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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아침 5시 반, 눈이 저절로 떠졌다. 떠진 건 대견한데, 이런 늦었다! 광저우(광주)가는 비행기 시간은 9시5분. 최소한 7시30분까지는 도착하여야하는데, 시간이 좀 촉박하다. 아니나 다르랴. 아슬아슬한 시간에 맞추어 광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스튜어디스 언니에게 혼도 났다. 그러나 괜찮다. 곧 주성치를 보게 될 터인데, 이런 사소한 창피쯤은...
광저우까지는 3시간 반이 걸린다. 광주 백운(白雲)국제공항에 (광저우에 대한 지역소개)라고 인터넷에 나와있다. 정말 그런 가 확인해 봐야겠지. 그런데 호텔은 어딘가? 중국어를 조금 할 줄 안다고 하더라도, 처음 가 본 곳이고 더군다나 혼자여서 사실 많이 걱정이 된다. 여기는 책상다리 빼고는 다 식용이 가능한 중국 아닌가!(히히. 농담) 길을 물어물어 드디어 호텔에 도착하였다. 내가 묵을 광동 호텔은 5성급이었는데,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와 넓은 로비. 뭐든지 큰 중국다웠다. 방에 들어가니 트윈베드룸이었다. 아니, 이럴수가. 밤에 혼자 덤블링이라도 해야 하나. 이럴 줄 알았으면 친구라도 데려올 걸 그랬다.
짐을 풀고 나니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막막하다. <쿵푸허슬> 몰 체인지 이벤트는 내일(12일) 오후이니 약 24시간의 시간이 빈다. 이 시간 나는 놀고만 있을 것인가? 아니면 주성치의 행방을 찾아 광저우를 헤맬 것인가. 고국에 두고 온 맥스무비, 성치넷 친구들을 생각해서라도 가만히 놀 수는 없는 일. 일단 ‘주성치의 흔적’을 찾아내기 위해 광저우의 번화가를 찾아 나섰다. 내가 처음 간 곳은 주강(珠江)의 야경을 볼 수 있다는 연강로(沿江路) 부근. 간단히 식사를 한 후, 상점이 밀집된 거리를 돌아다녀보았지만, 아무데서도 쿵푸허슬의 자료를 볼 수 없었다. 중국에서 주성치 인기가 많다고 들었는데, 게다가 영화도 곧 개봉하는데 어찌 이리 포스터 하나도 볼 수 없을까? 이런 애정없는 곳에서 주성치는 왜 몰 챌린저 이벤트를 개최하는 것일까? 그렇게 걸어걸어 우리나라의 명동쯤 돼보이는 북경로(北京路)로 향하였다.
▲(위) 현재 광저우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영화 <천하무적>. (아래) 싱글요금(30위안)보다 커플요금(70위안)이 더 비싼 영한극장의 요금판.
이 곳에서 영한(永漢)극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꽤 번화한 거리에 있는 극장인데 사뭇 허름하다. 실망인데... 그런데 더욱 실망스러웠던 건 극장 안에 <쿵푸허슬>의 포스터가 한 장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도대체 개봉일이 얼마 남지 않은 <쿵푸허슬>의 포스터가 이다지도 보이지 않다니, 충격이 주는 용기로 극장 입장표 검사를 하고 있는 직원아저씨에게 물었다.
