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모주망태의 하늘
김인기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는지 어쩐지 내 알 바 아니지만, 분명 이 세상 모든 일들은 술로 통한다. 그에게 이건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었다. 그는 이 진실을 열렬히 사랑했다. 내 차라리 술 때문에 죽을지언정 내 어찌 술을 떠나랴. 말하자면 이게 그의 중정(中情)이었다. 그러니 그는 달이 기우는 만큼 술잔도 기울어야 했고, 해가 바뀜에 따라 그의 술병도 의당 바뀌어야 했다.
그는 술을 먹었다. 내가 먹고 마시는 그 미묘한 어감의 차이를 적시(摘示)할 자신은 없다. 그래도 그의 행동을 내 감각으로 표현하자면, 그는 술을 마신 게 아니고 술을 먹었다. 그에게 그게 열정이나 풍류의 여운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그게 그의 절망이나 울분의 표출도 아니었다. 그는 그냥 술을 먹었다.
한편으론 술이 그의 신앙이라고나 할까? 그 누구도 그의 믿음을 깨뜨릴 수 없었다. 그에겐 그게 아주 친숙한 종교였다. 누가 믿거나 말거나 이게 그의 진실이었다. 종교인들이 그렇듯이 그에게도 그 삶의 차원이란 게 있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거기엔 절제가 부족했다. 그러니까 그가 주로 폭음을 하지. 그러고도 그가 버티는 게 나는 신기할 지경이었다.
사람들한테 술고래는 치료가 필요한 병자란 인식이 별로 없다. 이래서 술이 뇌를 상하게 하고 간을 결딴내는 물질이란 상식도 모두 가볍게 잊는다. 이런 인식이 꽃에 대한 것과 닮았다. 누가 가을 하늘 아래 코스모스가 바람에 애잔하게 나부끼는 걸 두고 '아, 저기 식물의 생식기가 흔들리는구나.' 하랴.
교인들이 기도를 하고 다짐을 하듯 그도 그 나름의 신앙 생활을 한다. 그의 교회는 주점(酒店)이었고, 그의 기도는 주사(酒邪)였다. 그리고 여느 신앙인들처럼 그도 역시 자기가 늘 아직은 많이 부족한 신자로 여기는 눈치였다. 그는 그 아쉬움을 달래느라 또 술을 먹었다.
이래서 그에게 금주를 요구하는 건 첫밗부터 무리였다. 그건 독실한 종교인에게 배교하라는 이야기와 같으니까, 그건 원래 되지 않을 요구였다. 그리고 그의 생활 자체가 이미 오래 전부터 술을 중심으로 짜여져 있는 터에 술을 끊어라 하는 건 보통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 세상과 연결된 거의 모든 끈들이 바로 술과 연관된 것인데, 이제 와서 금주하라니, 그러면 날더러 어쩌란 말이냐. 이는 그의 당연한 항변일 수밖에 없었다.
하긴 그도 한때 그런 헛된 시도를 해 본 적이 있었다. 공연히 술로 인해서 소중한 인생만 탕진할 뿐이란 일견 그럴 듯한 이교도(異敎徒)의 가르침에 잠시 혹했던 탓이다. 하지만 사흘이 지나지 않아 그는 그런 주장을 과감히 배척하고, 드디어 그로부터 해방이 되었다.
'술 없는 세상이란 별 없는 하늘이다!'
그래서 그는 차라리 주교(酒敎)를 신봉하다 죽을지언정 배반할 수는 없다는 비장한 결심을 더욱 다지게 된 것이다. 잠시 왔다가 꿈 같이 스러지는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좋은 낙을 어찌 버리리오. 마침내 그의 술꼬가 터졌다. 그는 권주가가 없어도 마음으로는 이미 권주가를 들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당연히 그는 줄기차게 그의 방식대로 신앙 생활을 열심히 했다.
오는 길에 한 잔, 가는 길에 한 잔, 그저 좋아서 한 잔, 웬지 나빠서 한 잔, 심심해서 한 잔, 바쁜 중에 한 잔, 쉬는 중에 한 잔, 식사 중에 한 잔, 자기 전에 한 잔, 비가 와서 한 잔, 눈이 와서 한 잔, 여럿이 있으니 한 잔, 홀로 있어서 한 잔.
누구는 밥이 하늘이라 하였지만, 그에게는 바로 술이 하늘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죽었다는 말이 우리들한테 들려 왔다. 그가 그만 사고로 가고 말았다는 것이다. 전라도 어디에서라던가, 강원도 어디에서라던가. 그는 무척 높은 데서 떨어졌다. 어쩌면 이것도 술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문에 그런 것까지 묻어 오진 않았다.
"젊은 나이에, 안됐다."
그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그를 아는 이들이 먼저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어떤 애통함이라기보다 차라리 실망감이랄까? 비록 잠깐이었지만, 그 때 그 자리엔 그런 기운이 감돌았다. 주광(酒狂)의 말로(末路)로는 너무나 세속적이어서일까? 그 경지가 도(道)를 운위하기엔 아직 모자랐던 탓이었을까? 그가 금주(禁酒)를 한 방식이 위로 등선(登仙)한 게 아니라 아래로 추락(墜落)한 죄 때문일까? 그렇다면 진실이 때로는 사람을 누추하게 한다.
"술을 그렇게나 처먹더니, 내 그럴 줄 알았다."
뱐덕도 천성이다. 사람들이 이제는 죽은 그를 그렇게 욕했다. 그는 죽어 숭고한 영성(靈性)을 얻은 게 아니라 더욱 초라한 속류(俗類)가 되고 말았다. 어쩌면 인간들이 이리도 박절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람들이 곧 그의 주변을 도틀어 초들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모두 부실한 소문과 구구한 억측을 동원한 셈이지만, 우리는 모두 그렇게 와글와글 떠들었다.
누구는 그에게 처자식이 있다고 하고, 누구는 그가 아직 혼인하지 않은 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에게 처자식이 딸려 있다면 그 인간이 죄를 지은 거고, 처자식이 없다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여론이었다. 하지만 그 상황을 따져 그렇게 제법 걱정스러운 척 하는 우리 가운데 진실로 그런 걸 크게 걱정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어쩌다 아는 사람이 어디서 어떻게 죽었다니까 모두 그냥 그렇게 떠들어 보는 것이다.
아무도 말하진 않았지만, 우리들은 그 순간부터 그를 아주 잊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들은 마침내 그를 까맣게 잊었다. 여러모로 그는 시원찮은 작자였으니까. 내심으로 우리들은 모두 그와는 많이 다르다고 안심했다. 그러나 세월이 내게 가르쳐 준다. '그게 꼭 그렇지도 않구나.' 그도 우리들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인물이었다.
나는 우선 그가 그렇게 술을 마시는 게 못마땅했다. 그의 그런 버릇은 어디까지나 그 개인의 품성이라며, 나는 그를 외면했다. 나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게 다 내 오만 때문이다. 그는 다만 어느 시점에서 엉뚱하게 흘렀을 뿐인데, 그가 그렇게 가버린 지금에야 내가 겨우 이런 반성을 한다. 사람이 죽으면 혼(魂)은 하늘로 백(魄)은 땅으로 흩어진다더라. 과연 그게 그러한지 나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그의 혼백은 지금도 열심히 하늘과 땅을 다니며 여전히 술을 찾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