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자 마자 차창에 비치는 것은 누런 항톳물을 들인 황하강의 모습입니다. 바로 옆으로는 도로가 나 있어 자동차와 경주를 벌이고 있습니다. 아침해에 비친 황하강의 모습은 더욱 돋보입니다. 복도쪽의 차창밖으로는 사막의 끝없는 모래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농촌풍경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밤새 754km를 달려왔으니 바뀔만도 하죠. 황하강을 건너자 얼마안가 난주시가지와 만납니다.
난주시가지와 만나고도 난주역은 아직 나타나지 않는군요. 차창밖으로 보이는 차량기지에는 휴식을 취하고 있는 듯한 기관차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어떤 기관차는 여러량의 객차를 거느리며 한숨을 쉬듯이 출발을 기다리고 있군요. 난주서역을 거치고.. 여기는 뒤에 방위를 붙이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멀다라는 느낌이 드는 순간 열차가 도착합니다.(7:17) 우리가 탄 열차로 종착역이로군요. 건너편 홈에는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 열차가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침 현지 가이드분들이 마중을 나오셨군요. 한분은 현씨고 한분은 마씨라고 합니다. 마씨는 2호차에 탔었는데 조선족입니다. 말투는 평안도 사투리인듯.. 1호차는 한족인데 영어로 설명합니다. 확실히 중국인들이 영어를 더 잘하는 것 같군요. 어순이나 문법도 그렇고 발음방법도 비슷해서 인듯합니다. 난주역사는 상당히 큰 규모입니다. 역사앞으로 보이는 도로는 차들로 붐비고 있습니다. 그 위로는 다른 도시에서는 구경하기 힘들었던 키 큰 빌딩들이 제자리들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버스가 좀 작은 차로군요. 아침부터 관광지도를 들고 나오며 한푼이라도 건지려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분주합니다. 한국에서는 관광안내소에서 무료로 나누어 주었을 법하지만 여기서는 한장에 2원에서 3원씩 팝니다. 여러장(선물용)을 사며 갚을 깎아보는 흥정도 해보고요.
먼저 아침을 먹으러 가야지요. 가이드 분께서 영어로 열심히 설명을 해보시지만 쉽게 알아듣지는 못하겠군요. 아침식사 메뉴가 쇠고기에 얹은 국수라는 것은 알아듣겠군요. 금강산도 식후경이고,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욕구라서 일까요?
난주시내의 모습은 다른도시에 비하여 분주한 모습입니다. 20분정도 시내를 헤매다가 식당안으로 들어갑니다. 다른날과는 달리 아참의 메뉴는 국수로 시작합니다. 국수위에는 커다란 쇠고기가 그릇을 꽉 채우고 있습니다. 국물맛은 향신료가 들어갔는지 매캐한 맛이로군요. 우리에게는 그다지 적응이 되지 않는군요. 정말 중국에서 식사한는 동안 짜장면, 짬뽕은 구경도 못해보았군요. 하긴 짜장면은 우리나라에 들어온 화교들이 상업활동에 제약을 당하자 우리나라사람의 입맛에 맞게 음식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중화요리라고 하지 말고 한화중국요리라고 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식사를 하고 화장실을 갔는데 상당히 당혹한 장면이 연출됩니다. 대변을 보는 곳이 벽으로 둘러싸여 있지 않고 탁 트여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허리높이 까지만 벽을 쌓아높고 출입문도 없군요. --;;
식사를 마치고 감숙성 박물관으로 가는 길옆에는 누런 빛깔이 황하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황하강은 중국인들에게는 어머니강으로 불리우고 있죠. 황하강의 길이는 5464km이며 청새성 바옌파라산낵의 야허라다쩌산(5,442m)에서 발원하여 사천성, 감숙성 남부, 서녕, 난주, 은천, 오르도스, 산서성 허취현, 통관, 삼문사, 허난성, 화부평야를 거쳐 산동성 컨리형에서 보하이만으로 흘러들이가는 강입니다.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황화강 유역으로 많이 알려진 강이죠.
감숙성 박물관은 시내 서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난주시가지는 옆으로 길게 늘어서 있어 아까 기차를 타고 들어오는 동안에도 크다고 느꼈던 것이죠. 인구는 약 242만이라고 합니다.
감숙성 박물관에 도착합니다. 가이드분께서 영어로 설명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귀를 바짝 세우고 들어도 알아 듣기가 힘들군요. 외국어의 중요성이 어느때보다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중국어라도 하면 개별적으로 물어보기라도 하는데.. 건물은 2층 구조로 되어있고 1층에는 기념품 판매대, 2층에 전시관이 있습니다. 병사의 행렬과 제비위에 탄 말의 모습이 인상적이로군요. 이 말은 난주시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이 박물관 개관이 1861년이니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군요. 여기에는 또한 청나라 시대 난주시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1895년에 그려졌다고 하는군요. 박물관 안내 책자와 더불어 박물관 유물을 찍은 사진을 10원주고 샀는데 관람객은 못찍게 하고 자체로 찍어 파는 상술이 얄밉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난주시는 다른 도시와는 달리 고층빌딩이 즐비하게 서 있습니다. 마치 선진국의 한 도시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다가 손님을 싣고 가는 시내버스도 최신형인 듯 합니다. 아무래도 재정상태가 좋은 도시인듯 합니다. 감숙성의 성도죠. 버스로 5시간을 가고 기차로 밤새달려도 한 성을 못벗어 났으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공간개념보다 훨씬 넓다고 할 수 있죠.
