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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행기록은 배낭여행을 바탕으로 한 것이며, 미술과 대학 그리고 문화연구와 교육프로그램을 관련지으려고 한 것입니다. 물론 관광과 쇼핑도 하지만 그것은 시간이 날 때 부수적으로 한 것입니다. 그러나 식사장소들과 숙소인 북경유스호텔은 다른 목적으로 가는 분들에게도 참고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사진이 시각문화와 문화연구에는 매우 중요한 매체입니다. 나는 이 여행을 중국의 역사와 관련시켜 '촬영천국의 난'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북경의 산업화와 자본주의의 팽창은 한국이나 일본에 뒤지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지하철을 13호선까지 연결하였고, 앞으로도 매우 빠른 속도로 개발과 발전을 확산시킬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 4-5년이면 더 많이 자본화될 것으로 예견됩니다.
기후조건이 건조하고 강이 없는 도시이지만 매우 넓은 평지를 확보하고 있는 북경은 CRH(중국철로고속 (중국어: 中国铁路高速, China Railway High-speed)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철도 전용으로 도입된 고속철도 차량으로 외국에서 기술 이전을 목적으로 라이센스 생산된 철도 차량이다.)와 지하철이 발달되어 급속도로 세계의 도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자금성 근처에 있는 왕부정거리는 서울의 명동과 차이가 없고, 전통적인 문(전문, 천안문...북경은 문의 도시)들과 현대식 아파트와 빌딩들이 매우 넓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습니다. 교통비는 매우 쌉니다. 시내버스는 1위안(180원)이고, 아직까지 북경지하철 전구간이 2위안(360원)이었습니다. 음식은 기름진 음식이지만 먹는데 불편하지 않았고, 한국식당들도 유럽의 도시보다는 많았습니다. 확실하지는 않으나 우리가 먹은 곳에서는 이과두주(5위안)가 마트와 식당에서 같은 가격으로 받았습니다. 아직 택시가 바가지영업을 하고 있으며, 중국인은 친절하지는 않게 보입니다. 앞으로 3-4번은 더 가봐야 할 것 같아서 참고로 아래에 기록을 하였습니다.
1. 2011. 1.14 금요일 오후 13:50분 대전 송천동에서 봉고차 대절로 출발하여 16:05분 도착하였습니다. 인천 제2국제터미날은 고속버스 주차장에서 매우 멀어 택시비가 만원 나옵니다. 고속버스비와 합치면 일인당 2만 오천원이 되기 때문에 7명이면 봉고차 대절이 오히려 편안하고 값도 비싸지 않았습니다. 인천 제2국제터미날 도로 맞은편에 있는 환전소에서 1위안에 173.31원(은행에서는 180원)에 4800위안(831,888원)을 환전하여 2500위안(선물비433275원)을 사용하였습니다. 17:30분에 승선을 시작하여 19:00에 출발하였습니다. 인천-탕구 간 진천 FERRY는 24-27시간 소요됩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 더 소비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들의 공간입니다. 남녀가 나뉘긴 하였지만 바로 옆 칸이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준비한 음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 중입니다.
호주와 아시안컵 축구 중계를 보는 광경입니다. 물론 맥주와 함께 하였지요. 이 날은 술을 많이 마시고 진지하게 대화도 나누었습니다.
다음 날 배멀미를 하였습니다. 하루 종일 괴로왔습니다. 황해가 흑해로 변했는지 오후까지 힘들었습니다.
천진역 앞의 활기찬 중국인의 활보입니다. 분명히 잘살아야한다는 한 가지 목표를 가지고 힘차게 걸어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사진을 데미안 허스트의 물고기가 한 방향으로 향하는 것을 진열한 작품 '일치된 목적을 위하여 동일한 방향으로 헤엄치는 독립된 요소들(Isolated Elements Swimming in the Same Direction for the Purpose of Understanding)'이 연상되었습니다. 물론 허스트의 작품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 속의 인간을 은유한 것으로 보여 더 의미를 감추었지만(소격효과), 이 사진은 은유보다는 알레고리로 생각되어 촬영하였습니다.
