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 무렵 사진 한 장 없이 올렸던 고향 소식에 대한 원죄(?) 때문에 1년을 꼬박 기다렸습니다.
바쁘게 살다보니, 아니 며칠 동안 사업차 외국에 나갔다 들어와 시차 때문에 정신을 못 차려서인지 부끄럽게도 오늘에서야 8·15광복절이 61주년임을 알았습니다. 일본 고이즈미 총리는 동아시아권의 반발과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신사참배를 강행했기에 이번 8월 15일은 더욱 뜨거웠나 봅니다.
▲ 9인제 배구경기. 비록 맨땅이지만, 박진감 넘치지요.
ⓒ 최경필
올해로 서른 번째인 우리 고향의 광복 61주년기념 체육대회는 남다른 의미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강산이 세 번 바뀌는 동안 우리 지역의 단결을 위한 최대의 축제가 되었습니다.
전남 고흥군 포두면 송산리에 해방을 목전에 둔 그해 5월에 개교한 송산초등학교가 있습니다. 전국에 같은 이름의 초등학교가 경기도 화성, 충남 당진과 함께 세 곳이나 됩니다. 화성과 당진에 있는 송산초교는 면소재지에 자리 잡은 학교이지만, 제 모교는 3개리 10개 자연마을인 아주 작은 곳에 있습니다.
최근 1읍면 1개교라는 기준아래 농어촌학교 통합작업을 진행했지만, 드물게 제 모교는 살아남아 있습니다. 이제 겨우 60여명의 재학생뿐이니 언제 폐교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처지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지역민들의 단결을 위한 행사가 있어 폐교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는 마을별로 배구경기만 했습니다. 무더운 여름이 끝나 가는 막바지에 전국에 흩어져 사는 향우들과 도회지로 나간 자식들이 내려와 경기에 참가해 양보 없는 한판승부를 펼쳤습니다.
▲ 어르신들의 윷놀이 경기. 제 고향 윷은 손가락 한마디만한 나무토막을 사용합니다.
ⓒ 최경필
세월이 흘러 행사 내용도 많이 변했습니다. 제 모교는 드넓은 해창만 간척지라는 널찍한 마당(?)을 두고 있습니다. 이곳 주민들은 쌀농사와 원예, 축산업이 대부분의 생업입니다. 한미FTA라는 거대한 파고 앞에서 풍전등화 같은 신세(?)가 된 처지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번 행사에는 우리 마을 출신 향우 등 약 800여명의 주민들이 참석했습니다. 배구경기, 줄넘기, 윷놀이, 훌라후프, 승부차기(여자) 등 5종목에서 마을 대항 경기를 치릅니다. 입장식도 각 마을의 단결을 위해 화려한 준비를 하고 입장합니다.
▲ 제 고향마을의 입장식 모습니다. 현수막까지 준비했는데, 입장식 상은….
ⓒ 최경필
▲ 여성들의 훌라후프 경기도 재미가 솔솔 합니다.
ⓒ 최경필
이 행사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송산학구청년회가 주최합니다. 일반적으로 청년이라고 하면 만40세 이하를 뜻하지만, 그 기준이 모호해진 것은 요즘 농촌에서는 아주 흔한 일입니다.
'학구'는 송산초등학교 구역이라는 뜻이지요. 이날 새벽 수도권의 재경총동창회도 전세버스를 타고 내려왔고, 출신향우들의 휴가도 대부분 이 시기를 맞춰 고향으로 찾아옵니다. 출신향우들과 지역에서 협찬을 받아 행운권 추첨을 위한 상품도 준비합니다. 또 해마다 마을별로 돌아가며 손님들을 위한 음식을 준비합니다. 요즘은 보통 돼지 몇 마리 잡습니다.
▲ 오랜만에 만난 중년의 고향 친구끼리 얼싸안고.
ⓒ 최경필
오늘 날씨도 섭씨 30도를 훨씬 넘었습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 친구, 선후배들은 반갑게 술잔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하나'라는 자부심을 갖고 돌아갑니다.
