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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2] 31 -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씬1. 지민의 동네 언덕길(D)
텅 빈 언덕길.
지민 : (E) 어디선가 열여덟의 겨울을 보내고 있을 너에게... 벌써 세 번째의 편지를 띄워본다.
잔잔한 음악 흐르면...
언덕 너머로 심부름 다녀오는 길인지 찬거리가 담긴 누런 봉투를 가슴에 안고 걸어오고 있는 지민의 밝은 모습.
지민 : (E) 너... 여전히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잘 지내고 있는 거지?
씬2. 지민의 아파트 앞(D)
입구로 들어가려다가 어떤 느낌에 우뚝 멈춰서는 지민. 우편함에 삐죽이 튀어나와 있는 편지 봉투...
입가에 미소 맺히며 얼른 편지봉투를 꺼내 겉봉을 확인하던 지민의 표정이 웬일인지 서서히 어두워진다.
천천히 봉투를 뜯어 안에 내용물을 확인하는 지민. '주민등록증 발급 안내서'....
지민 : (E) 나 오늘 아주 특별한 편지를 한통 받았다?
어쩐지 우울해지는 마음으로 가볍게 한숨 내쉬는 지민.
지민 : (E) 이제 슬슬 세상 속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라는, 웬지 마음이 무거워지는 그런 편지....
씬3. 사진관(D)
화면 시작되면 사진관 의자에 앉아있는, 카메라 조리개 속에 담긴 지민의 모습.
사진사 : (E) 자, 고개 약간만 우측으로, 예에... 좋습니다. 턱 쪼끔만 안쪽으로 땡겨주시고... 좀 더... 좀만 더... 그렇지...
입술에 침 한 번 묻히시고... 예 좋습니다... 그대로 움직이지 말고...
사진사의 주문대로 어색하게 따라 움직이는 지민의 모습 위로,
지민 : (E) 어쩜 너도 어디선가 주민등록증에 붙일, 혹은 수능원서에 붙일 사진을... 미리 찍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카메라의 후래쉬 터진다.
씬4. 달리는 전철 안(D)
무표정한 얼굴로 멍하니 생각에 잠겨 앉아있는 교복차림의 지민. 그 무릎 위에 펼쳐진 채 놓여있는 우선순위 영단어장.
지민 : (E) 그런 말 있지 왜. 우리나라 고등학교는 2년제라는 말. 젊음은 단 이년 동안만 허락되구,
나머지 일년은 대학이라는 티켓을 따내기 위해, 그 동안 모아뒀던 젊음을 몽땅 바쳐야 한다는 말 말이야.
지민, 어느 순간 한숨 한 번 내쉬고는 단어장 펼쳐들고 외우기 시작한다.
씬5. 학교 앞 길(D)
우표가 붙어있는 편지봉투... 부칠까 말까 고민하는 듯 우체통 위에서 까딱여지고 있다.
그 손 따라 올라가면 우체통에 턱 괴고 서서 생각에 잠겨있는 지민.
지민 : (E) 맞아. 열여덟의 겨울은 내 이름 석자에, 내 인생에, 져야 할 책임이 무겁게 와 닿는 시기인거 같아...
어느순간 손짓 멈추고 편지봉투를 바라보는 지민. 이성제라는 이름과 천사원 주소가 적혀있는...
지민 : (E) 너두 그러니? 난 어쩐지 이 겨울을 넘기구 나면 젊음두, 웃음두, 심장두...모두 정지될 것만 같은, 그런 슬픈 느낌이 든다.
결심한 듯 우체통에 편지 넣고 돌아서는 지민.
문득 손목시계를 확인하더니 이크, 지각이다. 뛰기 시작한다.
그 모습 위로 타이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씬6. 학교외경(D)
씬7. 교무실(D)
교무회의 시간.
명교감 어쩐지 표정이 영 아니고, 그런 명교감의 눈치를 살피는 교사들.
명교감 : 요즘 수능 끝낸 고삼 수험생들의 유흥업소 출입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학생부에선 단속 좀 철저히 해주세요.
복만 : 차식들, 백일 남았다구 백일주 마시구, 육십일 남았다구 육땡주 마시구, 시험 끝났다구 해방주 마시구...
암튼 고런거 꼬박 꼬박 챙겨먹는 녀석들이 결국엔 낙방의 고배까지 빼놓지 않구 챙겨마시드라구.
교사들 : 하하하. (웃는데)
명교감 : (못마땅한 표정으로 보고)
교사들 : .... (입 다문다)
명교감 : 그리고 이학년 담임선생님들은 명심해주세요. 수능이 끝난 이 순간 부터, 이제 이학년 놈들이 고삼입니다.
앞으루 있을 기말고사, 수업, 진로상담, 어느것 하나 허술하게 넘기지 마시고, 녀석들 좀 꽉 조이세요. 이상입니다.
(교무수첩 들고 일어나며) 윤유란 선생님은 나 좀 잠깐 봅시다. (먼저 나가고)
유란 : ...? 네... (따라나가고)
복만 : 아, 오늘은 또 왜 저렇게 저기압이셔 근데?
광도 : 말도 마. 전교 십등까지 수능 예상 점수 적어내라고 했는데 영 글렀어.
해마다 서울대 합격률이 떨어지니까 불안해서 저러는거 아니야.
복만 : 하긴 박찬우 그 자식두 점수가 별루 신통치않다던데요?
재현 : 아아, 그 전교 일등한다는 학생이요? 들어보니까 잘봤던데요 뭐.
정인 : 선생님들 욕심이죠 뭐. 은근히 수석 기대하신거 같든데. 워낙 수재였다면서요.
일평 : 그러니까 이 평준화 교육이 여러 사람 다치게 하는거야. 이노무게 하향 평준화 밖에 더 돼?
광도 : 맞습니다. 그러니까 야자부활시키구, 우열반 효율적으로 운영해서, 될 놈들은 팍팍 밀어주구,
안될 놈은 지들 하구 싶은거 할 수 있도록 풀어주는게 효율적이라니까요.
재현, 정인 : ...
씬8. 영화반(D)
제안서 읽고있는 아이들.
신화 : 졸업생들을 위한 영상기념사업? 마지막 학창시절을 화면에 담아, 선배님들께 졸업 선물루 드리자는 얘기야?
지민 : 맞아. MTV세대가 졸업앨범 하나루 만족할 수 있겠냐?
흥수 : 야야, 찍는건 그렇다 치구, 무슨 돈이 있어서 졸업생 전부한테 테입을 돌리냐? 몽깨라 몽깨! (지민의 귀에 대고) 깨몽!
지민 : 끝까지 좀 읽어라 끝까지 좀. 이번 사업은 학생회가 주관하구, 학교측이 후원하는거란 말야. 땡전 한 푼 필요없다니까.
애라 : (반짝이며) 그럼 우린 신나게 찍기만 하면 되는거야?
지민 : 그렇지 그렇지. 재밌을꺼 같지 않냐?
애라 : 잘됐다아. 테입값 없어서 워크샵은 못하게 생겼지, 몸은 근질근질하지, 촬영작업하구 싶어서 미칠 뻔했는데.
정연 : (O.L) 이런거라면 대행업체에 부탁해두 되는거 아니야?
아이들 : ? (본다)
정연 : 선배들이 졸업이면 이제 우리가 고삼이라는 얘긴데 이거 좀 부담스런 작업아니냐구.
솔직히... 재미 쫓아 시간 낭비할 시긴 아니잖아 우리.
아이들 : ...
신화 : 졸업생들에게 평생 간직할 추억을 주는 일인데 의미있는 일이잖아. 해보자 한 번.
동일 : 그래. 활동할 기회가 생겼는데 좋지 뭘. 쉬엄쉬엄 하면 공부하는데 그렇게 방해될꺼 같지두 않은데?
졸업식 전까지만 만들면 되는거 아니야.
정연 : ... (별로 안 땡기고)
아이들 : ... (정연 살피는데 노크소리)
흥수 : 네. 들어오세요.
유미 : (문 빼꼼이 열고 귀엽게) 아직두 신입회원 받아요?