2. 1. 15 토요일 오후 21:30분 택시비 160위안에 탕구 항에서 출발하여 천진장청온천호텔(Spa Plaza Hotel Tianjin)에 1시간 정도 지나 도착함. 7시에 기상하여 호텔 2층에 있는 아사달식당에서 에서 조식후 오전 09:30에 체크 아웃함. 이 호텔은 대아여행사에서 북경배낭여행(북경배낭여행 초특가 219,000)에 포함된 것입니다. 왕복 배 값으로 천진장청온천호텔 1일과 북경유스호텔 3일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천진은 호텔이니 괜찮구요. 북경유스호텔은 학교 기숙사 수준입니다. 물론 샤워와 빨래를 할 수 있습니다. 약간 추운듯 합니다. 우리 집이 덥게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3. 1. 16 일요일 호텔에서 택시로 천진역까지 15위안이라는데, 우리는 64위안에 갔습니다. 이건 바가지이기도 한데요. 우리가 천진비행장으로 가는 것으로 알고 무조건 달리다가 돌아서 왔는데 미터기에 있는 것으로 계산한 것입니다. 대화 소통이 안되니 글을 써서 보였는데도 말이지요. 천진역에서 북경남역으로 58위안에 11:30에 출발. 온도는 0도 정도로 생각보다 춥지 않았습니다. 북경남역 12:10분 도착. 중국 CRH는 빠릅니다. 북경남역이 4호선이고 외부의 북경 출입역입니다. 여기에서 3정거장 북으로 올라가면 2호선 선무문역인데 동쪽으로 4정거장 가면 북경역입니다. 12:40분에 도착하였습니다. 우리의 숙소인 북경성시청년주점(Beijing City Central Hotel)에서 체크인하고 6인실 4049호실에 오후 2시에 들어갔습니다. 북경역 앞에 있구요. 주변이 도시 한 가운데라 편리합니다. 다행이 유리창이 북경역 쪽이라 북경역에서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중국 CRH의 내부입니다. 우리와 다른 점은 좌 3칸과 우 2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 KTX는좌우가 같이 2칸 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몇 년 내에 중국은 CRH를 급속도로 빠르게 확산시킬 것입니다.
텐진에서 북경까지 이런 아파트를 짓는데가 많더군요.
여기는 북경 전철 2호선입니다. 지금 전문역으로 가는 중입니다. 가운데에 세 발로 된 기둥형 손잡이를 배치하였습니다. 인구가 많아 중국식으로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점심식사를 북경성시청년주점 건물 1층 모퉁이에 있는 식당에서 북경오리를 주문하였습니다. 오후 14:30 - 15:30분 까지 자장면과 우동(15원), 파 기본과 추가 1번에 티(6원)를 마시고, 오리 한 마리(98원)를 먹었더니, 7인이 209원(36221.79)사용하였습니다. 그 후 전문(Quinmen)에 내려서 전문대가와 천안문을 바라보고 좌측 편 시장을 둘러보았습니다. 우리 남대문시장과 비슷합니다. 오후 19:30분 경에 준비한 음식(우리는 배와 호텔에서 가끔 먹으려고 햇반, 컵라면, 고추, 멸치, 김 등등을 3박스 가져 갔습니다. 운반하는데 불편하긴 했지만 같이 가신 분들이 준비를 해와서 올 때 배편에서 까지 요긴하게 사용하였습니다.)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21:00에 마치고 자유시간을 가졌습니다. 빨래도 하고 샤워도 할만 합니다. 더운 물이 그런대로 잘 나옵니다. 북경 전철역 지도는 아래와 같습니다. 우선 빨간 1호선이 가장 복잡하구요. 우리는 순환선인 2호선 동쪽 아래 모서리에 있는 북경점(아래 그림에서는 숫자 2 옆에 있음.) 근처에 있었습니다. 중국인은 역을 점이라고 하더군요. 1호선과 2호선을 기본으로 보고 13호선을 생각하면서 4호선과 5호선을 위 아래로 그리니 대략 나오는군요.
