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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8/22
편지1: 김희모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영월중학교 1학년에 다니고 있는 오정환이라고 합니다. 그때 저희에게 떡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들이 한국에서 왔다고 열심히 만드신 떡을 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항상 저희에게 어떤 도움이라도 주고 싶어 하시는 그 모습에 저는 감동했습니다.
저도 나중에 선생님처럼 남에게 어떤 도움이라도 주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어도 나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달려가서 도와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정신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도 그 정신을 심어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서로서로 도와주는 정 많고 따뜻한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저에게 이런 정신을 심어주신 것 감사합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편지2:신정남 선생님께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여행 온 오정환이라고 합니다. 그때 아이스크림을 사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그때 이야기를 나눌 때 제가 선생님께서 이야기를 하실 때 영월 군수 이름이라던지 그런 것을 알려 드릴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과 함께 영월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고향에서 온 후배들이라고 아이스크림을 사주시는 선생님을 보고 감동했습니다. 저도 커서 후배들에게 잘해주고 싶고 교훈을 남겨주고 싶어졌습니다. 미흡하더라도 장학금이나 다른 것들을 해주고 싶습니다. 저에게 교훈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편지3:삼촌, 숙모께
안녕하세요?
저 정환이입니다. 먼저 이번 여행 동안 저희들을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예를 들어 저희들을 재워주시고 밥도 주시고 많은 곳에 데려가 주시고, 저희들에게 교훈되는 이야기를 해주신 것등 예만해도 정말 많습니다. 또 삼촌께서 밥 먹고 난후, 또는 밖으로 나가서 건물 등을 보고온 뒤에 하신말씀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여행지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탄광박물관에 갔을 때 떠들면 안됀다고 가이드가 말해서 종이에다가 가이드의 말을 적어서 숙소에서 저희에게 들려주시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이것 말고도 많은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석탄 박물관에 갔을 때 직접 광부 일을 하실 때의 일을 말씀해주시고 그 일이 얼마나 고역인지 말씀해 주셔서 광부들의 고생했던 정도를 알 수 있었습니다. 또 이런 광부들의 고생으로 우리나라가 발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광부들에게도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항상 저희들에게 친절히 해주시고 교훈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들을 위해 비싼 치즈도 사주시고 버찌아이스크림을 해주신 것, 저희들이 타고 싶다고 해서 지상철을 태워 주신 것, 제가 침대를 망가뜨렸을 때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고 교훈주신 것 감사합니다. 또 탄광박물관에서 발차가 돌아가면 전방1m앞도 안 보인다는 것부터 쇠동발의 무게가 얼마나 나간다는 것까지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편지4: 원병호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영월중학교 1학년에 다니고 있는 오정환이라고 합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참 느낀 점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들의 두 어깨에 통일이라는 대업적이 걸려있다고 하신 것, 독일과 한국의 차이 등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신 것 등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가 고향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비가 오는 중에도 고기를 굽고 계시는 사모님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찡했습니다. 그리고 또 감사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자연을 파괴하며 발전을 하는 데 독일은 자연과 어우러져 발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창피했습니다. 선생님께 이야기를 들을 때 제 가치관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되었습니다. 전에는 남한이 무조건 옳고 북한은 무조건 그르다 라고 생각 생각했는데 삼촌과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북한도 살려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태권도가 북한에서 시작됬다고 많이 말들 하는데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진실을 알게되어 기뻤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 우리나라 광부의 이야기를 들을수 있어 좋았습니다. 언제 커서 한번 뵙고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럼 몸조심 하세요
편지5 서의실 목사님께
서의실 목사님 안녕하세요?
저는 영월중학교 1학년에 다니고 있는 오정환이라고 합니다. 저번에 ST.람베르티 교회와 돔에 데려다 주신것 감사합니다. 특히 람베르티 교회의 세 개의 철장의 자세히 말씀해 주신 것이 가장 깊이 남습니다. 또 집에서 만든 피자빵을 나누어 주시고 복흠교회 건물에 대하여서 자세히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차도 태워주시고 저희들이 본 건물들을 다 설명해 주신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목사님의 말씀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信자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감동하고 마음에 찔리는 곳이 있었습니다. ‘내가 과연 다른 사람에게 믿을 수 있는 말만 하였는가?’ 의 물음에 제대로 답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서의실 목사님 덕분에 제 삶의 가치관이 하나 더 생기게 되었습니다. 저도 그 이야기를 마음에 품고 실천할 것입니다. 그럼 이만 끝내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편지6 피터할아버지, 윤행자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피터 할아버지 윤행자 선생님!
저는 영월중학교 1학년에 다니고 있는 오정환이라고 합니다. 먼저 항상 친절하게 대해 주시고 도움 주신것 감사합니다. 옷도 사 주시고 암스테르담도 구경시켜 주시고 멕가이버 칼도 선물해 주신것등 정말 많아서 다쓸려면 이공책 가지고는 모자를 것입니다.
그리고 피터 할아버지 윤행자 선생님! 할아버지와 선생님께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피터 할아버지께는 항상 고마워 할줄 아는것 남에게 항상 너그럽게 대하는것을 배웠고 윤행자 선생님께는 유럽과 우리나라의 차이점, 암스테르담의 기술, 남이 귀찮게 물어봐도 항상 친절하게 답해주는 것을 배웠습니다. 저도 선생님 내외 처럼 선생님 내외께 배운 것들을 남에게 베풀고 나누어 주고 싶습니다. 또 이번 여행동안 저희들에게 잘해주신것 감사합니다. 저희들을 도와 주시지 않으셔도 삶의 일부분을 나누지 않으셔도 되시는데 항상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시고 삶을 나누시는 것을 보고 참 많은 교훈이 되었습니다. 저도 항상 선생님 내외분의 삶에 교훈을 생각하며 닮아가고 싶습니다. 한국에 돌아가서 매일 생각하며 지낼 것입니다. 그럼 이만 끝내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편지7이우걸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영월중학교 1학년에 다니고 있는 오정환 이라고 합니다.
저희가 한국에서 왔다고 손질한 청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 뵈는 사이인데 청어를 직접 주시고 차 뒤까지 봐주신 것 감사합니다. 청어는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모두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제가 커서 어른이 되어도 선생님을 잊지 않겠습니다. 저도 선생님처럼 남에게 베풀고 싶습니다. 언제 한번 선생님을 한번 찾아뵈고 싶어요. 저도 선생님께 무엇을 베풀고 싶습니다. 그 때 받은 은혜를 갚고 싶습니다. 또 선생님께 받은 은혜를 제가 다른 사람에게 씨로 심어 주고 싶습니다. 그 사람들도 남에게 씨를 심어 줄 수 있도록, 그래서 고마움이 넘쳐나는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선생님께 감사드리면서 이만 맺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6/5 화요일
오늘 우정수 선생님께서 저녁을 사주셨는데 아주 맛있었다. 음식의 이름은 함박스테이크 이었는데 부드럽고 씹는 맛이 일품이었다. 나는 우정수 선생님께 아주 감사함을 느꼈다. 나도 나중에 나와 관련된 사람이나 어려운 사람,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아주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 영월 구세군이라는 곳에서 선생님 그리고 어떤 분께서 이야기를 나누셨다. 내가 느끼기에 한 어림잡아 30분 정도 이야기를 하신 두 분은 이야기를 마치셨다. 그 30분 동안 나는 좀 지루했었다. 그리고 나와 우정수 선생님은 차를 타고 다시 공부방으로 돌아왔다. 오늘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을 깨달아 기쁘다.
- 항상 베푸는 정환이였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엄마 -
6/6 수요일
오늘은 6/6 현충일이다. 오늘은 학교를 안가기에 어머니와 내 동생은 천안에 계신 아버지를 뵈러 가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나의 피로를 풀 수 있고 숙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여 남기로 하였다. 오전 8시경 그들은 천안으로 떠나고 집에는 나 혼자 남게 됐다. 그때야 비로소 가족의 소중함과 쓸쓸함을 깨닫게 됐다. 전에는 혼자 있으면 아주 편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실제는 내 마음의 정반대였다. 내 마음 어딘가에 큰 구멍이 생긴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나에게 가족이 존재한다는 것이 감사 한 것이라고 깨닫게 해주었다. 참 외로운 하루였다.
-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니 기뻐요. 엄마 -
6/7목요일
오늘 학교에서 체육을 하였다. 체육 시간에는 핸드볼을 하였는데 두 명씩 짝을 지어 연습을 했다. 좀 들떠있던 나는 촐싹거리다가 결국 오른손 검지 손가락의 인대가 늘어났다. 그래서 글씨도 잘 못쓰고 정말 아팠다. 손가락이 부어오르고 쓰려서 나는 핸드볼을 하지 못했다. 다음부터는 촐싹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6/8 금요일
오늘 학교에서 내준 숙제를 하기 위해 내 친구와 함께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벌써 어두워진 하늘에서는 비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고 나는 친구의 우산을 같이 쓴 채 갔다.
