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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트힐 원문보기 글쓴이: songbird
탱고가 흐르는 황혼 천 경 자(千 鏡 子) 대한민국 여류화가 한국화 1924. 11. 11. ~
황금의 비 1982
천경자는 싱싱한 현대작가이다.
아름다운 환상을 주는 그녀의 작품 세계는 작가가 체험한 인생의 본질적인 외로움과 슬픔과 황홀함을 모두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으로 되새김질하면서 이끌어 왔다.
세월과 함께 그의 이러한 우수의 아름다움은 한층 깊이를 더하며 꽃과 꽃 너울 속에 번민하는 한 인간상의 모습이 어쩌면 기도 같기도 하고 신들린 사람처럼 간절하기도 해서 고독의 즐거움과 슬픔의 아름다움이 그의 작품에 한층 승화되어 빛을 발한다.
지난해 노란 은행잎이 황금빛 햇살에 눈부시던 어느 가을날이었다. 벼르며 기다려오던 가을 나들이, 덕수궁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한국 근대 명화 100선>을 보러 나섰다.
천 경 자!
나를 꽉 붙들고 놓지 않던 그림.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그 옛날, 1995년의 잊지 못할 기억을 여기서 또 만났다. 밀려오는 반가움과 추억에 가슴 설레던 순간이었다.
<탱고가 흐르는 황혼> 집에 돌아와 천경자의 수필 모음집을 펼치니 <1995. 11. 24. 금요일 천경자 전을 보고 호암아트홀에서, 진눈깨비, 감기> 당시의 내 모습이 일기처럼 그대로 살아있다. 그때의 기억이 바로 어제인 양 새로워지는 설레임.
뭉텅뭉텅 떨어져 나오는 오래되어 빛바랜 책장들 갈피마다 천경자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아프게 흐르는 아름다운 붉은 황혼의 물길에 나도 따라 흔들리던 기억들을 같이 엮는다.
탱고가 흐르는 황혼 1978 48 x 43 cm
천 경 자
화가 천경자는 가까이 갈 수도 없고 멀리할 수도 없다
매일 만나다시피 했던 명동시절이나 이십년 넘게 만나지 못하는 지금이나 거리는 멀어지지도 가까워지지도 않았다
대담한 의상 걸친 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허기도 탐욕도 아닌 원색을 느낀다
어딘지 나른해 뵈지만 분명하지 않을 때는 없었고
그의 언어를 시적이라 한다면 속된 표현 아찔하게 감각적이다
마음만큼 행동하는 그는 들쑥날쑥 매끄러운 사람들 속에서 세월의 찬바람은 더욱 매웠을 것이다
꿈은 화폭에 있고 시름은 담배에 있고
용기 있는 자유주의자 정직한 생애
그러나 그는 좀 고약한 예술가다
박경리(朴景利)
천경자 수필 모음집<탱고가 흐르는 황혼>의 첫 페이지에 있는 시이다.
실은 내 시선에서 저만치 멀리 떨어져 있던 천경자였다. 감히 내가...!
꽃무리 1972
누가 울어
길례언니 1973
그녀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상징적인 인물인 '길례'언니는 보통학교 시절 교정에서 열린 박람회장에서 소록도 나병원 간호부로 있던 선배언니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던 인물이다.
생태 1950
뱀이라도 무더기로 그리지 않고서는 목숨을 이을 수가 없었어요. 인생 고비에 부딪쳐 저항하고 싶을 때 화가로서 변신하고 싶을 때 뱀이 나오네요. 회후 발악인가도 모르겠소.
서울경제신문 1989.2.11.
징그럽고 무서운 뱀을 그림으로서 생을 갈구했고 그 속엔 저항과 뜨거운 열기가 공존하는 저력이 심리의 저변에 깔려 있다.
서울 신문 1978.1.28.
1995년의 대규모 전시회 벽에 쓰여 있던 글들이다.
막(幕)은 내리고 1989 41 x 31.5 cm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인간들은 누구나 현실을 뛰어 넘고자 하고 신비와 환상을 쫒지요. 아마도 현실이 너무 삭막해서 그럴 거예요. 남들보다 훨씬 강해서 환상적인 작품을 그리는 거예요.
일간 스포트 1986.5.26.
