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토기는 빗살무늬토기이다.
빗살무늬토기라는 용어는 일본의 고고학자인 후지이다가 Kammkeramik(comb pottery) 이라는 독일어를 즐목문토기(櫛目文土器)라고 직역한 데서 유래되었고 그 분포 지역은 만주, 시베리아, 스칸디나비아반도, 핀란드, 그리고 북부 독일이다.
한반도의 빗살무늬토기는 동구(東歐)문화의 동진(東進)으로 보고있다. 이와 같은 동구권과의 관련에 대해서는 최근에 여러 가지 이견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빗살무늬토기는 한반도에서 자생(自生)하여 북서로 퍼져나갔다는 한반도의 자생 가능성까지도 언급된 바 있다.
하여간 이러한 배경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빗살무늬토기라는 용어는 오늘날 이미 일반적인 학술용어가 되었고 신석기시대 문화는 곧 빗살무늬토기 문화로서 대표된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서는 같은 신석기시대 문화권이라 하여도 약 5000 년 이상의 시간적인 차이가 있고 또 문화의 상호 영향 관계가 있으면서도 각 지역의 특징이 있다. 그러므로 반드시 빗살무늬가 새겨 있지 않더라도 신석기시대 토기는 무도 같이 묶어서 빗살무늬토기로서 광의로 해석하고 있다.
제1기는 본격적인 빗살무늬 토기가 제작되기 이전 단계이다.
이러한 토기 가운데는아무런 무늬도 없는 무문토기,즉 민무늬토기가 있는데, 이들 토기의 출토지는 함경북도 웅기군 굴포리,부산시 영도구 동삼동,그리고 경상남도 통영군 상노대도 등의 조개무지이다.
이곳 출토의 민무늬토기는 빗살무늬토기보다 하층에 있다. 동삼동 최하층에서는 방사성탄소연대가 B.C. 4790 ~ 4405 년으로 추정되었고 민무늬토기(도1)와 함께 덧띠무늬,누른무늬토기들이 같이 출토된다.(도2)
덧띠무늬토기는 그릇의 바깥면상단에 띠와 같은 것을 따로 붙이고 그 위를 꼭꼭 눌러 사선무늬를 낸 것이고, 무른무늬는 덧붙임 없이 눌러 무늬를 낸 토기를 말하는데 이와 같은 동삼동 토기들은 그릇 밑을 둥글게 처리하고 있다.
동삼동 외에도 부산시 영선동 출토의 덧띠무늬토기(도3)는 유명하다.
선사시대 유적지 중에서도 1891년부터 주목되어 오던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오산리는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신석기 유적지인데 방사성탄소연대는 B.C. 5170 ~ 4831 년으로 추정된다. 오산리 출토 토기는 사발모양으로 작은 굽을 가지고 있는 것과 굽 없이 둥글게 처리한 것이 있따.
표면 장식은 바깥면 상단에 마치 손톱자국과 같은반원형 무늬를 몇 줄 일정하게 나란히 내고 있는 토기(도4)와 동삼동것과 유사한 덧띠를 붙인 다음 점선을 나타낸 토기가 있다.
이밖에도 상노대도 출토의 덧띠무늬토기(도5)가 있고 함경북도 웅기군 굴포리 서포항 에서도 오산리,동삼동 계열과 맥을 같이하는 평저형의 속이 깊은 사발모양의 아가리무늬토기가 출토되고 있다.
생활용기 이외에도 동삼동에서는 그당시 사람들의 신당의 존재나 사유세계의 일면을 나타내 주는 뿔모양잔, 사람모양의 토우,생식기형 석봉이 있으며 오산리에서는 사람얼굴이라고 생각되는 무엇인가를 나타낸 것도 있다.(도7)
이상에서 볼때 제1기의 토기의 특징은 본격적인 빗살무늬토기 발생이전 단계로서 그 분포 지역은 함경도, 강원도, 부산으로 이어지는,이를테면 두만강으로부터 동해안을 따라 부산으로 이어져 발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와 유사한 덧디무늬토기나 아가리에만 간단한 손톱자국 같은 뭊늬를 나타낸 사발모양 토기편들이 일본 대마도,몽고,중국 요녕성등지에서도 출토되므로 그 영향 관계가 남으로부터인가 혹은 북으로부터인가 하는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앞으로의 연구가 주목되며 특히 일본의 덧띠무늬토기(약B.C. 10,000)와의 비교연구가 요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