아이들 : (얼굴 환해지며) 배유미!!
씬9. 상담실(D)
자료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있는 명교감과 유란.
유란, 좀 의아한 표정으로 명교감을 보고 있다.
유란 : 수학 경시 대회라면... 이미 끝난걸루 알구 있는데요.
명교감 : 그러니까 다음 해를 미리 준비하자는거 아닙니까.
유란 : (좀 웃으며) 너무 서두르는거 아닐까요? 내년에 있을 경시대회 참가자를 벌써 부터 지원 받는다는 것두 그렇지만,
명교감 : 지원이 아니라 선출입니다.
유란 : 예?
명교감 : (명단 주며) 거기에 선출된 학생들 대상으루 성의껏 지도해보세요.
유란 : (영문을 몰라 명단 보고는) ? (명교감 보며) 전부 2학년 학생들이네요...?
명교감 : 무슨 문제 있습니까?
유란 : 그럼 내년에 고삼이 된다는 얘긴데... 그때 되면 내신관리 하느라 대회 참가 하기를 꺼려할꺼 같은데요.
내년 봄을 미리 준비하는거라면 이학년 보다는 차라리 일학년들이,
명교감 : (O.L) 그러니까 이학년들을 준비시키라는겁니다.
유란 : 네?
명교감 : 윤선생님이 말씀 하신 것처럼 전부 내년에 고삼이 되는 학생들입니다. 지금이 굉장히 중요한 시기죠.
유란 : ... ?
명교감 : (의미있는 눈빛으로) 이 학생들이 나중에 대회에 참가하건 안하건, 그건 상관없습니다.
윤선생님은 그저 좋은 문제 뽑아서 열심히 지도해주시면 됩니다.
유란 : !
씬10. 교정일각(D)
신나서 걸어오고 있는 영화반 아이들.
지민 : 야, 오늘 같이 좋은 날 오랜만에 뭉쳐야 되는거 아니냐 이거.
흥수 : 당연하지이. 눈사람 처럼 똘똘 한 번 뭉쳐보자구. 다들 시간 괜찮지 오늘?
애라 : 안되면 되게 해야지. 안그러냐?
아이들 : 그럼 그럼. (신나게 의기투합되는 분위기)
유미 : (좋아서) 니들 나 엄청 보구 싶었구나?
흥수 : 그럼 야. 두말하면 잡소리지이. 영화반에 뒷북이 없어지니까 회의두 재미없구,
너 없는 동안 영화반 분위기가 얼마나 암울 했는줄 아냐?
유미 : (눈 동그래지며) 어? 나 없는 동안 풍물패랑 써클실 같이 썼었어?
흥수 : ? 아니? 왜?
유미 : 북이 없어졌다며.
아이들 : 아으으.... (머리 감싸쥐는데)
태훈 : (E) 유신화, 김정연.
아이들 : ? (보면)
태훈 : (연진, 형주와 걸어오며) 수학선생님 호출이야.
정연, 신화 : ? (보는데서)
씬11. 상담실(D)
유란 앞에 와서 앉아있는 신화, 태훈, 형주, 연진, 정연.
유란 : (각자에게 세종류의 프린트물 차례대로 나눠주며) 이건 작년 수학 올림피아드 대회 문제야. 일단은 출제경향이 어떤지
살펴보는 정도로만 훑어봐. 그리고 이건 수능유형에 맞춰 뽑은 예제들, 아마 난이도가 좀 높을꺼야.
아이들 : (서로 시선 교환하며 보는) ...
유란 : 마지막으루 이건 이번 수능문제. 모르는건 놔두고, 아는것만 연습장에 풀어서 오늘 저녁 첫모임 때 제출해.
니들 실력이 어느정돈지 체크해보게.
연진 : (놀라며) 오늘 저녁까지요? 오늘 비는 시간두 없는데에...
유란 : 쉬는 시간은 뒀다 뭐해? 고삼 될 녀석이 쉬는 시간에 놀 생각 하구 있어?
연진 : ...
유란 : 좋은 기회라구 생각하구 열심히 해봐. 비슷한 사람들 끼리 서로의 실력이 어느 정돈지 알아두면
자기 평가에 도움이 될 수도 있잖아. 좋은 자극이 되서 서로 실력이 향상될 수두 있구.
아이들 : ... (서로를 살피는)
유란 : 그리구... (기분이 썩 편치만은 않은) 괜한 오해가 생기거나 위화감이 생길지두 모를꺼 같아 노파심에 말해두는건데...
되도록 다른 애들 귀에는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했으면 좋겠다.
아이들 : ? (보는 위로)
연진 : (E) 괜한 오해? 위화감?
씬12. 교정 일각(D)
태훈, 형주, 연진, 손에 프린트물 말아쥐고 걸어오고 있다.
연진 : (손에 들린 프린트물 보며) 그러니까 결국 뭐야. 수학경시대회 준비모임의 탈을 쓴, 불법 심화반이라는 얘기잖아 이게.
형주 : 불법이면 어떻구 합법이면 어때. 난 간만에 학교가 영양가 있는 일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연진 : 슬프잖어. 판 깔아줄테니까 니들끼리 일등급 놓구 피터지게 한 번 싸워봐라, 그런 얘기루 들린단 말야.
형주 : 그런 얘기루 들리는게 아니라, 그 얘기야.
연진 : (본다)
형주 : 복잡하게 뇌세포 낭비하지 말구 간단명료하게 생각해. 괜히 싸구려 감상에 젖을꺼 뭐 있어?
학교에서 특권을 주면 받어. 마다 할 이유 없잖아.
연진 : (질려서 보다가) 야, 태훈아. 얘 원래 이렇게 정 떨어지는 구석이 있었니?
태훈 : 맞는 얘기잖아.
연진 : (입 떡 벌어지며) 왜 이렇게 춥니. 니들 사이에 있다간 얼어 죽겠다 응?
태훈 : (피식 웃는데 핸드폰벨 울린다. 플립 열고 받는) 여보세요? (순간 입가에 따뜻한 미소 맺히는) 잘있었어...?
연진, 형주 : (보며) ?
태훈 : 그럼... 나두 잘있었지. 어... 어... 그래에? (웃는데)
연진 : (태훈을 툭 치는)
태훈 : (연진 보며) ? (수화기에 대고) 잠깐만. (수화기 막고) 왜?
연진 : 웬 어울리지 않는 따뜻한 미소? 누구냐?
태훈 : 여자친구. (하고는 전화 받으며 저쪽으로 가고)
연진 : (형주에게) 재 여자 친구 있니?
형주 : 글쎄? 저번 모임에서 태훈이 한테 눈길 보내던 여자애가 한명 있긴 했는데...
연진 : 여유있네. 암튼 머리 좋은 사람은 팔짜두 좋아. 고삼 앞두구 연앨 다 걸구.
형주 : (웃고, 혼자 생각해 보다가 짐작 가는 사람이 없는지 고개 갸웃하는)
씬14. 2학년 5반 교실(D)
쉬는 시간. 소란스러운 교실.
지민 : (들어와 교탁에 서서) 얘들아, 선생님이 이번 국어시간까지 계속 진로상담 하실꺼래거든.
아이들 : (와아아아! 자습이다! 좋아하고)
지민 : 조용히 자습하다가 순서되면 차례대루 상담실루 가 알았지? 아참 그리구, 사회 리포트 말이야.
목요일 까지니까 늦지 말구 꼭갖다 내. 알았지?
아이들 : 알았어 알았어....
지민 : (자리로 가고)
정연 : (연습장 밑에 수학 심화반 프린트물 숨겨놓고 문제 풀고 있다)
지민 : (서랍에서 책 꺼내다가) 뭐해?
정연 : (놀라서) 어? (프린트물 슬쩍 연습장 밑으로 밀어넣으며) 수학문제 풀잖아.
지민 : 근데 뭘 그렇게 놀래?
정연 : 놀래긴 누가....
지민 : ? (이상해서 봤다가) 하여간 열심이예요. (웃고는 단어장 펼치는데 수업종 친다) 얘들아! 수업종 쳤으니까 좀 조용히 해!