나를 꽉 잡고 못 견디게 한 건 바로 이 그림이었다.
핏빛처럼 붉게 타는 하늘아래 야생의 광활한 땅덩이.
오로지 혼자다!
벌거벗고 긴 머리 흩뜨러 트린 채 웅크린 모습이 처절한 고통과 외로움을 토해해고 있는소리 없는 통곡만 같았다.
사방으로 둘러싸인 삭막한 현실에서 먼 세상을 환상으로 쫒으며 이를 뛰어넘고 싶지만 삶의 의지마저 잃은 듯... 그녀의 내면이 나를 붙잡고 떠나질 못하게 했다. 가슴 쓰리던...동정과 연민과 슬픔으로 범벅이 된 채....
이 그림을 다시 만난 거다. 18년 만에...! 왈칵 솟구치던 그 때의 감정이 되살아나며 철부지였던 나의 모습도 생생이 다가와 가슴을 떨었다.
6月의 新婦(신부) 1977 47 x 34 cm
인도 올드 델리 1979 34.8 x 24.7 cm
아이누 여인 1988 41 x 32 cm
마아가렛 미첼 생가(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1987
자살의 미 1968 화선지에 채색
내가 믿는 신은 어느 만큼이나 열렬하게 자기 삶을 사랑하는냐에 따라 존재하기도 하고 그 운명의 문은 열린다고 믿어졌다.
불행부터 사랑해야 했고 나를 지키기 위해 자학과 위악(僞惡)을 무기 삼을 때도 있게 했다.
1995년 전시회 장 벽에 쓰여 있던 글이다.
여인의 시 31 x 32 cm
사월 1974
쟈마이카의 고약한 여인 1989 32 x 41 cm
모자를 쓴 여인 1986
2,3년 전 경매에서 6억 3천만원에 낙찰된 그림이다.
천경자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과 꽃, 동물의 소재는 아름다움 그 자체를 나타내면서도 천경자의 감정, 자연의 아름다움, 생명의 신비, 인간의 내면세계, 문학적인 사유 세계 등 속내의 암시적인 표현기법으로 상징적인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불티모어에서 온 여인 1993 38 x 46 cm
괌도에서 1983 45.5 x 37.9 cm
아라만디의 그늘 1985 94 x 130 cm 화선지에 채색
화사(花蛇)
사향(麝香) 박하(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어리냐.
꽃대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 내던 달변(達辯)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날름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늘이다.…… 물어뜯어라, 원통히 물어뜯어, 달아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麝香 芳草ㅅ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아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石油 먹은 듯…… 石油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
바늘에 꼬여 두를까 부다. 꽃대님보다도 아름다운 빛……
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이다 …… 스며라, 배암
우리 순네는 스물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운 입술 …… 스며라, 배암
서 정 주
강렬한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가진 관능적 존재를 노래한 시. 인간의 원시적 생명력과 욕망에서 오는 악마적 전율에 대한 예찬이랄까, 시인 서정주의 눈빛이 더 한층 빛나는...감탄 뿐인...!
이 시를 읊노라면 마치 천 경 자! 내면에 흐르는 여인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마치 그녀를 위한 시 같은....
한 세상 끊임없이 갈구하던 사랑이다. 그래서 ‘....그늘’이다.
꽃피고 새가 노래하는 낙원에 취한 듯 벌거벗고 드러누운 야생의 암표범의 나른한 환상! 순수의 자연처럼 모든 가식적인 허울을 벗어버린 의미는 아닐지...
오른 쪽 아래의 장갑 한 짝이 눈길을 끈다.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1977
진실과 아름다움을 인생 속에서 찾아 헤매고 그것을 위하여 화가가 된 천경자는 유달리 타고난 예민한 감성 때문에 온 세상의 고민을 혼자 맡은 양 잿빛 인생을 살아왔다.
이 작품 속에는 자기의 과거와 현재에 걸치는 자서전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다. 고독에 짓눌린 듯... 그늘진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다보는 큰 눈동자의 여인은 삶에 지친 여인이지마는 살아야 한다는 생명에 대한 哀愁가 다분히 깃들여 있다. 미래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는...
가슴에 꽂은 한 송이의 장미. 지친 삶일망정 버리지 못하는 심연에 내재한 여인의 꿈이 아닐까.