그런데 갑자기 우박이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나는 우박을 맞으며 친구와 같이 달렸다. 정말 따갑고 아팠다. 그때 갑자기 어떤 분께서 가게 안으로 우리를 대피하게 해주셨고 우박이 그친 뒤에 비로소 어머니차를 타고 올수 있었다. 그 분께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또 나도 남의 어려움을 도울 줄 아는 사람이 될 것이다. 오늘 우리를 우박에서 구해주신 분께 감사함과 남을 도울 줄 아는 교훈을 그분에게 얻었다.
-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단다. 그것이 우리가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지. 오늘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정환이도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다른 사람을 열심히 돕길 바란다. 엄마 -
6/10 일요일
오늘 예배 끝나고 모임을 가졌다. 오전에는 사진도 찍고 독일을 다녀온 사람에게 경험담을 들었다. 그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나의 고정관념을 깨트렸다. ‘독일은 어떤 모습일까?’,‘독일은 어떻게 평화통일을 이루었지?’하는 생각이 줄을 지어 떠올랐다. 오후에는 서로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나 누나, 양혜 등 누나, 동생들 끼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이야기는 주로 '만약에 우리들이 독일에 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등 이었다. 오늘 이모임을 통해 독일에 대한 경험담과 고정관념을 깨트리게 되었다.
6/11 월요일
오늘 인라인 스케이트를 탔다. 나는 오랜 전에 인라인 스케이트가 망가져 버렸기 때문에 성현이에게 인라인 스케이트를 빌려서 탔다. 나는 성현이의 베푸는 마음이 고마웠다. 서로 한참을 즐겁게 타고 있을 때 온겸이가 갑자기 넘어졌다. 나는 온겸이가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격려해 주었다. 그렇고 보니 오늘은 여태까지 내가 얻었던 교훈을 처음 실천한 날이었다. 아주 기뻤다. 그 후 시간이 늦어 집에 가야 했기에 서로 흩어져야 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들에게는 정말 재미있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6/12 화요일
오늘 춘향전을 읽었다. 이몽룡을 믿고 변사또의 갖은 고문 속에서도 신조를 지키는 춘향의 용기와 다짐이 부러웠다. 특히 변사또가 기생에게 신조가 있으며 어찌 기생의 딸이 기생이 아니냐고 따지듯이 물었을 때에 그 물음에 침착하게 답하면서 맞부딪히는 장면이 참 인상 깊었다. 나도 한번 맺은 약속이나 신념은 목에 칼이 들어오더라도 지켜야 갰다는 생각이 들었고 소설 속의 춘향이를 본받고 싶어졌다. 맨 마지막에 이몽룡과 성춘향이 만날 때에 참 감동적이고 가슴 한쪽이 찡하게 저려왔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약속, 신념을 굳게 지킬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6/15 금요일
오늘 또 인라인 스케이트를 탔다. 또 인라인 스케이트를 빌려준 성현이에게 또다시 고마움을 느꼈다. 편하고 쉬운 일도 자꾸 하면 귀찮은데 여지 없이 승낙하는 성현이를 보고 나도 인정을 더 베풀어야겠다고 느꼈다. 계속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던 나는 지치고 실증도 나서 좀더 아래로 내려가 땅따먹기를 했다. 돌아온 것은 나의 패배. 갑자기 욱하는 감정이 나올려 했지만 다행이도 잘 참았다. 이런 욱하는 감정이 나오지 않도록 평소에도 훈련하고 내가 믿는 신이신 예수님을 본받아 나를 낮추고 겸손하며 남을 인정해 줄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땅따먹기에서 패배한 후 다시 위로 올라가서 인라인 스케이트를 탔다. 그런데 성현이가 아주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그 인라인 스케이트 가질래?”하고 물어본 것이다. 나는 기뻐서 “어! 그러면 나야 고맙지!”하고 대답을 한 후 즐거움에 휩싸였다. 오늘 나는 성현이의
인정에 고마웠고 예수님께 배울 점을 생각해 보았다. 오늘은 참 기쁜 하루였다.
- 승부욕을 경우에 따라 지혜롭게 조절할 줄 아는 정환이였으면... 엄마.-
7/9 월요일
오늘은 몇 개의 과목의 시험점수가 나오고 4,5,6교시에 수영교실과 안전학습을 한다. 첫 교시는 체육.(체육의 점수는 95점이었다.) 체육시간 때 우리들은 자유 시간을 보냈다. 나는 배드민턴을 했는데 다른 아이들 중에 배드민턴을 못한 아이들도 있기 때문에 참 감사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배드민턴을 다한 뒤에 좀 쉬고 교실로 들어왔다. 교실로 오면서 체육을 잘 보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2,3교시도 다 끝나고 수영을 했는데 수영을 하게 해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렸다. 참 재미있는 하루였다.
7/11 수요일
오늘 기술가정의 점수가 나왔다. 생각보다 점수가 낮아 좀 실망스러웠다. 결과는 85점. 하지만 1학기 중간고사 때 보다 올라 기뻤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했다. 그리고 공부를 많이 도와주신 어머니께도 감사했다. 점수가 85점이라도 반에서 2번째로 높았는데 다음에는 더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해서 더 좋은 성과를 내야겠다고 생각됐다. 오늘 참 감사했다.
7/14 토요일
오늘은 쉬는 토요일. 다음 주면 방학이라는 생각이 나를 설레게 했다. 오랜만에 쉬는 날이라 늘어지게 늦잠을 잤다. 깨어보니 이미 9시 15분전이었다. 밥을 먹고 운동 삼아 인라인 스케이트를 탔다. 그러나 나 혼자 탔기 때문에 심심했다. 친구가 없는 고통을 깨닫게 된 나는 친구를 많이 사귀게 된 것에 대해 정말로 감사했다. 다음부터는 친구에게 잘하고 더욱 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7/17 화요일
오늘은 제헌절이다. 오늘은 하도 심심해서 공부방에 갔는데 공부방 문이 잠겨 있어서 창문으로 들어가서 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실수였다. 함부로 문을 땄기 때문에 야단을 맞았다. 정말 참된 교훈을 얻었다. 함부로 내 맘대로 해선 안 된다는 큰 교훈을 얻었다. 다음부터는 이 교훈을 잘 새겨두어야겠다.
엄마가 정환에게
정환이의 배움과 감사노트를 보면서 엄마의 마음이 흐뭇하다. 정환이가 태어날 때 엄마가 큰 수술을 받아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없었을 수도 있었던 정환이였지. 네가 처음 태어날 때의 그 감동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단다. 자라면서 정환이를 가슴에 안으면 이 세상 모든 것을 얻은 것 같은 기쁨으로 가슴이 꽉 찼단다.
하루하루 대견하게 자라주는 정환이가 요즘 생활에서 감사를 배우고 있다는 것이 엄마에게는 무엇보다도 큰 기쁨이 되는구나. 감사는 삶의 마스터 키라고 하셨지? 감사하다는 마음을 마음에 품고만 있는 것보다 입으로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게 큰 힘과 격려가 될 수 있거든.
우리가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부분도 잘 관찰해보면 감사해야 할 부분이 많이 있단다. 공기가 없으면 숨을 쉴 수 없고 살 수 없는데도 우리는 공기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는 때가 많이 있잖아. 더 열심히 관찰해서 대부분의 삶의 과정에서 감사할 부분을 찾아보자.
그리고 예전에 원주 예수사관학교에서 배웠지? 배움의 자세로 열조의 삶을 통하여 그 분들이 터득한 지혜를 배워야 한다고. 배움의 자세를 유지한다면 항상 겸손하고 미래를 준비하며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사랑하는 우리 아들! 생활에서 배움과 감사가 넘치길 바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여러 가지 재능과 능력으로 힘차게 도전하길 바란다.
7/20 금요일
오늘은 방학 날 하지만 3교시 수업이다. 초등학교와 다른 방학식에 깜짝 놀랐다. 초등학교에서는 학교의 행사라고 할 만큼 준비를 하고 방학식을 하는데 중학교에서는 반별로 방학식을 하고 수업도 한다. 그런 다른 점에 대해 약간 실망했다. 수업이 끝난 후 방학식을 무사히 마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방학식을 할 때 정말 떨렸는데 방학식이 끝난 후에 별것 아닌 것 같이 느껴졌다. 방학식을 한 날이어서 그런지 기분이 정말 좋다.
7/26 목요일
오늘 안정선 선생님을 뵈었다.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초등학교는 공부하고 숙제 때문에 스트레스 받기 보다는 건강하고 즐겁게 뛰놀면서 추억을 만드는 곳이다.”라고 하셨다. 또 그 추억이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큰 힘이 된다고 하셨다. 그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참 인상 깊었다. 그리고 내 꿈을 위해 열심히 공부해서 꿈을 이룬다고 해도 항상 힘들 때가 있을 텐데 추억을 하나씩 하나씩 되새겨보면 어느새 힘든 것이 사라진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아 내가 초등학교를 그리 바람직하게 보내지 못 했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초등학교 때 추억을 만들지 못했으니 중학교에서라도 조금씩 조금씩 추억을 만들어 가야겠다.