아이들 : (상관않고 떠들고)
지민 : 조용히 좀 하라니까!!
정연 :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다. 프린트물과 연습장 챙겨든다)
지민 : 어디가?
정연 : 도서관. (나가고)
지민 : ... ? (보는데)
애라 : (울상으로 들어오며) 지민아. 니 차례야. 상담실루 가.
유미 : (심난한) 선생님이 뭐 물어봐?
애라 : 공부 못하는 애한테 물어볼게 뭐있겠냐. 그냥 한 십분 나죽었네 고개 푹 숙이구 앉았다가 오는 길이야.
유미 : 왜에?
애라 : 점수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상담하는데, 앞 날은 깜깜하지, 얼굴은 화끈 거리지, 가슴은 먹먹하지.
살아있어두 산 목숨이 아니드래니까.
지민 : ... (걱정스러운)
씬15. 상담실(D)
마주 앉아있는 지민과 재현.
재현, 지민의 성적자료와 2000학년도 지원가능 커트라인표 옆에 두고 비교해가며 보고 있다.
지민, 심난한 표정으로 재현을 바라보고 있다.
재현 : (자료보는 채로) 녀석... 성적 관리 좀 하지. 1학기 부터 내리 하향곡선이구나. 올라두 그만그만하구.
지민 : ...
재현 : (분석 끝난 듯 고개 들어 지민 보며) 수학이 완전 쥐약이네? 어떻게 국어점수하구 차이가 이렇게 엄청날 수 있냐?
지민 : 좋아하는 것만 파고드는 나쁜 버릇이 있거든요.
재현 : (웃으며) 그건 변명이 안돼 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니까.
지민 : 제가 지원하는 대학... 가망이 없겠어요?
재현 : 얌마, 내가 점쟁이냐? 앞날을 예언하게? 앞으루 일년 남아있으니까 열심히 해봐 한번.
지민 : ...
씬16. 상담실 복도(D)
상담실 문 열리고 나오는 지민. 나오다 말고 문 안쪽에 대고 씩씩하게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한다.
조용히 문 닫고 돌아서는 순간 표정 어두워지는 지민. 벽에 등을 기댄 채 푸욱 심난한 한숨 내쉰다.
잠시 그대로 서있다가 터덜터덜 걷기 시작하는 지민....
씬17. 도서관(D)
눈으로 누군가를 찾으며 들어서는 지민. 문득 저만치 앉아서 수학문제 풀고 있는 태훈이 눈에 들어온다.
지민 그 쪽으로 간다. 태훈 지민이 다가와도 모르는 채 수학문제 푸는데 집중하고 있다.
지민 : (작게 책상을 노크한다)
태훈 : ? (그제서야 본다)
지민 : 혹시 정연이 못봤니?
태훈 : (자리 둘러보고는) 아까 저쪽 자리에 앉아있었는데... 어디 잠깐 나간 모양인데?
지민 : ... 고맙다. (가고)
태훈 : ... (힘 없어 보이는 지민을 보는)
지민, 정연의 자리 쪽으로 가다가 문득 다른 책상에 앉아있는 형주와 연진도 발견한다.
서로 물어봐가며 수학문제를 풀고 있다. 태훈이 풀고 있던 것과 같은 프린트물이다.
지민 잠시 바라보다가 정연의 자리쪽으로 간다.
정연의 빈 자리에 털썩 앉는 지민... 잠시 그대로 앉아서 기다리다가 문득 어떤 느낌에 슬쩍 책상 위에 놓인 연습장을 들춰본다...
그 안에서 나오는 프린트물... 연진, 태훈, 형주가 풀던 것과 같은 것이다...
지민 : ... (프린트물 바라보며)
정연 : (E) 그게 뭔지 궁금해서 확인하러 온거야?
지민 : ? (보면)
정연 : ... (담담하게 보고 있는)
씬18. 영화반(D)
어두운 표정들로 앉아있는 영화반 아이들.
신화 지금의 상황이 씁쓸할 뿐이고...
정연 : 심화반이라는 단어가 맞는지 모르겠는데 암튼 그 비슷한 모임인건 같애.
아이들 : ...
정연 : 우리 둘 다 할까 말까 고민하던 중이었어. 결정나는대루 영화반 회의 때 말할 생각이었구.
지민 : ... 좋은 기횐데 왜 망설여.
흥수 : 그래서. 결정은 내렸어?
정연 : 신화는 관두구 싶대. 첫모임 까지는 어쩔수 없지만, 학교측의 이런 제안, 이런 방법이 별루 유쾌하지가 않대.
애라 : (심사 꼬여서 틱) 누가 신화 생각 물어봤어?
정연 : 난... 해 볼 생각이야.
유미 : (진심으로) 그래 해야지이. (걱정스러운) 근데 너 거기 공부 따라가려면 많이 힘들겠다. 다섯명 중에 니가 제일 못하잖아.
흥수 : (어휴, 유미 툭 치고)
유미 : (눈치없이) 왜에. 정연이가 오등이니까 제일 못하는거 맞잖아.
정연 : (굳은 채로) ...
동일 : 그럼 졸업생 영상기념사업에 참여하기두 좀 그래지는거 아니야?
신화 : 아니야. 그건 이거랑 상관없어. 그냥 계획대루 진행하면 돼.
정연 : 난 빠질게.
아이들 : (본다)
정연 : 그래 솔직히 나 많이 불안해. 심화반 내 실력으루 좀 부담스러운게 사실이구. 나.. 거기서 뒤쳐지구 싶지 않아.
아이들 : ... (잠시 침묵)
흥수 : 어쨋든 오늘 유미 환영회는 다음 기회루 미뤄야겠다.
애라 : (O.L) 환영회는 말 그대루 돌아온 날을 환영하는건데 미루면 재미없지. 우리끼리 할께 그냥 니들은 편하게 공부 해.
아이들 : ... (어쩐지 냉냉한 분위기가 흐르는)
씬19. 피자집 (N)
떨떠름한 표정으로 피자 먹고 있는 영화반 아이들. (신화, 정연은 없고)
애라 : (피자 한조각 포크로 깨작거리다가 포크 툭 던져버린다)
지민 : 왜? 안먹어?
애라 : 공부두 못하는게 식량만 축내는거 같아 비참해.
흥수 : 하루이틀 겪냐? 먹어 먹어. 공부 못하는 게 몸까지 아퍼 봐. 그런 애물단지가 또 어딨냐?
애라 : 이럴줄 알았으면 영화반에 투자할 시간에 연기학원이나 다닐걸 그랬어.
동일 :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애라 : 특례입학, 수시입학제도두 몰라? 엉덩이랑 타협보구 책상에 앉아봐야 끽해야 두시간 집중인데,
내 주제에 공부해서 대학 들어가겠어?
동일 : 특례입학, 수시입학은 쉽나 뭐.
애라 : 죽어라해두 안되는 놈이 있구, 탱자탱자 놀아두 대학가는 놈이 있구. 세상은 이제 개미와 베짱이의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구.
유미 : 맞아. 십대가수들 여름내내 노래만 불렀는데두 대학만 잘가드라 그치?
동일 : (웃으며) 그 사람들이야 성적 대신 그 분야에서의 능력과 노력을 인정받은거잖아.
흥수 : (한숨) 암튼, 특출나게 공부를 잘하던가, 것두 아님 뛰어난 능력이 있던가,
젤 불쌍한 사람이 바루 우리같이 딱 중간인 애들이라니까.
지민 : ... (우울한 표정 위로)
지민 : (E) 언제 부턴가 아이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기기 시작했어.
씬20. 전철역(N)
벤취에 앉아 전철을 기다리고 있는 지민.
지민 : (E) (웃음) 흥수 말이, 내신과 등급으루 갈라진 인간관계의 벽은
삼팔선이나 베를린 장벽만큼 뼈아픈 역사적, 정치적 의미를 갖는거래...
전철 도착했음을 알리는 안내방송... 안전선으로 가서 서는 지민...
고개 푹 숙인 자세로 노랗게 그어진 안전선을 발끝으로 툭툭 쳐보는 지민....
