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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라는 4월이 끝나도록 병원에 있었다. 그 동안에 그 아이의 아저씨는 성학대죄로 재판에 회부되어 공판을 받았다. 다시 감옥으로 간 것이다. 쉴라의 아버지는 그 아이가 병원에 있는 동안, 병원이 무섭다는 이유로 한 번도 오지 않았다. 대신에 그 괴로움을 술집에서 달래고 있었다.
나는 매일 방과후 그 아이를 보러 갔고, 항상 저녁 시간까지 머물러 있었다. 채드도 거의 매일 밤 와서 내가 가고 난 후까지도 쉴라와 장기를 두었고, 안톤도 정기적으로 방문해 주었으며, 어린 휘트니도 잠깐씩 병실에 있을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의외로 콜린스 교장까지도 쉴라를 보러 왔는데, 어느 토요일 오후, 나는 그가 쉴라와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병원 직원들이 놀랄 정도로 쉴라는 병문안 오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의 격려와 더불어 그 병동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아이가 되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관심을 보여주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에 감사하였다. 왜냐하면 나는 매일 두어 시간 정도밖에는 시간을 낼 수 없었기 때문에 만일 아무도 와주지 않았다면 내가 그곳에 더 오래 머물러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보면, 입원한 것이 그 아이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쉴라는 겉보기에도 아주 매력적이었고, 그렇게 끔찍한 일을 겪었다는 이유로 간호사들의 사랑을 받았다. 간호사들은 그 아이에게 관심을 쏟았고, 그 아이는 즐거운 듯 보였다. 아이는 대부분 명랑하고 협조적이었으며, 절대로 울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가장 잘된 것은, 세 끼의 균형있는 식사를 하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필요했던 만큼 체중이 늘었다. 퇴원하는 날까지 침착하게 행동했고, 변덕을 부리지도 않았다.
쉴라의 정서적 문제는 이번 일로 완전히 사라진 것 같았다. 심한 정서장애아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쉴라의 행동은 간호사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한편 나는 그것이 걱정되었다. 그 아이가, 울음을 참는 어처구니 없는 노력을 하는 것과 같이, 자기의 불행을 승화시켜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하는 것이 나를 두렵게 했다. 그것이 무엇보다도 더 큰 정서불안의 심각성을 입증해 주는 점이었던 것이다.
그럭저럭 아이들은 쉴라가 없는 생활에 적응했다. 우린 4월의 햇빛과 소생하는 대지를 만끽하면서 평온한 나날을 보냈고, 쉴라에 대한 이야기는 매주 그 아이에게 편지를 쓰는 일을 빼고서는 그다지 중요시 되지 않았다.
이러는 동안, 나는 우리 학급이 없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여러 가지 일들이 그것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교육청에서는 자체 내에서 몇 가지 핑계를 대며 첫째로, 프레디, 수잔나와 같은 정서장애아들이 이번 학기처럼 달리 분리된 개별학급에 들어가지 않고도 일반학급에 배치될 수 있다고 했다. 둘째로 다른 아이들은 모두 사실상 덜 제한적인 환경에 배치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진보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장애아를 정상 학급으로 되돌려 동참시키자는 새로운 안건이 의회에 제출되고 있는 것이었다.
내 학급의 아이들은 가장 심한 상태의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배치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내 학급을 완전히 제거하는 데 가장 큰 관심을 쏟았다. 그리고 문제는 재정 사정이 좋지 않은 것이었다. 내가 맡은 학급에 아이들을 배치하는 제도는 아주 돈이 많이 들었다. 교육청에서는 이번 학기만큼 많은 특수학급을 운영 할 여유가 없었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침울해졌지만 예상치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나의 슬픔은 해마다 학기가 끝날 때에 느끼는 것일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사실 내 나름대로의 개인적인 계획이 있었다. 교육청에서는 다른 자리를 제안했지만, 난 대학원에 입학 신청서를 내서 승인을 받아 놓았다. 이미 특수교육의 석사학위와 일반교사 자격증을 갖고 있었지만, 특수아동을 가르치는 데에 완전한 자격을 갖지는 못했던 것이다. 아직은 주 정부에서 일반 자격증에 덧붙여 이 완전한 자격을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머지않아 그러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박사학위를 얻기 위해 지난 몇 해 동안 꾸준히 아동기의 위축과 우울증에 대해 연구해 오면서, 학자간에 커다란 의견차이가 있는 점에 놀라고 있었다.
나는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면서도 지난 몇 달은 나 자신의 장래 문제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었다. 더불어 채드도 결혼해서 정착하자는 압박을 다시 가해왔다. 그는 쉴라의 공판날 저녁 이후부터 그런 생각을 노골적으로 언급했다. 그러나 나는 들떠 있었다. 대학원의 입학허가를 4월 6일에 받고서는 가겠다고 대답하였다. 6월에 학기가 끝나면, 나는 채드와 쉴라에게서 떠나 내 생애 중 최고의 몇 해를 제공해 주었던 곳으로 갈 생각이었다.
쉴라는 5월초에 학교에 돌아왔다. 그 아이는 병원에서 보여주었던 외향적인 성격을 고스란히 지닌 채 돌아왔다. 마치 오랜 휴가를 지내고 돌아온 듯 태연하고 자연스러웠다. 나는 그 아이가 옛날 자기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자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그렇게 많은 고통을 그대로 받아들여 참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그 아이가 생각보다 더 정서가 불안한 것은 아닌지, 현실의 두려움에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환상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그 아이는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으며, 정상아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주말쯤 되어서 그 가식은 조금씩 벗겨지기 시작하였다. 옛날의 난투전이 다시 머리를 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했고, 그 아이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다.
결국 목요일에는 쉴라를 뾰루퉁하게 만들고 말았다. 다른 아이들은 그 아이가 돌아온 것에 적응하기는 했으나, 그 동안 그 아이가 익숙해 온 것 같은 많은 관심을 쏟아주지는 않았다. 쉴라는 모든 일이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자, 약간 화가 난듯한 소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아이가 다시 내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아이가 학교에서 계속 떠든다고 해도 정작 의미 있는 말을 한 것은 없었다. 이것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쓸데없이 지껄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예전처럼 솔직하고 자발적으로 자기 느낌을 이야기하지 않고, 이제는 안전한 것들에 관해서만 이야기했다. 그러나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태연한 태도 속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비추기 시작했다.
그 아이는 예전의 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학교에 왔다. 핏자국은 여전히 눈에 띄었고, 병원에서 늘은 체중 때문에 바지가 짧고 작아졌다. 나는 빨갛고 하얀 드레스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여 금요일 오후에 결국 물어보았다. 쉴라는 게시판에 붙일 모양들을 오리고 있는 나를 돕고 있었는데, 그래서 우리는 함께 한 탁자에 앉아 작업을 하고 있었다.
