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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개요
- 산행일시(시간) : 2010년 8월 21일 03:20~19:20(16시간), 22일 04:00~14:30(10시간 30분)
- 산행코스
․ 첫날 : 빼재-덕유삼봉산-소사고개-삼도봉-대덕산-덕산재-부항령
․ 둘째날 : 부항령-백수리산-1170.6봉-삼도봉-삼마골재-해인리
- 산행거리 : 전체 32.8km(첫날 20.5km, 둘째날 8.9km, 접속 3.4km)
○ 기록들
<첫날>
부항령에서 야영할 요량으로 몇 년동안 사용하지 않고 처박아 두었던 65리터 배낭에 텐트와 메트를 모두 수납하고 보니 배낭무게만 해도 22kg에 이르렀다. 어깨가 내려 앉을 듯이 무거운 배낭을 둘러매고, 8월 20일 23시 정각 거창행 심야버스에 몸을 실었다. 택시가 하염없이 구불거리며 빼재 들머리에 이르자 새벽 3시 20분이 되어 있었다. 아들이 모자를 고속버스 안에서 놔두고 내렸다고 했다. 오늘과 내일 무척 더울 것을 생각하니, 모자없이 산행해야 하는 아들 때문에 새벽부터 슬슬 걱정이 되었다.
<산행의 시작>
간간히 서늘한 바람이 불어주고 있음에도 완만한 경사길을 따라 올라가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바람이 잘 드는 장소에 자리를 잡고 약간의 요기를 하며 땀을 식혀 보지만, 그때 뿐이었다. 그리고 숲길은 괜찮지만 숲길이 아닌 곳은 억새와 잡풀로 뒤덮혀 있었고, 흥건하게 내린 아침 이슬로 인해 금새 옷이 젖어버렸다. 이내 양말마저 축축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그동안 또래 다른 아이들보다 땀이 많고 무른 살갗으로 인해 아비의 트레일러화(산악마라톤화)를 등산화 대용으로 신겨왔지만, 장거리 종주산행에는 쉽게 젖어버리고 접지력이 떨어져 이번 구간에는 아비가 사용했던 등산화(LOWA)로 교체했다. 다행히 방수기능도 괜찮고 젖은 노면에도 미끄러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려와 달리 발이 편하다고 했다.
<삼봉산>
6시 10분 새벽안개와 어우러져 삼봉산에 이를 즈음 온몸이 다 젖어버렸다. 부족한 잠 때문에 눈꺼풀이 자꾸 감기고, 힘이 나질 않았다. 평평한 바위 위에 매트를 깔았다. 옷이 젖었기 때문에 매트도 함께 젖어버리면 밤에 잘 때 축축한 느낌이 들겠지만 이것 저것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아들은 낮게 코를 골며 숙면에 들어갔다. 젖은 몸 때문에 금세 몸이 식어 판쵸우의를 덮었다. 4~50분 동안 수면을 취한 아들과 달리 아주 짧은 시간 눈을 붙인 것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아들이 자는 동안 아침식사 준비를 했다. 미역국이 끓자 아들을 깨워 든든하게 밥을 먹인 다음 행장을 수습하고나니 무려 1시간 30여분의 시간이 지나갔다.
<삼봉산을 뒤로 한 소사고개 내려서는 밭길>
9시경 암릉구간을 내려서자 소사마을의 널다란 밭이 나타났다. 아직 아침녘임에도 불구하고 햇볕이 뜨겁다. 소사고개 인근에 위치한 탑선슈퍼로 이동하여 아이스크림을 사서 평상에서 먹고가기로 했다. 원래 지난 구간 이 곳에서 민박하기로 예약을 했었기 때문에 주인은 우리를 알아 봤다.
<소사고개>
마루금이 농로를 따라가게 되어 이글거리는 태양에 그대로 노출이 되었다. 아들에게 내 모자를 씌우고 나는 수건으로 머리를 감쌌다. 삼도봉 오르막이 된비알이라 그늘진 평지에서는 수시로 쉬면서 진행했다. 그 사이 산객 두분이 우리를 앞질러 갔다. 우리보다 4시간이상 늦은 7시 30분에 빼재에서 출발했다고 했다. 어차피 우리 부자는 부항령을 이른 저녁시간에 내려서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기 때문에 오늘은 전혀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12시 30분 전라북도와 경상남북도의 경계인 두 번째 삼도봉(첫번째는 지리산 삼도봉으로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의 경계)에 도착하여 대덕산을 바라보니 마치 굴곡이 아름다운 여인네가 옆으로 누워있는 모습이다.