7/27 금요일
오늘은 정말 바빴다. 먼저 아침 9시에 공부방에 와서 1시간정도 공부방에 있다가 영월동강둔치에서 송영회 선생님을 뵈었다. 그 분께서 우리들에게 미숫가루를 타서 대접해주셨는데 정말 맛있고 시원했다. 아주 감사했다. 송영회 선생님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백옥경 선생님을 뵈러 여성회관으로 갔다. 그리고 노래를 불렀는데 너무 목청껏 불러서 목이 아팠다. 원래 몇 달이 걸리는 일을 백옥경선생님께서 3일 만에 처리하셨다고 우정수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리고 또 백옥경선생님께서 자신이 도와준 일 중에서 이렇게 찾아온 분들은 처음이라고 하셨다. 이 이야기를 듣고 우리나라 인심이 박해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후 마을로 돌아와서 김석민 선생님을 뵈었다. 김석민 선생님은 강원랜드 복지센터에서 일하고 계신다고 우정수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김석민 선생님께도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야기를 듣고나니 우리들이 매우 희귀한 기회를 잡은 것이며 아주 운이 좋다고 생각 되었다. 그 뒤에 실로요양병원의 상임 이사님을 뵈었다. 그 분께 실로요양병원의 탄생연도, 의의 등 여러 가지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평범하게만 느껴지던 실로요양병원이 매우 대단하고 의미 있게 느껴졌다.
오늘 하루 동안 많은 분을 뵈었고, 많은 이야기를 들었으며 우리가 운이 좋다는 것, 우리가 다니는 공부방도 많은 분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 등 많은 느낌과 생각을 했다. 그 만큼 아주 인상 깊은 날이었고 항상 남을 도와주자는 내 가치관도 어린이들의 꿈을 키우고 여러 기회를 만들어주며 남을 존중하자라고 바뀌게 되었다. 다른 날도 이와 같이 감명 깊은 날이었으면 좋겠다.
7/28 토요일
오늘 우리는 천안에 가기위해 차를 탔다. 맨 처음엔 자리가 좁아서 끼어 타야 했다. 정말 다리에 피가 안통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덕분에 인내심을 기를 수 있어 기뻤다. 그렇게 약 20분 정도 가서 약초휴게소 라는 곳에서 우정수 선생님 차를 기다리기로 했다. 한 10분후 선생님 차가 도착해서 4명이 옮겨갔다. 그 후 천안으로 다시 출발했다. 그런데 고속도로가 막혀서 국도로 갔다. 참 어지러웠지만 멀미는 나지 않았다. 그렇게 약 두 시간 반 정도를 가서 천안에 도착했다. 천안에 도착했을 때, 이미 저녁시간이어서 우정수선생님이 저녁을 사주셨다. 참 감사했다. 또 내가 먹은 돈가스는 매우 맛있었다. 하지만 양이 적어 배가 고팠다. 그 뒤에 차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숙소에 들어오니 아주 졸렸다. 오늘은 정말 피곤한 하루였다.
8/6 월요일
오늘은 유럽으로 가는 날이다. 아침에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났다. 정말 졸렸다. 졸린 마음을 참고 준비를 하는데 가슴이 설레고 두근거렸다.
5시에 공부방에 도착해보니 사람들이 한명도 없었다. 우리는 아주 당황했다. 그러나 잠시 후. 흥국이형의 어머니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안심을 했다.
그렇게 준비를 하고 출발하는데 인천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놓칠까봐 조마조마 했다. 차를 타고 20여분 정도를 가서 제천에 도착했는데 설상가상으로 비가 많이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머리 속에는 우리들이 짐을 들고 뛰고 있고 버스는 그냥 가버리는 장면이 자꾸 떠올랐다. 원주로 가는 고속도로를 타자 앞이 안보일 정도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더구나 와이퍼도 한쪽이 잘 닦이지 않았다.
나는 마음에 무서움, 두려움을 품고 의자에 앉았다. 그렇게1시간 10분후 우리는 원주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그리고 7시에 출발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원주에서 인천공항 까지는 2시간 50분정도가 걸렸다. 버스를 타는 동안 정말 지루했다.
인천 공항에 들어가 보니 매우 컸다. 이곳에서 길을 잃었다간 정말 미아가 되겠다고 생각이 되었다. 짐을 들고 이리저리 다니다가 허석현 선생님을 만나 짐 수속과 표를 사러 갔다. 표를 팔기 시작할 때까지 기다리며 심심하게 있다가 짐 수속을 시작했는데 우리들 일행이 많아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
시간이 지나고 지나서 드디어 비행기에 탑승하는 시간이 되었다. 비행기에 탑승했을 때 정말 신났지만 자리가 창가에 있지 않아서 약간 실망했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 참 신이 나고 재미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루하고 심심했다. 대흥이형이 승무원한테 받은 카드로 놀아도 심심하고 인경이 누나의 휴대폰으로 게임을 해봐도 지루했다.
비행기의 창밖을 쳐다보니 눈이 부셨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분명 창밖은 밝고 해가 떠있었는데 지금 한국은 밤 10시라는 점이었다.
영화도 보고 심심하게 있기도 하면서 10시간을 보내고 착륙을 하기위해 하강을 시작했다. 하강을 하는 데 기압차이 때문인지 귀 속이 매우 아팠다. 그런데 그것을 나만 느꼈다. 침을 삼켜보아도 다름이 없었다. 계속 귀를 막고 마사지해 주니까 그런대로 괜찮아 졌다.
드디어 착륙을 하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내렸는데 프랑크푸르트 공항도 인천 공항과 마찬지로 엄청 컸다. 뒤셀도르프 공항에 가기 위해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는 데 6시에 있다고 했다.
그래서 2시간을 기다렸다. 그런데 게이트가 바뀐 줄도 모르고 기다리다가 하마터면 비행기를 놓칠 뻔 했다. 막 뛰었는데 힘들었다. 또 땀도 났다. 공항버스를 타고 비행기로 가서 탔는데 좀 작았다.
이륙을 하고 뒤셀도르프 공항으로 향하는데 가는 중에 구름 속을 통과했다. 정말 멋있었다. 그런데 구름 속에 난기류가 있었던지 마구 흔들렸다.
그렇게 착륙을 하고 짐을 찾은 뒤 우정수 선생님의 삼촌과 피터 할아버지를 뵈었다. 윤행자 선생님께서 태극기를 흔들고 계셨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그리고 차를 타고 숙소로 왔다. 저녁을 먹는 데 매우 피곤했다. 그리고 샤워를 한 뒤 다락방(남자 방)에서 잤다. 다락방은 매우 더웠다. 하지만 피곤한 탓에 금방 잠이 들었다.
오늘 독일에 오니 외국이라는 느낌이 전혀 안 들었다. 앞으로의 생활을 잘하고 몸을 조심하며 많은 것을 보고 배워 시야를 확장해야겠다.
8/7 화요일
오늘 삼촌과 함께 산책을 했다. 산책을 하는데 숲이 매우 컸다. 매우 놀랐다. 우리나라 같으면 숲을 다 깎아 버리고 아파트 단지를 세우거나 도로를 낼 텐데 독일은 하지 않았다는 점이 달라서 신기한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매우 상쾌했다. 하지만 비가 와서 약간 불편했다. 또 전망대 같은 곳에서 강과 건너편의 마을도 비가 와서 안개가 낀 덕에 제대로 관람을 하지 못했다. 맑은 날에는 멀리까지 보이는 데... 날씨가 맑았으면...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안타까웠다.
그다음 1유로짜리 성에 갔다. 고성이었는데 복흠 시에서 관리비가 많이 들어서 하팅엔 시로 팔려고 했는데 그 값이 1유로라고 삼촌께서 말씀하셨다. 그런데 나중에 설명을 듣고 나니 이 성의 가치가 1유로가 아니라 이 성을 팔 수 있는 최소의 값이1유로라는 것이었다.
사실 처음에 1유로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놀랐는데 추가 설명을 듣고 나니 다행이었다.
오늘 참 신나고 재미있는 체험을 한 하루였다.
8/8 수요일
오늘 아침 네덜란드로 출발했다. 처음에 차를 보고 놀랐다. 하지만 바로 멀미가 날까봐 두려워졌다. 하지만 멀미가 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9:30분에 차를 타고 출발했는데 길을 잃어서 3시 조금 넘어 네덜란드에 도착했다. 정말 배고팠다.
또 인경이 누나와 한나 누나가 탄 차가 먼저 도착해 점심을 먼저 먹어서 좀 얄미웠다.
피터할아버지께서 내가 맥가이버 칼을 만지작거리는 것을 보시고 나에게 맥가이버 칼을 주셨는데 정말 감사했다.
점심을 먹고 우리 모두 피터할아버지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 피터할아버지께 배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다. 하지만 너무 추워 몸을 떨었다.
또 100년 이상 된 배들이 많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 다음 저녁을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저녁을 먹고 난 뒤 피터할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슈퍼마켓이 어딘지 알려 주신다고 해서 다 같이 따라 나섰다.
