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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시 주암동 과지초당에 기다) 조선 21대 영조임금 2째딸 화순옹주(월성위,부군 김한신:오위도총관 벼슬)의 증손자로 태어났다, 명문집안 출신, 서울(한양)에 사는 큰아버지 김노영에게 어릴때 양자로 입적,어려서부터 총명과 기개가 뛰어나 실학자 박제가의 문인으로 노론으로 실학자이며 조선후기 대표적인 화가,서예가로 성장한것,추사는 1819년(순조 19년) 문과 급제 ,충청우도(충남)암행어사때(안동김씨 비인현감 김우명을 파직시킴),성균관 대사성(순조아들 효명세자 사부), 예조참의,병조참판을 역임하였으나 대쪽같은 성품으로 세도가 안동김씨(24대헌종때)의 표적이 되어 파직되어 제주도 귀양(1840~1848)때에 쉬임없는 학문연마로 추사체를 만들었고 ,북청귀양(1851~52) 후 친아버지 김노경(1766~1837)이 한성판윤시 과천시 주암동 소재 과지초당(정원,숲,연못을 갖춘 별장,1824년 건축)에 복귀하여 임종시까지 4년(1852~56)간 거주하며 학문을 익혔던것,현 과지초당은 대지 623평에 소박하고 아담한 초당 20평과 2013년 추사 박물관을 신축하여 추사관련자료 15,000점을 소장 전시하고 있어 추사의 학문과 발자취를 느낄수 있었다.
명문가에서 태어나 관료진출후 2차례의 귀양까지 굴곡진 인생에서 그의 불행을 예술로 승화시켜 시대를 앞서간 위대한 선각자 김정희 선생께 제주도 대정 귀양시 제자 허련화백이 그린 초상화를 보며 무한한 사랑과 존경을 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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