지민 : (E) 누가 그어놓았는지 모르는 선.... 그 육중한 벽... 세상엔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 안 그래? ....
(F.O)
씬21. 학교 외경(D)
씬22. 2학년 5반 교실(D)
아무도 없는 텅빈 교실에 지민이 들어선다. 자리로 가서 책가방 놓는데 문득 성제의 빈자리가 눈에 들어온다.
성제의 빈자리로 가는 지민. 괜히 그 자리에 한 번 앉아본다.
잠시 그대로 있는 지민...
지민 : (불쑥) 이성제... 너 어디가서 죽었냐? 살아있으면 답장 좀 보내라 답장 좀...
한숨 한 번 푸욱 쉬고 일어서는 지민. 자리로 가려다가 보면 문득 신화의 자리에 놓여있는 가방...
씬23. 후미진 교정 일각 (D)
들어서는 신화... 그 시선에, 양팔로 무릎을 감싸안은 자세로 벽에 기대 앉아있는 세진...
꽂고 있는 이어폰에서 새어나오는 음악소리... 강렬한 비트의 락음악이다.
신화 세진의 옆에 가서 선다.
세진 : ? (어떤 느낌에 이어폰 빼고 신화를 돌아본다) 요즘 이 곳 출입이 잦네? (카셋트 끄고 이어폰 줄 정리하며) 그만큼 혜원이가
자주 그리워진다는 뜻두 되나? 근데 미안해서 어떡하냐. 아직 아무 연락이 없는데?
신화 : 오늘은 너 보러 왔어.
세진 : (손 동작이 멈칫하는)
신화 : 이 시간에, 여기루 오면 너 볼 수 있을꺼 같아서.
세진 : ... (본다)
신화 : 왜?
세진 : (무표정으로) 니가 나 찾을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는 중이야.
신화 : (웃는) 학교로 다시 돌아온거 환영해주려구.
세진 : 유신화 답네. (피식 웃고는 가방 들고 일어서는데)
신화 : (주머니에서 쪽지 한 장 꺼내 불쑥 내민다)
세진 : 뭐야?
신화 : 기말고사 시험범위. 너 수업 빠지는 동안 몇과목 발표 났거든.
세진 : 이게 나한테 필요하다구 생각해?
신화 : 어쩌면.
세진 : (피식 웃으며) 너 이러는거, 이 정도면 취미를 넘어서 직업이다. 니가 무슨 난민구제수용소야?
밑바닥 인생 사는 사람 죄구해겠다구 나서게? 고맙지만 사양하겠어.
신화 : (사람 좋게 웃으며) 고마운데 왜 사양해? 그냥 받으면 되지.
세진 : 너 꿩 대신 닭이라는 말 알지.
신화 : ?
세진 : 난 닭 되기는 싫거든. 누구 대신두 싫구. (간다)
신화 : ... (보는)
씬24. 후미진 교정 입구 (D)
교정 구석에서 나오는 세진. 나오다 말고 멈춰서서 가만히 신화가 남아있는 공간을 돌아본다.
그렇게 잠시 바라보다가 세진 사라지고 나면, 나오는 신화...
교사쪽으로 가려다가 어떤 느낌에 돌아보면, 입구 벽에 기대 선 채 발장난하고 있는 지민.
신화 : 지민아. (다가오며) 언제 부터 여기있었어?
지민 : (불쑥) 너 참 대단해.
신화 : 뭐가.
지민 : 니 도움이 필요하다구 생각되면 지치지 않구 상대방을 보살피는거.
신화 : (웃으며) 세진이? 어렵게 돌아온거잖아. 적응 못하구 힘들어 할까봐 걱정이 됐을 뿐이야.
지민 : ... (보는)
신화 : 안가?
씬25. 2학년 5반 교실(D)
신화와 지민 들어서는데 정연의 자리쪽이 소란스럽다.
지민 ? 해서 빠르게 자리로 간다.
황당하고 기막힌 표정으로 모여서서 정연의 책상 위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
지민 : 무슨 일 있어? 왜 그래?
하다가 정연의 책상 위를 보면 그 위에 놓인 세네권의 참고서... 중간부분을 누군가 칼로 오려내간 듯 텅 비어있다.
굳은 표정으로 아랫입술 잘근 씹으며 바라보고 있는 정연.
지민 : (들춰보며) 이거 정연이 참고서 아니야? 이거 왜 이래?
준경 : 누가 기말고사 시험범위만 칼루 오려갔어.
지민 : 뭐?
준경 : 잔인하다 진짜. 훔쳐갈려면 통째루 훔쳐가지 기분 나쁘게 이게 뭐냐.
용구 : 내 육감으루 종합해 봤을 때 이건 틀림없는 원한관계야.
정연 : ! (순간 본다)
용구 : (형사라도 되는 냥 턱을 쥐고 서서) 칼 쓴 흔적, 방향, 대담한 범행 수법, 기말고사 범위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는 점,
모든 점을 종합해 봤을 때 범인은! (모여있는 아이들 한바퀴 둘러보며) 이 교실 안에 있다고 봐.
아이들 : (괜히 서로를 쳐다보며 긴장하고)
용구 : (도리질치며) 아니아니... 어쩜 범인은 외부에서 침투했을 수두 있어. (읊조리듯) 원한관계... 외부침투...
(예리한 눈빛으로) 김정연.
정연 : (보면)
용구 : 너 혹시 참고서 사고 돈 떼먹은 적 없냐?
정연 : (대꾸할 가치 못 느끼고, 책 챙기기 시작한다)
용구 : 잘 생각해봐 임마. 혹시 서점 아줌마의 원한을 살 만한 행동한 적 없어? 예를 들면 진열대 위에 놓인 책을
육중한 엉덩이로 깔고 앉았다거나, 잡지두 안사고, 브로마이드 달라고 생떼 쓴 적이 있거나,
흥수 : (퍽 때리며) 불난 집 앞에서 촛불 켜구 노냐 지금?
용구 : 잘 생각해 봐 너. 범인 잡아야 한다. 안 그러면 교실에서의 인간관계가 무너져.
흥수 : (끌고 가며) 일루 와. 염장 지르지 말구 일루 와.
용구 : (끌려가며) 내가 자꾸 외부침투로 돌리려는 이유두 어디까지나 교실의 인간관계를 지키려는,
인본주의 수사정신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이거야.
정연 : ...
씬26. 영화반(D)
앉아있는 정연, 지민, 애라, 유미.
유미 : 나 없는 동안 교실 분위기가 왜 이렇게 변했냐? 쌀벌해서 죽겠다 야.
애라 : (추리하듯) 오늘 아침에 누가 젤 일찍 왔지?
지민 : (무심결에 차 마시며) 신화.
정연 : (본다)
유미 : 그럼 혹시 신화가 심화반의 경쟁자인 너를 응징하기 위해,
지민 : 야! (웃으며)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애라 : 근데 지민이 니가 신화가 젤 먼저 온지 어떻게 알어?
지민 : 으응. 내가 교실에 와봤더니 아무두 없구, 신화 가방만 있더라구.
정연 : ... (지민 보는)
지민 : (그 시선에) 왜? (했다가 장난으로) 설마 나 의심하는거야?
정연 : 아니야... (대답없이 나간다)
지민 : (어쩐지 기분 상하고)
애라 : 재 요즘 너무 날카로워진거 아니니? 왜 저렇게 날이 섰어?
유미 : 아까 집에 핸드폰 하는 내용 잠깐 들었는데, 재네 삼수하는 언니, 이번에두 죽쒔나봐.
덕분에 정연이만 들들 볶이는거 같드라구.
지민 : ...
씬27. 2학년 5반 교실(D)
일평의 수업 시간. 어쩐 일인지 평소와는 다르게 졸지도 않고 칠판에 집중하고 있는 아이들.
일평, 칠판에 '2000학년도 수능고사 사회탐구 영역 출제방향'이라는 제목 적어놓고 문제 유형을 분석해주고 있는 중이다.
일평 : 따라서 앞으로 니들이 치루게 될 수능에서는, 다양한 사회현상을 종합적으로 사고, 이해하는 능력을 요구하는 문제,
아이들 : (집중하고 있는 위로)
일평 : (E) 또, 교과서에 나온 개념과 원리를 응용하는 문제가 다수 출제될 전망이다 이거야. 알갔냐?