슈퍼마켓을 보고 해변 가에 갔는데 날씨도 안 좋았고 밀물 때라 물이 들어와 있었다. 춥고 바람도 세게 불었기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았다.
그곳에 연을 날리던 남매가 있었는데 피터할아버지께서 연을 날려주시다가 연줄이 풀려서 연이 날아가 버렸다. 그리하여 피터할아버지께서 그 남매에게 돈을 주셨다.
그 뒤 숙소로 돌아가는데 어떤 청소년기 아이들이 우리들을 중국 사람들 인줄 알고 중국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흉내 내서 “칭챵총” 이라고 놀려댔다.
정말로 화가 나서 욕이 나오려고 하였다. 하지만 꾹 참았다. 특히 어떤 아이가 자전거 뒤에 타서 바지를 내려 엉덩이를 보일 때에는 정말 맥가이버 칼로 그 엉덩이 사이에 꽃아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들을 꾹 참고 숙소로 들어왔다.
많은 곳을 걸어 다니고 시차 때문인지 매우 피곤했다. 오늘은 좀 화나는 하루였지만 인내심도 기를 수 있는 하루였다.
8/9목요일
오늘 암스테르담에 갔다. 정말 놀라웠다. 어찌나 자전거가 많던지 하루에 도난당하는 자전거만 해도 1000대가 넘는다고 윤행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또 이곳에서 가장 많은 것이 물, 사람 그리고 자전거라고 하셨다. 암스테르담에서 구경을 하러 출발했을 때 전철이 다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서울은 벌써 전철이 사라진지 오랜데... 나도 전철을 타고 싶은 마음이 생겼지만 이루지는 못했다. 점심때가 되어 버거킹에 갔는데 한국 사람이 큰 소리로 싸우는 소리를 듣고 창피했다. 어쩜 저렇게 한국의 체면을 깎아도 되는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피터할아버지께서 점심을 사주셔서 감사했다. 밥을 먹고 난 후 교회에 갔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초가집 짓고 살 때 여기 사람들은 이런 큰 건물을 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 안네의 집에 갔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들어가지 못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한국 사람들을 만나 반가웠다. 그리고 풍차 박물관에 갔는데 예전에는 이 풍차들이 수로의 물을 빼냈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펌프로 빼낸다고 했다. 실제로 풍차 안에 들어가 보니 놀라웠다. 풍차가 물을 빼내는 모습과 어른들이 잠자는 잠자리, 풍차의 윗부분을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돌리는 장치 등 정말 신기한 것이 많았다. 그리고 숙소에 왔는데 어제 그 아이들을 혼내주려고 자전거를 타며 찾아 다녔는데 만나질 못했다. 좀 아쉬운 하루였다.
8/10 금요일
오늘 안햄 자연공원에 갔다. 독일로 돌아가는 도중에 들렸는데 자전거를 무료로 대여할 수 있어 자전거를 타고 갔다. 삼촌의 말씀을 들어보니 이곳은 원래 바다였다고 한다. 그런데 공원이 정말 컸다. 약 3~4시간 정도가 걸렀는데 정말 힘들었다. 다섯 개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는데 숲, 들판, 사막, 초원, 약간 낮은 산이었다. 자전거를 오랜 만에 타니 옛날의 시절이 회상이 되었다. 내 안의 질주 본능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즐거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약간 따분하고 심심하게 느껴졌다. 어쩌다가 있는 경주만이 괜찮았다. 그래도 심심한 느낌보다는 정말 오랜만에 타는 자전거라 신이 났다. 길을 잘못 들어서 겨우 올바른 길을 찾았는데 16km를 더 가야 한다고 하셨다. 결국 부지런히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정은이를 뒤에 태운 흥국이형과 경주를 하다가 흥국이형의 체인이 늘어나 풀리는 바람에 흥국이형의 자전거가 쓰러지고 말았다. 다행이도 아주 심하게 다친 사람이 없었다. 정은이는 손목을 삐었고 흥국이형은 팔꿈치가 까졌다. 그리고 다시 출발했는데 이번에는 대현이형의 자전거의 체인이 풀렸다. 대현이형은 다행이도 다치지 않았다. 힘들게 자전거를 타고 종착지에 도착하니 기분이 얼마나 상쾌하던지 말로 표현을 못할 정도였다. 오늘 정말 신나는 하루였다.
8/11토요일
오늘은 내가 설거지를 했다. 아 어찌나 힘들던지 어머니께서 설거지를 할 때 오래 걸리시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더구나 한국식 설거지라면 쉬운데 물을 적게 써야 하니 정말 힘들었다. 계속 퇴짜 맞고 씻고 퇴짜 맞고 . . . 마지막 그릇을 씻는데 서러움이 올라왔다. 왜냐하면 어머니 생각도 나고 다른 형, 동생들도 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어찌나 슬프던지... 다음부터는 설거지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워야 겠다.
8/12 일요일
오늘 형, 동생과 같이 교회에서 노래를 불렀다. ‘바위처럼’과 ‘보리 울의 여름’이라는 노래였다. 오늘 형, 동생과 같이 노래를 불렀다. 바위 처럼과 보리울의 여름이라는 노래였다. 처음에 정말 떨렸다. 연습할 때 같이 목소리가 높이 올라가지 않아서 쉬었다가 불렀다. 노래를 부르는 동안 그 행동을 계속 반복해야 했다. 정말 앞이 안 보이고 심장이 너무 떨렸다. 목소리에서 삑사리가 날 때에는 가슴이 철렁했다. 무사히 노래를 마치고 교회에서 나갈 때에 사람들이 나만 보는 느낌이었다. 부끄러웠다.
그 뒤 예배가 끝나고 간식을 먹으러 지하로 갔을 때 축구 게임을 했는데 아주 재밌었다. 그런데 어떤 안경 쓴 꼬마아이가 있었는데 축구 게임을 정말 잘했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신정남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셨다. 정말 감사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안경 쓴 꼬마 아이가 신정남 선생님의 딸이었다. 오늘은 좋은 하루였다.
8/13 월요일
오늘 S.T 람베르티 교회와 세인트 파울루스 돔 교회에 갔다. 람베르티 교회는 주로 상인들이 다니는 교회 였고, 파울루스 교회는 귀족들과 왕이 다니는 교회였다. 우리는 차를 주차 해 논 뒤 서의실 목사님의 안내로 람베르티 교회를 보러 갔다. 서의실 목사님께 감사했다.
람베르티 교회에는 큰 철창이 3개가 달려있었는데 각각 크기가 달랐다. 서의실 목사님께서 옛날에는 기독교가 매우 나쁜 일을 저질렀고, 기독교를 욕하는 사람들을 고문해서 죽이고 저 철장에 매달아 놓았다고 한다. 일종의 전시 효과로 사람들에게 겁을 주려는 생각으로 했다고 하는데 정말 잔인했다. 왜 자신들이 죄를 저질러 놓고 사람들을 마구 죽이는 것일까? 나중에는 죽일 사람이 없으니까 조그만 아이들 까지도 죽이고 저 곳에 두었다고 한다.
아쉽게 그 곳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세인트 파울루스 돔 교회로 갔다. 매우 화려하고 멋있었다. 수리를 아직도 하고 있었는데 매우 신기했다.
그리고 숙소로 들어왔다. 오늘은 매우 피곤했지만 좋은 하루였다.
8/14 화요일
오늘 아우구스투스 성과 쾰른 대성당에 갔다. 먼저 아우구스투스 성에 갔는데 매우 컸다. 성안에 들어 가보니 정말 화려했다. 비단을 벽지로 사용한 것부터 고급 중국제 도자기를 수입한 것까지 모두 다 화려하고 고급이었다.
그 다음 방에 가보니 벽지에 금을 발랐는데 아주 대단했다. 가구도 서랍이 많고 고급스러웠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세 개의 그림이 있었는데 모두 남자 모델에게 여자 옷을 입혀 그린 것이라고 한다. ‘왜 여자 옷을 입혀 그렸을까? 여자 모델을 써도 되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다음 문을 지나니 계단이 나왔다. 모두 대리석이었고 난간은 청동과 금으로 되어 있었다. 대단했다. 천장에는 그림이 있었는데 설명에 의하면 저 그림은 12일 만에 그렸으며 원래 평평한데 둥글게 보이도록 그렸다고 했다. 신기했다. 어떻게 평평한 천장을 둥그스름하게 보이도록 그릴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단을 올라가 보니 조각이 정말 살아있는 것만 같았다. 계단을 완전히 올라가서 다음 방을 가보니 이 성의 주인인 아우구스투스의 초상화가 있었다. 사치스런 옷을 입고 있었는데 얼마나 사람들을 착취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권력이 있으니 20년 동안 성을 지었다가 다시 부수고 40년 동안 성을 다시 지었겠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다음 방으로 계속 갔다. 거의 다 사치스러웠다. 특이한 것이 있었는데 시종들이 다니던 문을 장같이 보이게 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문이 없는 줄 알았는데 장 같은 곳이 열리는 것을 보고 신기했다. 성안 구경을 하고 밖으로 나왔는데 정원이 카펫트처럼 꾸며진 것이 신기했다. 그 곳에서 점심을 먹고 쾰른 대성당에 갔다.
