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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사찰 스크랩 [부안/진서면] 꽃창살의 환희마저 무겁게 내려앉은 어느날의 내소사이야기
연화심 추천 0 조회 43 13.11.09 09:02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꽃창살의 아름다움도 무겁게 내려앉은 어느날...

'능가산 내소사(楞伽山 來蘇寺)'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268 / 063-583-7281

 

일렁이는 파도는

끝자락에 닿은 산마저 넘실대는 모습으로 남습니다.

능가산의 기슭에 자리한 푸른 숲,

길 따라 오롯이 자리한 절집,

내소사를 다녀왔습니다.

 

 

내소사 무설전의 봄 풍경

 

 

 

어느 종교에든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이 절집이나 교회를 찾는 이유는 뭘까요?

아마도 그것은 어떠한 역사적인 의미와 장소가 가지고 있는 특별함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연과 동화된 풍경이거나 주변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모습에 있을 것 입니다. 여행자는 아마도 후자가 될 듯싶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여행자는 절집을 많이 찾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산사들 대부분은 풍경과 산세가 어우러지며 오래된 역사가 함께하는 공간이 많은 이유입니다. 어떠한 믿음이라는 의지와는 관계없이 그 낮선 풍경을 즐기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지 허락지 않는다면 절집을 찾아가면서도 실제 불당의 본존불을 촬영하는 일은 극히 드물지요. 이러한 사정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믿는 분들의 믿음을 비하하지 않겠다.’는 나름의 의미에서입니다.

 

이번 봄 여행길에는 전북 부안을 찾았습니다.

실제의 주목적은 탐매(探梅)’여행입니다.

고매화를 찾고, 만나고 싶은 욕심에서이지요. 주로 고매화, 토종매화라 하면 남도지방에 몰려 있는데 드물게 전북과 경북 지방에도 아주 멋진 토종 고매화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늘 찾아가는 내소사에도 수령150년의 백매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꽃이 피고지고를 떠나서,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매화가 없어졌습니다.

그 이전부터 수세가 약해져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전문가 분들의 의견이 많았던 매화나무입니다. 더욱 답답한 것은 내소사에서는 그들의 의견을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에 있었습니다. 너무 수세가 약한 나머지 끝내, 고사하였고, 현재는 그 자리에 밑둥만이 남아 고매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소사 일주문

 

 

내소사?!, ~ ‘맙소사.’

절집과 함께 150년을 살아 온 매화는 그렇게 허무하게 댕강 잘려나가 뿌리만이 남은 공터가 되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무슨 그깟 매화 한그루가지고 그러느냐?” 하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개량종(일본)에 밀려 우리만의 토종매화들은 씨가 말라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나마도 많은 전문가들이 우리의 토종매화들을 조사하고 후계목을 양성하기 위한 노력을 해주시고 계십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우리의 토종매화를 지키자.’는 일념 한가지입니다. 지금까지의 노력으로 몇몇 사라진 고매 들의 후계목 들이 모처에서 잘 자라주고 있으며, 그 중에는 안타깝지만 제대로 자라지 못하여 아예 영원히 사라져 버린 고매화들도 있습니다. 사라져 버린 토종매화의 경우는 대부분 야산에서 이름 없이 자라난 야생매화이거나 관리되지 않는 폐가의 매화, 또는 같은 이유의 서원 같은 경우입니다.

 

그런데 내소사가 어떤 곳입니까?

전나무 숲길로 유명한 곳으로 경내에는 수령 1천년의 느티나무와 30년에서 40년의 벚나무들이 가득한 곳입니다.

마치 수목원과 같은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 내는 공간이지요. 그런데, 아쉽게도 내소사백매에게만큼은 신경을 쓰지 못했나 봅니다. 토종매화는 개량종 매화와 달리 많은 꽃잎이 달려 화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고고한 모습과 단아한 품격과 짙은 매향, 기괴한 수형은 어떠한 나무도 따라 올 수 없는 역사적, 예술적 가치까지도 지니고 있습니다.

누구를 탓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미 다시 살려 내기에는 너무 노쇠화 되었다.”라는 전문가분의 의견처럼 내소사백매의 생은 거기까지인가 봅니다.

 

지금 이 시간, 내소사는 화려한 벚꽃의 군락으로 여행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그 사이 어린 겹홍매가 간신히 체면치레를 하며 선전하고 있지요. 어딘지 모를 아쉬움을 가득 안고 내소사를 둘러봅니다. 기운 탁! 풀어지니 마음도 풀어지고 몸뚱이도 말을 듣지 않습니다.

수박 겉핥기식의 내소사 답사, 절집의 산문을 나서면서도 아쉬움이나 미련 따위가 생겨나질 않습니다.

너무도 서운했던 탓인가 봅니다.

 

 

 

 

내소사 전나무 숲길

 

 

 

능가산 내소사(楞伽山 來蘇寺)’.

송광사16국사 중의 한분인 원감국사(圓鑑國師, 1226~1293)’가 숙종1(1675)에 불전과 당우를 짓고 그곳에서 대승능가경(大乘楞伽經)을 설법하면서 산의 이름도 능가산(楞伽山)이라 불렸습니다. 불가의 색채가 짙은 이름을 가진 산에 동쪽으로는 개암사를 두었고, 남쪽으로는 내소사를 두었습니다.