<두번째 삼도봉 - 머리위에 잠자리가 앉아 있다>
<전라(全裸)의 대덕산>
덥고 습한 날씨라 그런지 날파리가 극성이다. 지난 구간 날파리떼에게 심한 고통을 받아서 아예 집에서 사용하는 스프레이 해충제를 준비해 왔다. 문제는 모기약을 뿌리면 그 순간은 사라지는 것 같지만 이내 또 몰려 왔다. 부지런히 싸리나무를 휘두르며 쫓아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대덕산은 첫 번째 봉우리만 넘어서면 그 다음 정상까지 완만하게 이어져 있어 진행하기 수월했다.
집요하게 달라 붙는 날파리를 쫓는 방법은 없는 것 같다. 날파리는 특이하게도 사람의 눈에 들어가려고 하고 귀에 달라붙는 습성이 있다. 눈과 귀만 차단하면 사실상 불편함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썬그라스를 써서 눈에 대한 공격을 차단할 수 있었고, 귀에 대한 공격만 차단하면 되었다. 일전에 홀대모 회원 중 한분(강사랑물사랑님)의 경험담을 본 적이 있어 싸리나무를 꺾어 귀 부분에 메달았지만 공격이 조금 덜할 뿐이지 공격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수십마리는 되는 것 같았다. 숱하게 모기약을 뿌리다보니 오히려 눈과 얼굴피부마저 따가울 정도가 되었다.
13시 35분 대덕산 정상에서 빨리 진행함으로써 날파리의 추격을 따돌려 보기로 했다. 그다지 큰 효과는 없었지만 얼음골까지 금세 내려 올 수 있었고, 식수를 보충하여 넉넉한 점심식사를 할 수 있었다.
<대덕산 정상>
<얼음골 약수터>
<얼음폭포>
거기서 덕산재까지는 채 20분이 소요되지 않았다. 마치 인디언과 같이 나뭇가지를 머리에 꽂고 다니는게 우스꽝스럽기만 했다. 고만고만한 봉우리 4개를 넘으면 부항령에 도착하게 되었다. 날파리의 숫자도 훨씬 더 많아졌다. 아들의 귀 부위를 완전하게 차단할 수 있도록 잔나뭇잎이 풍부한 나뭇가지를 꺾어 수건으로 머리띠를 만들어 묶었다.
<날파리떼의 공격을 피하기 위한 완전무장 - 머리주변을 입사귀로 감사 메고, 스프레이를 준비했다>
그렇게 하니 효과는 확실하게 나타났다. 엄청난 숫자의 날파리가 주변에서 윙윙거릴 뿐이었다. 잠시 쉬는 동안에도 카메라를 들이대면 카메라 렌즈에도 날파리가 달려들었다.
19시 해거름이 어스름한 예상한 시간에 부항령에 내려섰다. 왼쪽으로 300미터를 하산하면 물이 있기 때문에 먼저 샘터를 찾아야 했다. 삼도봉 터널입구에 내려서자 길 건너 물소리 요란한 조그만 계곡이 보였다.
19시 30분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벌써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낮의 길이가 빠른 속도로 짧아지고 있었다. 옷을 다 벗고 코펠로 물을 퍼서 오늘 땀으로 절은 몸을 씻어 내렸다. 피로가 사라지는 느낌이다. 아들은 부항령 정자로 가지말고 바로 여기서 야영을 하자고 했다. 주변을 보니 바닥이 아주 고르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2인용 텐트를 칠만한 공간은 되었다.