쉴라는 잠깐 동안 내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 옷을 입지 않을 거예요."
"왜?"
"그날……."
그 아이는 오리는 일에 몰두하면서 말을 잠깐 끊었다.
"제리 아저씨가…… 그러니까, 그 아저씨가 그 옷이 예쁘다고 그랬어요. 그리고는 그 옷 밑으로 손을 집어 넣었어요. 그래서 난 더 이상 그 옷을 입지 않을 거예요. 누구도 그 곳을 만지지 못하게 할 거예요."
"오!"
"그 옷엔 온통 피가 묻었어요. 아빤 내가 없을 때 그 옷을 버렸는걸요."
우리 사이에 길고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오리는 일을 계속했다. 쉴라가 고개를 들었다.
"토리 선생님."
"응?"
"선생님하고 채드도 그런 짓을 했었어요? 제리 아저씨가 나한테 한 것처럼요?"
"네 아저씨가 너한테 한 짓은 아무도 해선 안 되는 것이야. 그건 잘못된 거란다. 성교라는 것은 어른들이나 하는 것이지, 아이들이 하는 것이 아니야. 그리고 아무도 칼을 사용하지는 않는단다. 그건 잘못된 거야."
"나도 무언지 알아요. 아빠가 가끔 여자를 집에 데려와서 그런 짓을 했어요. 아빠는 내가 잔다고 생각했지만, 난 자지 않았어요.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그 소리에 깼지요. 그리고 그들을 보았어요. 나도 무엇인지 알아요."
그 아이의 눈은 걱정스러운 듯했다.
"그게 진짜 사랑이에요?"
나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네가 모든 걸 이해하기에는 아직 너무 어리단다. 때론 그것을 사랑이라고도 말하지. 그렇지만 제대로 말한 건 아니란다. 그건 성교라는 거야. 두 사람이 진정으로 사랑할 때 그런 일을 하고, 또 그런 것은 좋은 일이지. 하지만 그들이 서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단지 그 일만 한다면 그건 단지 성교인 거야. 그건 사랑이 아니야. 때로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그런 일을 강요하기도 하는데 그건 잘못된 일이야."
"내가 그런 일을 해야 한다면, 난 아무도 사랑하지 않을 거예요."
"너는 너무 어려. 네 신체는 아직 그런 종류의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그래서 그게 너를 다치게 한 것이란다. 그건 사랑이 아니야, 쉴라. 사랑은 다른 거란다. 사랑은 느낌이야. 그 일은 정말 나쁜 일이었어. 아무도 어린 소녀에게 그런 일을 해서는 안돼. 그 일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너를 아프게 한 거야. 너는 너무 어려."
"그런데 왜 아저씨가 나한테 그렇게 했을까요, 선생님?"
나는 오리고 있던 모양을 내려놓고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네가 나에게 지독히 어려운 질문을 하는구나, 쉴라."
"하지만 난 그걸 이해할 수가 없어요. 난 제리 아저씨를 좋아했어요. 아저씨는 나하고 놀아주었어요. 그런데 왜 나를 해치고 싶어 했을까요?"
"나도 잘 모르겠구나. 가끔 사람들은 자제력을 잃는단다."
쉴라는 오리던 것을 멈추고 탁자 위에 종이와 가위를 내려놓았다. 한참 동안 말없이 탁자 위를 응시하면서 앉아 있던 아이의 턱이 떨렸다.
"세상 일은 우리가 바라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죠, 그렇죠?"
그 아이는 나를 쳐다보지 않고 말했다.
나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 아이는 절망스런 듯이 탁자 위에 엎드렸다.
"더 이상 내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이런 내가 싫어요."
"때로는 산다는 것이 힘든 일이란다."
나는 무슨 말이든 해야 했지만,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이렇게 대답했다.
아이는 머리를 돌려서 나를 보았다. 그 아이의 눈은 흐릿했다.
"내가 수잔나 조이같이 멋진 옷이 많이 있는 아이였으면 좋겠어요. 이곳에 있고 싶지도 않아요. 일반학교에 다니는 정상아이였으면 좋겠어요. 더 이상 내가 싫어요. 이젠 짜증이 나요. 하지만 어떻게 해야 될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나는 그 아이를 쳐다보았다. 나는 내가 순수함을 상실한 것같이 여겨졌다. 오, 하나님이시여! 최악의 것을 보고 나면 다음에는 좀 덜 아플 것이라고 항상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렇지가 못하군요.
나는 이번 학기 중 마지막의 중요한 활동으로, '어머니의 날' 프로그램을 갖기로 결정했다. 특수교육이 갖는 큰 비극중의 하나는, 특수아이들은 일반 아동들이 하는 전통적인 오락 활동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특수아동들에게 있어서는 그들이 하루하루 무사히 지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성취했다고 여기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항상 그러한 생각에 부정적이었다. '하루하루 지내는 것'이 생을 가치있게 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일반학교 프로그램 중 잘 알려져 있는 것 몇 가지를 선택해서 그것을 메워보려고 애를 썼다.
지난 10월에는 가족을 위한 모임을 가졌었는데, 그리 나쁘지 않았었다. 그래서 더욱 용기를 내어 5월을 장식해 줄 그 일을 결정한 것이었다. 수잔나, 프레디, 맥스와 같은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고안해 내는 것은 쉬운 과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는 부모들의 도움으로 프로그램의 내용 중에 몇 가지 노래와 시 한두 편 정도를 넣을 수 있었고, 어린이들의 연극을 화려하게 해줄 것 같아 전통적인 봄꽃과 버섯을 많이 만들어 붙였다.
아이들은 모두 그 일로 흥분해 있었다. 그러나 좀더 정열적인 것을 하고 싶어하는 피터는 예외였다. 아이들 대부분은 해마다 TV에서 방영된 <오즈의 마법사>를 여러 번 보아왔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쉴라를 뻔 나머지 아이들은 글을 거의 읽지 못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예상되었다. 그래서 나는 5명의 믿을 만한 연기자들에게만 그 글을 설명해 주었다.
피터는 자기가 숲속의 꽃 역할을 할 수는 없고, 그 대신 양철 사나이 역을 하고 싶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사라가 이에 동의하면서, 언젠가 운동장에서 <오즈의 마법사> 연극을 한 적이 있는데 아주 잘 진행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결국, 피터와 사라에게 모든 아이들이 역을 맡을 수 있는 대본을 만들 수 있다면 그렇게 해보라고 말해 주고서 양보하였다.
