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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여수, 섬, 바다의 상상력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여수
-2012년 여수박람회 기념사화집 『시로 읽는 여수』를 중심으로
강 경 호
『시로 읽는 여수』(2012, 시와사람)는 2012여수박람회 기념 사화집으로 전국의 시인들의 시작품으로 구성된 시집이다. 이 시집은 여수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 펴낸 책이긴 하지만 전국의 시인들이 ‘여수’라는 특정 지역을 주제나 소재로 하여 한 권의 책으로 꾸며진 것은 처음인가 싶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현대시인들의 의식 속에서 여수가 어떻게 자리잡고 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집에는 98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 ‘여수’라는 지명이 시 제목에 들어간 작품이 25편이나 된다. 그리고 ‘오동도’ 16편, ‘동백’ 12편, ‘향일암’ 5편의 순서로 시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우리나라 시인들이 여수를 떠올릴 때 ‘여수’라는 지명과 더불어 ‘오동도’ ‘동백’ ‘향일암’을 가장 많이 떠올린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밖에 금오도, 방죽도, 여자도, 사도, 백도, 횡간도, 율촌, 은적암, 손뎅이(봉전리), 남산동 등의 지명이 시인들의 생각 속에 깃들어 있었다.
우리나라 시인들의 생각 속에 ‘여수’라는 특정 도시에 대한 이미지는 ‘동백꽃’이라는 붉은 꽃의 이미지가 강하게 박혀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여수는 물의 도시답게 ‘항구’ ‘바다’라는 물의 이미지가 시인들에게 인식되어 있었다. 그리고 ‘동백꽃’과 ‘오동도’는 대부분 함께 떠오르는 이미지로 꼽혔으며 해맞이로 이름난 ‘향일암’도 시인들 생각속에 자연스럽게 스며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여수의 지리와 풍정, 인심, 바다의 생명성 등을 노래한 시편들이 다수였으며 여수의 상처인 이른바 ‘여순사건’을 형상화시킨 작품들도 눈에 띄었다.
‘여수’를 형상화 시킨 작품세계
먼저 시의 제목에서 ‘여수’라는 지명이 들어간 작품들을 살펴보면 시인들의 여수라는 도시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나 이미지가 내포되어 있다. 즉 ‘동백꽃’이나 ‘오동도’ ‘향일암’은 비교적 그것들이 의미하는 단일주제에 대해 시인의 개인적인 체험이나 의미와 정서가 깃들어 있는 것에 비해 ‘여수’를 다룬 시작품들은 ‘여수’라는 공간 속에 투사된 역사, 지리,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시인들이 관심을 보여준다.
바다를, 품에 안은 여수에서는
바람이, 바다보다 먼저 보인다
바람의, 젖을 물고 있는 섬들과
바람의, 근육으로 다져진 해안
바람의, 등뼈에는 파도 꽃이 하얗게 핀다
바다를, 놓아기르는 여수에서는
바람이, 그물 치고 그물 걷는다
바람은, 향일암 동백꽃을 품에 안고
바람답게, 파도와 몸 섞기도 하지만
바람은, 항구보다 먼저 일어나
바람의, 입술로 뱃고동을 울리고
바람의, 어깨 위로 배를 띄운다
바다를, 놓아 보내는 여수에서는
바람이, 사람대신 통성명 한다
바람이, 사람보다 먼저 흐느끼고
바람이, 사람보다 깊게 출렁인다
바다가, 조바심치는 한 겨울에는
바람이, 눈보다 먼저 녹는다
바람의, 눈물을 받아내는
바다의, 내륙에선 짠 맛이 깊어지지만
바다 속, 녹지 않는 영토를 지닌
바람은, 모두 여수로 와서 죽는다
죽어서 봄 바다로 다시 태어난다
-강영은 「여수」 전문
이 작품에서는 “여수”가 “바다를 품에 안”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바다를, 놓아 보내”고 “바다를, 놓아 기르”는 공간이다. 이러한 여수에는 바람이 부는데, 여수에 이르면 “바람이, 바다보다 먼저 보”이고, “바람이, 그물 치고 그물 걷는다” 또한 “바람이, 사람 대신 통성명 한다” 이 바람은 여수 해안을 근육질로 다지기도 하고, “향일암 동백꽃을 품에 안고” “파도와 몸 섞기도” 한다. 이러한 바람은 “항구보다 먼저 일어나” “입술로 뱃고동을 울리고” 배를 띄운다.