<삼도봉 터널 계곡 옆 야영>
텐트를 다 칠 무렵, 시커먼 비구름이 하늘을 덮으며 소나기를 쏟아낼 양 잠깐 비를 뿌렸다. 갑자기 당황되었다. 아들에게 아무래도 안되겠으니 다시 짐 챙기고 부항령 정자로 옮기자고 했지만 가기 싫다고 했다. 방수조치만 제대로 하면 비가 오더라도 걱정할게 없다는 것이다. 아들이 제안한 대로 비가 올 것에 대비하여 방수조치를 확실하고 한 다음 텐트 속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 먹구름이 빠져 나가며, 보름달이 마치 약을 올리 듯 뽀얀 얼굴을 내밀며 환하게 웃었다.
<둘째날>
휴대폰의 밧데리가 다 되었다는 기계음이 계속하여 들렸다. 새벽 1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각이었다. 어쩔 수 없이 휴대폰을 껐다. 새벽 2시 30분에 모닝콜을 맞춰놨었지만, 휴대폰을 껐기 때문에 그 즈음 스스로 눈이 떠지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3시경 자연스럽게 눈이 떠졌다. 아들의 발가락과 발바닥에 테이핑을 한 후 통증이 있는 부위를 집중적으로 마사지했다. 어제밤에 했어야 했는데, 아들이 침낭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골아떨어지는 바람에 깨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삼도봉 터널 입구>
새벽 4시 새벽안개가 낮게 깔린 삼도봉 터널위로 조심스럽게 전진해 나갔다. 아들이 초반부터 무척 힘들어했다. 어제 도착했던 부항령에서 마루금으로 복귀하며 오늘의 여정을 시작했다.
아들의 몸이 덜 풀렸는지 산행시작한 지 30분도 되지 않아 쉬어야 했다. 과일을 먹이며 허벅지와 종아리에 스프레이를 뿌려줬다. 아들을 내 뒤에서 따라오게 하며 오르막을 진행하고 있으려니 10여명의 산객들이 앞서 나갔다. 오늘 우리가 가려는 목표지점인 우두령까지 간다고 했다. 앞서나가는 산객들을 따라가는 것은 고사하고 된비알의 등로에서 아들은 자꾸만 멈춰섰다. 슬며시 짜증이 났다. 아들은 시간당 겨우 1km밖에 진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백수리산 들머리에는 갈림길이 있었다. 왼쪽 우회로의 길 상태를 확인하고 아들을 보냈어야 했는데,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등로가 희미한 우회로로 아들을 진행케 하고 나 혼자만 백수리산을 갔다가 분기점에서 만나기로 했다. 오늘따라 오르막을 무척 힘들어하는 아들을 위한 배려였고, 우두령까지 가려면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했다. 그러나 백수리산을 오르는 내내 걱정이 가시질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백수리산 정상에서 하산하려는 순간 멀리서 희미하게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백수리산>
<삼도봉과 가야할 마루금>
무작정 숲속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일, 우회로가 있을만한 지점까지 달려 내려온 다음 등산로가 연결되어 있는 흔적을 뒤져 봤지만 쉽게 찾아지질 않았다. 아들이 큰 소리로 우는 것인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냈다. 어쩔 수 없었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하고 배낭을 부려 놓은 다음, 무슨 일이 없기를 바라며 목소리가 나는 지점을 무작정 찾아 들어갔다. 의사소통이 가능한 지점에 도착하여 절대로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라고 하고는 가까이 가자 아들은 경사가 급한 곳에서 나무를 붙잡고 서 있었다. 다행히 다친 데는 없었고, 등로가 어디 있길래 거기 있냐고 물으니 모르겠다고 했다.
등로를 찾아봐도 쉬이 찾아지질 않았다. 혼자서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다 희미하게 나 있는 우회로를 찾아내 어렵사리 마루금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등로가 이어졌다가 끊겼다를 반복하며 충분히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곳이었고, 아직 길 찾기가 서투른 아이에게 희미하게 나 있는 길로 안내하여 알아서 마루금까지 찾아 오라고 한 아비가 어리석었다. 40여분이 그렇게 허비되면서 완전한 우두령까지의 여정은 점점 불투명해지고 있었다.