그렇게 하며 연습이 시작되었다. 4월에는 노래 연습만 했고, 5월에 쉴라가 돌아올 때까지도 피터의 대본에는 변화가 없었다. 아무래도 '어머니 날'의 연극이 조금 늦어질 것 같았다. 쉴라는 목소리도 좋았고, 주어진 것은 무엇이든 외울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아이와 맥스로 그 프로그램을 메웠다. 맥스는 그의 정서장애 덕으로 방대한 자료를 반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나는 쉴라에게 아빠가 오시길 바라느냐고 물었다. 그날은 부모님들이 자기들의 아이가 학교생활을 어떻게 즐기고 있는지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기 때문에 다른 아버지들도 많이 올 것이었다. 나는 그 외의 모든 가족도 참가할 수 있기를 원했다. 그래서 쉴라가 아빠가 왔으면 할 경우, 그를 오도록 할 특별한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아 쉴라에게 물어본 것이었다.
그 아이의 얼굴에는 한순간 생각하는 빛이 보였다.
"아빠는 오시지 않을 거예요."
"안톤이 아빠를 모셔오면 돼. 아빠가 오고 싶어하신다면 말야. 아직 시간이 많이 있으니까, 그런 것은 어렵지 않을 거야."
"어쨌든 아빠는 올 것 같지 않아요. 아빠는 학교 같은 곳을 싫어하거든요."
"하지만 네가 연극하고, 노래하는 것을 보시고 싶어하실 거야. 그리고 네가 그 모든 일을 하는 것을 보고 자랑스러워하실 것이 분명해."
나는 쉴라의 키와 맞추기 위해 낮은 의자에 앉았다.
"너도 알다시피, 지난 1월에 비하면 너는 많이 성숙해 있어. 아주 다른 아이가 됐지. 이젠 그때처럼 많이 말썽을 피우지도 않잖니?"
그 아이는 강조하듯이 머리를 끄덕였다.
"난 항상 물건을 부수곤 했지요. 그러나 더 이상 그러지 않아요. 화가 나면 말도 하지 않고, 나쁜 아이였어요."
"이젠 많이 좋아졌지. 그리고 이거 알아? 네 아빠는 네가 얼마나 학교생활을 잘 하는지 보고 싶어하실 거라는 거 말이야. 그리고 네가 이 학급에서 얼마나 중요한 아이인지 아시면 자랑스러워하실 거야."
쉴라는 내게 곁눈질을 하며 잠깐 동안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아빠가 오고 싶어할지도 모르겠네요."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오실 거야."
그 날 아침, 채드가 큰 상자를 들고 교실로 들어왔다. 안톤은 무대를 설치하고 있었고, 쉴라는 이를 닦고 있었다.
"여기 웬일이에요?"
그를 보고 놀라서 내가 물었다.
"쉴라를 보러 왔어."
쉴라는 흥분한 듯이 올라서 있던 의자에서 뛰어내려 달려왔다.
"먼저 치약을 뱉고 와야지."
채드가 타일렀다. 쉴라는 다시 개수대로 달려갔다 오긴 했지만, 여전히 입술 주위에 치약이 묻어 있었다.
"오늘 네가 연극을 한다고 하던데……."
"네!"
쉴라는 기뻐서 채드 주위를 빙빙 돌며 외쳤다.
"내가 도로시 역을 할 거예요. 선생님이 내 머리를 땋아줄 거예요. 그리고 노래도 하고 시도 읆어요. 아빠도 나를 보러 오세요."
그 아이는 급하게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채드도 올 거예요?"
"아니, 하지만 네 데뷔를 위해 행운을 비는 선물을 가져왔지."
쉴라의 눈은 동그래졌다.
"나한테요?"
"그래, 너 한테."
그 아이가 기쁨에 넘쳐 채드의 무릎을 끌어안는 바람에 채드는 뒤뚱거렸다.
나는 상자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었다. 빨갛고, 하얗고, 파란 긴 드레스로서 앞주머니 주위에는 레이스가 달린 것이었다. 최근에 채드가 뉴욕으로 여행을 갔다가 사가지고 온 것인데 그것은 아주 예쁘고 비싼 옷이었다. 내가 쉴라의 옷이 어떻게 되었고, 그 옷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고 이야기해준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짧은 옷 대신 긴 옷을 사온 것이었다.
쉴라는 포장을 뜯고 상자를 열어 보았다. 한순간 주저하면서 내용물을 반쯤 가려 놓은 종이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아주 천천히 상자에서 옷을 들어 올리며 눈이 점점 더 휘둥그래졌다. 그 아이는 옆에 무릎을 끓고 앉아 있는 채드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옷을 상자 속에 떨어뜨리고는 고개를 수그렸다.
"난 더 이상 이런 옷을 입지 않을 거예요."
쉴라는 저주스러운 듯이 말했다.
채드는 당황하여 나를 쳐다보았는데, 그의 얼굴에는 실망의 빛이 역력했다. 나는 그들에게로 가 무릎을 끓고 앉았다.
"이것은 괜찮을 것 같지 않니?"
쉴라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채드를 쳐다보았다.
"당신이 괜찮다면, 잠깐 우리끼리 있고 싶어요."
나는 쉴라를 데리고 교실 한쪽에 있는 동물 우리 뒤로 갔다. 채드의 머릿속은 착잡함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 분명했고, 그만큼 쉴라도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 아이는 예쁜 것들을 아주 좋아했고, 채드가 사온 드레스는 아주 근사한 것이었다. 처음 사준 것보다 더 예뻤다. 하지만 그 아이는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이 너무나 생생하고, 그 고통은 너무나 쓰라린 것이었다.
동물 우리 뒤에 있는 동안 쉴라의 얼굴은 눈물이 나오려고 일그러졌다. 그 아이는 눈물을 참으려고 관자놀이를 눌러댔지만, 우리 학급에 온 이래 처음으로 눈물을 참지 못하였다. 뺨 위로 흘러내린 눈물은 결국 흐느낌이 되었다.
머지않아 일어나리라고 기대했던 순간이, 오래도록 기다렸던 순간이, 드디어 이제 온 것이었다.
나는 한동안을 동물 우리 뒤에서 그 아이를 데리고 앉아 있었다. 나는 그 아이가 정말로 우는 것을 보고 너무 놀라서 아무 것도 못하고 그냥 보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아이를 꼭 껴안아 주었다. 그 아이는 내 셔츠를 꽉 움켜쥐었다. 아이가 완전히 자제력을 잃어서 쉽게 회복할 것 같지 않았기에, 나는 아이를 안고 그 자리를 피해 다른 곳으로 가야 했다. 막 들어오고 있는 아이들과 프로그램의 모든 준비가 우리를 방해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월 잘못했나?"