주지하다시피 ‘바람’이라는 자연현상은 대기의 흐름을 말한다. 이 바람은 내륙보다도 바닷가 항구에 더 거세게 분다. 그래서 바람이 마치 자신이 여수의 주인이라도 되는 듯 “사람 대신 통성명”하고, “사람보다 먼저 흐느끼고” “사람보다 깊게 출렁인다” 그러므로 이 작품 속의 바람은 자연현상의 바람이면서도 ‘여수 사람’의 은유이고 ‘여수’ 자신이기도 하다.
강영은의 「여수」는 바다를 끼고 살아가는 여수 사람들의 삶과 운명을 노래했다. 이에 반해 김종안의 「여수항」은 지극히 눈에 보이는 여수의 지리와 역사,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여수 사람들의 삶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그려냈다.
소백이 남으로 달리다
섬진을 건너 뛰고
반도의 끝자락
종고산에 와
우뚝 멈추어 선 곳.
임진년
쓰러지는 조국을
온몸으로 일으켜 세우고
여순사건의 아픔을 말없이 웅변하며
의연히 앉아 있는
여수항.
여기
오동도 동백꽃보다 더 붉은
충무혼을 보듬고
겨울 눈 속에 오히려 푸르른 보리싹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신새벽
아직 여명이 눈뜨기 전
밤새 남해를 헤쳐온 어선들이
부두에 닻을 내린다.
어시장에 부려지는
푸르디 푸른 몸짓들.
어부들은 잠시
아침의 시장기마저 잊는다.
좌판을 앞에 놓고
인정을 퍼주는
아낙네들의 남도 사투리가 정겹고
몇 잔 해장술에
진한 농담을 던지던
억센 사내들도
하나 둘 귀가를 서두른다.
-김종안, 「여수항」 전문
전라남도 동부지역에 위치한 ‘여수’는 소백산맥이 남쪽으로 뻗어 섬진강을 건너 뛰어 종고산에서 멈춘 곳이다. 그래서 시인은 “소백이 남으로 달리다/섬진을 건너 뛰고/반도의 끝자락/종고산에 와/우뚝 멈추어 선 곳.”이라고 여수의 지리적 환경을 그려냈다. 두 번째 연에서는 “임진년/쓰러지는 조국을/온 몸으로 일으켜 세우고/여순사건의 아픔을 말없이 웅변하며/의연히 앉아 있는/여수항.”이라고 노래하는데, 임진왜란 때 전라좌수영이 설치되었던 여수를 중심으로 이순신 장군이 나라를 구했던 구국의 역사를 상기시킨다. 더불어 1948년에 여수와 순천에 주둔해 있던 14연대가 제주 4·3사건의 진압을 거부하며 군사를 일으킨 사건 때 죽어간 여수 사람들의 아픔을 노래한다.
이 작품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여수에 대한 생각, 즉 ‘이순신 장군’ ‘동백꽃’의 이미지와 의미를 드러내며 그것들의 혼을 이어받은 여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음을 노래한다. 더불어 항구도시 여수 새벽시장의 활력과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항구도시’ ‘이순신’ ‘여순사건’ ‘열심히 살아가는 어시장 사람들’을 버무려 여수의 이미지와 의미를 그려낸다.
김종안의 「여수항」은 여수를 종합적으로 그려내고 있지만, 문인수의 「여수는 바다다」는 ‘바다의 도시 여수’ ‘항구의 도시 여수’를 그려낸다.
어느 날 또 문득 돌아 보이는 데가
돌아 보여서 참 아름다운 데가
아름다워서 그리운 데가
그리워서 항구인 데가
여기, 여수다.
여수는 바다다.
그대, 배 대고 심호흡으로 보라.
살아서 부드럽게 꿈틀대는 무진장한 갯벌이, 푸른 연안이
그대와 더불어 숨 쉬는 데가
여기, 여수다.