강을 건너서 백탑산 공원에 도착합니다. 시간이 없어서 그런지 차로 직접 정상까지 올라가는군요. 산을 따라 다닥다닥 붙은 집들의 모습은 서울의 홍제동, 연신내, 한강북부의 한남동을 연상시킵니다. 아무래도 집을 방문하는데 있어서 앞문으로 들어가는데 우리는 다짜고짜 뒷문으로 들어서는 형상이 된 것이죠.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황하에는 독일인이 설계하여 만들었다는 황하제일교가 보입니다. 1909년 제작되었으며 계폐식 다리라고 합니다. 오늘도 다리위에는 차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강을 건너고 있습니다.
공원으로 들어가자 백탑이 오랜세월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목수현 선생님이 설명에 의하면 아래에는 둥근모양으로 인도네시아의 라마교양식을 본뜬 것이고 위에는 8각으로 전형적인 중국의 탑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중국답게 전탑(벽돌)형식으로 되어있죠. 우리나라는 석탑, 일본의 목탑(목조건물)이 주를 이룹니다. 인도는 참고로 무덤형식으로 되어있죠. 백탑산은 참고로 원나라시대(몽고지배)양식이라고 합니다.
탑이라는 말은 인도의 stupa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탑파라고 불리고 후에 줄여서 탑이라고 불려진 것입니다. 탑은 부처님사리를 모셔놓고 예불을 드리는 목적으로 세워진 것이죠. 석가모니가 입적한후 사리를 모시고 봉분을 만들어 위에 상륜부를 씌워 놓은 것인데 이것이 중국, 한국, 일본으로 옮겨 가면서 탑의 양식이 변한 것이죠. 중국이나 한국도 초기에는 목탑을 많이 지었는데 지역의 사정에 맞게 탑을 제작을 하다보니 전탑, 석탑 하는 식으로 나뉜 것입니다. 그렇다면 탑은 원래 무덤인 셈이죠. 에 있는 보륜과 연꽃 조각은 부처님의 말씀이 크게 퍼져나간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공원 뒤쪽을 보면 건물이 한쪽벽면은 산에 붙어있고 나머지 부분만 집ㅇ로 지었다는 랴우뚱이라는 건물이 있는데 겨울에는 따듯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고 합니다.
아까와는 달리 산을 타고 공원입구로 내려갑니다. 버스가 그곳에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죠. 내려가는 길에 절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스님의 목탁소리와 염불에 따라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렇게 큰 불교행사는 처음 봅니다. 우리야 절이라면 문화재로서 먼저 보는 것이 전부인데 이사람들은 일상의 한 부분인 듯 합니다. 일반적이기도 하고요.
공원입구에서 차도를 보니 노란색을 띈 다마스만한 승합차가 있어 뭔가 했더니 당당하게 위에 'TAXI'라고 적혀 있군요. 주로 서민이 이용하는 교통편인듯 합니다. 귀엽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시내에서 점심을 먹고, 오천산공원으로 향합니다. 입구를 보면 천막안에 휴식시설을 갖추어 놓고 음료수를 팔고 하는데 주로 낮잠을 자거나 마작을 하는 등의 오락을 하는 곳인가 봅니다. 입구로 들어가보면 어린이 놀이기구며 당구대가 나무밑에 위치해 있어 이곳이 오락공간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마침 주말이라 사람들이 많이 나왔군요. 오천산이면 한무제시대 장군 곽거병이 흉노를 정벌하러 서역으로 떠날 때 갈증에 시달리는 병사를 위해 산에 올라 다섯군데 칼을 찔렀더니 맑은 물이 솟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혜천, 감로천, 국월천, 모자천, 몽천 으로 짐작되는데 현재도 맑은물이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고사에 나와있는 이야기지요. 어제의 주천도 그렇고 오늘도 보면 군사의 사기를 높여주는 장면이 되는데 아무래도 한무제나 곽거병 등의 능력을 이런 전설을 통하여 알리려는 목적인 듯 합니다.
오르막 길을 따라 공원으로 들어가니 한 연못에는 연꽃이 활짝 피어 있습니다. 하얀색, 분홍색 등 색도 여러가지 입니다. 공원을 올라가는 여기저기에는 절이 위치하고 있고 공원정상(산중턱에 있음)에는 이 지역 위인들의 모습을 인형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역 인사들을 내세우는 경향이 강하죠. 그만큼 자기 고장의 위신을 세우는 길도 될 테니까요. 그러다 보면 듣도 보도 못한 인물이 쏟아져 나오게 되고요.