채드는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난 그럴 뜻은 없었는데……."
나는 고개를 저었다.
"걱정말아요. 그 옷은 저기에 두세요. 잠시 후에 돌아올게요. 괜찮죠?"
나는 안톤을 돌아보았다.
"잠깐 당신이 일을 맡아볼 수 있겠죠?"
완전히 우리만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은 그 서고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쉴라를 안고 아동용 의자 하나를 들고는 서고로 가서 문을 닫았다. 나는 의자를 책더미에 기대놓고 앉아서, 쉴라를 더 편안하게 고쳐 앉혔다.
그 아이는 심하게 울었지만 처음처럼 신경질적인 태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계속 울었다. 나는 아이를 안고서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내 팔과 가슴은 눈물과 뜨거운 입김으로 축축해졌다. 갑자기 안톤이 혼자서 모든 아이들을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궁금했고, 프로그램 자체와 그것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면서 쉴라의 상황도 두루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앉아서 팔이 힘든 것만 느끼다가 이런 생각이 나니, 내 마음을 급하게 만들었다.
결국 울음을 그친 쉴라는 눈물에 젖어 떨고 있는 가여운 꼬마가 되었다. 그 아이는 지쳐서 축 늘어졌고, 이 작은 방은 너무 축축하고 후덥지근했으며, 우린 둘 다 눈물과 콧물 등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조금 나아졌니?"
나는 부드럽게 물었다.
그 아이는 대답 없이 내게 기대고만 있었다. 심하게 울고 난 그 아이는 딸꾹질로 헉헉거리면서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나 토하고 싶어요."
나는 반사적으로 서고에서 나와 쉴라를 화장실로 데려갔다. 화장실에서 나온 쉴라는 완전히 지쳐서 얼굴이 붉게 부어있었으며, 걸음걸이는 비틀거렸다. 나는 아이를 안아올렸다.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난단다."
서고로 되돌아가서 내가 말했다.
"너무 심하게 울 땐 속이 울렁거리지."
그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의자도 하나뿐이었지만, 쉴라는 기꺼이 내 무릎에 올라앉아 축축한 내 셔츠에 무겁게 기대었다. 우린 한동안 아무 말없이 앉아 있었다.
"선생님 심장소리가 들려요."
결국 아이가 말을 했다. 나는 부드럽게 그 아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가 교실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니? 지금은 산수시간 중인데……."
"아니요."
다시금 침묵이 흘렀다. 수많은 사건들이 내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토리 선생님."
"응?"
"채드가 왜 내게 그 옷을 사주었을까요?"
쉴라는 제리 아저씨가 자기에게 그 빨갛고 하얀 옷을 좋아한다고 말했던 것과 같은 이유로 채드가 자기에게 그 옷을 준 것이라고 믿는 것 같았다. 이 얼마나 소름끼치는 생각인가? 이것은 내 쪽에서 본 생각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채드가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네 옷이 망가졌다고 그에게 내가 말했거든. 그랬더니 채드는 네가 연극할 때 입을 수 있는 예쁜 옷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한 거야."
나는 손가락으로 그 아이의 머리카락을 쓸어주었다.
"네가 더 이상 그런 옷을 입지 않을 거라고 그에게 말하는 걸 내가 깜박 잊었구나. 그건 내 잘못이었어."
그 아이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
"채드가 제리 아저씨처럼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거라는 건 너도 알잖아. 그는 어린 여자애한테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 결코 너를 해치려고 그 옷을 가져온 게 아니야. 그는 절대 너를 해치지 않을 사람이야."
"나도 알아요. 나도 울 뜻은 없었어요."
"오, 아가야, 괜찮아. 채드도 네게 힘들었던 일이라는 걸 알고 있어. 네가 우는 것을 언짢아 할 사람은 없어. 가끔 우는 것은 일을 잘 풀리게도 해준단다. 울어도 괜찮아."
"나, 그 옷을 갖고 싶어요."
그 아이는 잠깐 말을 멈추었다.
"그걸 갖고 싶었어요. 단지 겁이 난 것 뿐이에요. 그 뿐이에요. 그리고 멈출 수가 없었어요."
"그래, 정말 그랬을 거야. 채드도 어린아이란 어떤지를 잘 알고 있어. 우리 모두 말야."
"내가 왜 울었는지 모르겠어요.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
"걱정하지 마라."
나는 문득 아이들이 연극 때문에 흥분해 있을 것을 깨닫고, 너무 오래 자리를 비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쉴라야, 나는 교실로 돌아가야겠다. 아이들이 모두 거기에 있는데, 안톤 혼자뿐이잖니? 너는 둘 중에 하나, 나하고 같이 교실로 가든지 아니면 남은 시간 동안 양호실에 가 있든지 해."
"내가 토했기 때문에 집에 가야 해요?"
"아니, 넌 아프지 않잖아?"
그 아이는 내 무릎에서 내려섰다.
"좀 쉴 수 있을까요? 피곤해요."
나는 쉴라를 양호실로 데리고 가서 간이침대에 눕히고 담요를 덮어주었다. 그때 쉴라가 물었다.
"선생님, 아직도 내가 그 옷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난 진짜 그 옷이 입고 싶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채드가 너를 위해 두고 갔어."
쉬는 시간에 다시 가보니 쉴라는 자고 있었다. 점심시간에 내가 내려가서 깨울 때까지 계속 자고 있었다.
그날 오후의 연극은 기가 막혔다. 아이들의 작품은, 잘 알려진 이야기의 제목과 등장인물만 같았고, 그 외의 것은 책에서도 영화에서도 본 적이 없는 것들이었다.
쉴라는 자신의 능력 덕분으로 머리가 빠르게 돌아 재빠르게 대사를 외울 수 있었기 때문에 도로시 역을 맡았다. 타일러와 사라도 그 역을 원했기 때문에 좋지 않은 언쟁이 있었고, 사라, 피터의 제작 팀이 거의 깨질 뻔했다. 그러나 피터가 배역을 정하는 데 권위를 발휘해서 쉴라를 선정했다.
타일러는 사악한 마녀들의 얼굴을 그리는 명예롭지 못한 일을 맡았고, 사라는 허수아비로 분장했다. 윌리엄이 겁쟁이사자이고, 길러모는 마법사였다. 피터는, 수잔나를 좋은 마녀 글렌다 역으로 선정했다. 수잔나는 진짜 선녀같이 아주 예뻤기 때문에 그렇게 정한 것 같았다. 프레디는 고독한 숲속의 꽃이었고, 맥스는 외팔이 원숭이였다. 물론 피터는 양철사나이였다.