희진, 아영 : (연습장에 낙서하며 소근대고 있다)
일평 : 거기, 니들 둘. 니들은 대학 안갈꺼지?
희진, 아영 : (조용해지고)
일평 : 정신차려 이 녀석들아. 이제 니들이 고삼이야. 좋은 시절 다갔다 이거야. 이번 기말고사가 을마나 중요한지 알어?
대학 갈 놈, 못갈 놈. 거기서 이미 판가름 나게 되있어.
아이들 : (끄응...)
일평 : 반장. (지민 일어서고) 오늘까지 사회책에 나오는 용어 20가지 정리해오라고 했지? 이번 시간 끝나구 걷어와.
아이들 : (어..? 내일까진데? 웅성이기 시작하고)
일평 : 뭐야. 왜 이렇게 시끄러워?
희진 : 리포트 내일 까지라구 알구있는데요?
일평 : 뭐? 누가 내일까지랬어.
아영 : 반장이요.
일평 : 이 자식들이 근데 정신을 어따 팔구 있는거야! 누구 맘대루 내일까지야.
다른 반 다 수요일루 알구 착착 갖다내는데 왜 니들만 내일까지야?
지민 : 저, 저기요, 선생님 제가 잘못 들은거 같은데,
일평 : (O.L) 헤맹이가 빠져서는 정신 못차리지 니들? 오늘까지 안낸 놈들은 십점 감정 대상 이라는거 알지?
얄짤없이 깎을테니까 알아서들 해. (나가고)
아이들 : (아으으... 반장 뭐야아! 불만의 소리 터져나오고)
지민 : (난처한)
씬28. 교무실(D)
들어서는 일평, 출석부 꽂고 너무너무 즐거운 표정으로 자리로 온다.
광도 : 아니, 뭐가 그렇게 즐거워서 화색이 만발입니까?
일평 : 낄낄. 요즘만 같으면 2학년 수업할 맛 나겠어. 힘들게 매 안들어두 눈에 힘 한 번 팍 주구, 대학! 이러면
한 번에 기선제압이 된다니까.
광도 : 거 약발 오래 안갑니다. 수능 끝나구 한때예요 한때.
복만 : 하여간 자식들, 자유가 어떻구, 개성이 어떻구 까불어두 결국은 대학 앞엔 강자 없다니까요. 지들 스스로 알아서 기잖아요.
광도 : 누가 아니래? 어른들의 기성세대를 깨부수자, 간섭하지마라, 우리 뜻 대루 살겠다, 노래 부르던 댄스가수들두
때 되면 활동 접구 대학 가려구 용쓰잖아. 노래 따루, 현실 따루인게 현실이야.
정인 : 어떻게 보면 안쓰럽죠 뭐. 초등학교 때 부터, 일류대 보내기 전쟁 속에서 큰 애들이잖아요.
대학을 갈까 말까 망설여 본적두 없이 무조건 가고 봐야되는 데루 알구있는게 사실이구요.
재현 : 안쓰럽죠. 황금같은 젊음과 물질을 온통 대학에 바쳐야 하잖아요. 자유롭게 잘 살다가두 때 되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점수에 목 매달아야 되니, 신경은 또 을마나 날카로워지겠어요?
씬29. 2학년 5반 교실(D)
교탁 앞에 나와 서있는 지민.
마치 공개비판이라도 받고 있듯이 흥분하고 있는 아이들의 불평을 듣고 서있다.
희진 : 니가 분명히 목요일 까지라구 했잖아!
아영 : 맞아. 간만에 숙제 한 번 했는데 니가 내일 까지라구 해서 안갖구 왔잖어.
희진 : 오늘 가져온 사람꺼만 갖다내는 법이 어딨냐? 내일 단체루 갖다내. 그래야 맞는거지.
형주 : 점수 깎는다잖아. 몇사람만이라두 구제되야지. (지민 보며) 반장. 오늘 낸 사람꺼는 오늘 갖다 내.
아영 : 그러는게 어딨냐? 재 디게 웃긴다.
지민 : (한숨 한번 내쉬고) 알았어. 알았어. 그럼 이렇게 하자. 어쨋든 잘못 전달한 내 책임이니까, 오늘 가져온 사람들은 오늘 내고,
아이들 : (그러는게 어딨냐... 말도 안된다...)
지민 : 끝까지 들어봐! 내일 내는 사람들은 점수 안 깎이도록 책임지구 내가 선생님한테 잘 말씀 드려 볼게.
동일 : 그래. 선생님두 괜히 기선제압하려구 그러시는거지 설마 점수를 깎으시겠어?
아이들 : ... (꿍얼꿍얼 대지만 다소 진정되는 국면인데)
태훈 : (교실 뒷문으로 들어오며) 반장. 이번 시간 시간표 바꼈다는 어떻게 된거야?
지민 : 뭐?
태훈 : 가서 알아봐. 이번 시간이 체육이라던데?
형주 : 뭐야 또. 정의적 영역 10%니 뭐니 감점되는거 아니야? 반장 너 뭐하는거냐 도대체?
지민 : ... (울컥 치솟지만 꾹 누르고) 알아보고 올테니까 체육복 갈아입구 있어봐. (나간다)
씬30. 교정 일각(D)
씩씩 대며 나오고 있는 지민. 문득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서더니 숨 한 번 크게 내쉰다.
지민 : 참자. 참자. 인간성 좋은 윤지민이 참자. (마음을 다스리고는 교무실로 간다)
씬31. 2학년 5반 교실(D)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아이들 대기중이고. 정연 창백해진 얼굴로 책상에 누워있다.
유미 : 너 벌써 고삼병 오나 부다. 멀쩡한 위가 왜 자꾸 고장 나니?
정연 : (안되겠는지 일어나는)
애라 : 양호실 가게?
정연 : 응.
유미 : (일어나며) 같이 가줄까?
정연 : 됐어. 혼자 갈래. (힘없이 나간다)
씬32. 교무실(D)
지민 이번엔 선생님들한테 깨지고 있다.
복만 : 이 자식이 근데 정신은 어따 외출시키구 헤벌레하구 다녀? 저번 시간에 시간표 바뀐다구 미리 예고했어 안했어?
지민 : 죄송합니다.
복만 : 얼렁 가서 애들 운동장으로 집합시켜.
지민 : (꾸벅 인사하고 나가려는데)
일평 : (손 씻고 들어서며) 윤지민. 리포트 왜 안 걷어와?
지민 : 아차, 걷었는데 안 가지구 내려왔어요. 죄송합니다.
일평 : 너 벌써 치매 오냐? 아님 요즘 무슨 고민 있냐?
지민 : 아니예요. (꾸벅 인사하고 나간다)
재현 : ... (안쓰러워서 보는)
씬33. 2학년 5반 교실(D)
아이들 운동장으로 이동하고 있고,
교탁 앞에 지민, 손은 아무렇게나 걷혀진 리포트 번호대로 정리하며 입으로는 연신 '빨리 이동해 빨리' 외치고 있다.
태훈, 뒷문으로 나가다가 문득 그런 지민을 바라본다. 안쓰럽다...
씬34. 교실 복도(D)
아이들 다 빠져나간 텅 빈 복도.
지민, 한손엔 걷은 리포트 뭉치 들고, 교실문 잠그고 있다.
열쇠 주머니에 놓고 복도 중간 까지 가다가 우뚝 멈춰서는 지민. 고개 한 번 갸웃하고는 걷은 리포트 순서를 확인해본다.
지민 : (혼잣말) 정연이꺼가 빠졌네.... 아까 해왔다구 했는데...?
지민, 다시 교실 쪽으로 가서 열쇠로 문 연다.
씬35. 2학년 5반 교실(D)
들어서는 지민, 정연의 자리 쪽으로 간다. 서랍을 뒤져 리포트를 찾느라 참고서 몇권 책상 위에 꺼내놓는데,
정연 : (E) 지금 뭐하는거야?