여기는 전문 앞입니다. 천안문 앞에 있는 문이지요. 서울 지하철은 대학 이름이 많구요. 북경은 문 이름이 많습니다. 우리의 남대문 같은 문이지요.
관광용으로 보이는 전차와 레일이 있습니다. 첸먼다제前門大街 이 거리는 현대와 근대가 어울리는 느낌이 많았습니다.
마오 주석. 워홀이 가장 수퍼스타로 불렀던 사람이지요. 13억의 팬을 가진 인물은 누가 또 있을까요? 예수라면 몰라도 베토벤이나 비틀스로는 그 숫자가 나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여기가 중국에서 제일 처음 영화를 상영한 곳이라는 군요.
4. 1. 17일 월요일에 아침 06:00에 일어나 07:00에 유스호텔에서 조식을 하고 따산즈 지역의 798 Space에 갈려고 동직문역까지 전철로 간 후에 버스 정차하는 곳을 물어보니 학생이 알려주더군요. 버스 445번을 09:45분에 타고 약 30분 정도 가서 내리니 그곳이 798 Space 도로 건너 앞이었습니다. 798이라고 빨간색 워홀식 디자인으로 입구에 크게 써있더군요. 구름다리를 건너 비디오촬영을 하고 들어갔습니다. 일부는 공장을 그대로 운영하고 있으며, 전시장과 작가 작업실 그리고 기념품점과 레스토랑이 섞여 있었습니다. 군데 군데 넓은 광장도 있어서 인사동 보다도 럭셔리하고 다용도의 공간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 식당과 숙박시설이 조밀하게 배치되지는 않았으나 공간이 넓어서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점심을 커다란 로보트가 서있는 광장의 한 레스토랑에서 하고, 다시 비디오 촬영을 하였습니다. 남은 시간을 전시 관람과 촬영을 한 후에 저녁을 왕징시에 있는 한인식당에서 하였습니다. 그날은 밤 8시에 돌아와 11시 까지 김우석 교수를 중심으로 촬영에 관한 세미나를 하였습니다.
여기는 798 Space입니다. 아니 797이군요. 공장 건물과 섞여 있어 마치 예술품과 상품 생산을 나누지 않는 것처럼 느끼게 합니다. 또한 낙서들이 미국을 생각나게 하구요. 자동차도 대부분이 외제차인지라 미국이나 유럽의 어떤 공간처럼 느껴집니다.
이 사진만 보여주면서 퀴즈를 내면 알아맞추기 어려우실지도 모르지요.
이 사진은 Thomas Ruff의 '기계(Maschinen)'시리즈가 생각이 나서 촬영한 것입니다. 루프는 산업적인 도안 자료집으로부터 가져온 이미지를 다른 맥락과 연결시키는 방법을 이용했습니다. 디지털 수정으로 혼합하였습니다. 사진은 매우 다양하게 이용되지만 뚜렷한 목적에 맞게 조작되거나 조절된 사실만을 드러내는 것이지요. Most of photos we come across today are no longer really authentic- they have the authenticity of a manipulated, prearranged reality. 여기에서 authenticity는 확실성, 신뢰성, 진짜임으로 해석합니다. 저는 이 기계가 맥락이 바뀌게 된 것으로 보았습니다. 시간이 지나 시대에 맞지 않고 쓸모도 없어진것이죠. 이건 기계가 아니라 장식적인 조각품으로 변모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 사진만 모니터에서 꽉차게 배치해서 보세요. 장소의 구체적인 지명을 생각하지 않고 말입니다. 아마 뉴욕, 상하이, 동경, 베를린, 런던, 파리 등등 (대전은 저런 곳이 없지요.)다 붙일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세계의 도시는 점점 인스턴트 식품처럼 규격화될 것입니다. 각 도시의 차이와 개별성은 점점 사라지게 되구요. 이 사진은 이미지의 세방화Glocalization가 파생된 것 쯤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로보트광장 레스토랑에서 점심 식사 후의 모습입니다.
로보트 광장도 주변에 공장이 가동되고 있습니다.