이 빗나간 아이들의 연극을 정말로 감상할 수 있는 사람이란,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교사, 학부모, 기타 가족들 외엔 없을 것이다. 잠을 자고 나서 아침에 있었던 사건을 완전히 회복한 쉴라는, 휘트니가 만들어 온 옷 대신에 채드가 가져온 옷을 입었다. 두 시간의 낮잠으로 활기를 되찾은 쉴라는 무대장치가 흔들릴 정도로 깡총깡총 뛰어다니면서 떠들어댔다.
한편, 프레디는 움직이지 않고 자기 자리에 그냥 앉아서 머리에는 꽃모자를 쓰고 관객들 속에 있는 그의 어머니에게 손을 흔들었다. 한번은 그의 뚱뚱한 다리에 쉴라가 걸려 그의 무릎 위로 넘어지기도 했다. 겁쟁이 사자 역은 월리엄에게 적격이었다. 그것은 그가 두려운 감정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무대 위에서 벌벌 떠는 연기를 진짜같이 잘 해냈다. 가장 놀랄만한 일은, 수잔나 조이가 진짜 글렌다처럼 잘한 것이었다. 실감이 날 정도로 무대 위를 이리저리 뛰어 돌아다니면서 높고 작은 목소리로 연기를 했다. 연극 상황인데도 놀랄만큼 자연스러워 보였다.
연극을 하는 도중 유일한 문제는, 쉴라가 자기 대사를 길게 말해야 할 때에, 관객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뒤에서 부분 부분을 읽어 주어야 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쉴라가 긴 독백을 시작하게 되면 다른 아이들은 모두 말없이 서있어야 했다. 그런데 쉴라가 독백을 하고 있을 때, 피터가 그 아이에게 다가와 그만 하라고 말해 버렸다.
남은 프로그램도 즐겁게 진행되었다. 시 낭송을 할 때는 아무도 자기 귀절을 잊지 않았고, 노래도 비록 가락이 고르지는 않았지만 즐겁게 불렀다. 끝난 뒤에 과자와 펀치를 먹으면서 아이들은 그들 부모에게 학교에서 만든 것들을 보여주었다.
쉴라의 아버지도 와 있었다. 그는 누더기 같은 양복과 싸구려 로션을 바르고, 그 큰 덩치로 조그만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아있었다. 나는 그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삐걱거리는 의자가 부서지지 않을까 염려했다. 첫 번째 프로그램을 끝내고 쉴라가 그에게로 뛰어갔을 때, 나는 그가 딸에게 미소 짓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그는 술에 취하지 않은 채로 학교에 오는 호의를 보였고, 우리와 같이 있는 것이 즐거운 듯했다.
파티가 끝날 때쯤 내가 그에게 다가가, 채드가 쉴라에게 새 옷을 사주었다고 말할 때까지 그는 옷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딸을 찬찬히 살펴보다가 내게로 눈을 돌리더니, 그의 코트 주머니에서 낡은 지갑을 꺼냈다.
"이거, 많지는 않아요."
그는 조용히 말했다. 나는 그가 옷이 비싸다는 것을 알고 그 값을 지불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하자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돈을 드릴 테니, 선생님께서 쉴라에게 일상복을 좀 사주시겠어요? 이 애는 옷이 좀 필요한데, 그런 일은 여자가 잘 하잖아요."
그는 말꼬리를 흐리면서 눈을 돌렸다.
"내가 돈을 갖고 있으면……, 그러니까, 아시다시피, 제가 문제가 좀 있어서요. 내가 생각한 것은……."
그는 손에 10달러를 쥐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하죠. 다음 주 방과후에 이 애를 데리고 나가겠어요."
그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내게 미소를 지었지만, 그건 쓸쓸한 미소였다. 그리고 그는 어느 사이에 가버렸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지폐를 바라보았다. 그것으로는 많은 옷을 살 수는 없지만, 그는 노력을 한 것이었다. 그는 나름대로, 그 돈을 술마시는 데에 써버리지 않고 쉴라의 옷을 사는 데에 쓰려고 노력했던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동정심을 갖게 되었다. 오로지 쉴라만이 희생자는 아니었다. 그 아이의 아버지도 그 아이 만큼이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존재였다. 고통과 괴로움에서 헤어나지 못한 지난날의 어린 소년, 그가 지금은 어른이 된 것이었다. 만일 조건 없이 사랑해준 사람이 있었다면, 만일 누군가가 돌보아 주었다면, 하고 혼자 쓸쓸하게 생각했다.
### 이어서 계속.....
- 15 -
학기가 끝날 때까지는 겨우 3주가 남았다. 나는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이 너무 많아 머리가 빙빙 돌았다. 학기가 끝나는 즉시 바로 떠날 수 있도록 준비도 해야 했다. 저녁 시간엔 짐을 꾸리거나 지난 수년간 모아온 잡동사니들을 정리하고 치우면서 시간을 보냈다.
나는 아이들에게 우리 학급이 없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아직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 중 몇 명은, 다음 학기에는 덜 제한된 환경으로 옮겨질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윌리엄은 자료실 교사의 도움을 받으면서 5학년 일반학급에 다닐 예정이었다. 그는 지난 3개월간 4학년 학급에서 읽기와 산수공부를 해왔다.
타일러도 새로운 프로그램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그 아이는 아직도 대부분의 시간을 개별지도가 가능한 교실에서 보내야 하지만 일반학생의 생활에 많이 가까워져 있었다.
사라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 아이는 우리 교실에서는 잘 지내면서도, 더 큰 다른 집단에서는 위축되어 지내기가 어려웠다. 그 아이는 1년 정도 더 특수학급에 있을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했지만, 그래도 거의 준비가 되어있다고 봐야 했다.
피터는 아직은 절대로 특수시설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의 행동은 점증적인 신경 손상의 결과로 계속 나빠지고 있었다. 그 아이는 너무 난폭하고 파괴적이어서, 철저하게 짜여진 학급이 아니면 어느 곳에서든지 지나치게 충동적으로 행동을 하였다.
길러모의 가족은 이사를 갈 계획이었다. 맥스, 프레디, 수잔나는 모두 특수 프로그램으로 들어갈 것이다. 프레디는 중증 정신지체 학급에 들어갈 것이고, 맥스와 수잔나는 자폐아 프로그램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맥스는 거의 정상적으로 말하게 되었고 반향어도 줄었다.
그러면 쉴라는? 쉴라! 나는 학급의 절박한 종말에 대해 아직 그 아이에게 말하지 않았다. 만일 그 말을 할 경우,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간단히 말해 두려웠던 것이다.