-문인수, 「여수는 바다다」 전문
화자는 “돌아 보이는 데가/돌아 보여서” “참 아름다운 데가/아름다워서” “그리운 데가/그리워서 항구인 데가” “여기, 여수다.”고 여수의 의미를 밝힌다. “참 아름다운 데가/아름다워서” 다시 바라보는 곳이 여수라고 화자는 “어느날 문득” 여수를 그리워 한다. 그만큼 화자에게 여수가 “돌아 보여”지고, ‘아름답고’ ‘그리운 곳’이다. 여수는 “살아서 부드럽게 꿈틀대는 무진장한 갯벌이, 푸른 연안이/그대와 더불어 숨 쉬는 데가/여기, 여수” 이기 때문이다. 즉 ‘여수’는 “갯벌”과 “연안”이 있는 것인데, “살아서 부드럽게 꿈틀대는” 공간이다. 뿐만 아니라 “그대가 더불어 숨 쉬”고 있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다. 이는 여수가 ‘삶의 공간’ ‘생명의 공간’ 또는 ‘원초적인 공간’ ‘시원의 공간’인 바다가 함께 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여수는 바다다”라고 외친 것인데, 주지하다시피 바다는 ‘생명의 공간’ 뿐만 아니라, ‘영원’ ‘무한의 영역’ ‘하나됨’ ‘미지의 세계가 열리는 곳’을 함의한다. 특히 육지의 강물이 바다에서 하나되는 공간이어서 화자는 “그대와 더불어 숨쉬는 데”가 “여기, 여수”여서 ‘돌아 보이고’ ‘아름다워서 그리운’ 것이다.
다음의 「여수떡」은 좋은 여수 사람을 통해 여수를 기억하게 한다.
40년만에
반백이 되어 고향에 돌아왔더니
눈이 침침한 동네 어르신들
몰라보신다
여수떡 아들이라고
셋째라고 귀에다 고함을 지르자
끄덕끄덕 하신다
그려, 여수떡, 사람 참 좋았는디……
이 풍신도 아들이라고
떡두꺼비 낳았다고
중흥 바닷가 외할매가 보내준 미역,
국 끓여 드셨겠지
땀 훔치며 드셨겠지
-유용주, 「여수떡」 전문
화자는 고향을 떠나 살다가 “40년만에/반백이 되어 고향에 돌아왔”다. 그러자 “눈이 침침한 동네 어르신들/몰라보신다” 화자가 동네 어르신들에게 자신이 “여수떡” 아들이라고 밝히자 어르신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그려,여수떡, 사람 참 좋았는디……” 말하며 화자의 어머니인 여수떡을 떠올린다. 화자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떡두꺼비 낳았다고” 좋아들 하셨던가 보다. 그래서 “중흥 바닷가 외할매가 보내준 미역”을 땀 뻘뻘 흘리며 어머니는 끓여 드셨는가 싶다.
이 작품 속의 어머니는 밝힌 것처럼 참 좋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자신이 “여수떡”이라고 밝혔을 것이다. 마을 어르신들에게 “여수”는 특정지역의 지명이면서도, 좋은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 이름이었다.
이 작품은 시인의 개인적인 체험을 시로 형상화한 것으로 품성이 좋은 사람은 자신이 태어난 고장까지도 빛내주는 사례를 보여준다.
몇몇 ‘여수’라는 지명이 들어간 시 제목의 작품을 살펴본 것에서처럼 ‘여수’가 물의 고장인 까닭에 물과 관련된 이미지나 의미를 내포한 작품들이 많았다. 그리고 여수의 지리와 환경, 역사를 들여다보는 작품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체험을 통해 ‘여수’에 대한 따스한 이야기가 배태되어 ‘여수’가 마음이 훈훈하곶 정이 깊은 사람들이 사는 고장임을 말해준다.
앞에서 밝힌 것처럼 여수를 노래한 시편들 중 ‘동백’을 노래한 시가 12편, ‘오동도’를 소재로 한 작품이 16편으로 시인들의 관심 속에 많았다. ‘향일암’을 떠올린 시 작품도 5편이나 있었다. 그러므로 ‘동백’과 ‘오동도’를 소재로 한 시편 몇 편을 성격별로 살펴보도록 한다.