5. 1. 18일 화요일 북경대와 청화대는 출입이 통제되어 아쉬운 발걸음을 부근의 원명원으로 하였습니다. 기춘원 입구로 들어가 장춘원 좌측길을 끼고(대체로 가운데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간 것임.) 복해까지 들어가서 비디오촬영을 하였습니다. 추워서 촬영을 힘들게 하였습니다. 중국인들은 호수가 크면 바다 海자를 붙이는데, 중국인 특유의 과장이 드러나는 것처럼 보여 재미있기도 하지만, 겨울에는 좀 썰렁해 보입니다. 북경 부근에는 산이 없어서 호수도 대부분 인공호수로 생각되어 집니다. 복해와 장춘원 사이에 도로가 있는데, 그 도로변에 있는 중국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 들어갔을 때는 서빙하는 사람들만 있어서 음식이 나올까 싶었는데(중국식당 특유의 썰렁함과 스산함 사이), 요리는 예상과는 다르게 잘 나왔습니다. 고량주는 수퍼와 같은 가격인 5위안을 받았습니다.
이후 시내버스로 3정거장 더 가서 이화원 북문으로 입장하였습니다. 서궁문 근처에서 촬영을 하고 곤명호를 끼고 돌아서, 십칠공교까지 걸어 왔습니다. 이화원은 서태후가 머물던 곳이라 그런지 원명원과는 다르게 더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사람도 더 많았습니다. 저녁은 십칠공교 옆에 있는 문으로 나와 그 앞에 있는 시내버스를 20여분 이상 기다리다가 지루하여 앞에 있는 시내버스 터미날로 간다는 것이 잘못되어 1시간 정도 힘들게 걸어와 4호선 西苑(Xiyuan)에서 지하철을 타고 서직문에서 갈아타고 13호선 오도구역에서 내려 오른 쪽 출구로 나와 근처의 한국인 식당에서 배부르게 먹고 돌아와 10시경 부터 일찍 수면을 취함.
복해 앞입니다. 너무 추워서 을씨년스러운 행사 장식물을 넣어 보았습니다. 사진은 추워보이지 않지요? 그것도 사진의 허구라 생각됩니다.
원명원은 서구 열강에게 모두 약탈당했답니다. 황실의 형제 가족이 살던 곳이라는군요. 이 공간도 매우 큽니다.
여기는 서태후가 머물었다는 이화원 북문 입구입니다. 원명원보다는 정원이 아름답습니다. 하긴 원명원도 이화원도 제대로 보지는 못했습니다.
6. 1.19일 수요일 아침식사를 전처럼 유스호텔에서 1인당 15위안에 하고 작가촌인 쑹장 예술지구로 출발하였습니다. 자금성을 중심으로 6환도로 밖에 위치하기 때문에 다른 곳 보다는 멀지요. 8호선 통주북원(Tongzhoubeiyuan)까지 간 후에 지하도 건너 북원2루 고각장(通2路 버스)가는 버스로 40분 정도 가서 소보동구(Xiaobaodongkou)에서 내리면 앞에 쑹장예술지구라고 크게 쓴 현대식 망루가 보입니다. 분위기가 시골처럼 되어있고 지금도 계속 확장하고 개발시키고 있습니다. 오전에 비디오 촬영을 하고 입구쪽으로 올라오다 왼편에 있는 중국식당에서 룸으로 들어가 식사를 잘 하였습니다. 그 후 북경역에 가까운 5호선 천단동문 근처에 소재한 홍교진주시장에서 선물을 산 후에 북경의 1호선 왕부정에 도착하여 도시의 현대식 야경과 한국의 남대문같은 야시장을둘러 본 후에 비디오 촬영을 하고 20:50분에 유스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소보동구(Xiaobaodongkou)에서 내리면 앞에 쑹장예술지구라고 크게 쓴 현대식 망루가 보이지요. 화면의 오른 편을 말합니다.
전시 공간보다 작업 공간이 더 많기 때문인지 아직은 황량합니다.
