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소 구례화엄사. 겁외사
출발시간 오천 읍사무소 6시
도구면사무소앞 6시 20
인덕이마트앞 6시 25분
포항종합운동장앞 6시 35분
양 학 육 교 6시 40분
여성수영장사거리 7시
화엄사
2009년 12월 21일 사적 제505호로 지정되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이다. 창건에 관한 상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으나
《사적기(寺蹟記)》에 따르면 544년(신라 진흥왕 5년, 백제 성왕 22년, 고구려 안원왕 14년)에 인도 승려 연기(緣起)가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시대는 분명치 않으나 연기(煙氣)라는 승려가 세웠다고만 전하고 있다. 677년(신라 문무왕 17)에는 의상대사(義湘大師)가 화엄10찰(華嚴十刹)을 불법 전파의 도량으로 삼으면서 이 화엄사를 중수하였다. 그리고 장육전(丈六殿)을 짓고 그 벽에 화엄경을 돌에 새긴 석경(石經)을 둘렀다고 하는데, 이때 비로소 화엄경 전래의 모태를 이루었다.
사지(寺誌)에서는 당시의 화엄사는 가람 8원(院) 81암(庵) 규모의 대사찰로 이른바 화엄 불국세계(佛國世界)를 이루었다고 한다. 신라 말기에는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중수하였고 고려시대에 네 차례의 중수를 거쳐 보존되어 오다가 임진왜란 때 전소되고 승려들 또한 학살당하였다. 범종은 왜군이 일본으로 가져가려고 섬진강을 건너다가 배가 전복되어 강에 빠졌다고 전한다. 장육전을 두르고 있던 석경은 파편이 되어 돌무더기로 쌓여져오다가 현재는 각황전(覺皇殿) 안에 일부가 보관되고 있다. 1630년(인조 8)에 벽암대사(碧巖大師)가 크게 중수를 시작하여 7년 만에 몇몇 건물을 건립, 폐허된 화엄사를 다시 일으켰고, 그 뜻을 이어받아 계파(桂波)는 각황전을 완공하였다.
대개의 절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가람을 배치하지만, 이 절은 각황전이 중심을 이루어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주불(主佛)로 공양한다. 주요 문화재로는 국보 제12호인 석등(石燈), 국보 제35호인 사사자삼층석탑(四獅子三層石塔), 국보 제67호인 각황전이 있으며, 보물 제132호인 동오층석탑(東五層石塔), 보물 제133호인 서오층석탑, 보물 제300호인 원통전전 사자탑(圓通殿前獅子塔), 보물 제299호인 대웅전이 있다. 부속 암자로는 구층암(九層庵)·금정암(金井庵)·지장암(地藏庵)이 있다.
큰스님의 고향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성철스님의 대표적인 법문은 알듯 말듯 일반인들에게 다가온다.
1912년 산청군 묵상마을에서 태어난 스님은 25세인 1936년 해인사에서 승려의 계를 받은 이후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참선과 묵상으로 이어진 스님의 삶은 해방 이후 왜색으로 물들었던
불교와 사찰의 모습을 선풍운동으로 바로잡았고,
조계종의 종정으로 돈오돈수 사상을 내세워 불교계 논쟁의 중심이 되었다.
한국불교와 세상의 변화를 이끌었던 개혁가였고 사상가였으며
해방 이후 혼란스러운 한국사회의 등대와도 같은 존재였다.
스님의 탄생지인 묵상마을에 위치한 겁외사는 스님을 추모하고 뜻을 기리는 사찰이다.
수없이 손질하여 누더기를 보는 듯한 승복 두루마기나 이면지를 모아 만든 메모장은
스님의 검소한 생활을 느끼게 하고 속명인 ‘이영주’라는 이름으로 묶인 젊은 날의 도서목록은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하였던 한 인간의 뜨거운 젊은 시절을 상상하게 한다.
2월 108사찰순레 입니다.
회원님의 많은 동참 바랍니다.
총 무 이영숙 010-9124-3795
회 장 정환대 010-4539-5151
부회장 이복자 010-2803-3854
파라다이스관광 민만기 010-6418-1332
참석 하실분은 회비 30,000원 선입금 부탁드립니다.
농협 정환대
356-0892-5571-03
추신: 입금순으로 등록됨을 양해 바랍니다.
무술년 첫 108사찰순례입니다.
많은 참석 바랍니다.
3월 27일 사찰순례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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