천경자가 결혼을 하고 첫 딸을 낳았던 22살 당시의 회상과 다분히 인생을 체념하고 속죄하는 것과 같은 초월적인 태도가 엿보인다.
아열대 1 1978 73 x 91 cm
꽃을 든 여인
황혼의 통곡 1995 94.5 x 128.5 cm 화선지에 채색
나는 별의 별 것을 다 겪으면서 유계(幽界)와 같은 진한 어둠을 보곤 했다. 그러나 그 가운데 한 줄이 빛이 뻗쳐 나왔기에 죽지 않고 살아 왔다고 할까.
그건 즉 그림인데 그림 없이 그냥 살았다면 벌써 내 삶은 나뒹굴어져 버렸을 것이다.
1995년 전시실 벽에 쓰여 있던 글이다.
길례언니 1982
자화상
천경자의 작품은 '자전적'인, 그녀만의 독자적인 화풍으로 거의 모든 작품에서 자신의 삶과 꿈, 환상, 동경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특유의 문학적 감수성과 서정성은 자신의 삶의 경험에 기인한 것으로, 천경자 자신은 이러한 감성을 한마디로 '한(恨)'이라 표현한다.
이러한 자전적 성격은 1950∼70년대의 전기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많이 드러나는데, 특히 '천경자'라는 작가의 존재를 화단에 강하게 각인시켜 준 <생태>를 비롯하여 <자살의 미>, <여인들>, <바다의 찬가>, [<백야> 등 6점의 작품을 꼽을 수 있다.
그가 일반인들과 다른 점은 예술적인 감각으로 세상을 맞아들이고 또한 거기에 반응한다는 사실에 있다. 그는 예술가로서의 삶에 자족한다. 그러한 표정이 작품 속에 역력하다.
예술에 관한한 그 누구와도 타협을 거부했던 곧은 심지가 오늘의 자신을 키웠다.
뉴욕 센트럴 파크 1981 31.5 x 40.5 cm
어느 여인의 시(時) II 1984 60 x 44 cm
윤사월(閏四月) 1987 25.8 x 17 cm
천경자는 뛰어난 수필가이기도 하다.
천경자의 수필은 화가의 눈에 비친 세상을 선이나 색채가 아닌 언어로써의 표현, 간결하면서도 감각적인 아름다운 문체를 이루고 있다.
옛날의 사랑에 고민하던 회상에 젖으며 화필을 잡아야 하는 현실을 응시하는 오월초(五月抄). 라일락이 한창인 오월에 자아를 투영하여 생애의 앙금을 짓게 한 추억, 애상적이면서도 현실과 인생을 응시하며 자연에 비친 자신이 인생의 의미를 되씹고 있다.
그림에서도 마찬가지이듯이 그녀의 모습이 그대로 노출되어 수필이 개성의 문학임을 알게 해 주는 글이다.
오월초(五月抄)
고요하고 화려한 환상도 무너지고, 시든 라일락의 영혼마저 증발하는 것 같은 쓸쓸한 오월의 밤, 개구리도 녹색의 소리로 울어대는데, 덧없는 인생에 취한 내 가슴엔 이슬 같은 것이 괸다.
누구나 아름답다고 부르는 오월, 그 아름다움은 여인들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눈물이 괴게 했는지 모른다.
그 알지 못할 오월의 회화(會話)에 귀를 기울이고, 풀지 못할 인과에 마음을 태우면서, 연모하고 있는 남성이 다른 여인을 연모하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된 들놀이의 옛일을 회상한다.
허둥지둥 구릉(丘陵)을 내려오면서 개구리를 마구 잡던 일, 오월이 되면 개구리의 녹색 울음소리를 잊을 수가 없어 마을이 설렌다.
그러나, 이 밤은 시든 라일락의 향기를 슬퍼만 할 수 없다.
내일 아침이면 화사하게 피어날 장미의 붉은 정열과 견주기 위해서 이 밤이 있게 해야 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여인, 천 경 자!
모자 파는 그라나다 여인 1993 45.5 x 38 cm
소녀와 바나나 1993 화선지에 채색
어려운 환경 속에서 여행을 단행하게 된 동기는 오직 더 살고 싶은 집념에서였다.