길 옆에다 키치 풍의 그림들을 내다 팔고 있습니다. 사는 사람은 보이지 않구요.
회화 작품과 설치된 건조시키는 고기 식품들
홍교진주시장 앞의 킬러들1.
킬러들2.
그리고 왕부정 거리. 여기는 각종 꼬치시장 입구이구요.
여기는 왕부정의 화려한 거리입니다.
7. 1. 20일 목요일 05:20분에 일어나 06:00에 체크아웃하고 나와서, 1진 4명을 06:30분에 북경남점에서 배웅을 하였다. 다시 전문으로 올라와 천안문역까지 걸어가 군중들과 함께 국기게양식을 동이트면서 함께 관람하였습니다. 장관이었습니다. 이럴 때는 사람이 많은 것 자체가 의미를 증폭 확장시킨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침식사를 왕부정 동방신천지 지하에 있는 일본식 식당에서 먹고 고궁과 경산공원에서 오후 5시까지 보낸 후에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네이버 검색 자료에 의하면 명나라와 청나라 500년을 통치한 24명 황제의 거처인 자금성을 고궁이라 부르고 쯔진청이라 발음하더군요. 권력의 고독을 다룬 프란츠 카프카의 <황제의 메시지>에 나오는 ‘그곳’은 바로 쯔진청입니다. 8백 여 개의 건축물과 9천 여 개의 방이 있는 곳. 10m에 이르는 높은 성벽과 50m 너비의 거대한 해자로 에워 싸인 그곳은 카프카의 말 그대로 드넓은 뜰과 수많은 건물로 지어져 빠져 나올 수 없는 미로입니다. 주변은 강으로 둘러 쌓여 있다. 황제 일가를 위해서 9천 명의 시녀와 1천 명의 내시도 함께 살았다고 합니다.
천안문의 해뜨기 직전의 모습입니다. 중국인들은 여기를 성지로 생각하는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로 견주어 본다면 그냥 광화문 앞과 유사한데, 무엇이 중국인민들로 하여금 해뜨기 직전부터 수 많은 인파가 몰리게 하는지 한 참을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이데올로기인가 아니면 개인적 욕망일까. 그게 아니면 통제됨으로 인하여 만들어진 애국심이라는 허구일까?
마오주석은 병사와 인민 앞에서 아직도입니다. 아직도 근무중이라는 건데요. 서 있는 병사만 근무를 서는 것은 아니지요.
촬영천국의 亂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亂을 치르고 나서
디지털사진과 시각문화 북경편입니다.
오성기는 게양되고 인파는사라지고, 병사와 마오만 남아 근무는 계속됩니다.
오성기 게양대 앞에 설치된 금지대들.
색온도로 불타오르는 천안문.
남쪽에 있는 외조는 쯔진청의 정문인 오문에서 시작되고 북쪽 방향으로 태화문·태화전·중화전·보화전이 한 줄로 늘어서 있고, 그 동서에 문화전·무영전 등의 전각(殿閣)이 있습니다. 높이 35m, 면적 2377㎡의 웅장한 태화전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당나라 때에는 주요 의식이 치러지던 곳이라는군요. 태화전의 앞마당에는 병사 9만 명이 모일 수 있는 넓은 뜰이 있으며, 외조의 북쪽으로 내정이 펼쳐진다고 합니다. 내정의 주요 건축물로는 건청궁·교태전·곤녕궁 등이 있습니다. 쯔진청은 철통 같은 보안으로 황제를 지켰답니다. 바닥에는 걸을 때 경쾌한 발소리를 내는 특별한 벽돌이 갈려 있다는데, 이 벽돌의 효과는 음향만은 아니었습니다. 땅 밑에서 뚫고 올라올지 모를 침입자를 막기 위해 40여 장의 벽돌을 겹쳐 쌓았다고 합니다. 성 내에는 후원을 제외하고는 나무가 전혀 없습니다. 암살자가 나무에 숨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천자의 거처지만 어쩌면 금으로 둘러 싸인 감옥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자줏빛 紫와 금지한다는 의미의 禁그리고 재 城으로 구성된 영어명 Forbidden City입니다. 쯔진청은 1949년 중국공산당이 정권을 잡은 뒤에야 비로소 일반에 공개됐다. 과거의 궁전이라는 뜻에서 공식 명칭은 ‘고궁’이 되었다. 왕조는 사라졌지만 해마다 600~8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쯔진청은 여전히 중국 문화의 중심으로 위용을 떨치고 있구요 현대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이 날은 일찍 돌아왔습니다. 호텔에서 남은 컵라면과 햇반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10시 경에 수면을 취하였습니다.