쾰른 대성당은 매우 컸다. 그냥 600년 동안 지었다고 한 것이 아니었다. 입구를 통해 들어가보니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그 곳에는 무덤이 여러 개 있었는데 거의 다 주교의 무덤이었다. 그 옛날에 어떤 도구를 사용해서 그렇게 높이 지었는지 불가사의하다고 삼촌께서 말씀하셨다. 성 밖에는 돈을 주면 움직이는 사람이 있었는데 안 움직일때는 동상 같았다. 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모나리자를 그리고 있었다. 그림을 그릴 때 명암을 넣거나 색을 칠하는 것이 신기했다. 그렇게 구경을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피곤했지만 쾰른대성당과 아우구스투스 성을 보고 옛날 사람의 기술력의 차이(한국과 유럽)등 여러 것을 느꼈기 때문에 더욱 값진 하루였다.
8/15 수요일
오늘 축구를 했다. 학교에 가서 했는데 처음에 팀이 인경이 누나, 석현 선생님, 대현이 형 대 대흥이 형, 흥국이 형, 나 이렇게 팀이 갈라졌다. 한나 누나는 우리 팀을 도와주었고, 정은이는 혼자 놀았다.
처음에는 즐겁게 했지만 차츰 갈수록 지루해졌고 편을 가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허석현 선생님이 첫 골을 넣었다. 내가 실수를 해서 먹혔기 때문에 아쉬웠다. 자책도 했지만 그래도 미미 들어간 골은 어쩔 수 없었다. 그 때부터 더욱 상대편에게 화나 짜증을 내는 것이 잦아졌다. 그때 나는 축구를 그만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감정이 너무 격해져서 싸움이 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축구를 하는 동안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몇 분 후 허석현 선생님이 골을 한 번 더 넣었다. 정말 안타까웠다. 저쪽 골문이 뚤리기를 간절히 기다렸고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골을 먹힌 후 몇 분 더 지나서 하나의 골을 더 허용했다. 이번엔 대현이 형이었다. 그동안 잘 막아왔는데... 나의 사소한 실수가 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렇게 10분이 지났다. 다행이도 우리 팀이 4:3으로 이기고 있었다. 발가락이 아파올 쯤 우리 팀이 10:6으로 이겼다. 후반전도 10:8로 우리가 이겼다.
체력이 다 소진되어서 힘들어하고 있는데 한경기를 더하자고 인경이 누나가 제안을 해서 한경기를 더했다. 나, 인경이 누나, 흥국이형 대 대흥이 형, 대현이 형, 허석혁 선생님 이렇게 팀을 나누었다. 우리 모두 지쳐있었기 때문에 5점까지만 하기로 했다. 경기를 하는 동안 실신할 뻔했다. 발가락엔 상처가 나서 피나고, 물은 다 마셨는데 목은 계속 마르고.... 겨우 5점을 채워서 5:3으로 우리가 이겼다. 두 경기 모두 이겨서 기뻤지만 그보다 물과 숙소가 더 간절했다.
숙소에 오니 살 것만 같았다. 앞으로 축구라고 말만하면 현기증이 날 것 같다. 피곤하고 힘들지만 값진 승리였기에 기쁜 하루였다.
8/16 목요일
오늘 10시 20분에 차를 타고 탄광박물관으로 출발했다. 약 40분 동안 차를 타고 석탄박물관에 도착했다. 먼저 키를 넣고 돌리면 자신 물건이 내려오는 장치를 보았다. 우리나라는 그냥 함께 놓여져 있는 것을 쓰는데 이 곳은 따로 장치가 있었다. 왜 우리나라는 이런 기기를 만들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400m로 내려갔다. 먼저 발차라는 기계를 보았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하루(24시간)에 5000톤의 석탄을 캔다고 하였다. 한 사람이 하루에 5톤을 캐는데 그의 천배를 넘게 캔다는 것이다. 또 발차의 드릴이 한바퀴 돌아가는데 80cm룰 파고 들어간다고 하였다. 기계가 너무 커서 정말 놀랐다. 또 드릴도 아주 컸다. 우리나라가 드릴로 캘 때 우리나라는 이런 기계가 있었는지 전혀 몰랐을 것이다.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우리나라에 이런 기술을 전해주고 싶을 정도로 안타까웠다. 발차를 보고 나서 드릴이 있는 곳으로 갔다. 매우 소리가 컸다. 나도 체험을 해 보았는데 매우 진동이 심했다. 체험을 끝마친 후에도 손이 아팠다. 어떻게 이런 기구를 들고 3~4시간 동안 일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장소로 가는 도중 말(당연히 가짜)을 보았다. 가이드가 설명은 하지 않았지만 삼촌께서 옛날엔 말로 석탄을 실어 날랐다고 하셨다.
다음 장소에는 자동으로 석탄을 캐고 나르는 기계가 있었다. 가이드가 그것을 작동하기도 했다. 근대에는 이런 기계가 나와서 광부들이 그나마 편리했을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탄맥을 찾아서 캐는 기계를 보았다. 그 기계는 좀 길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지표로 올라왔다. 그 다음 모형을 보았는데 이곳에서는 한국과 달리 스위치를 누르면 움직이게 해서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아이디어가 정말 기발했다.
그 곳을 구경한 수 길을 헤맸다. 그러면서 화석, 보석, 광석들을 많이 보았다. 정말 광석들이 많았다. 보석도 아름다웠다. 그리고 길을 찾아서 1시 11분에 박물관을 나왔다. 숙소에서 삼촌께 들은 이야기 중에 발차가 채탄할 때 1m 전방도 안보인다는 이야기를 듣고 탄가루가 얼마나 많이 날렸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많이 안타까움을 느꼈고 광부들의 힘겨움을 느꼈다. 우리나라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던 우리나라의 광부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
8/17 금요일
오늘 6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8시에 로렐라이 언덕으로 출발하였다. 가는 도중 막스성에 들렸다. 그곳에서 가문의 문장과 1450년에 만든 가장 오래된 대포를 보았는데 대포는 16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1km나 나간다고 했다. 1450년에 만든 또 다른 대포는 대포알이 200m를 날아간다고 했다. 1500년대의 대포가 1km를 날아간다니 정말 놀랐다. 그리고 전쟁 때 방어를 했던 지역으로 갔다. 지금은 정원으로 개조했다. 그 곳에서 마지막 전쟁 때 돌을 던졌다고 한다.
학교에서 우리 민족이 지혜롭다고 배웠는데 건축, 기계, 기술의 차이를 보면서 약간은 실망했다. 그 다음 바인켈러라는 술저장소에 갔는데 매우 어두웠다. 부엌으로 가서 솥, 체 등을 보았다. 특히 그곳에서 눈에 띄는 것은 벽에 걸어놓은 곡식들이었다. 곡식을 벽에 걸어 놓은 이유는 쥐들이 곡식을 먹지 못하게 하려 한 것이라고 한다.
침실에 갔는데 침대가 작았다. 그 당시 사람들의 키가 작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옆에는 아기침대도 있었다. 침실에는 금고도 있었다. 가이드가 침실이 원래 천장이 벽돌인데 부서져서 나무로 다시 재건했다고 했다. 그렇게 식당, 보초서는 곳, 고문실, 대장간 등에 갔다. 특히 고문실에서 그림을 보았는데 아주 끔찍했다. 또 갑옷 전시관이 있었는데 어떤 갑옷은 40kg이나 되어서 넘어지면 남이 도와주어야만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그 곳을 다 보고 난 후 다시 차를 타고 출발했다. 차 안에서 바깥 풍경을 구경하기도 했는데 매우 아름다웠다. 하지만 로렐라이 언덕으로 가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지루했다. 3시쯤 드디어 로렐라이 언덕에 도착했다. 솔직히 실망했다. 1유로를 넣으면 시를 들려주는 기계도 있었는데 별로였다. 가장 유명하면서도 막상 가보면 가장 실망한다는 삼촌의 말씀이 옳았다. 경치구경을 하면서 삼촌과 숙모께 전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첫 번째 전설은 로렐라이라는 여자가 남자친구가 배신을 했다는 이유로 언덕(절벽)에서 떨어져 자살했다는 이야기이고 두 번째 전설은 상체는 옷을 벗은 여자의 모심이고 새의 날개가 달려 있으며 말처럼 다리가 4개인 반인반수가 사이렌 같은 노랫소리를 내어 뱃사람들을 현혹시켜 섬에 배가 부딪히게 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그 섬에 엄마상이라는 동상을 세운 뒤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전설을 듣고 난 후 숙소로 가는 도중에 케이블 카를 탔는데 옆에 창문이 없어서 바람이 들어왔다. 시원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추운 느낌이 더 앞섰다. 케이블 카를 타고 정상에 올라갔다가 내려 오는 도중에 동상을 보았다. 동상의 이름은 빌행 카이져라고 하는데 나폴레옹이 승전한 기념으로 동상을 세웠다고 한다. 동상은 정말 컸다. 동상의 모습이 꼭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을 연상케 하였다.