급하게 아들을 찾느라 발등이 다친 줄도 몰랐는데, 양말을 벗어보니 피부가 벗겨져 있었다. 그러나 조난 당했을 때 조치요령을 설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했다. 놀란 가슴을 진정하며 적당한 지점에 자리를 잡아 아침식사를 했다. 어제의 계획은 삼도봉에서 아침식사를 하는 것이었지만 예상은 아주 많이 빗나가고 있었다.
아들은 힘이 드는지 식사량이 무척 적었다. 먹기 싫어도 더운 여름날 힘을 내려면 물과 함께라도 먹어야 한다며 몇 번씩 얘기해도 더 이상 먹질 않았다. 그 덕분에 아들의 몫까지 내가 다 먹어 치워야 했다. 무거운 먹거리를 짊어지고 예까지 왔는데, 버릴 순 없고 억지로라도 먹을 수밖에... 식사를 끝낸 아들을 먼저 보내고 모두 정리하니 30분정도의 시간 차가 있었다. 8시 30분즈음이면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아들을 쫓아갔다.
아름답게 보여야할 민주지산과 석기봉, 삼도봉으로 이어지는 실루엣이 마치 철옹성 성벽같은 답답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아들이 태어나고 얼마되지 않은 1998년 4월 저 민주지산에서 특전사 용사 6명이 천리행군 중 얼어죽었다는 얘기를 전하면서 아무리 신체적으로 강하다더라도 산에서 갑작스럽게 날씨가 변할 경우에는 무척 위험한 상황에 이를 수도 있다는 설명을 해 줬다.
<삼도봉 오르막>
오르막에서 아들은 자꾸만 멈춰 섰다. 마지막으로 우두령까지 갈 수 있겠느냐고 묻자 힘들겠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해인리로 하산할 수밖에 없고, 해인리에서 귀가할 수 있는 대중교통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귀가길이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도 곁들였다.
삼도봉 오르막의 햇볕이 무척 뜨겁게 느껴졌다. 이제는 숫제 나무그늘에서조차도 땀이 흘러 내렸다. 아들의 머리를 수건으로 감싸안고 햇볕에 노출되는 부위를 최소화 하도록 하였다.
<삼도봉 - 백두대간 세번째 삼도봉으로 경북, 전북, 충남의 경계>
11시 30분, 삼도봉(전라북도와 경상북도, 충청남도의 경계)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오늘은 나무그늘에 몇사람이 식사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부터는 충청남도 땅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그 자체만으로도 오늘 산행은 의미 있는 것이었다.
그늘에서 한참을 쉬다가 정상에서 700미터 떨어진 삼마골재로 내려서니 12시 10분이 되었다. 해인리로 내려가는 길이 무척 가파르니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네 형도 이 길을 따라 하산하다가 발가락에 물집이 잡혀 아비가 부득불 업고 내려간 길이라는 점도 알려 줬다. 제 형이 얘기하던 곳이 바로 이곳이냐 하며 신기해 했다.
최근에 비가 많이 내렸는지 1km 정도 내려오자 물길이 폭포가 되기도 하며 점점 거칠게 흘러갔다.
<계곡에서의 점심식사>
계곡의 적당한 지점에 자리를 잡고 마지막 비상식량을 꺼냈다. 라면을 끓이고 짜장밥을 데워 먹은 다음 코펠로 더워진 몸뚱아리에 물을 부어 식혀줬다. 물론 남아 있는 1km 이상의 거리를 내려가면 또 땀이 나겠지만, 그러면 그 때 다시 한번 계곡물 속에 몸을 담그자고 했다.
6년만에 도착한 해인리는 예전의 촌스런 마을이 아니었다. 해인산장도 말끔하게 단장이 되어 있었고 손님들이 많았다. 마을회관 앞에 이르자 전세버스가 3대 세워져 있고, 그 중 한대는 인천에서 왔다고 하며 오후 5시 이후에나 출발할 것 같다 하기에, 이용코자 했던 생각을 접고 콜택시를 불렀다. 마을회관 앞에서 한 할머니가 음료수를 마시라고 권하면서 오늘처럼 더운 날은 처음이라고 했다.
김천터미널까지 택시비가 많이 나오기는 했지만(38,000원) 동대전행 17시 30분 차를 탄 다음, 동대전에서 19시 30분차를 갈아타니 집에는 21시 20분에 도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