지민 : (보고) 어 정연아 리포트 걷다보니까 니께 빠진거 같아서,
정연 : ... (보는)
지민 : ... 왜에?
정연 : 아니야. (책상 서랍에서 리포트 꺼내준다)
지민 : 왜 날 그런 눈으루 봐...?
정연 : 내가 널 어떤 눈으루 봤는데?
지민 : 너 혹시, 정말 나 의심하는 거야?
정연 : ... 안 나가? 먼저 나간다. (나간다)
지민 : ... (기막힘 + 서운함)
씬36. 영화반 옥상(D)
지민 옥상 난간에 턱괴고 우울한 표정으로 하늘을 보고 있다.
들어서는 신화. 체육 수업 끝내고 오는 길인지 체육복 차림이다.
신화 : 수업 안들어오구 여깃었어?
지민 : (그 자세 그대로) ...체육선생님이 아무말 안해?
신화 : 몸이 좀 안좋아서 양호실에 있다구 변명해 줬어.
지민 : ...누가?
신화 : 정연이가.
지민 : ...
신화 : ... (지민 옆에 서서)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지민 : 요즘... 교실이 너무 차갑게 느껴져.
신화 : ...? (보는)
지민 : 누군가랑 고민을 나누구 싶어두, 다들 각자의 고민의 무게에 눌려있으니까 말을 못 붙이겠구,
그렇게 다들 각자의 고민에 치여 사니까 다들 자기 아픔만 생각하게 되구... 서로 경계하구... 의심하구...
신화 : ...
지민 : 가끔 말이야, 그런 차가운 교실 속에 앉아있다 보면 따뜻한 시선이 필요할 때가 있거든.
그건 힘들어 하는 사람들 한테 참 많은 힘이 돼.
신화 : ... (미소) 그건 이성제 전공이었는데...
지민 : 성제한테 연락 온 적.. 있니?
신화 : 아니.
지민 : 그 자식 참 나쁘지. 편지 보냈는데 답장이 안온다?
신화 : ? 그 녀석 주소 알어?
지민 : 아니... 그냥 천사원으로 보냈어. 혹시라두 들리면 전해주지 않을까 해서...
신화 : ... 잘 살고 있을꺼야.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잖아.
지민 : ...
씬37. 2학년 5반 교실(D)
종례후. 아이들은 다 빠져나갔고. 지민 주위로 모여있는 영화반 아이들.
애라 : (지민의 눈치 살피며) 미안해... 난 별루 생각이 없는데... 엄마가 덜컥덕 학원에 등록해버렸잖아.
관둘 때 관두더라두 첫날은 한 번 나가봐야...
지민 : ...(웃으며) 알았어. 가봐. 비싼 돈 주구 끊었는데 가야지.
애라 : 미안해... (가방 들고 아이들 눈치 살피며) 먼저 갈께....(나가고)
신화 : 정연인 괜찮겠어?
정연 : ... 나두 가서 좀 쉬구 싶은데 몸이 좀 안좋아서.
흥수 : 오늘 회의 아작난거네 뭐.
지민 : ...아작은 무슨. 내일 하면 되지.
동일 : ... (지민 보다가 밝게) 나가자. 내가 오늘 쏠게.
유미 : 진짜? 이야, 신난다. (가방 들고 일어나며) 빨리 가자 그럼.
흥수 : 어이구, 저 철딱서니.
아이들 가방 들고 일어나는 분위긴데 지민 그대로 앉아있다.
신화 : 안가?
지민 : 어, 나 아직 가방 안 챙겼거든? 먼저들 가구 있어. 금방 따라 갈께.
신화 : ... (보다가) 빨리 와 그럼.
'알았어' 씨익 웃는 지민, 아이들 교실 빠져나가면 지민, 책가방 챙기며 표정 우울해진다.
어느 순간 우울한 표정 지우고 씩씩하게 가방 들고 일어나는 지민.
가라앉는 기분 떨쳐내듯 짐짓 씩씩하게 교실을 빠져나가다가 멈칫 성제 자리쪽을 본다.
지민 : (화풀이 하듯) 이 성제 너 참 나쁜 자식이야 알어?
하고는 화풀이하듯 성제의 책상을 발로 뻥 깐다.
책상 쓰러져서 의자에 걸터지고, 지민 아야얏! 발아파 깽깽이 뛰며 한바퀴 도는데,
쓰러진 책상 서랍에서 나온 듯 바닥에 떨어져 있는 편지 한통!
순간 두 눈이 동그래져서 멈춰서는 지민...
지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두 눈을 손등으로 비비고 편지 겉봉 확인해본다.
컴퓨터 글씨로 뽑은, '윤지민 앞'이라는 글자...
지민 : (눈 동그래진 채로) ...!
지민 : (E) 이성제... 정말 너야...?
씬38. 지민의 방(N)
책상에 앉아 편지 뜯어보고 있는 지민....
편지에 적힌 글... (역시 컴퓨터 글) '행복공식 H= LOW (Happy = Love x Optimism x Work)'
지민 : (E) 행복해지기 위한 세가지 조건. 사랑하는 마음... 낙관적인 태도... 언제나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
H는 L.O.W..행복은 낮은 곳에 있다...?
지민 누굴까....? 생각해보는 얼굴... 어느순간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 듯 눈빛 반짝이는데서...
씬39. 정연의 집 앞(N)
들어서는 지민, 정연의 집 쪽을 한 번 올려다 보고는 핸드폰 꺼내 번호 찍는데, 입구에서 나오는 정연.
지민, 얼른 핸드폰 접고 정연을 부르려는데, 정연 입구에 서있는 독서실 봉고차에 올라탄다. 이내 출발하는 차..
지민 : ... (보며)
씬40. 독서실(N)
연습장에 수학문제 열심히 풀고있는 정연. 문득 책상 위에 올려놓은 핸드폰이 불빛을 내며 진동벨을 울린다.
정연, 얼른 주위 눈치 보며 슬쩍 핸드폰 열고 받는다.
정연 : (엄만줄 알구 짜증 섞인) 잘하구 있으니까 전화하지 말랬잖아요.
지민 : (F) 나야 정연아....
정연 : 어... 지민이구나...
지민 : (F) 지금... 어디야?
정연 : 어어... 집. 몸이 안 좋아서 막 자려던 중이었어. 아니야 공부는 무슨...
씬41. 건물 앞 거리(N)
지민 : (핸드폰 들고) 그래에....? 그래 그럼 푹 쉬어. 아냐... 다음에 얘기하지 뭐. 그래...
지민 핸드폰 덮고 한숨 내쉰다. 문득 건물을 올려다 보면, 그 곳에 불 밝히고 있는 독서실 간판...
지민 : (E) 보이지 않는 선... 그 육중한 무게의 벽...
우울하게 바라보는 지민의 표정에서...F.O
씬42. 학교외경(D)
씬43. 도서관(D)
형주와 태훈, 심화반 수학프린트물 들고 들어서고 있다.
형주 : 어제 뭐했냐? 집에두 없구 핸드폰두 안되구. 어디, 갔었어?
태훈 : (피식 웃으며) 여자친구 만났어.
형주 : 또?
태훈 : 또는 무슨. 아직 두 번 밖에 안 만났는데.
형주 : 사건이다. 한태훈이 두 번씩이나 만나는 여자가 다있구. 언제 보여줄래?
태훈 : 때 되면. (하고는) 먼저 자리 잡아. 나 서가에서 찾아 볼 책이 좀 있어.
형주 : ... (저 녀석 뭔가 있는데...)
씬44. 2학년 5반 교실(D)
지민 졸업생 영상기념사업 기획안 정리하고 있는데, 정연 들어와 책가방 푼다.
지민 : ... 괜찮아?
정연 : 어제 하루종일 잤더니 괜찮아졌어.
애라 : 어떡하냐? 천하의 김정연이가 어제 공부 하나두 못했겠다?
정연 : 그런 날두 있는거지 뭐. (미소 짓고는 연습장 꺼낸다)
지민 : ... (그런 정연 보는데 그 앞에 불쑥 내밀어지는 리포트 뭉치들) ? (보면)
준경 : 사회선생님이 도루 갖다주랜다.