그 동상을 구경하고 다시 내려왔는데 포도가 정말 많았다. 사람들이 몰래 따먹은 흔적도 있었다. 사실 포도가 너무 많아서 몇 개 따 먹어도 모를 것 같았다. 그렇게 구경을 하고 다시 3~4시간을 차로 달려 숙소로 왔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10시 반 정도. 오늘 갔었던 곳에 대해 토론하고 글에 대해 배우고, 밀린 글을 쓰다가 잠이 들었다. 오늘 피곤하고 지루했지만 전설에 대해 알게 되는 등 보람을 느낀 하루였다.
8/18 토요일
오늘 시장체험을 했다. 한 사람당 7유로씩 쓸 수 있는데 저녁도 먹어야 하기 때문에 돈을 잘 써야 한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남자들에게는 40유로를 주시면서 남겨오라고 하셨다. 그리고 8시까지 어느 한 공연장의 붉은 깃발에 모이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빵에 고기야채가 끼어있는 햄버거 같은 것을 사먹었는데 4개밖에 없어서 대흥이 형은 바게트 빵에 서세지가 끼어 있는 것을 먹었다. 햄버거는 1유로 85센트였고 바게트빵은 1유로 20센트였다. 말이 안통해서 좀 불편했지만 허선생님의 영어 실력으로 무사히 먹을수 있었다. 허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배가 차지 않았다. 그래서 나와 흥국이형은 피자를 먹었는데 1개에 2.5유로였다. 피자는 약간 짰다. 그래서 1유로 50센트짜리 캔콜라 1개를 마셨다.
그 뒤 약속한 장소에서 여자일행을 만났는데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우리들도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서 일러준 곳으로 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잘못 갔다고 한다. 여자들이 갔던 곳이 아이스크림을 더 많이 주는 곳인데... 좀 안타까웠다. 하지만 우리들이 갔던 곳도 괘 괜찮았다. 그렇게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처음엔 돈이 부족한 줄 알고 돈을 더 주셨으면 했는데 막상 음식을 사니까 돈이 남았다. 남은 돈으로 무엇을 할까 하고 생각했다. 결국 마트에 갔다. 어떤 물이 있었는데 병값만 보고 25센트인 줄 알고 30센트를 가져갔는데 아니어서 부끄러웠다. 그래서 2유로를 들고 콜라를 가져갔는데 물보다 양도 많은 콜라가 더 쌌다. 좀 이해가 안됐다. 콜라에 첨가물이 더 많을텐데 왜 더 쌀까?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장 구경을 끝마치고 숙소에 왔는데 9시 30분이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토론을 하고 11시에 잤다. 오늘 기분은 별로였지만 좋은 체험을 했기에 교훈되는 하루였다.
8/19 일요일
오늘 교회에 갔다. 오후 2시경에 출발했다. 교회를 지나 대현이형(삼촌의 둘째아들) 집에 들렀다가 교회로 갔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교회에 들어서니 청년부의 찬양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나는 얼른 자리에 앉았다. 우리가 들어올 때 반겨주신 분들이 계셨는데 참으로 감사했다. 자리에 급하게 앉느라고 주보를 받지 못했는데 형 누나들이 주보를 주었다. 고마웠다. 형, 누나들이 주보를 주면서 찬송책도 같이 주었는데 정말 고마웠다.
청년부의 찬양인도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예배가 시작되었다. 약 10분 뒤 목사님의 설교가 시작되었다.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때 자꾸 졸음이 왔다. 졸음을 참으려 해도 참기가 힘들었다. 결국 기도할 때 잠깐 졸았다.
예배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려고 하였는데 교인들 몇 명께서 간식을 먹고 가라고 권유하셔서 간식을 먹고 가게 되었다. 이제 딱 2번째 보는 건데 정말 잘해주셔서 감사했다. 나도 이분들의 인심을 배워가야겠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고 싶다. 간식을 먹으러 옆 건물 지하로 내려갔는데 변함없이 계단에서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나도 같이하고 싶었지만 아이들이 대부분 독일 말로 의사소통을 하기 때문에 포기했다.
지하로 내려가서 정은이와 축구게임을 했다. 지난주에 한번해서 그런지 실력이 늘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지난주와 다르게 생일이 8월인 사람들의 생일축하잔치를 했다. 사람들이 다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 주길래 나도 기쁘게 축하해주었다. 왜냐하면 기쁨은 나눌수록 커진다라는 속담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 뒤에 간식을 먹었다.
나는 배고팠기 때문에 열심히 먹었다. 간식을 먹고 난 후 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 참 친절을 느낄 수 있어서 행복했고 활력 있는 하루였다. 오늘은 참 인상 깊은 하루였다.
8/20 월요일
오늘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 갔다. 6:00에 일어나서 바쁘게 준비하고 8:00시에 벨기에로 출발했다. 차를 타고 3시간이나 걸리는 먼 거리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냈다.
벨기에에 가려면 네덜란드를 거쳐서 가야하는데 네덜란드를 지나가는 동안 경찰이 불심검문을 했다. 여권을 검사했는데 그 여원이 자신 것임을 증명해야했다. 여권사진과 실제모습을 비교했는데 이름을 부르면 손을 들어야 했다. 경찰들이 이름을 이상하게 불러서 모두 웃었다. 경찰들도 웃긴지 간이 웃었다.
그런데 손인경누나의 사진을 보자마자 웃음이 싹 사라졌다. 여권이 사진과 실제모습이 달랐기 때문이다. 선생님 말씀으로는 살이 빠져서 그랬다고 한다. 경찰은 의심이 되는지 나이, 생년월일을 물어 보았다. 다행이도 일이 잘 풀려서 경찰서에 잡혀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삼촌께서는 북한 사람들이 네덜란드, 벨기에 쪽으로 가서 마약반입 같은 일을 많이 해서 그렇다고 하셨다. 내가 경찰의 눈치를 보니 우리들을 잡아가지 못해서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경찰은 무사히 지나갔다. 그리고 다행이었다. 우리는 제한인원을 넘어서 탔는데 그것을 지적하지 않았다. 벌금 낼 위기를 넘기고 다시 벨기에로 향했다.
경찰 때문에 잠이 깨서 다시 잘 수가 없었다. 11:20분에 우리는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 도착했다. 먼저 교회를 보았다. 쾰른 대성당보다는 작았지만 더 화려했다. 교회안의 석상들 중에 신을 나타낸 것 같은 것이 있었는데 대부분 금으로 된 무기들을 들고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이 교회는 전쟁 때 거의 터만 남고 다 부서진 것을 다시 복구한 것이라고 한다. 어떻게 이 교회를 복구했는지 알고 싶었다.
교회를 다보고 나가려고 하는데 비가 많이 쏟아져서 10~20분 정도 있다가 나갔다. 그 교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어떤 철창아래 사람들이 동전을 넣었는데 백원짜리 동전도 있었다. 오랜만에 우리나라 동전을 타지에서 보니 반갑고 힘이 났다.
교회를 보고난 뒤 오줌싸개 동상을 보러갔다. 그곳에 주차를 하려고 했는데 경찰이 안된다고 해서 다른 곳에 차를 주차하고 걸어서 가야했다. 소문과는 달리 오줌싸개 동상은 별로였다. 하지만 유명하기는 한지 한국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청소년 연맹이었는데 바쁘게 사진을 찍고 있었다. 왠지 그들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오줌싸개 동상은 스페인이 벨기에를 침략했다가 물러가면서 사과의 표시로 선물한 것이라고 하는데 각 나라의 정상들이 벨기에를 방문하면서 그 나라 전통의 오줌싸개 동상에 맞는 조그만 옷을 가져온다고 한다. 그 옷들이 얼마나 많던지 600여벌이나 되며 박물관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월요일이어서 문을 닫아 가보지는 못했다.
동상을 구경하고 걸어서 옛날 벨기에의 임금이 살던 궁전으로 갔다. 네덜란드의 그 광장과 비슷했다. 그리고 웅장하고 매우 아름다웠다. 특히 어떤 건물이 있고 중앙에 탑같은 것이 있는 건물이 있었는데 매우 아름다웠다. 그리고 주변에 고 시가지들도 멋있었다. 그 곳을 보고 옛 중세시대 때의 주식을 거래하던 곳으로 갔다. 그곳도 역시 매우 웅장했다. 그곳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오줌싸개 동상의 옷 박물관처럼 월요일이어서 보지 못했다. 너무 아쉬웠다. 나중에 자비로라도 한 번 더 오고 싶었다. 어쩌면 청소된 프랑스의 파리보다 나은 것도 같았다.
이제 자동차를 찾는 일만 남았다. 우리는 길을 좀 헤맸다. 결국엔 길을 찾고 다른 교회 하나를 더 보려고 했는데 이 교회도 역시 문이 잠겨 있었다. 그래서 추리는 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오늘 아름다운도시 브뤼셀을 볼 수 있어서 정말 기뻤다. 솔직히 다른 사람에게도 권해주고 싶다. 어느 곳으로 여행을 가고 싶으면 벨기에를 한번 가보라고.... 하지만 월요일은 피하라고 권해주고 싶다. 내생애에 오늘과 같은 날은 없을 것 같다.