그 아이는 이제 많이 좋아졌지만, 그래도 아직은 깨지기 쉬웠다. 내 생각으로는 그 아이는 더 이상 특수학급에 있을 필요가 없는 아이였다. 사실상 그 아이는 어휘력도 좋고 스스로 탐구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어느 학급에서든 교사가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고, 그리고 결국 그렇게 되면 아이는 다시 주의를 끌기 위해 또 다른 부정적인 행동을 하게 될 것이다. 그 아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단지 돌봐줄 사람이었다.
나는 그 아이가 어리긴 하지만 3학년으로 올려보내자는 제안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아이는 자신의 정서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나이에 비해 성숙했다. 그외에도 3학년을 가르치고 있는 나의 절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있는 학교는 우리 학교보다 이주자 캠프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그 아이를 일반학급에 넣는 것이 특수학급에 넣는 것보다 경제적이기 때문에 필요시에는 교육청에서 쉴라를 버스에 태워 통학시킬 수 있을 것이었다.
센디 선생도 나와의 친분을 생각해서 쉴라를 돌봐줄 것이다. 그런 보증은 나를 위해서도 필요했다.
나는 쉴라에게 일반학급의 생활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 아이를 산수시간 동안엔 2학년 학급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2학년 교사 중에 낸시 긴스버그 선생은 상냥하고 자상한 여자로, 자기 반 아이들과 우리 반 아이들이 함께 여러 활동을 할 것을 제의하고 우리 학급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나는 어느 날 오후 휴게실에서 그녀에게 다가가 산수 시간에 쉴라를 받아줄 수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리고 쉴라의 산수 실력이 2학년 이상이라고 설명하면서, 일반학급의 긴장감에 적응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한 시간 정도를 우리 교실에서 떠나 있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산수가 그 아이의 가장 자신 있는 과목이기 때문에 그것으로 시작하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낸시는 이에 동의했다.
나는 자유놀이 시간 후 장난감을 치우면서 쉴라에게 물었다.
"알아맞춰 볼래?"
"무엇을요?"
"네가 이제부터 멋진 일을 하는 거야, 그건 하루에 잠깐씩 일반학급에 가는 거야."
그 아이는 나를 날카롭게 쳐다보았다.
"네?"
"내가 긴스버그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네가 매일 그 선생님 교실에 와서 산수공부를 해도 좋다고 하셨어."
"윌리엄처럼 말이에요?"
"그래."
그 아이는 치우고 있던 조립용 세트 조각들에 다시 몰두한 척 했다.
"난 하고 싶지 않아요. "
"그건 네가 이런 생각에 익숙해 있지 않아서 그래. 하고 싶어질 걸? 생각해 봐. 그건 일반학급이야. 기억하니? 언젠가 네가 나한테 일반학급에 있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잖아? 이제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야."
"하지 않을 거예요."
"왜 안해?"
"여기가 나의 학급이에요. 난 다른 학급에 가지 않아요."
"산수 시간뿐인데?"
그 아이는 코를 그려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여기에서 하고 싶은 것이에요. 여기서 내보내는 것은 싫어요."
"여기에서도 하고 싶다면 산수 공부를 할 수 있어. 그렇지만 월요일부터는 긴스버그 선생님 교실에서도 산수 공부를 하는 거야."
"아뇨, 안해요."
결국 쉴라는 그 계획을 싫어했다. 내가 대는 이유마다 그 아이는 반대 이유를 내세웠다. 그 날 남은 시간 동안, 그 아이는 내가 자기를 보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화가 나 있었으며 사납게 굴었다. 오후에는 그 아이에게, 그 정도로 내가 듣고 싶은 모든 항의를 충분히 들은 셈이라고 단호하게 말했으나 그래도 계속 성난 행동을 하였다.
쉴라는 화가 나서 발을 구르며 토끼 우리 쪽으로 걸어가 빗장을 잡고 흔들어댔다. 다행히도 그 속에는 토끼가 없었다. 나는 덜커덕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다가 그 아이를 잡아 탁자로 끌고와서는, 더 점잖게 행동하거나 아니면 교실구석에 가서 앉아 있으라고 엄하게 타일렀다. 쉴라는 반항적으로 발을 차고 일어나 교실 구석으로 갔다. 그리고는 의자를 두드리면서 앉아 있었다.
나는 겨우 그 애를 앉아 있게 하고서, 쉴라를 무시한 채 윌리엄이 그림 그리는 것을 도왔다. 그 아이는 안톤이나 내가 마음이 가라앉았으면 그만 일어나 오라고 말했을 때도, 사라가 오후에 과자 만드는 것을 도와달라고 제안했을 때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오후 내내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아이는 분명 내 기분을 나쁘게 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나는 방과후에 그 아이를 안톤과 있게 내버려 두고 학습 지도안을 짜기 위해 교사 휴게실로 내려갔다. 쉴라가 화를 내고있을 때는 혼자 두는 것이 상책이었다. 5시쯤 교실에 와보니, 그 아이는 쿠션 위에 누워 책을 읽고 있었다.
"이젠 화가 풀렸니?"
내가 묻자, 그 아이는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선생님은 나를 보내려고 한 것을 후회하게 될 거예요."
"그게 무슨 뜻이지?"
"내가 가게 되더라도 그 곳에서 착하게 행동하지 않을 거예요. 내가 나쁘게 굴면 그 선생님이 나를 다시 이리로 보낼 테니까요. 그러면 선생님도 더 이상 나를 보내지 못해요."
"쉴라야!"
나는 기가 막혔다.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렴. 그건 네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이 아닐 거야."
"아녜요, 그럴 거예요."
그 아이는 여전히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나는 시계를 힐끗 쳐다보았다. 아이가 가야 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럴 때에는 그 시간이 저주스러웠다. 나는 쉴라 곁으로 다가가서는 무릎을 꿇고 앉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왜 가기 싫어하는 거지? 나는 네가 일반학급에 가는 것을 좋아할 줄 알았는데……."
아이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나는 그 아이에게서 책을 치우고 나를 보게 했다.
"쉴라, 네 생각을 알고 싶어. 넌 그 곳에 가서 말썽을 저지르면 내가 너를 그 곳에 보내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지. 긴스버그 선생님께서 곤란해하는 것을 내가 바라지 않으니까 그렇게 행동하겠다는 것이지? 하지만 정말은 그런 일을 하고 싶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할 거예요."
"쉴라……."
쉴라는 마침내 촉촉히 젖은 눈으로 나를 똑바로 보았다.
"왜 더 이상 나를 이 곳에 있지 못하게 하는 거죠?"