지민 : 뭐?
준경 : 니가 벌써 리포트 걷어갔다길래, 개인적으루 갖다내려구 교무실에 갔더니 하루 늦었다구 안 받아주겠대.
이것들두 다 도루 갖다주래.
아이들 : ! (본다)
지민 : ! (리포트 뭉치 들고 나가는)
씬45. 교무실(D)
지민, 일평에게 애원하고 있다.
일평 : (의자 돌려 앉은 채 신문 읽으며) 글세 안받는다니까. 도루 가져 가.
지민 : 선생니임... 저 애들 한테 죽어요오.
정인 : (거드는) 그래요 선생님, 잠깐 실수 한건데 한 번만 봐주세요.
일평 : 너 수능 시험 볼 때두 시간 깜빡하구 답안지 늦게 낼꺼야? 지금부터 정신 차리지 않으면 나중에 큰 실수 하는거야.
도루 가져가.
지민 : ...
정인 : ... (안쓰러워 보는)
씬46. 2학년 5반 교실(D)
지민 시무룩한 표정으로 들어와 교탁 앞에 선다. 아이들 떠들고 있다가 지민 본다.
동일 : 어떻게 됐어?
지민 : (리포트 뭉치 교탁 위에 내려놓으며) 안받겠대.
희진 : 뭐야아. 니가 책임진다 그랬잖아.
아영 : 이럴꺼면 차라리 수요일팀, 목요일팀 같이 냈었어야 공평하지이.
지민 : 안그래도 그렇게 냈어.
형주 : 뭐? (순간 본다)
아이들 : (웅성이고)
형주 : 윤지민 너 왜 사람이 앞에서 말할 때 다르구 뒤에서 하는 짓이 다르냐?
지민 : (본다)
형주 : (화내지 말고 차분히) 애들한텐 수요일팀, 목요일팀 양쪽 다 전혀 불이익 없이 처리하겠다,
더 이상 아뭇 소리 못나오게 해놓구는, 뒤에서 니 맘대루 단체행동 조정 하는건 무슨 경우냐 도대체.
지민 : (따지는게 아니라 차분히) 점수 10점 깎이는게 그렇게 아깝니?
태훈 : (짐짓 냉정하게) 형주 말은 그런 뜻이 아니잖아. 넌 민주적인 의사발언을 무시했어.
그럴꺼면 그렇게 하겠다 솔직하게 말을 했어야지.
희진 : 혹시 너 니가 숙제 안가져와서 그렇게 낸거 아니야?
지민 : ... (굳고) 서희진, 한아영.
희진, 아영 : 왜?
지민 : 니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성적에 신경썼어?
희진, 아영 : (기막힌) 머?
지민 : (아이들에게) 니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성적관리에 신경 썼어? 그래 단체행동 조작 좀 했다.
떨어지는 잡일은 많구, 도와주는 사람은 하나없구, 너무 벅차구 귀찮아서 한꺼번에 갖다냈다 왜.
신화 : ...
지민 : 니들 나 반장으루 뽑을 때 뭐라구 했냐, 부반장은 필요없다, 우리 반 모두가 부반장이 되서 도와주겠다, 그랬었어 니들.
그랬던 애들이었다구 니들이.
아이들 : ...
지민 : 근데 언제부터 이렇게 됐냐? 언제부터 점수 십점에 그렇게 목숨 걸구, 언제부터 니들 생각만 하게 됐느냐구!
정연 : ....
지민 : 나는 뭐 좋아서 헤헤거리구 다니는 줄 알어? 나두 힘들어. 별루 찬란하지두 않은 성적에 반장이라는 타이틀 달구 사는게
버겁구 치사해서 나두 힘들다구! (나가버린다)
태훈 : ...
씬47. 교정 일각(D)
태훈 눈으로 지민을 찾으며 나오고 있다. 그 시선에 저만치 혼자 앉아있는 지민.
태훈 그 쪽으로 간다.
태훈 : 그 불같은 성질은 도대체 언제쯤 고칠꺼냐?
지민 : ...
태훈 : 백번 잘해두 한 번 잘못하면 나머지 백가지를 몽땅 잊어버리는게 인간이란 동물이야. 몰랐어?
지민 : ...
태훈 : 참지 못할꺼면 그때 그때 터뜨리구 살던가, 참았으면 끝까지 참어.
지민 : 한태훈....
태훈 : ? (보면)
지민 : 이럴땐 힘내라구 말해주는거야.
태훈 : .... !
지민 : 니가 걱정이 되서 왔다구... 넌 아주 잘하구 있다구, 그렇게 말해줘야 되는거라구.
태훈 : ....
지민 : 왜 사람들은 자기 고민에 빠지면 남들에겐 그렇게 차가워지는 걸까?
같은 말이라두 한 번 뎁혀 말하면 듣는 사람에게 참 따뜻한 위로가 될텐데.
태훈 : ...
지민 : 무섭드라.
태훈 : 뭐가?
지민 : 뭐가? 차가운 교실이.. 차가운 눈빛들이. 자기만 생각하는 차가운 말들이. 무서워.
이렇게 꽁꽁 얼어붙다가 쨍그랑 깨질꺼 같아...
태훈 : ...
씬48. 영화반(D)
모여있는 영화반 아이들.
지민 : 졸업생 영상집 말야.. 대행업체에 맡기기루 했어.
아이들 : ! (본다)
지민 : 그러니까 니들 오늘부터 자유야. 이제 속이구 독서실 안가두 되구, 눈치보면서 학원 안 다녀두 돼...
정연 : ....
신화 : 그거... 꼭 해보구 싶어했잖아.
지민 : 하구 싶은거 다하구 살면 어떻게 대학가냐? 밝은 내일을 위해 오늘은 좀 암울하게 보내기루 했다.
아이들 : ... (서로 시선 교환하는)
지민 : 가자. (가방 들고 일어나다가) ? 안가?
아이들 : ...
씬49. 전철역(N)
우울한 표정으로 벤취에 앉아있는 지민.
지민 : (E) 행복해지기 위한 세 가지 조건이 있다구 했지? 사랑하는 마음... 낙관적인 태도... 언제나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
오늘 그 마지막 조건을 깨끗이 포기했다. 나... 이제, 그 세 가지 중 어느 것 하나두 자신 없어진다.
지민 깊은 한숨 내쉬더니 귀엽게 코 한 번 쿨쩍인다.
지민 : 이상하다....? 슬프지두 않은데 왜 자꾸 눈에서 물이 나오려구 하지....?
하고는 배낭 앞 주머니에서 티슈 찾아 꺼내든다.
꺼내들다가 문득 어떤 느낌에 멈칫하는 지민. 가방 속에서 뭔가를 발견한 듯 찾아서 꺼내든다. 또 편지다.
씬 37과 똑같은 편지봉투에, 똑같은 글씨체로 겉봉에는 역시 '윤지민앞'이라고 적혀있다.
지민 : .... ! (편지 열어보는)
씬50. 지민의 집 앞(N)
누굴까....? 추리해내듯 깊은 생각에 잠겨 걸어오고 있는 지민. 문득 지민의 핸드폰 벨이 울린다.
그제서야 생각에서 깨어나며 핸드폰 꺼내 받는 지민.
지민 : 여보세요?
정연 : (F) 나야 정연이....
지민 : (웬지 어색한) 어어... 웬일이야?
정연 : (F) 지금 어디야? 얼굴 좀 봤으면 좋겠는데...
지민 : 어... 나 지금... (변명거리 찾다가) 치, 친구 만나러 가는 중이었는데...
정연 : (F) ....
지민 : .... 여보세요?
정연 : (F) 너하구 거짓말은 참 안 어울려...
지민 : .... ? (해서 핸드폰 봤다가 어떤 느낌에 고개 들어보면)
지민의 집 앞 벽 뒤에서 핸드폰 접으며 나오는 정연..
정연 : (쓰게 웃으며) 거짓말은 나같은 애나 하는거야...
지민 : ...
씬51. 찻집(N)
뜨거운 찻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두 아이.
정연 : 그 동안... 나 정말 우스웠지?
