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5일 국회에서 열린우리당 박병석의원과 한나라당 황우여 의원 등 여야 국회의원 35명이 국회의원 배지와 국회기에 한자로 쓴 `國'자가 의혹을 나타내는 `或(혹)'자로 보이니 한글로 바꾸자는 국회법 규칙개정안을 제출했다. 한편 열린우리당 박영선 의원도 한자 배지를 버리고 빨리 한글로 바꾸기 위해 여야 의원들로부터 서명을 받고 있다.
방병석 의원과 여야 의원들은 " 국회기 및 배지 등에 관한 국회규칙은 지난 93년 2월23일 개정됐으나 중심부의 나라국(國)자 도안이 한자로 되어있어 많은 논란을 빚어왔습니다. 이를 한글을 많이 사용하는 현실에 맞게 한글‘국’자로 바꾸려고 합니다. 국회의원 명패도 대부분 한글로 변경된 시점에서 과거의 한자를 고수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또한 중심의 ‘或’자가 ‘의혹’을 나타내는 단어로 오해의 소지도 많습니다."라고 그 취지를 밝히고 있다.
국회 정문에 붙어 있는 국회 휘장, 누가 이 글자를 國자로 보겠나?
대한민국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가 대한민국 글자인 한글을 쓰지 않고 있는 것은 어리석고 부끄러운 일이었다. 국회의 상징인 국회기와 본 회의장 정면과 국회정문에 붙어있는 휘장의 글자는 누가 보아도 한자 國자가 아니라 或으로 보이게 되어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날마다 그런 엉터리 상징을 우러러보며 정치를 하니 그 정치가 잘 될 리 없었다. 이런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글단체와 많은 국민이 여러 차례 국회에 건의하고 요구했으나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10여 년 전 14대 국회 땐 한글단체에서 국회의원 299명 이름패를 한글로 만들어 갔다가 주면서까지 써달라고 했었다. 그리고 그 때 국회의원 배지의 國자가 동그라미 속에 있어 或(혹)자로 보이니 동그라미를 네모로 바꾼다고 해서 한글단체는 마찬가지 或으로 보이니 한글로 바꾸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건의한 일이 있다.
그러나 한자로 쓰기가 오래된 관행이라느니, 한글로 쓰면 배지가 거꾸로 돌아갈 때 '논'자로 보인다느니 핑계를 대고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 때 14대 국회에서 나와 함께 한글 쓰기 운동을 하던 원광호 의원은 다시 한자로 만든 배지를 달지 않고 버리면서 항의한 일도 있다.
사실 국가 기관의 상징인 깃발이나 배지, 대통령이나 기관장의 직인, 정부기관의 현판은 우리 글자인 한글로 쓰게 되어있고 그게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행정부의 깃발엔 한글로 '정부', 사법부의 깃발엔 '법원'이라고 잘 쓰고 있는 데 입법부만 '或'자로 보이게 쓰고 있어서 국민의 원성이 높았었다..
10여 년 전에 중앙일보가 한자 제호 中央日報를 버리고 한글로 중앙일보라고 바꾼 일이 있다. 그 때 중앙일보의 조일현 차장을 도와 그 일에 내가 관여한 일이 있었고 중앙일보 간부들과 간담회에 나가서 고마워하면서 중앙일보는 앞으로 한자 제호 고집하는 조선 동아보다 잘 될 거라고 말한 일이 있다. 그런데 중앙일보의 그 때 편집국장이었던 고흥길 의원과 함께 근무한 방벽석의원이 이번 개정안 발의에 앞장서는 게 더욱 고마워서 지난 17일 두 의원실에 찾아가 인사도 하고 잘 마무리 해주길 부탁했다.
한글로 쓴 국회 알림글, 14대 국회 때까지 한자 혼용이었다.
14대 국회 때 한자 혼용으로 쓰던 회의 공고문을 한글로 쓰게 한 일이 있다. 그 때 나는 이미 돌아가신 한글문화단체 모두모임 회장 안호상박사, 한글학회 허웅 회장과 여러 한글단체 대표들을 모시고 이만섭 국회의장을 찾아가서 국회의원 이름패와 휘장, 국회 회의 공고문을 한글로 쓸 걸 요구한 일이 있는 데 그 때 이만섭 의장이 이름패와 휘장은 여야 총무 합의가 필요하지만 공고문은 의장 직권으로 바로 하도록 하겠다고 그 자리에서 사무총장에게 지시해 바로잡은 일이 있다.
국회의원 이름패나 국회 상징인 휘장과 공고문들을 한자로 써야 한다는 규정도 없고 오히려 공용문서는 한글로 써야 한다는 법이 있고 정부기관 현판이나 기관장 직인은 한글로 써야 한다는 규정이 있어 행정부와 사법부는 잘 지키고 있는데 입법부인 국회만 법과 규정을 거스르고 있다며 여러 번 국회 사무처에 공고문을 한글로 써달라고 건의했으나 국회 사무처는 오래 된 관행이라고 들어주지 않았다.
이번에 박병석 의원도 배지의 글자 바꾸는데 여야 총무 합의가 복잡할 수 있어 아예 회의 안건으로 올려 처리하는 게 쉬울 거 같아 운영 규칙 개정안을 내게 되었다고 했다. 열린우리당 박영선 의원은 개정안 통과 과정이 복잡하고 질질 끌 수가 있어 국회의원이 찬성하는 일임을 확인해 빨리 바꾸게 하려고 찬성 서명을 받기로 했는데 이틀 만에 60여 명이 서명했다고 했다. 변호사 출신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은 국회의원 선서문을 보니 한자혼용이어서 한글로 바꿔달라고 사무처에 요구했으나 들어주지 않는다고 답답해했다. 여러분이 국회 제모습찾기에 힘쓰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 대표기관의 상징 표시에 대한민국 글자를 쓰는 게 당연한 일이고 바른 모습인데도 그게 많은 시간과 복잡하니 한심스럽다. 지난날 잘못된 일도 관행이라며 성의를 보이지 않는 국회 사무처, 아직도 한자로 이름을 써야 권위가 서고 좋다는 얼빠진 국회의원이 있는 판이기에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나는 16대 국회가 시작되었을 때도 이번 17대 국회 때도 국회에서 내는 국회보에 "대한민국 국회가 대한민국 글자를 쓰는 건 당연한 일로서 그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다."라고 글을 쓴 일이 있고 얼마 전 한글학회 김계곤 회장과 경제정의실천연합 김성훈 공동대표도 국회에 건의한 일이 있다. 그 보다 앞서 수십 년 동안 똑 같은 말을 국회에 한 일이 있고 기대와 실망을 거듭한 일이 있어 불안한 마음이다.
그러나 16대 국회 때부터 국회의원 스스로 나서서 17대 국회에선 한글 이름패가 90%에 가깝게 보였기에 이번 或자 떼어버리기도 잘 될 것으로 기대한다. 끝으로 이 일에 앞장서는 의원들께 고마운 인사를 하면서 국회 상징인 휘장과 배지의 글자는 행정부나 사법부처럼 한글로 '국회'라고 써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