"난 그런 말은 하지 않았어. 난 네가 이 곳에 있길 바래. 당연히 그렇지. 하지만 네가 일반학급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배워서 그 학급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
"일반학급이 어떤 것인지는 이미 알고 있어요. 이 곳에 오기 전에는 그런 데에 있었어요. 난 미친 교실에 있고 싶다구요."
시간은 5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쉴라야, 이젠 가야 할 시간이구나. 막 달려가야 버스를 탈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이 일에 대해서는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꾸나."
쉴라는 더 이상 이 일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단지 자기 말대로 행동했다. 나는 월요일 아침에 쉴라를 긴스버그 선생 교실로 30분 동안 가 있게 했다. 그런데 간 지 15분만에 안톤이 그 아이를 데려와야 했다. 그 아이는 시험지를 찢고, 연필을 던지고, 자기보다 두 배나 큰 2학년 학생을 발을 걸어 넘어뜨린 것이었다.
안톤은 발길질하고 비명을 지르는 그 아이를 끌고 들어왔다. 그러나 문을 닫자 쉴라는 가만히 서있었다. 기쁨의 미소가 그 아이의 입가에 번졌다. 안톤이 그 아이를 교실 구석으로 데리고 가는 동안 나는 맥스 옆 의자에 깊숙히 앉아 눈을 감았다.
나는 그 아이의 행동에 무척 화가 나서 한동안 나 자신도 믿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다음 학기에 그 아이를 어디에 배치할 것인지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를 논해야 할 시기가 왔다고 보았기 때문에 긴스버그 선생 학급에서의 행동에 대해 그 아이와 즉각적으로 대결하지 않았다. 내 마음이 가라앉은 후에야 쉴라에게 우리와 함께 있어도 된다고 말해 주고 나서 정상적인 순서대로 수업을 진행했다.
쉴라는 노골적으로 나에게 대항한 일에 자신 스스로 무척 당황스러워했다. 그 아이는 나머지 시간 동안 내게 지나치게 관심을 쏟으며 자신이 얼마나 착한지를 보여주려고 애를 썼다.
쉴라는 교실 구석에 앉혀 두는 일 외에는 어떤 벌도 가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더욱 당혹스러워 했다. 그 아이는 나에게 언제 화를 낼 것이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나의 갑작스런 무관심이 자신을 내쫓으려고 하는 내 바램의 또 다른 표시라는 생각을 그 아이가 할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나중에 시간이 있을 때 그 문제를 논하자고 얘기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내내 초조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남은 오후 시간을 보냈다.
방과후에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버스를 태워 주었다. 내가 교실로 돌아왔을 때, 쉴라는 겁에 질린 듯이 눈을 크게 뜨고 벽에 기대어 있었다. 나는 머리를 움직여 탁자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리 와라, 얘야. 이젠 우리가 이야기를 할 시간인 것 같구나."
그 아이는 머뭇거리면서 가까이 다가와 내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그 아이의 얼굴에는 경계심이 가득했고, 눈은 더 커져 있었다.
"나한테 화났어요?"
"오늘 아침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야. 난 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아보고 싶은 것 뿐이야. 난 네가 왜 가고 싶어하지 않는지 정말 알 수가 없어. 그래서 그것이 알고 싶은 것 뿐이란다. 너는 항상 네가 하는 일에 정당한 이유가 있었잖니? 그런 면에서 너를 믿는단다."
그 아이는 나를 유심히 보았다.
"왜지?"
"여기가 내 학급이니까요."
아이는 짧게 대답했다.
"그래, 그러나 난 너를 여기서 쫓아내려고 하는 게 아냐. 하루에 30분만 나갔다 오는 것 뿐이야. 그리고 이젠 네가 다음 학기에 있을 일반학급에 대해 생각해볼 때인 것 같다."
"난 일반학급에 가지 않을 거예요."
내 마음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럴 수 없어."
나는 부드럽게 대답했다.
그 아이는 눈을 번쩍 떴다.
"난 또 있을 거예요. 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 아이가 될 거예요. 끔찍한 일을 저질러서 선생님한테 나를 맡기게 할 거예요. 그 사람들은 선생님이 나를 보내 버리지 못하게 할 거예요."
"오, 쉴라!"
나는 울부짖었다.
"난 어디도 가지 않을 거예요. 또다시 나쁜 애가 될 거예요."
"이건 그런 것과 다르단다. 난 너를 버리지 않아. 오, 하나님! 쉴라야, 내 말을 들어봐, 제발!"
그 아이는 귀를 막고 있었다.
잠시 후 사납게 나를 보는 아이의 눈은 복수심에 불타서 금방이라도 해칠 것 같았다.
"다음 학기부터 이 학급은 이 곳에 있지 않아."
나는 나직한 목소리로 들릴듯 말듯 이야기했지만 그 아이는 그 말을 들었다.
금세 아이의 얼굴 표정이 변하며서 손을 내렸다. 분노는 창백함으로 바뀌었다.
"무슨 뜻이에요? 이 곳이 어디로 간다구요?"
"이 학급은 여기 없을 거야. 교육청에서 이 학급이 필요치 않다고 결론을 내렸지. 모두들 다른 학급으로 가게 된단다."
"이 학급이 필요 없다구요?"
그 아이는 소리쳤다.
"물론 그들에게는 필요없겠지만 나는 필요해요. 난 아직 미쳤다구요. 난 미친 아이들의 학급이 필요해요. 피터도, 맥스도, 수잔나도 그래요. 우리 모두 아직 미친 아이들이에요."
"아니야, 쉴라. 넌 미치지 않았어. 옛날엔 그랬는지 몰라도 이젠 안 그래. 이젠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단다."
"그래도 난 미칠 거예요. 다시 나쁜 짓을 많이 할 거예요. 그리고 아무 데도 안가요."
"쉴라야, 나도 여기에 없을 거야."
순간 아이의 얼굴은 굳어버렸다.
"난 6월에, 학기가 끝나고 나면 이 곳을 떠날 거야. 너에게 이 말을 하는 게 나로서는 정말 힘든 일이란다. 왜냐하면 우린 아주 좋은 친구였으니까. 하지만 때가 온 거야. 그렇다고 네가 한 일이나, 하지 않은 일 때문에 너를 덜 사랑한다거나 떠나는 것은 아니란다. 이건 내가 혼자 내린 결정이야. 어른의 결정."
그 아이는 계속 나를 바라보면서, 탁자 위에 팔꿈치를 대고 두 손을 마주잡아 그 손에 볼을 대고 있었다. 아이의 파란 눈은 초점이 없었고, 내 얼굴을 그저 무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단다. 쉴라. 난 교사이기 때문에 6월이면 내 일이 끝나는 거야. 우린 그 동안 힘든 시간을 함께 지내왔고, 너와 나는 많이 변했단다. 많이 성숙했고, 이젠 그 성숙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알아야 할 시기가 온거야. 난 우리는 마음의 준비가 다 되었다고 생각해. 너도 네 힘으로 그렇게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본다. 넌 그럴 만큼 충분히 좋아졌어."