나로서는 쓰다는 의미가 예술이라는 용광로에 불이 활활 타올라 새로운 작품이 쏟아져 나올 그 생활에 있고, 아프리카의 자극과 풍물은 내 마음의 용광로에 불을 붙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주리라 믿고 있다.
그렇게 해서 화가의 생명이 연장된다면 “나”라는 분신도 살 수 있는 것이고 그러지 못할 때 나는 산다는 의미를 상실할 것이다.
1995년 전시회 때 벽에 쓰여 있던 글이다.
여인 1982 34.8 x 46.8 cm
청춘의 문 1968 145 x 89 cm 화선지에 먹, 채색
<청춘의 문>(1968)은 영화 <청춘의 문>에 등장하는 여배우의 초상을 그린 작품이라고 하는데, 마치 꿈속의 한 장면처럼 몽환적인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 작품에서는 이국적인 여인이 환상적인 색채의 의상을 입고 고개를 하늘로 향한 채 눈을 지그시 감고 어떠한 환상에 젖어 있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다.
이렇게 이상적인 미를 갖춘 여인의 묘사는 역설적으로 천경자 자신의 초라하고 일상적인 현실을 표현하는 반어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도 하다.
이국에 대한 환상과 동경, 초현실주의적인 꿈의 세계로 전환된 <청춘의 문>은 장식적이고 탐미적인 작가 특유의 독자적인 조형세계를 보여주는 천경자의 전형적인 작품이다.
한(恨) 1977 51 x 43 cm
미모사 향기 1977 33.4 x 21.2 화선지에 채색
작업이 잘 될 때는 작품에서 받은 눈앞의 실존(작품)이 어머니의 젖, 혹은 번데기를 아주 농축한 것 같은 진한 향기와 고소한 맛을 내게 준다.
나는 그것이 생명의 향기라고 믿는다.
그러한 느낌을 느끼게 되는 때가 서투른 나의 인생살이에 보다 아름다운 활력요소 비타민이 되어 나를 생기 있고 팔팔한 감각을 가지게 한다.
그래서 그림 작업은 나의 신앙이다.
월간 미술 1991.1.
1995년 전시회 때 벽에 쓰여 있던 글을 수첩에 옮겼다.
폭풍의 언덕 1981 24 x 27 cm
미안도 1977
그녀의 그림세계는 내면의 고독 표출이었다. 그녀는 정말 기구하고 어지러운 인생을 살았다.
김종근 미술평론가가 천경자의 삶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이 짧은 시 안에 그녀의 일생이 느껴진다.
기구 하여라 너의 운명
이 세상에 아름다운 연인이라는 그림으로 태어나 그것이 죄가 되어 이리 찢기고 저리 찢겨 한 많은 여류화가의 품을 떠나 저자거리에 미친년처럼 떠돌더니 이제는 아무런 진실도 없이 한 많은 상처만 남기고 미인 박명하여라 틀린 말 없네 미인 아닌 미인, 머리에 두른 흰 꽃나비조차도 너의 이름으로 불려 폭폭한 가슴에 못을 박더니 이제는 당신이 돌이킬 수 없어 미인도에 스러지네, 미인 기구하여라.
[미인도] 위작 논란사건(1991)은 우리나라 미술계의 큰 경종이자 참 우울하게 하는 이야기다.
“내 작품은 내 혼이 담겨 있는 핏줄이나 다름없습니다. 자기자식인지 아닌지를 모르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나는 결코 그 그림을 그린 적이 없습니다.(중략) 저렇게 덛개 칠 하듯 검은 머리를 그린 적도 없거니와 꽃이나 어깨의 나비모양도 내 것과 달라요. 내가 낳은 자식을 내가 몰라보는 일은 없습니다.”
천경자는 자신이 그린 그림이 아니라는데, 그림을 구입하여 소장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위작이 들어나면 미술관의 권위가 추락할거라 생각 되어서였을까, 감정평가까지 받은 진품이라 계속 주장했지만 결국 8년이 지난 뒤에야 미인도를 대신 그렸다는 범인이 등장하여 위작임이 밝혀졌다. 고서화 위작 및 판매 사건으로 구속된 동양화 위조 범의 소행임을 자백 받은 것이다.
그래도 이를 인정하지 않았던 미술관이다.
