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차 산행알림
아주 오랬만에 얼어있는 한강을 보았습니다. 소한, 대한 무렵의 한겨울에 당연히 얼어있어야 할 한강이 어느새부터인가 따뜻한 겨울에 밀려 본연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듯 합니다. 강줄기의 작은 변화에도 놀라면서 변화무쌍한 겨울산의 모습에는 무관심하고 있지는 않은지... 금번 산행은 서울의 심장부를 가로지르며 뻗어있으며 수없이 보아오면서도 망설이며 궁금해왔던 인근의 산하를 느껴볼 수 있는 코스를 잡아보았습니다. 그리 산행코스가 험하지 않으며 편안하고 여유있게 산행을 하면서 다양한 역사적 유물 및 명소를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산행의 여운이 많으신 분들을 위해 다소 긴 여정을 잡았음을 혜량하여 주옵시기를 바라오며 설연휴 고향에서의 추억 많이 담아오시고 많은 님들의 참여를 기대합니다.
- 다 음-
l 산행일시 : 2009년 2월 1일 (일요일) 오전 10시
l 대 상 산 : 인왕산 338M&북악산342M(서울 은평구/종로구일대)
l 집결장소 : 3호선 독립문역2번출구(야외)
l 등산코스 : 독립문역2번출구-서대문형무소-현대아파트단지내
-인왕산능선-인왕산정상-기차바위-치마바위-성덕사
-석파정-창의문-백악마루-촛대바위-숙정문-전망대
쉼터-말바위쉼터-(성대후문-혜화 또는 와룡공원 안국역)
(약 4시간)
* 하산시 등산코스는 변경될 수 있음
l 준 비 물 : 신분증(북악산진입시 꼭 필요),중식 및 간식, 충분한
식수, 아이젠, 기타 우천시 대비 우의 준비
참석가능하신 분들은 꼬릿글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금번 산행에 많은
분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주변에 많은 홍보 부탁드립니다.
* 산악회회장 : 고 현 옥( 쥔장 ) 010-6328-0250
* 산악대장 : 고 종 립(방우리) 018-212-8651
* 총괄총무, 운영자 : 고호성(빙색이) 016-269-0706
* 산악부대장,운영자 : 오 원 혁(susanai) 010-3137-5000
* 산행부총무 ,운영자: 김 대 원(김대원) 011-422-8519
* 산행부총무 ,운영자: 임 자 현(예쁜이) 018-222-2121
l 기타알림
1. 북악산진입시 신분증이 필요합니다.
2. 인근 볼만한 곳 :
창의문
서울성곽에는 동서남북에 4대문, 그 사이에 4소문을 두었는데 창의문은 서대문과 북대문 사이의 북소문으로 '올바른 것을 드러나게 하다' 라는 뜻이다. 그러나 창의문을 북소문이라고 부른 일은 없었고 이 곳 계곡의 이름을 빌어 자하문이라느 별칭으로 불리곤 했다.
이조 태종 13년(1413년)에는 풍수학자 최양선이 '창의문과 숙정문은 경복궁의 양팔과 같으므로 길을 내어 지맥을 상하게 해서는 안된다' 고 건의한 것을 받아들여 두문을 닫고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세종 4년(1422년)에는 군인들의 출입 통로로 이용할 수 있게 했고 광해군 9년
(1617년)에는 궁궐 보수 작업 때 석재의 운반을 위하여 열어주도록 하였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당시에도 길 자체는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창의문이 서울성곽의 문주로서 제 구실을 하게 되는 것은 영조 17년(1741년) 이 곳을 수촉할 때였다.
창의문(자하문) 안에 세워 있는 고 종로경찰서장 최규식 총경의 동상
선바위
인왕산 정상에서 독립문역으로 거의 내려와서 인왕산 인왕사 일주문에 들어서면 절이 여럿이 있고 인왕사 위에 선바위와 국사당이 있다.
선바위는 서울시 민속자료 제4호로서 부인들이 이 바위에서 아이 갖기를 원하는 일이 많아 '기자암(祈子岩)'이라고도 한다. 바위 모습이 마치 스님이 장삼(長衫)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여 참선한다는 '선(禪)'자를 따서 선바위라 불렀다.
