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반도 주위의 나라들 - 고려, 송, 요(거란), 여진(금), 일본 발해가 망한 뒤 만주와 고려의 동북 국경 지대에 흩어져 살고 있던 여진족은 12세기에 완예부의 추장에 의해 통일된 이후 점차 세력을 넓혀 갔다. 이들은 점차 북간도 지방으로 뻗쳐 왔으며, 마침내 고려에 복속해 있던 동여진을 흡수하게 되었다. 그 결과 천리장성 근처인 정주에서 고려군과 충돌을 시작하게 된다. 고려초기에 고려는 친송 정책을 폈다. 고구려의 옛땅을 되찾기 위하여 북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려는 태조 왕건의 북진 정책과 살기 좋은 땅을 탐내어 진출하려는 만주족의 남진 정책 때문에 충돌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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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7년) 천리장성 부근의 잦은 분쟁을 일어났으나, 보병 부대가 중심인 고려군은 기병인 여진의 군대에 번번이 패하게 되었다. 고려는 이에 윤관의 주장으로 별무반이라는 특별 부대를 편성하였다. 윤관은 기병 부대인 신기군, 보병 부대인 신보군, 승병 부대인 항마군으로 조직된 별무반을 이끌고 나가 여진족을 물리쳤다. 그리하여 함흥과 그 이북 지역을 점령하고, 그 일대에 동북9성을 쌓아 군대를 주둔 시켰다. (1107년) 9성을 빼앗김으로써 생활 터전을 잃은 여진족은 이후 시수로 분쟁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고려는 9성을 수비하기가 곤란하게 되었는데, 마침 그들이 조공을 바치겠다는 조건으로 9성의 반환을 요구해 왔던 것이다. 또 서북쪽에는 거란(요)의 세력이 있었으므로 고려는 동북의 여진 토벌에만 전력을 기울일 수가 없어서 쌓은지 1년 만에 여진족에게 돌려 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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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쉽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