이 직원은 주성치의 <쿵푸허슬>이 곧 개봉되는 지조차 몰랐으며, 오히려 나에게 되물어본다. 땡~ 난 뒷통수를 도끼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아직 극장에서 홍보포스터도 받은 게 없단다. 사실 그 극장 안에는 풍소강 감독의 <천하무적(天下無賊)> 포스터가 도배되어 있었다. 이 <천하무적>으로 말할 것 같으면 중국감독 풍소강의 영화로, 유덕화, 이빙빙, 갈우 등의 배우가 출연한다. 이 영화는 줄곧 주성치의 <쿵푸허슬>과 비교가 되어왔다. 게다가 주성치와 풍소강은 서로 같이 영화 작업을 하길 바래왔기 때문에 풍소강 감독은 주성치의 <쿵푸허슬>에서 카메오 출연을 하기에 이른다. 풍소강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도 주성치를 출연시키길 원했지만, 주성치의 스케줄 문제로 무산되었다. 사실 중국내에서는 <천하무적>과 <쿵푸허슬>이 화의형제공사(華誼兄弟公司) 를 통해 같이 배급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천하무적>의 흥행은 주성치 팬의 입장에서 반가운 일이다. 그래도 <쿵푸허슬>의 포스터가 없는 이 상황에 내가 <천하무적>의 흥행 질주를 축하해 줄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래 극장 탓이다. 아무래도 이 극장은 외관도 그렇고 질문 하나하나에 귀찮아하는 직원분의 말에도 신뢰성이 떨어진다. 그에게 물어 광저우에서 가장 큰 극장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여기서 잠깐! 영한극장의 요금체계를 짚고 넘어가보자. 이 극장은 공식적인 극장 표값이 두 종류다. 1인용과 2인용이 있었는데, 2인용을 구매하는 것이 1인용 두 매를 사는 것보다 비싸다. 1인용 30위안, 2인용 70위안이다. 아니 이게 무슨 마케팅이 이러냐. 아까 질문했던 그 아저씨가 다시 말씀해주시길 2인용은 커플석이라 돈을 더 비싸게 받는 댄다. 이 요금제를 솔로들에게 희소식이라고 전해야 하나. 혜택이라고 전해야 하나. 만약 나라면 커플석은 사지 않을 것 같은데. 이래서 솔로들의 돈이 굳는다. --;;
▲광저우 제일의 극장 중화광장전영성. 비교적 깨끗한 멀티플렉스 극장의 외관을 갖추고 있다. 인터넷예매는 되지 않고, 전화, 현장예매만 가능. 회원에게만 20% 할인혜택이 있다.
광주에서 제일 크다고 소개받은 중화광장전영성(中華廣場電影城)으로 향했다. 중화광장전영성은 매우 큰 쇼핑몰 8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2001년 12월에 개관한 이곳은 우리나라의 CGV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깔끔한 외관의 멀티플렉스로 아까의 극장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러니 이 영화관에서는 주성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없었다! 어딜봐도 <쿵푸허슬>의 포스터는 보이지 않았고, 그놈의 <천하무적> 포스터만 눈에 띄었다. 혹시 <천하무적>과 <쿵푸허슬>의 배급사가 같기 때문에, 배급사측에서 <천하무적>의 흥행몰이를 위해 아직 <쿵푸허슬>의 홍보를 시작하지 않은 게 아닐까. 이리저리 둘러보며 나의 궁금증을 해결해줄 사람을 찾았다. 저 쪽에 영화관 문을 지키고 있는 맘씨 좋게 생긴 남자직원이 보인다. 그 분에게 한국에서 온 기자라 소개하고,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물었다.
소현(이하 소) : 곧 중국에서 주성치의 <쿵푸허슬>이 개봉되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남자직원(이하 남) : 알고 있습니다.
소 : 그런데, 어째서 영화관에서 <쿵푸허슬> 포스터 한 장을 볼 수 없죠? 다른 광저우의 극장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던데요.
남 : 우리 극장의 방침은 영화 개봉 일주일 전에야 홍보 포스터를 부착하는 거라서 그래요. 이미 <쿵푸허슬>의 홍보 포스터는 제작이 되어있습니다. 아직 그 시기가 되지 않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극장홍보는 아직 시작하지 않았지만, 현재 TV와 신문을 통해서는 광고를 하고 있습니다.
▲역시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중국 사람들. 여기저기 예쁜 크리스마스 트리가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은 맥주브랜드 하이네켄의 병으로 만들어진 트리.
그의 말에 따르면 지금 가장 인기있는 영화는 <천하무적>이라고 한다. 어쩐지 사방에 도배가 되어 있더라니. 조금만 있으면 이 기세를 우리 주성치의 <쿵푸허슬>이 이어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지며, 조금 전까지 주성치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던 불안감과 조바심이 다소 사라졌다. 중국극장에 대한 질문도 몇 가지 해봤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할인서비스와 인터넷예매, 전화예매 서비스가 있을까?
대답은 메이요(없다)! 광저우 최고 극장에도 인터넷 예매서비스는 없고, 전화 예매 서비스만 있다고 한다. 할인서비스도 극장표를 사고 20위엔을 더 내는 회원가입자에 한해서 20% 할인을 해주는 서비스가 고작이다. 인구가 우리보다 많아서 더 큰 영화시장을 가지고 있을 듯하지만, 시설이나 서비스 면에서는 관객들을 불러 모을 만큼 체계화 되어 있지 않다. 맥스무비 회원들아, 우리가 인터넷 예매와 서비스에서는 최강이다! 자부심을 가지자! 마지못해하긴 했으나 너무 친절하게 대답해 준 그 남자직원분. 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그는 사진 찍기만은 거절하였다. 아쉽다. 너무 고마운 마음에 한국여성들에게 소개시켜주고 싶었는데...