우리도 찍어야 남기지요.
근무서는 마오와 병사.
고성으로 들어왔습니다. 추운데도 수 많은 인파들과 10m 높이의 붉은 담과 문들. 이름은 모두 모르쇠. 너무 많거든요.
오성기를 들고 가족과 사진찍는 어린이.
왜 사회주의에서도 거지는 사라지지 않는가. 저 분이 분명 디오게네스는 아닐텐데.
설명되어지는 고성의 목록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외로은 수 많은 문들.
여기부터는 방향 감각이 실종되고 무덤덤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너무합니다. 수 많은 문들이여.
왕좌는 옆으로 비켜나고 붉은 색 기둥만 분위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기둥이 중국인 아닌가요?
박물관은 옆으로 배치했다는군요. 패키지는 고궁을 2-3시간 만에 주파한다는군요. 우리는 하루 종일 온 종일.... 어떤게 좋은 건지는 각자가 판단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북경 정원의 진수.
촬영을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붉은 옷을 입은 여인. 순간 셔터를 눌렀습니다. 복장과 배경이 재미있습니다. 포즈를 취해주지는 않구요. 찰칵하는 소리에 얼른 달아나더군요.
하여튼 존재하는 파괴된 유물들의 무덤.
인민들 앞에 전시되어지는 황제들.
나와 같이 수행중인 두 사람
경산공원이 바라 본 고궁.
경산공원이 바라 본 시내의 부분들.
8. 1. 21일 금요일 임직서저택과 미시 후통에 갔으나 저택은 찾을 수가 없었다. 이미 주변은 개발되고 있어서 대부분 집의 자취를 찾기는 어려웠다. 물론 탐관오리 누구의 저택은 지금도 남아서 입장료를 받으며 건재하다고 합니다. 다음부터는 구글에 나온 것을 옮겼습니다. 임직서(1785-1850)는 당시 중국에서 영국의 아편이 대량 유입되어 은이 밖으로 흘러나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는군요. 이에 청 정부에서는 아편의 수입을 금지했으나 효과가 없자, 임칙서를 흠차대신으로 삼아 광저우에 파견하였답니다. 그는 영국 상인으로부터 아편을 빼앗아 불태워 버렸는데, 이것이 원인이 되어 1840년 제1차 아편 전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는 이 책임을 지고 유배되었으나, 곧 운귀 총독을 지냈습니다. 1839년 광둥에 도착한 임칙서는 영국 상인이 가지고 있는 아편을 모두 몰수해, 처분했느데, 이 조치에 분노한 영국 상인들은 임칙서에게 항의하였고, 결국 1840년 아편 전쟁을 일으키게 되었다고 합니다. 1840년 흠차대신에서 해임된 임칙서는 신장으로 좌천 되었습니다. 그러나 임칙서는 여기서 선정을 펴서 주민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임칙서에게 있어서도 이 곳에서 남하하는 러시아 제국의 위협을 실제로 살필 수있었던 것은 큰 수확이었으며, 진사 후학들에게 「장래 청나라의 최대의 위협은 영국보다 러시아일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1849년(도광 29년)에 은둔생활을 하던 중에 태평천국의 난이 발발하면서 난을 진압하기 위한 흠차대신으로 임명되었으나 임지로 가는 도중에 병사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연유로 임직서의 집을 찾고 싶었으나 우리를 안내해준 중국인은 그 일대를 이리저리 20여분 가까이 데리고 다니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우리만 큰 도로변으로 나오고 말았다. 북경의 후통은 여러군데에 있는 것인데, 미시후통 부근은 거의 파손되어가고 있었다.