일제가 남산에 있던 국사당을 선바위 곁으로 옮기게 한 뒤로 선바위에 대한 신앙은 무속신앙과 더욱 밀접해졌다.
국사당
국사당은 중요민속자료 제28호로 이 건물은 조선 태조와 여러 호신신장(護身神將)을 모시고 있는 무속신당(巫俗神堂)이다. 국사당은 1925년 전까지는 남산 팔각정 자리에 있었는데 일제가 조선신궁을 세우기 위해 이 해 7월 지금의 인왕산으로 옮긴 것이다.
지금도 무당들이 여러가지 굿을 하고 있다
말바위
삼청공원 말바위 유래
조선시대에 말을 이용한 문무백관이 시를 읊고 녹음을 만끽하며 가장 많이 쉬던 자리라 하여 말(馬)바위라 불리기도 하고 백악(북악)의 산줄기에서 동쪽으로 좌청용을 이루며 내려오다가 끝에 있는 바위라 하여 말(末)바위라는 설도 있다.
숙정문
숙정문은 서울성곽의 북대문으로 남대문인숭례문('예를 숭상한다'는 뜻)과 대비하여 '엄숙하게 다스린다'는 뜻으로 이름이 지어졌다.
태조 5년(1396년) 처음 성곽을 쌓을 때는 지금 위치보다 약간 서쪽에 있었으나 연산군 10년(1504년)에 성곽을 보수하면서 옮겨졌다고 한다.
숙정문은 본래 사람들의 출입을 위해 지은것이 아니라 서울성곽 동서남북에 4대문의 격식을 갖추고 비상시 사용할 목적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평소에는 굳게 닫아두어 숙정문을 통과하는 큰길은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숙정문은 오랫동안 문루가 없이 월단(무지개 모양의 석문)만 남아 있었는데 1976년 북악산 일대 서울성곽을 보수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한 것이다.
서울성곽
1392년 개성 수창궁에서 조선 왕조를 개국한 태조는 즉위한 지 한 달도 못 되어 한양 천도 계획을 명하고 태조 4년(1395년) 경복궁, 종묘, 사직단의 건립이 완성되자 곧바로 정도전이 수립한 도성 축조 계획에 따라 서울성곽을 수촉하기 시작하였다.
서울성곽은 북악산(342m), 낙산(125m), 남산(262m), 인왕산(338m)을 잇는 총 길이 59,500자(악 18.2km)의 성곽으로 평지는 토성, 산지는 산성으로 계획되어 이듬해인 1396년에 완공하는 동시에 4대문과 4소문을 준공하였다.
그 후 세종조에 보수 확장하였으며 1704년 숙종은 일부 신하들이 청나라와의 조약을 들어 반대하는 것을 물리치고 서울성곽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나아가 북한산성까지 쌓으며 도성의 방어체재를 정비하였다. 이것이 근대 사회로 들어오면서 의도적으로 헐어내기 이전의 서울성곽이다.
이후 1899년 서대문과 청량리 사이 전차를 부설하면서 동대문과 서대문 부근의 성곽 일부가 헐려 나갔고 이듬해는 용산과 종로 사이 전차 부설을 위해 남대문 부근을 철거하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서대문과 혜화문(동서문)이 헐리며 사실상 서울의 평지 성곽은 모두 철거되어 오늘날에는 총 길이 18.2km 중 산지 성곽 10.5km만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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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석..돌아가신 우리 아버지가 살아오시지 않는한...ㅎㅎ....켈럭...
북악산은 사전에 등산 신청하여 승인이 있어야합니다. 1일 등산 인원을 제한함.
저도 2번 가봤는데 사전 승인없이 갈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참석 예정입니다. 수고하세요. 꾸벅
항상 열심이신 오르미선배님. 요즘 우리산악회의 열기가 예전같지 않은데 적극적인 관심 큰힘이 됩니다
역사적인 북악산과 인왕산산행일 2월 1일이 기다려 집니다. 건강한 설 연휴를 보내시고 산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참석하겠습니다. ^^
김희옥 참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