8/21 화요일
오늘 피터 할아버지를 뵈었다. 아침에 오셨는데 윤행자 선생님도 같이 오셨다. 우리는 서로 악수를 나눴다. 전에 피터 할아버지께서 악수는 손에 힘을 주고 해야 된다고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 힘을 주고 했더니 피터 할아버지께서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셨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시더니 잘 있으라고 하셨다. 마지막 악수를 하며 피터할아버지께 ‘I'll miss you'(나는 당신을 그리워 할 것입니다)라고 말을 했다.
그 뒤 1시에 구퍼타하라는 도시로 출발했다. 약 1~2시간 정도를 차를 타고 구퍼타하에 도착했다. 먼저 공동묘지를 보았다. 장례식을 하는 교회부터 공동묘지까지 우리나라와는 전혀 달랐다. 공동묘지는 비석만 없었으면 공원같이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 뒤 3시 20분에 지상철을 타러갔다. 표값은 22유로였다. 우리는 지상철을 타고 종착역까지 갔다가 다시 왔다. 우리나라의 지하철과 달리 풍경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꼭 자기부상열차를 타는 느낌이었다. 지상철을 탄 뒤에 비가 너무 많이 내렸다.
그 뒤에 차를 타고 원병호 선생님 댁에서 불고기를 먹으로 갔다. 네비게이션 때문에 몇 번을 빙빙 돌고 나서야 원병호 선생님 댁에 도착했다. 비도 내리는데 사모님께서 열심히 불고기를 굽고 계셨다. 정말 감사했다. 우리를 위해 노력하시는 모습에 감동이 밀려왔다. 그리고 불고기를 먹었다. 마침 배가 고팠던 참이라 아주 맛있게 먹었다.
원병호 선생님께서는 광부로 이곳에 오셨는데 국제 태권도 심판을 하셨다가 지금은 글을 쓰고 계시다고 하셨다. 원병호 선생님께서 직접 쓰신 책을 우리들에게 주시며 ‘너희들이 커서 통일이라는 업적을 이루어야 한다’고 하셨다.
또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한국에서 일어난 지하철에서 프로판 가스가 폭발한 이야기를 하셨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우리나라와 외국의 차이가 많이 느껴져 좀 창피했다. 그리고 비가 많이 쏟아지는 가운데 숙소에 9시 반에 도착했다.
오늘 피곤했지만 원병호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나도 나중에 다른 이에게 나의 삶의 경험을 이야기 해 주고 싶다.
8/22 수요일
오늘 편지를 썼다. 우리를 도와주신 분 들게 편지를 썼는데 피터 할아버지, 윤행자 선생님 내외분, 신정남 선생님, 김희모 선생님 등 모두 일곱 분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를 다 쓰고 워드로 쳤다. 편지를 워드로 치는 동안 그 분들께서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잘 대접해 주시던 것들이 생각났다. 정말 감사했다.
또 8/6날부터 우리가 가는 날까지 다 워드로 쳐야 했다. 매우 분량이 많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편지만 워드로 쳐야했다.
그리고 보존과 개발이라는 글을 써야 했다. 그 글은 독일을 비롯한 유럽을 보고나서 유럽의 나라들은 어떻게 보존과 개발을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와 어떻게 다른지 글을 쓰는 것이다.
글을 쓰면서 느낀 점이 많이 떠올랐다. 독일의 자연과 어우러진 발전들 등 여러 부끄러운 점들과 생각들이 떠올랐다. 나는 진보적인데 글을 쓰다보니 보수적으로 쓰게 되었다. 오늘은 정말 생각이 많은 하루였다.
8/23 목요일
오늘은 닐스의 아버지께서 우리들에게 수도시설, 전기 시설을 보여주시는 날이다.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밖으로 나갔다. 일찍 일어 났기에 피곤했다. 먼저 닐스의 아빠 차를 타고 물을 저장해두는 저수지로 갔다.
그 곳 저수지는 물이 넘쳐서 물을 빼고 있었는데 매우 장관이었다. 그리고 상수시설을 관리하는 책임자를 만났다. 그 책임자 분께서 여름에 물이 넘치기는 처음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 땜은 100여년전에 지은 것인데 전혀 무너지거나 그런 적이 없다고 하셨다. 어떻게 100여년전에 지은 건물이 이렇게 건재하게 있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의 깊이는 30m 였다. 매우 깊었다. 또 분수같이 물이 솟아오르는 것도 있었다. 책임자 분께서 저것은 강바닥에 산소를 공급해주는 기구와 연결되어 있는데 산소가 많이 주입되면 물이 솟아오른다고 하셨다. 그리고 호수에는 통나무 같은 것이 떠내려 오면 걸러주는 것이 있었다. 댐에서 사진을 몇 장 찍고 차를 타고 급수 시설을 관리하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 들어갔을 때 호수에 사는 박테리아의 사진들이 있었다. 그것을 보고 계단을 마저 다 올라갔다. 그런데 영상실(회의실)이 있었다. 우리는 그 곳에서 프리젠테이션을 보았다. 그리고 공기(산소)를 주입하는 장치, 댐의 모형도 등 여러 사진, 그림들을 보았다. 신기했다. 이곳에는 그 방만한 필터가 8개가 있다고 했다.
그 뒤 모터들이 많은 곳으로 갔다. 그 모터들이 하는 일은 물을 펌프로 퍼서 정화시설로 보내준다고 했다. 그 곳은 정말 시끄러웠다. 그리고 정화시설로 갔다. 그 곳은 좀 컸다. 오른쪽에는 첫 번째 필터들이, 왼쪽에는 두 번째 필터들이 있었다. 첫 번째 필터들은 비교적 큰 것들을 걸러내고 두 번째 필터들은 작은 것들을 걸러낸다고 하셨다. 한쪽에는 필터를 모형으로 해 놓은 것이 있었는데 모래, 자갈, 숯 같은 역할을 하는 모래 3가지가 있었다. 이 모래, 자갈들은 실제 필터의 성분(재료)와 같다고 한다. 책임자 분께서 물을 틀자 더러운 물이 나왔다. 이 물은 그 호수의 물이라고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래로 깨끗하고 맑은 물이 흘러 나왔다. 정화의 원리과 바로 이 것이라고 한다. 책임자분께서 물을 계속 정화하면 필터가 더러워지기 때문에 2~3일마다 청소를 한다고 하셨다.
청소의 방법은 깨끗한 정화된 물을 위로 뿜어 올려 청소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곳을 보고 이곳을 제어하는 컴퓨터 실로 갔다. 그 곳에서는 모든 시설을 모니터링 하고 있었다. 앉아서 모든 것을 컨트롤 할 수 있고 고장 상태도 알 수 있었다. ‘이 컴퓨터가 고장나면 어떻하지?’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질문은 하지 못했다.
그 곳을 나와 다시 영상실로 돌아와 영상을 보았다. 그리고 이 곳에 전기를 공급해주는 곳으로 갔다. 그 곳의 전기는 약 3만 볼트인데 함부로 만지지 말라고 하셨다. 나는 감전 될까봐 조심히 다녔다. 그곳은 최신식이고 전선은 지하로 통해있었다. 하지만 최신식이어서 회로를 볼 수 없었다. 이제 점심을 먹으러 갔다. 닐스의 아빠 회사에서 먹었는데 예약석까지 있었던 것으로 보아 회사의 허락을 받으신 것 같았다. 점심은 스테이크(돈가스)를 튀긴 것과 감자튀김이었다. 맛있었지만 약간 짰다.
점심을 다 먹고 회의실에서 프리젠테이션을 보았다. 프리젠테이션에는 변전의 원리, 변전기의 내부, 발전소에서 집까지 전기가 몇 V로 변전되는지 등을 보았다. 특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복잡한 회로였다. 하지만 닐스의 아빠께서 쉽게 설명을 해 주셔서 이해할 수 있었다. 닐스의 아빠께 감사했다. 프리젠테이션을 보고 닐스 아빠의 사무실로 갔다.