대안으로 큰 길에서 10분 정도 올라가 유리창에서 책방 구경도 하고 뒷골목에서 비디오 촬영도 하였습니다. 유리창(琉璃倉)이란 말은 유리기와를 만드는 곳이란 뜻인데요. 청나라시기를 거치면서 도서와 문방사우의 집산지가 되고 서화와 집안의 가보 등 그 종류가 늘어나면서 우리나라 서울의 인사동 처럼 골동품의 거리가 되었다는군요. 북경의 유리창거리에는 서점도 많이 있습니다. 유리창거리의 서점들은 신간 보다는 옛날 책들을 주로 판매합니다. 그래서 이곳의 책들은 출고 가격 보다도 비싼 책도 있다고 합니다. 옛날에 2~3元 하던 책이 지금 그 열 배쯤 가기도 합니다. 대체적으로 한권에 10원에서 30원 선이면 살수 있고 화보로 된 책은 100원 이상 가는 것도 있습니다. 골동품은 중국정부의 품질보증 표시를 붙여놓았는데요. 대체로 1000-3000위안이라고 합니다. 실제 살 때는 10% 가격으로 살 수 있다고 합니다. 단 문방사우는 깎아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촬영을 하고 큰 길가로 다시 나와서 좀 올라가니 평안삼천리라고 하는 중국인이 경영하는 한국식당이 있더군요. 거기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반가원으로 갔습니다. 1호선 국무(国贸:궈마오) 지하철역 출구 B입니다. 99%가 가짜라는군요. 말과 조그만 도자기 하나를 사고 비디오 촬영을 하였습니다. 그후 북경공업대학까지 걸어 올라가 그 뒤에 있는 엔샤아웃렛에 갔습니다. 한국 제품(블랙약, 코롱 등)도 있고 외국 명품도 있는데, 특별히 싸지는 않구요. 한국과 가격이 비슷해 보입니다. 거기 C동 3층 끝으로 기억이 되는데 값도 싸고 맛도 괜찮았습니다. 시내버스와 전철로 돌아왔습니다. 시내버스아저씨와 1위안과 1펀을 구분하지 못해서 옥신각신한게 생각나는군요.
여기는 유리창입니다. 인사동과 유사합니다.
유리창 부근의 뒷골목입니다.
9. 1. 22일 토요일 08:50분에 2호선 북경역에서 출발하여 서직문역 다음에 있는 지수담역에서 오른쪽으로 나가 왼쪽에 보이는 덕생문 앞으로 가서 팔달령(Badaring 빠다링)으로 가는 919번 10:00 완행버스를 12원에 타고 만리장성에 갔습니다. 다음 백과사전에 의하면, 북방 민족이 세운 국가인 거란의 요, 여진의 금, 몽골의 원은 어렵지 않게 장성을 넘어 침입하여 중국은 3세기 동안 북방 민족의 세력 하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원을 몰아내고 명이 세워진 뒤 원의 재침입을 막기 위해 장성을 강화하여 지금 형태의 장성(The Great Wall)이 되었습니다. 농경 민족과 유목 민족의 경계선이라는 말도 있으나, 실제로는 초원에 건설된 것입니다. 중국인의 북방 민족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을 보여준것이지만, 몽골계 민족은 명대에도 장성을 넘어 침입하기를 되풀이하였고, 명 말에는 만주의 여진족이 다시 장성을 넘어와 명을 멸망시키고 청을 세우기에 이릅니다. 이 지도(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9/9d/Map_of_the_Great_Wall_of_China.jpg)는 아주 자세히 나와 있군요. 10:51분에 장성입구를 지나 11:02분에 빠다링에 도착하였는데 이 곳은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빠다링의 건너 편이라는군요. 건너 편이 식당도 많고 버스도 많다고 합니다. 이 쪽은 Sliding car(편도 30원)를 타고 올라가는데, 장성을 한 바퀴 도는 코스가 충분히 촬영을 하는 시간을 포함하여 3시간 정도 되고해서 부대시설은 좋지 않지만, 이 코스도 좋다고 생각됩니다. 