 

내소사라는 이름은 내자개소(來者皆蘇)에서 따 온 이름으로 이 절에 오는 모든 중생들은 다시 소생하리라라는 뜻으로 불가에서 전해지는 윤회전생설(輪廻轉生設)에 담긴 말로 내소사의 옛 이름이 소래사(蘇來寺)였던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입니다.

내소사는 선덕여왕2(633)혜구두타라는 여승이 창건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에 두 개의 소래사를 지었는데, 하나는 아차봉 아래에 창건하여 대소래사(大蘇來寺)라고 하였고, ‘소소래사(小蘇來寺)는 지금의 자리에 창건되었습니다. 그러던 1870년 산불에 의해 대소래사는 전소되었고, 소소래사만이 남아 있게 되는데, 아마도 절집의 사명이 바뀌게 된 즈음이 될 것 같습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던 내소사는

인조11(1633) 청민선사가 중건하였고, 고종2(1906)에 관해스님이 중수하고, 만허스님이 보수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내소사의 가람형식은 3단의 석축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하단에는 천왕문봉래루를 가로 두었고, 좌우로 종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중단에는 수도공간으로 삼층석탑을 중심으로 설선당무설전을 두었습니다. 상단에 이르면 대웅전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삼성각’, ‘지장전이 그리고 동쪽으로 관심당을 두어 예불의 공간으로 나뉩니다.

 

 

 

 

 

  내소사 '천왕문(天王門)'

정면3칸, 측면2칸의 맞배지붕으로 절집의 수호신장인 사천왕상을 봉안하고 있는 전각입니다. 내소사 천왕문에는 높이 3.65m의 사천왕상이 봉안 되어 있습니다.

 

 

 

지금, 내소사의 분위기는 밝고 화사합니다.

만개한 벚꽃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저마다 화려한 횐 빛에 매료되어 감탄사를 보내며 그 모습을 사진으로 담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행자는 마음이 무겁습니다.

보내야 할 때가 된 것을 보낸 것인데, 미처 만나보지 못한 미련이 여행자의 발목을 꽉 쥐고 놓지 않는 듯합니다

 

 

 

 

내소사 '봉래루(蓬萊樓)'

태종12년(1414년)에 건립된 것으로 정면5칸, 측면3칸의 2층 누각으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건물은 1987년 복원한 것입니다. 예전에는 배불정책에 의하여 조선의 양반들이 말을 타고 대웅전까지 나가 예불을 드리고 나오자, 이를 막기 위하여 높이를 낮게 하여 대웅전의 앞마당과 높이를 거의 같게 하였다고 합니다.  

 

내소사백매가 머물던 자리

바위 뒤로 자리하던 백매는 사라지고 그 흉터만이 남아 있습니다. 

 

 

내소사 '대웅보전(大雄寶殿)'

처음에는 인조11년(1633년)에 건립된 내소사의 본당으로, 정면3칸, 측면3칸의 팔작지붕입니다. 자연석 축대위에 낮은 기단과 거의 다듬지 않은 덤범주초를 놓고 세운 건물입니다.

단청의 색바램이 예술적인 공간으로 나타나는 건물로, 특히 내부의 장엄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고 전합니다. 

  

 

대웅보전 정면 8칸의 문짝에 수놓은 연꽃과 국화꽃 문양

초화문을 투각하여 붙인것으로 오래된 나무의 결이 그대로 살아나 있어 모서리의 배흘림기둥과 안기둥의 민흘림과 어울리면서 안정감과 동시에 전각의 화려함에 대한 부담을 없앴습니다.  

 

 

내소사 '관심당(觀心堂)'

정면5칸, 측면3칸의 팔작지붕으로, 1911년 관해선사가 '벽안당(碧眼堂)' 선실로 건립하였던 것으로, 2002년에 중수하면서 관심당이라 하였습니다. 

 

내소사 '설선당(說禪堂)'

정면6칸, 측면3칸의 맞배지붕의 건물로, 안마당을 둔 '回'자형의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안마당에는 우물이 설치 되어 있으며, 요사와 함께 연결 되어 있는 모습을 보입니다.  

 

내소사 '조사당(祖師堂)' 

 

 

내소사 '지장전(地藏殿)'

누군가의 의식을 치르는지 경내에 영가가 한참을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내소사 '무설당(無說堂)'

설선당과 함께 대중방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면7칸, 측면4칸의 팔작지붕으로  'ㄱ'자형의 구조로 주지실과 승방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마주보이는 자리에는 '설선'과 '무설'이라는 대비되어 이색적입니다. 

 

내소사 '범종각(梵鐘閣)' 

 

설산당과 이어진 요사 

 

'보종각 고려동종(寶鐘閣 高麗銅鐘)'

정면1칸, 측면1칸의 팔자건물로 보물 제277호인 고려동종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건물은 지나치게 비대한 지붕을 받치려고 활주가 가설 되어 지탱하고 있습니다.

고려동종은 높이103cm, 입지름67cm의 고려후기 동종으로 고려 고종9년(1222년)에 청림사(청림사)에서 만들어진 것을 철종4년(1853년)에 내소사로 옮긴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글,사진  박성환

www.gilso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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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11.09 12:28

    첫댓글 내소사가고싶다.6년전어느날 같이사는 도반이랑 갔었는데...참아름다운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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