약간 내려와서보니 마침 가이드분이 종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황제의 만세를 위해 만들어 졌다고 하는군요. 공원 아래에 위치한 사찰에는 불상 한 상이 있는데 왼쪽팔이 부러졌다가 다시 복구한적이 있다고 합니다. 문화대혁명때 파괴된 것이죠. 자신이 가진 사상을 위하는 것은 좋다고 다른 문화나 사상까지 지나치게 배격하는 것은 이런 광기를 낳기도 합니다. 자본주의를 몰아낸답시고 지나친 공포분위기를 나타냈던 사건이었죠. 모택동 자신의 말마따나 '똥만도 못한 교의'가 된 셈입니다.
이로써 난주에서의 일정도 끝났군요. 이제 여행은 거의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이제 난주역으로 이동합니다. 가이드분과 작별인사를 나누는 사이 난주역에 도착합니다. 우리의 대합실은 2층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병풍에 쇼파에 정말로 귀인 대우를 해주는 듯 합니다. 정말로 생각지도 못한 상팔자로군요. 웬지 격리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난주역 입구에는 제비를 탄 말이 세워져 있어 난주의 상징인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정확한 이름은 잘 모르겠군요.
플랫폼에서는 열차가 손님을 태우고 자기 갈길을 재촉합니다. 개찰이 시작되고 우리가 탈 열차는 계단을 오르내릴 필요없이 1홈에 서 있어 바로 나가면 있습니다. 편명은 k120 쾌속급 열차이고요. 전기기관차 1량이 끄는 15량의 객차는 무거워 보일 법도 합니다. 하긴 전기기관차가 디젤기관차보다 더 힘이 세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지만요. 철도의 발전과정을 보면 디젤기관차에서 전기기관차, 다음에 고속전철로 넘어간다고 합니다. 난주까지 전차선로가 설치되어 있죠. 한가지 더 재미있는 사실은 열차에 승무원이 많이 배치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그만큼 우리나라보다 관리를 철저하게 한다는 것인데 열차마다 객실, 6인 침대, 4인침대로 나위어져 있어 통행을 제한하는 데다가 수동문인 만큼 승무원이 손수 여닫기도 해야하고 청소를 하는데도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중국이 고용안정이 더 잘 되어 있는 나라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만큼 사고의 위험성도 줄어들 수 있고 관리가 손수워 진다는 점도 있죠. 승무원 개개인의 피로도 줄일 수 있고요. 우리나라의 '구조조정 절대주의'는 배척되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5:11분 열차는 서안까지의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차량기지에서는 열차들이 운행을 기다리며 잠들어 있는 듯합니다. 도시를 벗어나자 농촌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여기도 전철화가 된지는 그리 오래돼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직 단선구간인 곳도 있기 때문이죠. 분기선인가 했더니 선로개량구간이가 봅니다. 단선구간에서는 마주오는 열차와 교행하기 위해 잠시 서기도 하죠. 마주보이는 보객(침대차 없는 보통열차, 완행열차) 열차는 마치 우리나라의 비둘기호를 연상시킵니다.
농촌풍경을 보면 재미있는 것이 공간을 알뜰하게 쓰고 있다는 것인데요, 산도 논으로 덮여있고 절벽 위와 밑으로도 논이 계속 되어 있고 강가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간간이 벽돌을 굽는 공장이 보여 중국이 벽돌의 나라임을 알 수 있죠. 농토가 워낙에 넓은지 트럭을 주로 타고 다니는듯 합니다. 중국의 사회주의 국가가 건설된 배경도 농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죠.
복도에서 한국분을 만났는데 외국에서 한국사람을 만나니 반갑군요. 호남대학생이며 티벳에서 사회봉사를 하고 오신 분들이라고 합니다.
용서역에서 정차할 때 쯤에는 날이 어둑어둑 해져 있군요. 야간이 되자 복도에 창문을 커텐으로 가립니다. 침대칸이라 불을 끌고 본 방풍경은 잘 보입니다. 밤기차 풍경을 보기 힘든 이유가 기차는 객실에 항상 불을 켜놓고 다니기 때문이죠. 안이 밝으면 그만큼 밖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침대칸이라 그런 것에서도 자유롭죠.
고단한지 잠이 들었던 일행들이 일어나고 이제 술판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하루의 마지막 일정이라고 할 수 있죠. 특히 기차를 타면 더 활기를 띄게 되는데 마침 승무원이 제지를 해보지만 별 효과는 없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정말로 술먹을때 시끄럽죠. 중국사람들은 밥먹을때 시끄럽고요. 중국의 술은 좋은 것이 40도 이상임에도 아침에 속이 쓰린 것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소주는 화학술이 성격이 강하고 여기는 과일을 재료로 많이 했으니까요.
천수역에서는 열차가 무려 30분이나 정차합니다. 하긴 기차바퀴를 가느라 몇시간을 정차하는 열차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너무 오래기다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땅이 넓다보니 이동하는 거리나 시간이 길어지고 그 때문에 중국인들이 시간이나 거리에 느긋해 진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행이 막바지에 이르러서인지 일행들의 술파티는 더욱 진해지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