중국젊은이들은 주성치의 영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해적판이 판을 치는 중국에서 젊은이들은 극장에서 영화 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난 궁금했다. 저기 극장 휴식처에 왠지 대답을 잘 해 줄 것 같은 20대 초반의 두 여성이 보인다. 가보자. 가서 부딪쳐보는 거지. 그녀들에게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내 소개를 하며 접근을 했다. 그들은 한국이라는 말에 호감을 보인다. 이것이 바로 한류열풍의 증거일까나?
중국젊은이들이 한 달에 몇 번 정도 영화관을 찾느냐는 질문하자 '좋은 영화가 있으면 극장에 와서 보는 정도'라고 답했다. 요즘 중국 젊은이들 대부분 이렇다고 말했다. 타 극장에 비하여 20위엔 정도 표값이 비싼 중화광장전영성 극장을 찾는 이유는 깨끗하고 시설이 좋아서인데, 그외에 특별한 혜택은 없다고 했다. 이 사람들 한국 오면 거의 매주 영화보러 가고 싶어지겠네.
누구와 인터뷰를 하더라도 빼놓을 수 없는 질문. 주성치의 <쿵푸허슬>에 대해 물었다. 혹시 그녀들 역시 주성치의 팬이지 않을까하는 동물적 직감이 들었다. 역시! 나의 직감이 정확했다. 그들은 <쿵푸허슬>에 대해 알고 있었고, 주성치에 각별한 애정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내친 김에 중국에 난무하는 해적판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들도 해적판을 상당히 애용하는 것 같았지만, 영화관에서 보기로 맘먹은 영화는 꼭 극장을 이용한다고 했다. <쿵푸허슬>도 영화관에서 볼 영화 리스트에 올랐을까?
여자 A : 중국에는 해적판이 많지만 주성치의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해요. 최근 주성치의 영화에 특수효과가 많이 사용되잖아요. 해적판은 그런 느낌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거든요. 커다란 화면에서 좋은 시설의 극장에서 봐야 그 맛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여자 B : 주성치의 영화는 많은 사람들이 같이 모여서 봐야 더 재밌게 볼 수 있거든요. 코미디 영화는 같이 보면 더 신나잖아요.
역시 성치폐인들 답다. 그들은 주성치의 영화가 가볍게 볼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주성치가 헐리우드로 진출하는 것에 대한 생각은 잘 모르겠다는 반응. “미국은 개인 영웅주의가 농후한데 주성치와 잘 맞을지 가늠할 수 가 없다.”는 것. 일리 있으신 말씀이다. 그들에게 주성치에게 전하는 말을 물어보았다. 나중에 회원기자 인터뷰를 하면 내가 전해줄 수 있을지 모르잖아.
여자 B : 당신을 영원히 지지하겠어요!!
여자 A : 최근의 영화들은 이전의 스타일과 많이 달라지고 있는데요. 전 이전의 스타일을 다시 되찾길 바란답니다.
앗! 극장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마침내 주성치의 <쿵푸허슬> 사진을 찾았다. 하루가 끝나는 시점에 얻은 아주 작은 성과. <쿵푸허슬>의 직접적인 홍보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하루종일 찾아다니다 발견한 사진이라 그런지 나름대로 감동이다. 확실히 광주 현지에서는 우리나라만큼 <쿵푸허슬>의 홍보를 시작하지 않은 듯 하다. 주성치가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흥행몰이를 할 수 있을지. 광주에 오기 전에는 우리나라 보다 더한 주성치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상황이 그렇지 않다는데 많이 놀랐다.
그래도 내일의 현장은 오늘과 사뭇 다를 것 같아서 기대가 된다. 아무래도 주성치가 직접 나오시는 이벤트 현장이니 모이는 사람들도 그의 팬들도 우글우글 할 것이다. 언어는 다르지만 나와 같은 주성치 팬을 만나게 된다는데 설레임을 멈출수가 없다. 또 비록 가까이서 보지 못하더라도 같은 하늘 아래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숨을 쉬고 있는 주성치를 본다는 것도 흥분되는 일이다. 광주의 주성치 팬들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과연 <쿵푸허슬>은 성공할 수 있을지, 내일의 이벤트 현장 취재도 ‘아자!’를 외치며 광주에서의 첫 날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