‘오동도’ ‘동백’을 형상화시킨 작품세계
이 작품집에 실린 김영애의 「오동도, 경매에 부치다」에 의하면 오동도가 오래 전에 암암리에 매물로 나왔다고 한다. 짐작컨대 제1공화국 때인 것 같은데, “여수의 한 갑부가 사겠다고 했으나/제1공화국이 무너지면서 밀약은/공약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억을 지닌 여수 사람들은 38,000평의 오동도를 “누군가 떠메 갈까 전전긍긍하다//단단히 매어놨”다는 것이다.
이렇듯 아픈 기억을 간직한 오동도는 여수 사람들의 정이 깊은 섬이다. 오동도는 정이 넘치는 이웃이며, 가족이며, 친구이다.
여수 앞바다엔
전라도 사투리 같은 섬이 하나 떠있다.
어느 한 군데 모나지 않은 전라도 사투리 같은
섬, 오동도
오동도 시누대 숲길로 들어서면
‘그렁께 그렁께’ 맞장구치는
정겨운 사투리가 바람소리로 흘러나오고
숲길, 나무 가지 사이사이론
‘아따 좋소잉’처럼 맑은 소리의
햇살이 내린다.
‘그런당가 그런당가’
서로를 보듬어주는
넉넉하고 푸근한 나무 그늘,
그 숲길을 오르면
‘오오메, 오오메,’ 감탄사처럼
붉은 동백꽃이 피어나고
계단을 내려가 바다에 이르면
용굴 저 깊은 곳에서는
‘어째야 쓰까잉, 어째야 쓰까잉’
애가 타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모난 바위에 와 온몸을 부딪치면서도
오랜 만에 만난 친구에게
‘밥은 묵고 댕기냐’며 오히려 안부를 묻는 파도,
객지로만 떠돌던 나는
그만 눈이 시큰해진다.
남도 끝 여수 앞 바다에는
전라도 사투리 같은, 정 깊은 섬이 하나 떠 있다.
-박상천, 「오동도」 전문
“여수 앞바다엔/전라도 사투리 같은 섬이 하나 떠있다.” 이 섬은 “어느 한 군데 모나지 않은 전라도 사투리 같은/섬”이다. 그러므로 “시누대 숲길로 들어서면/‘그렁께 그렁께’ 맞장구치는/정겨운 사투리가 바람소리로 흘러나”온다. 오동도 숲길 내리는 햇살은 “아따 좋소잉” 하는 소리로 내린다. 이밖에 “그런당가 그런당가” “‘오오메, 오오메,’ 감탄사처럼/붉은 동백꽃이 피어나고” “‘어째야 쓰까잉, 어째야 쓰까잉’/애가 타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심지어 파도조차 “밥은 묵고 댕기냐”고 안부를 묻는다. 다시말해 “남도 끝 여수 앞 바다에” 떠 있는 오동도라는 섬은 전라도 사투리이다. 이 전라도 사투리에는 깊은 정이 배어있는데, 바람소리, 숲길의 나무사이, 동백꽃이 피는 모습으로, 바닷가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 등 오동도의 모든 것이 서로 맞장구 치고, 서로를 보듬어 주고, 안부를 걱정해 주는 여수 사람들의 마음이 사는 집이다. ‘오동도’라는 공간을 통해 여수 사람들의 따스하고 깊은 정을 형상화 한 것이다.
저 섬에 가야 한다
제 몸에 동백 피워
스스로 사랑이 된 섬
그대를 누구보다도 사랑한다는
꽃말의 속삭임 들어야 한다
제 속에 시누대 키워
스스로 정절을 지키는 섬
그대의 심장에 박히고 싶다는
대쪽 같은 고백을 해야 한다
폭풍우 몰아쳐도 가야 한다
저 다리를 건너야 한다
등댓불 꺼지기 전
동백꽃 뚝 떨어지기 전
시누대 구슬피 울기 전에
가서 내가 섬이 되어야 한다
너와 나의 섬
오동도가 되어야 한다
-오시영, 「오동도」 전문
오시영의 「오동도」는 오동도를 “스스로 사랑이 된 섬”이라고 한다. “제 몸에 동백”을 피웠기 때문인데, 그것은 동백꽃의 꽃말처럼 “누구보다도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까닭이다.