그 사건 직후, 허탈함에 빠진 천경자화백은 같은 해에 절필을 선언했다.
“붓을 들기 두렵습니다. 창작자의 증언을 무시한 채 가짜를 진짜로 우기는 풍토에서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1998년 고건 서울시장 시절, 자신의 분신 같은 그림 93점을 기증하고 딸이 살고 있는 미국으로 이주하여 뉴욕 딸집에 있다.
그 중 32점이 서울시립미술관 개정과 함께 전시 중에 있다. 상설 전시에다 무료 관람이다.
헤밍웨이의 집(키웨스트) 1983 37.5 x 45 cm
사월 1974
그녀는 살아있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색채들이 저마다의 존재를 뽐내며 화답하는 그 채색의 향연은 우리로 하여금 삶의 환희를 찬미하도록 한다.
자기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그의 색채이미지는 채색화의 표현적인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의 색채감각은 시제를 초월한다. 그리고 인간 본연의 감정에 호소하면서 그 자신의 개인적인 형식미로 귀착한다.
삶에 대한 그의 작가적인 관점은 명확하다. 그는 현실을 떠난 가공의 세계를 탐색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향기 있는 인간 삶을 기리고자 한다. 그 향기란 반드시 기쁨의 감정을 자극하는 것일 필요는 없다. 인간으로서 느끼는 슬픔과 기쁨과 분노와 즐거운 감정을 자극하는 살아있음에 대한 존재의 확인이 가능한 생기 찬 모습을 의미한다.
이는 삶에 대한 진실한 감동과 그 고백으로써 가능하다.
그래서일까. 그의 그림은 그 자신의 개인적인 삶에 지지 않았다. 그것은 실제에 대한 서술인 까닭이다. 그의 그림에 담겨 있는 휴머니즘은 이처럼 인간다운 삶에서 비롯된다.
세상에 삶처럼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그의 그림세계는 자기애를 통해 시작된다.
- 이 경 성 - 미술평론가(1919 - 2009) 현대 미술관장 역임.
천경자는 국내 화단의 대표적 작가이며 우리 시대의 10인에 드는 화가이자 뛰어난 수필가이기도 하다.
1946년 첫 개인전을 연 이래 수많은 전시는 물론 지구를 몇 바퀴나 돌면서 쓴 해외여행기와 수필, 자서전 등 글로도 유명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류 화가이다.
전남 고흥(高興)에서 태아나 1944년 도쿄 여자 미술 대학을 졸업하였다. 그 당시 일본 유학시절, 첫 남편 '이철식'을 만나게 되어 결혼을 하지만(1944) 결혼은 얼마 못가 파경에 이르게 된다. 이후 이철식과는 6.25 전란으로 인해 인연마저 끊어지게 된다.
또한 귀국 후, 전남여고 강당에서 개인전을 열었을 때에 처음 만났던 지방신문(당시 전남일보)기자 김씨(천경자는 그 남자의 실명을 밝히지 않음)와의 인연, 즉 기혼자로서 실질적이 부부관계였던 사람이었는데 6.25 사변의 혼란 통에 헤어졌다가 소재를 어렵사리 알아내 다시 찾아 갔으나 같은 신문사의 최고위의 간부가 되어 냉정하게 외면당하던 아픔 등..
또한 작은 딸의 아버지, 25년간의 결혼생활을 마지막으로 헤어진다. 그리고 여동생 옥희의 이른 죽음(1951년 28세의 나이)과 더불어 빈번히 실패로 끝나던 아픈 사랑은 천경자의 삶과 작품세계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1954년부터 20년간 홍익대학 동양화 교수로 재직하였다. 지금까지 12회에 걸쳐 개인전(個人展)을 열었고 1955년 국전(國展)에서 대통령상을 수상ㆍ1962년 필리핀국(國) 초대전(招待展) 출품ㆍ 1964년 문예상(文藝賞) 수상ㆍ 1965년 동경 이도 화랑(畫廊)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하였다.
1999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선정,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개인적인 삶에 대해서는 언급을 꺼려하는 천경자이기에 수필 속에 간간히 비치는 내용들만 옮겼다. 조심스럽고 죄송한 마음으로... 같은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한다.
우리들이 사랑하는 <천경자>이니...