그 아이의 눈에서는 갑자기 눈물이 넘치더니, 뺨에서 턱으로 냇물처럼 흘러내렸다. 아이는 움직이지도 않고, 눈도 깜빡이지 않은 채 그대로 앉아 있었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나는 가끔 그 아이가 겨우 여섯 살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곤 했다.
그 아이는 탁자 위에 천천히 손을 내려놓고 머리를 숙였다. 아이는 잠깐 동안 그렇게 앉아 있었다. 닦지 않은 눈물은 소리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 아이는 갑자기 일어나서 교실 저편으로 걸어가 바닥에 있는 쿠션 가운데에 주저앉았다.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여전히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 아이가 내뿜는 고통은 나 자신의 고통이기도 했다. 나는 그 아이에게 있어 너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이런 행동을 내 동료들은 나무랐지만, 그렇지 않고는 아이들을 효과적으로 지도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 아이를 계속 가르친다 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그 아이에게 행복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아이 자신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그 아이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은 오직 사랑과 시간일 뿐, 때가 되면 아픈 이별이 따르는 것이다.
나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그 아이의 상처를 고치기에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는 것과, 그 아이가 고통이 따르는 나의 지도방법을 견디어 낼 만큼 충분히 강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걱정하였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서 그 아이가 앉아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가세요."
아이는 얼굴을 가린 채 조용히, 그러나 확고하게 말하였다.
"왜? 네가 울고 있어서?"
아이는 손을 내리고 나를 잠깐 쳐다보았다.
"아니에요."
그리고는 말을 멈추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기 때문이에요."
나는 아이 앞에 쿠션을 나란히 놓고 그 위에 누웠다. 처음으로 나는 아이를 껴안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항상 아이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기 위해 팔로 아이를 껴안아 주고 싶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분명 위엄이 있었다. 우린 이 순간에 서로 동등한 것이다. 더 나이든 사람이나 더 어린 사람으로서도 아니고, 더 현명한 사람도, 더 지체 있는 사람도, 더 강한 사람도 아닌 인간 그 자체로서 동등하였다.
"왜 남아서 나를 좋은 아이로 만들려 하지 않는 거예요?"
마침내 그 아이가 물었다.
"왜냐하면 너를 훌륭하게 만드는 것은 내가 아니고, 바로 너이기 때문이야. 나는 네가 잘하고 못하는 것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네게 알려주기 위해 여기 있었던 것 뿐이야. 항상 그 누군가가 네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 관심을 쏟고 있단다. 그리고 내가 어디 있느냐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 거야. 난 항상 관심을 갖고 있으니까……."
"선생님은 우리 엄마하고 같은 사람이에요."
아이가 말했다.
그 목소리는 사태가 어떻게 된 것이고, 왜 그런 것인지를 해결한 듯이 부드러웠을 뿐, 이미 책망하는 투가 아니었다.
"아니야. 난 그렇지 않아, 쉴라."
나는 그 아이를 쳐다보았다.
"아냐, 그럴지도 모르겠다. 너를 두고 간다는 것이 나에게 어려운 것처럼 네 엄마에게도 힘든 일이었을 테니까……. 아마도 그것이 엄마를 많이 아프게 했을 거야."
"엄마는 나를 정말로 사랑하지 않았어요. 동생을 더 사랑했어요. 엄마는 나를 개처럼 길에 버렸다구요. 내가 엄마 아이가 아닌 것처럼 말예요."
"그건 잘 모르겠다. 네 엄마가 너에게 무슨 일을 했고,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어. 그러나 쉴라야, 그것은 너도 역시 모르는 거야. 네가 알고 있는 것은 다만 그 일에 대한 느낌 뿐이야. 그리고 엄마와 나는 다르단다. 난 네 엄마가 아니야. 네가 그 일을 어떻게 보든지간에, 나는 그렇지 않아."
또다시 눈물을 홀리며, 쉴라는 바지 끈을 만지작거렸다.
"나도 그건 알아요."
"그걸 네가 알면서도 꿈을 꾸고 있었던 거지. 나도 역시 그런 식으로 가끔 꿈을 꾸었던 것 같아. 하지만 그건 꿈에 지나지 않는단다. 난 지금은 너의 선생님이지만, 학기가 끝나면 너의 친구가 되는 거야. 난 너의 친구가 될 거란다. 네가 원하는 만큼 오랫동안 친구가 될 거야."
그 아이는 고개를 들었다.
"난 왜 좋은 일들은 항상 끝이 나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단다."
"어떤 것은 그렇지 않아요. 나쁜 일들은 그렇지 않아요. 그것들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아요."
"아니야, 그것도 없어진단다. 그걸 네가 없애려 한다면 없어질 거야. 우리가 바라는 대로 빠르지는 않아도 역시 끝이 있단다. 끝이 없는 것은 우리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란다. 네가 이 다음에 어른이 되었을 때나 다른 곳에 있을 때조차도, 우리가 함께 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할 수가 있지. 그리고 나도 너를 기억할 거야."
뜻밖에 쉴라는 미소를, 아주 엷은 미소를 지었는데 그 미소는 오히려 쓸쓸해 보였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를 길들였기 때문이지요. 그 책 기억나요? 어린 소년이 여우를 길들이기 위해 그 힘든 일을 모두했기 때문에 화가 났고, 그러다가 그 아이가 떠나야만 하니까 그 여우가 울었던 것 말이에요?"
쉴라는 나를 의식하지 않은 채 혼자서 기억을 되새기며 미소를 지었다. 아이의 볼에는 눈물이 말라 있었다.
"그리고 여우가 항상 밀밭을 기억했기 때문에 어쨌든 좋다고 말했잖아요. 기억나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서로를 길들였지요, 그렇죠?"
"분명히 그랬지."
"누군가를 길들이는 일이 우리를 울게 만들죠? 책에서도 그들이 울었어요. 그런데 그 이유를 난 잘 모르겠어요. 나는 항상 누군가가 우리를 때릴 때만 운다고 생각했거든요."
나는 또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가 우리를 길들일 때에도 우리는 울 기회를 갖는단다. 내 생각에는 그것이 길들여지는 일의 일부분인 것 같구나."
쉴라는 입술을 꼭 다물고서 얼굴에 남은 눈물자국을 닦았다.
"그래도 그건 많이 아프게 하는 거죠, 그렇죠?"
"그래, 분명히 아프게 한단다."
### 이어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