‘섬’이라는 공간을 ‘고독’ ‘소외’ ‘격리’ ‘단절’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도시’ ‘육지’와는 대립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오늘날 ‘도시’는 자본문명에 인간이 소외되고 있는 공간으로 전락해버렸다. 그런 측면에서 오히려 ‘섬’은 자연 그대로 훼손되지 않은 공간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섬’은 ‘생명의 공간’, 또는 ‘치유의 공간’이랄 수 있다.
붉게 꽃을 피우는 ‘동백’을 제 몸에 피워 “스스로 사랑이 된 섬” 오동도의 상징성은 동백꽃의 의미를 충분히 드러낸다. 여수를 상징하는 꽃이 ‘동백’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오동도에는 동백과 더불어 시누대가 자라고 있다. 오동도에 얽힌 시누대 전설 속의 ‘정절’을 화두로 삼아 “그대의 심장에 박히고 싶다”는 “대쪽같은 고백”을 말한다. 다시말해 오동도가 동백을 피우고, 시누대를 키우는 것은 “그대를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정절을 지켜” “그대의 심장에 박히고 싶”은 순정함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자는 육지와 섬을 잇는 다리를 건너 오동도라는 섬이 간직한 순정한 사랑의 메시지를 들어야 한다. 이때 오동도라는 섬은 ‘소외’ ‘고독’ ‘격리’의 공간이 아니라 ‘치유’와 생명을 지닌 ‘생명’의 공간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너와 나의 섬/오동도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오동도’가 정절의 섬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동백’이 집단으로 자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시영의 「오동도」에서 보았듯 사람들이 여수를 떠올리면서 여수의 상징이랄 수 있는 오동도를 오동도와 동백을 함께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다는 오동도와 동백이 한 몸인 까닭이다.
송찬호 역시 여수를 생각하며 오동도와 동백꽃을 떠올린다.
“지금 여수 오동도는/동백이 만발하는 계절”인데 “동백열차를 타고 꽃구경 가”잖다. 사람들은 오동도를 “여수항의 눈동자라 일컫”는다고 한다. 눈동자는 세상을 볼 수 있고,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창이다. 그래서 화자는 “우리 손을 잡고 그 푸른 눈동자 속으로 걸어들어가”자고 한다. 푸른 눈동자가 되어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면 어떤 모습일까. 당연히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그런 아름다운 마음으로 “우리 사랑을 맹세”하잖다. 그런데 “그 사랑이 허튼 맹세라면 사자처럼 용맹한” 오동도의 “동백들이 우리의 달콤한 언약을 모두 잡아먹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참된 사랑의 맹세를 위해서 “말의 주춧돌을 반듯하게 놓”고 “풀무질과 길쌈을 다시 배”우자고 한다. 이렇듯 사랑의 섬 여수로 오동도로 가기 위해 “무쇠 덩어리”의 열차가 아닌 부드럽고 아름다운 “동백열차로 새로 단장됐”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자꾸 부스러지는 꿈을 꾸지만, 그 꿈 밖으로 잠시 눈을 붙여 보자고 한다. 여수 오동도는 꿈이 자꾸 깨지는 현실 속에서도 다시금 꿈 너머에 있는 아름다운 꿈을 꾸어보자는 메시지를 보낸다. 그런데 그 꿈이 “깨어나면 어느덧 먼 남쪽바다 초승달 항구에 닿을 거”라고 한다. 화자에게 여수 오동도가 꿈을 이뤄줄 수 있는 사랑의 공간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시인은 동백꽃의 섬인 오동도를 현실에서 지친 사람들을 위무해주는 장소로 환치시켜, 오동도는 사랑과 꿈이 살아있는 공간으로 재탄생시킨다.
이민숙의 「동백, 기억들」은 동백에 대한 전통적인 정서를 새롭게 변용시킨 작품이다.
동백은 따스한 봄바람 때문에 피어나는 게 아니다
삭풍에 매 맞던 기억으로부터 깨어난다
꽃이 자지러지는 향기로 생식기를 열어젖히는 까닭은
눈 속에서도 죽어 얼지 않았다는 어기찬 선언이다
지금 그대의 감미로운 노래도 그러하다
그건 전율로부터의 몸부림이다
툭, 끊어진 하룻바람의 목숨, 서글퍼하지 않으리라
개골창에 발 담근 민들레같은 그대
연민마저 보내지 않으리라
살얼음 녹이는 몸짓이여! 그것으로 족하다
매서운 바람도 꿇어앉은 채 품어 안아 보리라
파리하게 높게 아프게
몽글몽글 솟아나는 여러 기억들
슬금슬금 피해가지 않으리라.
