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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개(소토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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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스크랩 그때 어린시절의 먹거리
안옥현 추천 0 조회 244 15.11.07 18:1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그때 어린시절의 먹거리
1960년대 꿀꿀이죽 5원, 라면 10원,그때 버스값이 10원, 자장면값은 30원이었다.
꿀꿀이죽 사진 보이지 제게 뭐 나면 꿀꿀이죽 이란 거야 오늘날 부대찌개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미군들의 음식 잔반이지 날뽕이 어릴 때 인천 도원동 미군부대 앞에서 저걸 사다 먹어봤는데 맛이 아주 좋았어 빠다 냄새도 나고 말이지 하긴 그때 맛있지 않은 게 어디 있었겠어요

어린시절 우리의 애를 태우던 뽑기 또 기억에 남는 게 뽑기야 요즘도 인사동 같은데 가면 볼 수 있는데 등 짐에 사과상자 하나 둘러메고 뽑기 장수가 나타나면 동네 아이들이 다 모였어 하나 더 먹으려고 침 발라가며 무지 애를 태웠었지


아줌마 한개만 더줘요 하던 풀빵 또 빠질 수 없는 게 풀빵 아니겠어 풀빵 장수는 주로 아줌마들이 많았는데 철사 꼬챙이로 풀빵을 뒤집는 솜씨는 가히 예술의 경지였지 십원어치 사면서 꼭 하나 더 주세요 하고 말이지

아이스~께끼
"아이스 케키이~ 어러엄 과자~" 네모난 파란 아이스케키 통을 들고 골무삭을 돌며 소리소리 지르던 그 시절의 케키 장사를 기억하시나요? 용돈 좀 벌어보겠다고 네모난 파란 케키통 어깨에 둘러매고 여름철이면 이동네 저동네, 이골목 저골목 돌아댕기며 "아이스케키이 어~어럼 과자..."를 외치며 다니는 아그덜이 생각납니다.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쬐던 여름날. 초등학교 입구에 자리 잡은 냉차장수는 개조한 리어카에 커다랗게 ‘냉차’라고 쓰인 네모난 통을 놓고 냉차를 팔았습니다. 그 통의 뚜껑을 열면 얼음 동동 뜬 보리차 색깔의 냉차가 있었습니다. 송글송글 찬이슬이 맺힌 유리잔(맥주컵)에 든 냉차는 색깔처럼 보리차에 설탕을 탄 듯 달콤하고 시원한 맛이었습니다. 그땐 뱃속이 얼얼하도록 시원한 냉차가 그렇게 달고 맛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소풍가면 꼭 따라오던 냉차장수
요즘 뜸하신 만각 형아 가 팔아봤다는 아이스께끼 여름철 입에 침이 마르지 않게 하던 주범이지 돈이 귀하던 시절이라 헌병이나 고무신 등으로 바꿔 먹기도 했는데 엿장수 와 더불어 엄마들의 경계대상 1호였지 깨끼장수는 주로 청소년들이 많았는데 여름철 학생들의 단골 알바메뉴이기도 했어