또 이곳 해창만 간척지의 품질 좋은 쌀만 찾는 유명연예인들도 축하 공연을 위해 속속 도착했습니다. 대부분이 트로트 가수들입니다. '자옥아'의 박상철, '밧줄로 꽁꽁 묶어'의 김용림, '뜨거운 안녕'의 원로가수 쟈니리, '마포종점'의 은방울자매, KBS <그 시절 그 쇼>의 명콤비 원재로·함재욱, 그리고 우리 고흥 출신인 신나라씨가 이끄는 신나라예술단 등입니다.
이들이 무대에 나와 다채로운 공연을 펼쳤습니다. 이들은 큰 축제도 아닌 '리' 단위 행사에 쉽게 출연하지 않는 분들이지만, 모두 해창만 간척지 쌀에 매혹되어 출연 제의를 거절하지 않고 먼 곳까지 달려왔습니다.
▲ 우리 고향 출신 신나라씨의 흥겨운 축하무대는 더위를 식히고….
ⓒ 최경필
▲ 요즘 한참 뜨고 있는 트롯가수 김용림씨의 무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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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순의 나이에도 노익장을 과시한 '마포종점'의 은방울자매.
ⓒ 최경필
그리고 그 쌀을 대주는 통 큰 사람은 바로 청년회장입니다. 이곳에서 그를 '송산면장'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마을 이장만 10년 가까이 했고, 270마지기의 쌀농사를 짓는 욕심 많은 분입니다. 청년회장을 맡으면서 통 크게 행사를 벌렸습니다.
쌀을 통해 맺은 인연들이 전국에 골고루 퍼져 있으니 유명세가 이 '송산리'뿐만 아니라, 군 전체로 이어져 있습니다. 품질 좋은 쌀을 생산해서 상도 여러 번 탓을 정도로 농촌을 굳건히 지키는 분이랍니다.
▲ 아주 통 큰 청년회장님의 멋드러진 초대인사 순서입니다.
ⓒ 최경필
요즘 체육대회는 경기 내용도 다양해졌지만, 선수 층도 다양해졌습니다. 젊은 청년들이 줄어들면서 40대, 아니 머리 희끗희끗한 50대도 출전합니다. 여기에 경기에 출전하는 마을로 장가든 사위들까지 선수로 나옵니다. 선수난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예전에도 각 마을에서 배구 좀 한다는 청년들이 내려오지 않으면 욕을 먹을 정도로 경기가 치열했지만, 이제는 서로의 단합을 목표로 하기에 조금 양보와 격려도 하면서 행사를 아무런 탈없이 끝냅니다.
▲ 인기가수 박상철씨의 인기는 이곳에서 단연 톱입니다.
ⓒ 최경필
해가 지고 어둑해지도록 계속되는 공연과 뒤풀이 행사로 이어지며, 조국 해방의 기쁨을 되새기고 가을의 풍년을 기약하는 것입니다. 이 행사를 통해 잠시 바쁜 농사일을 쉬고 즐기며 지역단합을 더욱 단단히 다집니다.
이런 작은 축제가 있어 제 고향은 더욱 아름답기만 합니다. 그리고 자랑스럽습니다. 내년에도 더 많은 출신향우들과 졸업생들, 그리고 마을주민들이 건강하게 다시 만나 회포를 풀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 그리고, 초대받았건, 아니면 자발적으로 참석했건 간에 내빈으로 오신 지방의원님들은 제발 앞으로 단상에 앉지 말고 주민들과 같은 객석 앞자리에 앉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단상에 앉으려는 것은 귄위의 상징이며, 주민들의 위에 군림하겠다는 자세입니다.
스스로 주민들과 나란히 객석에 앉아 손뼉치고 축하해주는 낮은 자세로 돌아가야 합니다. 모든 행사에서 주최하는 측만 무대에 오르고 주민들의 '머슴'이 되겠다는 의원님들은 객석의 자리가 더 어울린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뜻하지 않게 사진이 올라 초상권을 침해받으신 고향분들께 송구한 마음을 전합니다.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이리라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길…. 그리고 약간 취하는 바람에 재경 선배님들의 배웅를 못해 죄송합니다
첫댓글 봉학아!퍼간다이~~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