-이민숙, 「동백, 기억들」 전문
옛부터 선조들은 ‘동백’을 그림 속에 자주 등장시켰다. 겨울 눈 속에서 붉은 꽃을 피워 올리기 때문이다. 모든 꽃들이 추위 때문에 땅 속에서 움츠리고 있을 때 불길같은 꽃망울을 터트리는 동백의 기상은 선비정신과 다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군자로 일컬어 마음에 새겨두고자 그림으로 자주 그렸던 것이다. 꽃들이 따스한 기운에 피어나지만 한겨울에 피어나는 “동백은 따스한 봄바람 때문에 피어나는 게 아니다/삭풍에 매 맞던 기억으로부터 깨어난다” 나무의 생식기라고도 하는 꽃을 “열어 젖히는 까닭은/눈 속에서도 죽지 않았다는 어기찬 선인”인 것이다. 또한 동백꽃의 열정이 깃들어 보이는 붉은색의 노래가 감미로운 것은 “그건 전율로부터의 몸부림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바람에 꽃이 떨어져도 슬퍼하지 않을 것이고, 연민마저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화자는 다짐을 한다. 다만 동백꽃이 뜨겁게 “살얼음 녹이는” 것과 “매서운 바람도 꿇어앉은 채 품어 안아”볼 것이라고 한다. 동백꽃을 생각할 때 아픈 기억들이 있지만 화자는 결코 “슬금슬금 피해가지 않으리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한 겨울에 스스로 피어난 동백꽃의 꿋꿋하고 당당한 기상이 오히려 화자를 위무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여수 오동도의 동백을 염두에 두고 노래한 것이라고 보기 힘들지만 여수 인근에 사는 시인의 정서상 오동도의 동백꽃을 연상시키기에 알맞다. 그러므로 여수 오동도의 동백꽃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더해준다고 볼 수 있다.
여수의 역사를 드러낸 작품세계
많은 사람들이 여수를 생각하면서 여순사건을 떠올려왔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해 있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 군인들이 제주 4·3항쟁의 진압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스스로의 힘으로 식민지사회의 모순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해방 이후 친일파 처단을 비롯해 토지개혁 등 민중의 과제를 해결하려고 지도자들이 민족해방운동에 앞장을 서 왔다. 그러나 이승만 세력들이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하려고 분단정권을 획책하였다. 이를 저지하기 위한 사건이 1948년 제주 4·3항쟁이었다. 그러나 제주로 향하려던 14연대 소속 군인들이 진압을 거부하고 여순봉기를 일으켰다. 이로 인해 1948년 10월 이후 1950년 10월까지 여수·순천을 비롯해 전라남북도와 경남 일부의 민간인들이 큰 피해를 입은 사건이 여순사건이다. 오랫동안 반공이데올로기로 인해 ‘여순반란사건’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은 ‘여수’와 ‘여순사건’을 연계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강경호의 「여수 생각」은 역사에 희생된 어느 형제의 상처를 형상화시킨 작품이다.
해방된 지 두서 해 지난 가을이었던가
작은아버지, 영문도 모른 채 반란군이 되었다
좌우도 모르는 열아홉 살 소년이
진압군에 쫓겨 총칼 모두 벗어둔 채
엉겁결에 승주 어느 산골로 몸을 숨겼다가
14연대 황색옷을 입은 탓에 붙잡혔는데
대전, 서대문, 부평형무소로 옮겨다녔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아우를 백방으로 찾아다녔는데
부평형무소에서 수염이 텁수록하게 자라
몰라볼 뻔 했다는 것이다
작은아버지 때문에 우리가족 전기고문을 당했는데
젊은 시절 아버지는 늘 머리가 아프곤 했다
어린시절 아버지의 두통약을 사다드릴 때마다
작은아버지가 왜 빨갱이인지 몰랐다
평생 불화했던 형제가
1948년 10월, 여수의 기억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금은 선산에 나란히 누워있는데
나는 선산에 갈 때마다 여수가 생각나는 것이다.