<추억 단상>
천 경 자. 감히 내가 이런 글을 쓰고 있다. 감히 내가...!
젊은 날, 천경자의 모습은 나에겐 그렇게 가깝지 못했다. 책에서, 잡지에서 무언지 그녀가 지닌 이미지가 지적이기보다는 정제되지 않은 무질서함의 원색의 난무라 할까, 철없던 시각이었고 그래서 그녀의 그림마저 나를 멀게 만들었던 기억이다.
그즈음, 참 철없던 시절이었다. 어쩌면 살면서 거쳐야한 과정이지 않았을까 하며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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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부딪쳐도 충격 없는 허함, 밟아도 밟히지 않는 허공중의 헛발질 같은 무언지 모를 상실감 같은 것이 나를 힘들게 하던...
“이러면 안 돼, 너 그것밖에 안 되니? 넌 할 수 있어!”
‘이성의 나’는 또 하나의 나를 채찍질하며 소리쳤으나, 이미 무력해진 내 감성은 황량한 겨울들에 홀로 서서 무언지 알 수없는 적막감에 떨고 있을 뿐이었다.
내 심연에서 울게 하는 이 어둡고 무거운 뭉치는 과연 무엇인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헤어날 길 없는 우울은 어두운 땅 밑을 기듯 갈 길을 잃은 채 춥고 긴 겨울 같은 날들이었다.
줄기차게 뛰며 달리던 내 건강하던 삶의 길, 뒤돌아보면 궂은 일 좋은 일, 숨 가쁘고 화려했던 지난날의 기억들에 ‘후회 없는 삶’을 살아온 것 같았는데, 한사코 따라붙는 허망한 심사가 내 어깨를 늘어뜨렸다.
눈이 흩날리던 날, 흩날리는 눈발처럼 마음이 산란해져 천 경자 한 여인의 삶에 가슴 앓으며 전시장을 몇 번이나 들락거리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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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새로워 지난 시절, 어느 책에 실었던 수필에서 중간 중간 조금만 발췌를 했다. ‘천경자’에 대해 새롭게 눈뜨게 하고 내가 성숙하던 시기였기에...
바람 불고 진눈깨비 흩날리던 날, 오슬오슬한 감기기운을 마다않고 호암아트홀로 갔다. 그녀의 70회 생일을 기념하며 그간의 모든 작품을 전시하는 대규모 전시회였다.
<정(情)과 한(恨)의 세계>
전시회의 타이틀이다. 그림 앞에서 한 점씩 보면서 지나치다가 문득 나를 꽉 붙잡듯 서게 하는 그림이 있었다.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붉게 타는 하늘아래 드넓은 원시의 세상에서 벌거벗고 머리 풀어헤친 채 웅크리고 있는 여인. 고독한 여인의 말없는 통곡이 내 가슴에 와락 안겨왔다. 그렇게 시작된 천경자 사랑이다.
지금까지도 내 기억에 오롯이 남아있는 그림들.
살고 싶어 버둥치듯 뱀<생태>를 그려야 했고 믹서기에 무참히 떨어지는 한 떨기의 아름다운 꽃으로 죽고 싶었던 삶의 처절한 표정, <자살의 미>,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그녀의 그림은 곧바로 그녀의 삶이었고 모든 것을 말해주는 슬픈 이야기였다. 벽에 적혀있는 그간의 신문에 실린 글들을 수첩에 옮기며 얼마나 가슴을 앓았던지...
마침 세종문고에서 한 코너를 마련하여 생일과 전시회를 기념하며 출간한 대형화집과 함께 그녀의 수필집을 전시하고 있었다. 집어든 그녀의 수필 모음집 <탱고가 흐르는 황혼>.
어떻게 읽었는지..! 아름다운 문장 속에 숨은 그녀의 기막힌 삶의 여정에 숨 쉴 사이 없이 한숨에 읽어내려 갔다.
황혼이 붉게 물든 강물에 그녀의 슬픈 생의 그림자가 아름답게 일렁이고 있었다. 그리고는 또 전시장을 향했다. 뜨거운 가슴을 누르질 못하고..
진정의 천경자를 만나러...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이 광경! 천경자가 거기에 있었다. 빨간 실크 원피스를 차려입고 의자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모습이..
