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화님의 '현재의 시각으로 역사를 해석하기 보다는 그 당시의 사회 상황을 고찰하는 것이 그 당시 사회를 알 수 있는 길이 아니냐'는 그 의견과 관련하여 광해군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광해군은 적자의 출생이 아니었기 때문에 세자가 되는 데에도 많은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왕이 된 이후에도 영창대군과 인목대비의 왕권을 위협하는 세력을 견제하지 않을 수 없었겠죠..그 당시의 사회 상황을 살펴 본다면 왕권과 왕권을 위협하는 세력을 단지 광해군과 인목대비, 영창대군의 세 사람으로만 좁혀 생각할 수는 없겠죠..
제가 전에 말씀 드렸듯이 그들의 배후엔 북인과 서인이 있었습니다. 붕당 정치기 싹트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북인과 서인은 자신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했을 것이고 서인은 광해군을 등에 업고 있는 북인정권을 따라잡기 위해서 새로운 정치세력이 필요했을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인목대비와 영창대군이었습니다.
광해군과 북인정권은 이들 세력을 견제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명분을 중시하는 서인 세력과의 외교적 마찰도 이러한 두 세력의 관계를 냉각시켰겠죠..
북인정권은 서인정권과의 싸움(?)에서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애썼을 것이고 이러한 시기에 어쩔 수 없이 인목대비는 폐위되고 영창대군은 희생을 당하게 된것입니다..
이것이 광해군 혼자만의 생각이었을까요? 이러한 근거로 광해군을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겠죠..광해군도 인목대비도 영창대군도 모두 정치권의 세력다툼으로 피해를 입은 희생양으로 보아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상으로 상화님의 의견중에 '광해군이 억울하게 강등된것이 아니다'라는 반박조(?)의 제 의견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