삼양뉴면 1963년 라면이 처음 선을 보일 때만 해도 국내는 배고픔에 허덕이는 사람이 많을 때였다. 현 삼양식품의 전중윤 회장은 당시 서울 남대문 시장을 지나가던 중 꿀꿀이죽을 사먹으려고 줄을 서있던 사람들을 보게 되고 평소 일본을 드나들며 자주 보았던 편리하고 쉽게 먹을 수 있었던 라면 생산을 꿈꾸게 되었다. 그렇게 1963년 9월 시판된 삼양라면은 국내 라면 1호가 된다. 당시만 해도 라면은 미곡 중심의 식생활에 익숙한 우리 국민들 입맛에는 맞지 않아 외면을 받았다고 한다. 심지어는 옷감의 일종인 라면(羅綿)으로 오해한 경우도 많았다고. 판매실적이 오르지 않자 삼양식품은 직원들과 가족들까지 동원해 솥 단지를 들고 서울역, 남대문시장, 공원 등지에서 라면을 끓여 무료시식을 하는 등 집요한 판매전략을 펼쳤다. 대한민국 산업역군 '라면' 1963년 첫 선을 보인 삼양라면은 10원이었다. 닭기름으로 튀긴 라면이었고 투명한 비닐 포장에 닭그림과 함께 "닭고기 국물로 맛을 냈다"는 광고로 눈길을 끌었다. 70년대 후반 시판된 삼양 뉴면 당시 꿀꿀이죽이 5원이었던 만큼 10원이면 그리 싼 가격이 아니었다. 기름이 둥둥 떠다니던 초창기 라면 진짜 요즘 라면은 그, 맛을 못 따라옴 요즘이야 흔하고 보편적인 음식이 됐지만 초창기 라면도 한땐 아이들이 선망하던 귀한 음식중의 하나야 요즘엔 음식에 기름기를 제거 하는 게 필수처럼 인식되지만 그때만 해도 기름기 있는 음식이 아주 선호 되던 시절이라 초창기 라면은 기름기가 아주 많았어 정육점에서 돼지비계만 따로 팔던 시절 이었으니까 돼지비계 사다가 콩비지 넣고 끓여 먹던 생각도 나네 봄에는 지천에 널린 쑥을 캐다가 밀가루 반죽을 해서 쑥떡도 참 많이 먹었지 밥보다 수제비나 쑥떡이 익숙한 시절이었으니까
쫄면 인천 선인재단 뒷골목에서 창시된 쫄면 사진보다 훨씬 투박했음 우리나라에서 지기(地氣)가 가장 세고 성냥, 자장면, 쫄면이 탄생한 곳이 인천입니다. 쫄면은 1970년 경서동에 있던 광신제면에서 창업주가 냉면을 만들다가 우연히 불거져 나온 굵은 국수가락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었는데 이것이 원조라고 합니다. 처음으로 사먹었던 쫄면의 가격은 70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1970년대 후반이었습니다. 초창기 쫄면은 지금보다 면발이 훨신 질겼어 신맛도 강했지 식초대신 빙초산을 썼으니까 암튼 무지 맵고 시고 질기고 그래도 맛은 요즘 먹어보는 쫄면보다 정말 좋았답니다

줄서서 빵을 배급받던 어린시절 빵이 떨어져 못받는 날의 그 실망감이란 흑흑 학교에서 배급해 주던 옥수수 빵도 참 맛있었지 아! 갑자기 가슴이 막혀서 글이 안 써지네 도시락을 못 싸오던 아이들의 유일한 한끼식사 그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사람이리면 요즘 학교의 무상급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아야 하는데 말이지


삼류 극장 군것질 단골메뉴였던 뻔 ~뻔데기 뜨거운 물에서 익어가는 뻔데기의 맛은 참으로 일품이였지. 누에의 징그러운 모습을 상상하면 감이 뻔데기를 입에 넣지 못할것 같은데 그땐 먹을게 없어서였을까?정말 고소하고 맛있었다. 사람의 입맛은 참 간사해서 예전에 그리 맛있게 먹던 음식도 그때 생각하고 먹어보면 옜날 맛이 안 나더라 우ㅡ린 정말 그 시절 싱싱하고 무공해 뻔데기를 함께 먹었던 세대이다


뻥튀기 어릴적 추운 겨울철이면, 어머님은 시장에 가셔서 뻥튀기를 만들어 오셨습니다. 쌀, 보리쌀, 콩, 땅콩, 누룽지, 옥수수 등 종류도 다양했지요. 마땅한 간식거리도 없던 그 시절에, 뻥튀기는 허기를 달래 준 음식이었습니다. 설 명절이 가까워지면, 마을까지 찾아와 돌리던 뻥튀기 기계...... 높은 시렁 위에 올려 놓고, 배고플 때만 조금씩 꺼내주시던 뻥튀기. 그 때를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합니다.
건빵 직사각형에 두개의 구멍을 가지고 있는 건빵... 주재료인 밀가루를 비롯해 탈지분유, 계란, 설탕 등 8가지 재료로 훈련과 일과에 지친 장병들에게 달달함과 고소함을 함께 전해주었던 건빵... 별사탕과 함께 입안에 건빵을 가득넣고 맛스타를 목으로 넘기던 그 시절 건빵은 지금도 먹거리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군생활의 추억을 자극해 준다. 당시 1원부터 제일 큰 돈 500원까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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