곱게 빗은 머리, 화장기 없는 맑은 얼굴. 지난날의 그 모습은 간데없이 사라지고 세상 풍진을 모두 달관한 듯 온화하고 조용한 모습,
거기에 또...그녀의 옆에 훤칠한 키의 한 건강한 젊은이가 믿음직스럽게 서있었다.
나는 무언지 모를 감동으로 어린 철부지던 나는 감히 천경자에게는 말 한마디 건네지도 못하고 큐레이터에게 가만히 물으니 아들이라고 했다. 그 화집과 수필집을 독점 발간한 세종문고의 사장이라고...!
‘쫑쫑’인가 보다!
물을 찰박거리는 손이 고사리 모양이 됐다가 단풍잎처럼 폈다.. 건강한 쫑쫑이의 살빛은 유난히 눈이 부시다던...! 젊은 날, 가난과 삶의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사랑으로 키워온...
‘쫑쫑’이 누나, ‘미도파’는 어디 있을까!? 또 작은 공주 님은....?
나는 형언할 수없는 뜨거운 감동에 휩싸였다.
그래! 고달픈 삶을 살았지만... 결국 이렇게 성공을 해서 떳떳하게 내 세웠다는 생각, 그 자랑스러운 모습에 내 마음마저 뿌듯해져 아낌없는 박수를 치며 한참을 그 주위를 맴돌다 전시장을 나왔다.
어느덧 햇살이 기울고 있었다. 늦가을의 지는 태양이 높이 솟아 있는 빌딩들의 숲에서 마지막 가는 열정을 태우기라도 하듯이 세상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이 눈부신 환희의 정경, 아니, 가득 차오르는 내 마음의 환희였을 게다.
어느덧 내안에 웅크리고 있던 검은 뭉치는 씻은 듯이 사라지고 맑디맑은 선홍색의 붉은 피가 내 가슴을 쿵쿵 울리며 내 온 전신에서 활기차게 뛰고 있었다.
이 계기로 인해 다시 힘차게 삶의 굴레로 돌아갔던 기억이 새롭다.
오래되어 그럴까, 책을 묶는 기술의 부족이었을까, 책을 펼치니 뭉텅 뭉텅 책장들이 떨어져 나온다. 사이사이에 전시장에서 옮긴 글들이 분홍빛 스티커에 써놓은 채로 얌전히 나를 반기고... 세월과 함께 살아온 흔적들.
아름다운 여인, 천경자가 환히 웃는다.
그랬다. 오래 전 나의 정체성으로 혼란을 겪던 그 때의 그 경험은, 세상을 살아오며 나를 비추는 맑은 거울이 되어 마음을 다스리며 나를 성숙하게 하는 좋은 지표가 되었다.
그 지난 시절의 분별력도 없이 철부지였던 나, 지금의 나를 본다.
아직도 살아 온 세월만큼 “무거운 추”를 달지 못한 내 여린 감성이 쉬이 다쳐 그 아픔으로 때론 힘겹고 나를 곤혹스럽게도 하지만, 그래도 그로 인한 풍요로운 삶에 세상은 아름답고 그 속에 살아 숨 쉬는 나는 행복하다.
철부지, 어리고 여리던...그래서 어여쁘다.
고이 껴안는다.
붉게 지는 황혼이 타는 듯 아름답다. 못 다한 나의 노래는 도도하게 흐르는 노을 빛 강물처럼 굽이굽이 맴돌며 끝없이 이어지리니....
비로소 여인이여!
Art Hill 2014. 2. 13. songbird
거의 20년에 가까운 긴 세월을 단숨에 단축시키며 연결고리가 되어준 가을날의 눈부신 환희.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나와 오랜만에 덕수궁 돌담길을 걷고 있노라니 세월이 말해 주는 듯 돌담길 따라 하늘을 치솟듯 고목이 된 가을 나무들이 뉘엿뉘엿 지는 붉은 저녁 노을빛으로 물들이며 눈부셨다.
감회에 젖은 설레임, 다시 만난 희열... 내 안에 잠자던 열정과 사랑이 함께 일어나서 소리쳤다.
세월과 함께 어느덧 나도 여기까지 왔지만 아직도 저 붉게 지는 노을처럼 설레임과 사랑, 열정이 나에게 있음이라.
아름다운 삶이여,
나의 노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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