지민 : 아니...
정연 : (본다)
지민 : 잘은 모르지만 어쩜 공부를 잘하는 애들이 더 힘들지두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
정연 : ... (본다)
지민 : 점수랑 석차가 게시판에 공개되니까 남과 비교되는 일에 더 예민해질꺼구,
그거 땜에 친구가 하루아침에 미움과 경쟁의 상대로 보이기두 할테니까.
정연 : ...
지민 : 요즘... 많이 힘드니?
정연 : (순간 쿡, 터지는 눈물)
지민 : ? (당황해서) 정연아?
정연 : 난 내가 무서워.... 자꾸 독하게 변해가는 내가 너무 무서워...
지민 : ...
정연 : 심화반에 앉아있으면 남들 몰래 쌈닭으루 길러지는 기분이 들어 비참해.
그러면서두 그 속에서 버텨보겠다구 바둥대는 내가 정말 우스워.
지민 : ....
정연 : 내가 이만큼 공부했다고 말하면 상대방이 더 공부하게 될까봐, 내가 공부한게 제대루 공부한걸까 불안해서
늘 깎아서 말하구 거짓말 하는 내가, 정말, 한심하면서.. 불쌍해...
지민 : ... (안쓰러운) 정연아...
정연 : 미칠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변해가는 나 때문에 숨이 막혀....
지민 : ... (맘 아픈)
씬52. 지민의 방(N)
들어서는 지민... 책상 위에 책가방 올려놓고 의자에 앉는다.
문득 가방에서 편지를 꺼내는 지민...
편지의 내용을 생각하듯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지민, 어느순간 다이어리를 꺼내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지민 : 애라니? 어 난데... 내일 준비물있는걸 깜빡했다 야. 안 가져오면 죽음이니까 꼭 가져와야 된다?
(의미있게 웃는데서)(F.O)
씬53. 등교길(D)
이른 아침. 동일과 흥수 등교하는 중이다. 둘 다 한 손에 비닐봉지 들고 있다.
재현 : 어이, 2학년 5반!!
동일, 흥수 : ? (봤다가) 안녕하세요! (꾸벅 인사한다)
재현 : 웬일이냐? 이렇게 일찍?
동일 : 아침에 영화반 모임있거든요.
재현 : 그래? 근데 그건 뭐냐?
흥수 : 몰라요? 영화반짱이 안가져오면 죽인다구 해서 가져가는건데요?
재현 : 지민이가? 뭔데 그게?
동일 : (자기 봉투 들어보이며) 이건 상추구요.
흥수 : 이건 깻잎인데요?
재현 : 무슨 농촌영화 찍냐? 웬 상추랑 깻잎?
지민 : (E) 다들 가져왔겠지?
씬54. 영화반(D)
들어서다 만 자세로 벙찐 표정 짓고 있는 아이들. 모두들 손에 비닐봉지 하나씩 들고 있고.
영화반 테이블 위에 놓인 이동가스레인지, 그 위에 구워지고 있는 삼겹살.
테이블에는 이미 접시와 종이컵, 젓가락 등이 셋팅되어 있다.
지민 : 뭐야? 안가져왔어?
아이들 : 아니... 가져왔어...
하면서 가져온 것들 테이블 위에 풀어놓는다.
신화의 음료수, 유미의 쌈장, 애라의 포장용 김치, 정연의 야채, 흥수, 동일의 상추와 깻잎...
지민 : 차식들 엄청 겁 먹었구만, 제대루 준비해 온 걸 보니.
흥수 : 근데 이게 다 뭐냐?
지민 : 보면 모르겠냐? 기말고사 보기 전에, 고삼 되기 전에 힘내자는 의미에서 의기투합 하자는거지.
아이들 : ....(보고)
지민 : 공부하는덴 뭣보다 건강이 최고잖냐. 먹구 죽은 귀신은 때깔두 곱다드라.
아이들 : ... (흐믓한 미소)
지민 : 야야, 고기 탄다 고기. 아, 뭐해? 덤벼 얼른! (하면)
아이들 : (씨익 웃고는 젓가락 들고 덤비는데서)
씬55. 2학년 5반 교실(D)
조회전. 지민 들어와서 교탁에 가서 선다.
지민 :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와 밝고 씩씩하게) 야야! 삼교시 음악으루 바꼈거든? 다른데 가서 헤매지 말구 제대루 찾아와.
나 분명히 전달했다~ (하고는 자리로 와서 단어장 꺼내 연습장에 써가며 외우기 시작한다)
정연 : (그런 지민을 미소로 보는)
지민 : (시선 느끼고) ? 왜..?
정연 : ... (미소로) 너 다시 제자리루 돌아왔구나.
지민 : 나야 원래 단순하잖냐.
정연 : 뭐가 널 제자리루 돌아오게 했어?
지민 : (픽 웃는)
정연 : ...? 왜 웃어?
지민 : (대답 대신 책상 서랍에서 예의 그 편지 꺼내 들어보인다)
정연 : 그게 뭐야?
지민 : 편지. 날 제자리루 돌아오게 한 편지.
정연 : ....?
지민 : (E) 그가 혹은 그녀가 누구여도 상관없다. 누군가 나를 바라봐주는 시선이 있다는 것...
그것 만으로두 교실에서 느껴졌던 냉기가 조금은 가시는 느낌이 든다....
형주와 태훈의 자리.
형주 : (수학 문제 풀고 있다가) 이거 좀 헷갈리네... 한태훈, 너 올림피아드 문제 다 풀었지? 그것 좀 잠깐 보여주라.
태훈 : (프린트 파일 꺼내 넘기는데 언뜻 그 안에서 보이는 편지...)
형주 : 뭐야? 무슨 편지같은데?
태훈 : 아무 것도 아니야. (프린트 건네 주고 무표정으로 책 보는 모습 위로)
유나 : (E) 난 못 전해주겠어요.
씬56. 패스트 푸드점(D)
테이블 위로 내밀어지는 서너개의 편지봉투들. 지민이 성제에게 보낸 것들이다...
피자를 사이에 두고 앉아있는 천사원 유나와 태훈.
유나 : 오빠가 전해주세요. 난 못하겠어요. 지민언니가 실망하면 어떡해요?
태훈 : ... (편지 보는)
유나 : 우리두 성제 오빠가 어디서 어떻게 지내구 있는지 아직 잘 모른단 말이예요.
태훈 : ... (생각해 보다가) 알았어. 오빠가 실망하지 않도록 잘 전해줄게.
유나 : 진짜요?
태훈 : 그럼. (유나 앞머리 헝크러트리며 웃는) 여자친구 부탁인데 들어줘야지.
유나 : (웃는)
태훈 : (E) 혼자다, 외롭다, 세상이 차갑다고 느껴질 땐... 어디선가 몰래 너를 바라보고 있는 따뜻한 시선이 있다고 생각해...
단지 니가 그걸 모르고 있을 뿐이라고...
씬57. 몽타쥬(N)
-뜨거운 찻잔에 대어져 있는 지민의 편지. 물러진 봉투 입구를 살살 떼어내는 태훈...
-진지한 표정으로 편지를 읽고 있는 태훈...
-노트북 꺼내놓고 답장 쓰는 태훈...
-씬 22 성제의 자리에 앉아있던 지민, 신화의 가방을 보고 나가면,
잠시 텅빈 교실 그대로 두었다가... 잠시 후 나타나는 태훈... 성제의 빈 책상 안에 편지를 집어넣는다...
태훈 : (E) 누군가 너를 바라보며 숨겨둔 그 마음이 받구 싶어질 땐 너 역시 다른 누군가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봐...
차가움이 전염되듯... 따뜻함도 그렇게 전염되는거야
씬58. 2학년 5반 교실(D)
아이들과 함께 편지를 보고 있는 지민과
무표정으로 책을 읽고 있는 태훈의 모습이 부감으로 한 화면에 잡히는 위로....
태훈 : (E) 너도 한 번 보내봐. 웃음을... 희망을... 사랑을... 따뜻함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그렇게 조금씩 전염이 되면서 천천히 사라져가는거야.
화면 부감으로 점점 멀어지는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