-강경호, 「여수 생각」 전문
화자는 선산에 나란히 누워있는 아버지와 작은아버지의 무덤을 보면 여수가 생각난다. 오래된 집안의 상처가 도지는 순간이다. “작은아버지, 영문도 모른 채 반란군이 되었다” 좌익이나 우익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열아홉 살 소년”이었지만 그가 소속한 부대가 반란군이 된 까닭에 자신도 반란군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붙잡혀 감옥에 갇힌다. 화자의 “아버지는 아우를 백방으로 찾아다”니다가 마침내 “부평형무소에서 수염이 텁수록하게 자라”있는 아우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그 동안 가족은 실로 크나큰 수난을 당했다. 이른바 빨갱이 집안이라는 비난과 더불어 “전기고문을 당했”다. 그 후유증으로 형제는 평생을 반목하며 산다. 화자는 어린시절 전기고문으로 머리 아픈 아버지의 두통약을 사다드려야 했다. 그러면서 화자는 왜 자신의 집안이 이러한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를 잘 몰랐다. 1948년에 일어난 여순사건이지만 이 작품은 수십 년이 지난 후까지도 상처가 아물지 않은 여순사건의 비극을 통해 우리 민족의 상처뿐만 아니라 어느 가족의 상처까지 드러내고 있다.
다음의 박두규의 「1948년 10월, 여수」 역시 우리 근현대사의 비극인 여순사건을 시로 형상화하였다.
일천구백사십팔 년 시월의 여수는
지금도 고스란히 오동도에 갇혀있다.
경찰서의 담벼락에 쏟아지던 총성과
여수 국민학교 운동장의 비명소리
그 동백꽃 붉은 세월은
모두의 가슴 속에 암매장 되어
아직도 여수 발 새벽열차는 떠날 수 없다.
상처 하나 없는 고운 꽃송이
몸뚱이 째 뚝뚝 떨어지며
동백꽃 서러운 세월이 가고
그 세월 다시 새 봄으로 피어나도,
일천구백사십팔 년 시월의 여수
그 설움은, 한 치도 오동도를 떠날 수 없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그 빗장을 풀어야 한다.
네가 나의 오라를 풀고, 내가 너의 차꼬를 풀어
반 백 년 묶여있던 여수 발 새벽열차를
기적소리 울리며 떠나게 해야 한다.
오동도에 갇혀 있는 동백꽃 붉은 세월을
이제는 우리가 풀어 주어야 한다.
-박두규, 「1948년 10월, 여수」 전문
화자는 여순사건이 여전히 “지금도 고스란히 오동도에 갇혀있다”고 인식한다. 그때 “경찰서의 담벼락에 쏟아지던 총성과/여수 국민학교 운동장의 비명소리”가 들렸는데 그것은 무지막지하게 학살당한 사람들이 흘린 피가 오동도의 동백꽃으로 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동도의 동백꽃은 아름다운 사랑의 상징도 그 무엇도 아닌 피가 현현한 것이라고 인식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동백꽃 붉은 세월은/모두의 가슴 속에 암매장 되어/아직도 여수 발 새벽열차는 떠날 수 없”는 것이다. “동백꽃 서러운 세월이 가고/그 세월 다시 새 봄으로 피어나도,/일천구백사십팔 년 시월의 여수”가 간직한 설움은 “한 치도 오동도를 떠날 수 없”다. 그런데 화자는 “이제는 우리가 그 빗장을 풀어야 한다.”고 한다. 형제의 가슴에 서로 죽창을 찌르고 총을 쏜 까닭에 서로에게 오라를 묶은 셈이다. 그래서 서로를 억압했었는데, 빗장을 풀고, 오라를 풀어줄 때 비로소 “모두의 가슴 속에 매장된” 피비린내 나는 상처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랬을 때 1948년 10월에 떠나지 못한 새벽열차가 아픔을 훨훨 털어버리고 상처가 없는 세계로 여수가 떠날 수 있는 것이다. 오래된 여수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시인은 서로를 용서하고 사랑하자는 메시지를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