오후 14:05분에 입구로 다시 돌아와서 식당에서 식사를 하였는데, 손님도 없고 바가지도 심하고 음식도 좋지 않았습니다. 좀 배가 고프더라도 간식을 준비하든가 아니면 참고 버스를 타고 북경에 가서 식사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관광지 보다 더 심합니다. 오후 16:00에 버스로 출발하여 16:49분에 덕생문에 도착하여, 1호선 영안리역으로 갔습니다. 우측 출구로 나와 도로를 건너면 앞에 있는 건물이 시우쉐이(Siushei; Silk Street)로 불리우는 시장입니다. 홍교진주시장이 장식물과 모피 중심이라면, 수수가는 실크 중심의 옷입니다. 여기에서 모조품 Lui Vuitton 가방(2400위안 부름-700위안 구입), Mont Blanc 유성 펜과 볼펜(240위안 부름-100위안 구입), Bally지갑(240d위안 부름-150위안에 구입)을 구매하고 아래 지하 식당에서 식사를 했는데 맛이 없었읍니다. 그날은 20:00경에 유스호텔로 돌아왔습니다. 어제부터 같은 방에 있게 된 젊은 미국인은 500 miles를 우리가 듣고 있을 때 밖에서 들어왔는데, 그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좋아하더군요. 하얼빈에서 중국어를 공부하는 학생이라고 합니다.
온통 다민족에 의해 촬영당해지는 장성.
찍혀지고.
찍혀지는 장성.
아무리 굳건하게 쌓여졌어도 이 시대에 여러 민족이 모여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시대가 다르면 의미가 달라지지요.
야. 막 찍자.
우리(중국인)도 그들(서양인)처럼 찍어야지.
체감온도 영하 20도의 퍼포먼스. 9장(이 장을 말합니다.) 첫번째 사진의 주인공들.
그룹으로 촬영하는 그룹사진(녹색바지를 입은 여학생의 움직임을 찾아라. 특히 첫 번째 사진에서.).
텐진 탕구항의 거미들. 거미는 루이스 부르조아에 의하면 쉼없이 일하는 어머니를 의미했다는데, 탕구 항의 거미도 쉼없이 일하고 있었다.
아시아의 평화를 위하여?
그대 무엇을 꿈꾸는가?
아직 알 수 없는 중국의 거미들.
10. 1. 23일 일요일 05:20분에 일어나 06:00에 체크아웃하고 Deposit (보증금, 예약금)100위안을 돌려 받고나와 2호선 선화문을 거쳐서 4호선 북경남역 23번 출구에서 07:20에 출발하는 오는 날 미리 예약한 탕구발 CTH를 탔습니다. 이 기차는 매우 빨라 07:50분에 텐진을 지나고 탕구역에는 08:12분에 도착하였습니다. 역 앞에서 자가용 택시를 네 명이 25원에 타고 08:45분에 탕구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시내버스는 102번인데 역 앞 건너 편에서 타야 한다는군요. 08:52에 승선수속을 받고탑승권을 받았습니다. 승선비는 1인당 30위안(약 5000원, 인천에서는 23,200원) 인데, 11:00에 출발하여 다음날 16:30분에 인천에 도착하였습니다. 올 때 보다는 배멀미는 않했는데, 썰물때문에 4시간 반이나 연착하였습니다.
첫댓글 사진 잘 보았습니다. 설명을 상세히 잘 해놓으셔서 다음에 가는 사람들에게 좋은 참고가 되겠습니다.
잘보고 갑니다 중국에 다녀온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
북경 천안문.이화원 왕부정거리에서 만리장성까지...잘 보았습니다.
그곳에 가고싶다 !! 그자리에.....교수님의 세심한 여행기록을 글과 함께 감상하고, 역사 공부도하고, 느끼고 갑니다. 다음여행땐 저도 교수님 처럼 여행기록을 하겠습니다.
이번 여행은 시간이 갈수록 생각 날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春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