사무실에서 전선의 샘플을 보았다. 380KV, 110V, 10KV, 400V의 전선 퓨즈들 등 여러 전선, 퓨즈의 샘플을 보았다. 거의 알루미늄으로 되었는데 많이 비싸졌다고 한다. 그 것들을 다 보고 컴퓨터실로 갔다. 그곳도 급수시설의 컴퓨터실처럼 그곳에서 모든 것을 제어한다고 한다. 여기의 컴퓨터가 망가지면 어떻게 조치를 취하냐고 내가 질문했는데 집에 컴퓨터가 있어서 집에서도 작업을 하고 여기 컴퓨터가 망가지면 집의 컴퓨터로 작업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서 고압 전신주를 보았다. 380KV의 전류가 흐르고 있는데 전신주도 전기를 보내다가 지하로 내려가 있었다. 그 대음 전선들을 보았다. 우정수 선생님께서 이것들이 매우 비쌀 텐데 그냥 밖에 두는 이유를 알 것 같다고 하셨다. 그 이유는 이것이 매우 무거워서 들고 가기가 힘들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 뒤 변전소에 갔다. 변전소 건물은 꼭 낡은 것 같았다. 하지만 안에 들어가 보니 기계들이 많이 있었다. 먼저 변전하는 기계부터 보았다. 그 기계는 380KV를 110KV로 바꾸는 기계였다. 크기가 매우 컸는데 위에는 Ϩ͒DŽꘘͲϨ͒DŽꘘͲ)`Ą만 정말 재밌는 하루였다. 또 과학과 관련됐기에 내 꿈에 대한 기초 상식도 기를 수 있었다. 닐스 아빠께 정말 감사하다.篖ϨϨ͒DŽꘘͲϨ͒DŽꘘͲĄ
그것을 보고 난 뒤어 전기를 공급하는 장치를 보았다. 역할은 급수시설의 최신식 장치와 같다고 했다. 하지만 그곳처럼 최신식은 아니었다. 그러나 회로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 건물에서서 나와 어떤 집 옆에 있는 변전기로 갔다. 그곳은 110KV를 10KV로 바꾸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퓨즈가 많이 있었다. 1곳에 3개의 퓨즈가 있었는데 2개는 대비용이라고 했다. 정말 독일 사람들은 준비성이 철저하다. 그곳을 보고 숙소로 왔다가 다시 강을 보러 갔다. 강이 정말 대단했다. 8월 7일에 보던 경치하고는 완전히 달랐다. 전혀 다른 곳 같았다.
그곳을 보고 닐스 아빠께서 사주신 아이스크림을 먹고 축구를 하다가 집으로 왔다.
오늘 피곤했지만 정말 재밌는 하루였다. 또 과학과 관련됐기에 내 꿈에 대한 기초 상식도 기를 수 있었다. 닐스 아빠께 정말 감사하다.
8/24 금요일
오늘 삼촌, 숙모께서 우리들에게 옷을 주셨다. 옷의 대부분이 나에게 맞아서 내가 옷을 가장 많이 받았다. 그중에는 독일의 명품 상표인 ‘디젤’의 옷도 있었다. 정말 감사했다. 옷이 너무 많아서 가방에 다 들어가지도 않았다.
이렇게 많은 옷을 다 나눠 주시고 남은 옷은 버리셨는데 나는 ‘무한도전’의 노홍철이 50회 특집으로 옷을 50벌 껴입는 것이 생각나 나도 옷을 껴 입어 보았다. 덥고 숨쉬기가 답답했다. 지하라서 추웠기 때문에 더운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숨쉬기 힘들고 답답한 것은 참기 힘들었다. 결국 껴입었던 옷을 다 벗고 원래 입었던 옷이 더러워져서 받은 옷으로 갈아 입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은 감사한 하루였고 기분좋은 하루였다.
8/25 토요일
오늘은 이우걸 선생님께서 김밥을 가져오시고 우리들을 데리러 오셨다. 우리는 먼저 켐나데라고하는 공원에 갔는데 경치가 좋았다. 길 옆에는 중간 중간 강과 댐이 보였는데 물이 많이 불어서 수분을 다 열어 놓았다. 침수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는 곳도 있었다. 어찌나 비가 많이 왔던지 길옆에 조그만 연못이 생겼다. 내가 보기엔 비가 별로 오지 않은 것 같았는데 이만큼이나 물이 불어나다니 신기하고도 끔찍했다. 이정도면 사람들도 많이 다치거나 죽었을 것 같았다.
얼마쯤 가다가 벤치에서 이우걸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우걸 선생님은 동강에는 사람들이 반대해서 안 되고 그 상류의 골짜기에다가 댐을 지어야한다고 생각을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심하진 않고 내가 느낀 것이지만 일종의 의견충돌이 난 것 같았다. 나는 ‘동강상류에 댐이 생기면 그 곳의 나무들이 물에 잠기고 아름다운 경치가 사라진다. 뿐만 아니라 그 나무들이 썩으면서 메탄가스를 내어 폭발할 위험도 있고 하늘로 올라가 오존층을 매우 심하게 파괴한다.
그 밖에도 많은 나쁜 점이 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동강에는 댐이 세워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여하튼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으로 갔다.
장주범 내외분께서 저녁을 해주셨는데 작은 가게를 하고 계셨다. 돈가스를 해주셨는데 정말 맛있었다. 고기 한개로는 배가 안 차서 감자 튀김 하나를 더 먹었는데 정말 배불렀다. 장주범 내외분께 감사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은 참 좋은 하루였고, 많은 분께 도움을 받고 감사함을 느낀 하루였다.
8/26 일요일
오늘은 글을 쓰고 짐정리를 하는 일 때문에 교회를 가지 못했다. 그 대신 닐스와 같이 놀았다. 정말 재밌었다. 닐스는 축구에 온 관심이 다 쏠린 것 같았다. 우리가 축구를 하자고 한 뒤로 놀 때 마다 축구만 하고 다른 운동은 하지 않으려 했다. 또 체력이 좋아서 우리들은 다 쉬고 있는데 닐스 혼자서만 훨훨 날아다니고 있었다. 탁구도 하고 싶었는데 닐스가 하지 않으려고 해서 결국은 하지 못했다. 아쉬웠다. 이왕이면 발야구도 가르치고 싶었는데 말이 잘 안통해서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
좀 아쉬운 하루였다.
8/27 월요일
오늘은 우리가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보니 닐스가 아빠랑 같이 작별인사를 하러 왔다. 정말 고마웠다. 삼촌께서는 독일에 이런 이웃은 보기 힘들다고 하셨다. 지금 작별인사를 하려고 하니 매우 아쉽고 헤어지기 싫었다. 닐스와 작별인사를 하고나서 우리는 짐의 무게와 여권 등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1시가 되어 우리는 다시 뒤셀도르프 공항으로 향했다. 우리의 짐과 인원 숫자가 많았기 때문에 복흠 교회의 담당 목사님과 한분이 오셨다. 아쉽게도 성함을 외우지 못했다. 뒤셀도르프 공항에 도착한 후 우리는 짐 수속을 마치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우리는 그 비행기를 탔다. 약 30분 정도가 걸렸다. 나는 오는 도중 프랑크푸르트 축구 경기장을 보았는데 매우 멋있었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것이었기 때문에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우리는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나는 음악을 듣다가 영화를 보고나서 잠이 들었다. 오늘 참 아쉽지만 즐겁기도 한 하루였다.
8/28 화요일
비행기에서 일어나 보니 벌써 아침이었다. 아침식사를 한 뒤 심심하게 자리에 있었다. 졸렸다. 하지만 잠이 들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자지 못했다. 착륙을 하려고 하강을 시작했을 때 예전과 같이 귀가 아팠다. 하지만 금방 괜찮아 졌다.
착륙을 하고 짐을 찾은 뒤 공항버스 리무진을 타려고 밖으로 나왔는데 정말 더웠다. 숨이 막힐 정도였다. 독일에서는 추웠는데 이곳은 매우 더워 적응이 쉽게 되지 않았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2시간 30여분 동안의 시간을 거쳐 원주에 도착했다. 어머니께서 마중을 나오셨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정말 감사했다. 감사와 기쁨의 포옹을 하고 나, 우정수 선생님, 정은이, 어머니. 이렇게 4명 먼저 영월에 도착했다.
정말 먼 길을 거쳐서 집에 오니 집이 매우 소중하게 느껴졌다. 오늘 참 기쁜 하루였다.
상 상 일 기
영월중학교 1학년 오 정 환
2023년 11월 24일
오늘은 오랜만에 눈이 내린다. 지금 나는 어릴 적의 꿈이던 과학자라는 직업을 선택하였다.
지금 여러 가지 발명을 한 나는 참 기쁘다. 사람들이 내가 발명한 발명품으로 생활을 편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로 기쁘다. 조금 있으면 세계 일주를 하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며 예수님을 전도한다는 것이 내 마음 한쪽을 따뜻하게 한다.
오늘은 다행이도 연구가 없는 날이다. 다른 날 같으면 발명을 하느라 시간을 보내겠지만 오늘은 특별이 가족과 나들이를 가는 시간을 가졌다.
워싱턴 행 기차를 탔을 때부터 아이들이 기차를 무척 신기해하며 기뻐한다. 워싱턴까지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겠지만 아이들은 창문에 코를 박고 열심히 구경중이다. 워싱턴에 도착한 후 먼저 인공 지하 공원에 갔다. 아이들도 나도 아내도 오랜만에 맞는 나들이에 웃음꽃이 입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워싱턴의 여러 구경거리들을 본 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이와 같은 날이 또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내가 일기를 쓸 때 아이들은 잠이라는 달콤한 여행을 하고 있을 것이고 아내는 어머니를 모시고 있을 것이다. 아이들도 아내도 나도 오늘같이 인상 깊은 날을 잊지 못할 것이
다.
첫댓글 ;;; 오랜만에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