가 도메니코 델랄리오(Domenico dell'Allio)가 1557~1565년에 지었다. 건물 파사드의 출입구 위에는 아치 모양의 창문을 배치해 놓았으며, 남쪽 안뜰에는 발코니
등으로 장식한 3개층의 아케이드를 설치하였다. 계단은 건축가
바르톨로메오 디 보시오가 만들었으며, 작은 에로스와 조각상들로
꾸며져 있는 우물은 이곳 출신의 수공예인들이 만들었다고 한다.
건물 안뜰에서는 여름에는 연극, 콘서트 등의 공연, 겨울에는
얼음축제 등이 열린다.
여행안내소와 무기박물관(Landeszeughaus)이 함께 있는데, 박물관은1642년에 지은 건물로 당시에는 무기고였으나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총 4개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세기사들이
사용한 투구, 흉갑, 전신 갑옷, 칼, 방패, 창 등 약 3만 2,000점의 무기를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