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북 고창 선운사 - 고창 고인돌군 - 광주박물관
조금 틈이 난 커텐사이로 날이 새고 있다.
6시가 조금 넘었나보다. 옷을 살그머니 주워입고 모텔을 혼자
빠져나와 선운사로 향했다. 산너머 하늘이 푸르름을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고 그 뒤로 붉은 기운은 아마 도 일출의 여운이겠지. 새벽공기가
차갑지만 짜릿하니 상쾌하다.
혼자 먼저 선운사로 향하는 이유는 사진에
사람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또 사진찍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니
나중에 남편과 딸이 와서는 그냥 보고 가기만 하도록 하려는 나름대로의
지극한(^^) 배려에서이다. 8시 이전에는 입장료도
무료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사람이
없어 아직도 잠자는 듯한 산사는 깊고 조용한데 새소리가 아침을 시작한다. 붉으레한
단풍과 노란 활엽수들이 흐르는 맑은 냇물에 떨어져 조용히 흘러가고
있다. 발밑에서 사각 사각 모래 밟는 소리가 요란스러울 정도로 적막하고
빗자루 자국이 나있는 듯 깔끔한 경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이 매달린 주홍빛 감을 어떻게 따나 쓸데 없는 걱정도 한다.
 명경같은
냇물위의 단풍잎이 발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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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히
흐르는 냇물위에 점점이 낙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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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한 동백숲(천연기념물 184호)은 절 뒤쪽
비스듬한 산기슭에 병풍같이 넓게 퍼져있는데 꽃봉오리를 한가득
매달고 있는 것을 보니 冬栢(겨울에 피는 동백)인가. 눈내리는 한겨울에 붉은 꽃송이를 피워내는 선운사 동백꽃의 고아한 자태는 시인, 문인화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 안에 앉아 있는 건물들이 편안하다.
 대웅보전
(보물 2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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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보전
빗살문 4분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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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산전
- 안에서 찍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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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운산(일명
도솔산)에 자리잡은 선운사는 신라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설과 백제 위덕왕 24년(577)에 고승 검단이 창건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한다.
선운사는 전북 고창군 선운산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이다. 조선
후기 선운사가 번창할 무렵에는 89개의 암자와 189개에 이르는 요사가 산중 곳곳에 흩어져 있어 장엄한 불국토를 이루기도 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도솔암,참당암,석상암,동운암 등의 암자가 있고 선운사를 "큰절",도솔암을 "작은절"이라고 일컫는다. 천왕문,만세루,대웅전,영산전,팔상전,명부전.산신각 등 10여개의 건축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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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만세루-다듬지 않은 자연목을 껍질만 벗기고 쓴 것이 특이하다.
설법을 위한 강당.
대웅전앞에
있는 6층 (원래 9층)석탑이 구름과 어울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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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릇
혹은 상사화라고 하는 꽃인데 9월에 피고 이제는 난같은
뾰족한 푸른 잎들이 선운사 전역에 삐죽 삐죽 나와있다.
선운산의 습한기운을 머금고 싱싱하고도 처연하게 꽃을 피우는데 젊은 스님을 사모하던 마을 처녀의 애절한
사연을 담고 처녀의 무덤가에서 피어났다고 한다 -
사진, 엠파스 전라도 기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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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공기 좋고 넓직한
선운사 경내를 이리 저리 다니다 보니 해가 많이 올라왔다. 빠른
걸음으로 내려와 남편, 딸과 근처의 식당으로 아침을 먹으러 갔다. 선택할
만큼 많은 집이 문을 열어 놓고 영업을 하지 않아 우거지국과 콩나물국으로
아침을 해결 하고 세식구 함께 다시 선운사로 향했다.
아까는 보이지 않던 입구의
"자연보호"라고 쓴 콘크리트 탑이 흉물스럽고 자연을 더 망치고 있다는 것을
왜 모를까. 아침에 올라갈 때는 보지 못했었는데 남편이 발견했다. 이번엔 세사람의 입장료
2600 x3 = 7800원을 내고 입장했다. 아까는 통쾌했었는데 결국엔
입장료를 내게 되는구먼. 하하, 우리나라 문화재 보호에 내 돈이 쓰이다면야.
대웅전 옆 관음전에 조선초기의 금동지장보살(보물
279호)의 두건 쓴 모습도 새롭고 만세루 큰 강당의 자연그대로 깎지
않은 거대한 나무 기둥이 신기하고 영산전의 희귀한 우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목조 삼존불상도 보았다. 동백꽃이 한창 피어 있고 그 큰꽃을
후두둑 떨어뜨리는 것도 딸에게 보여줬으면 좋으련만 시기가 안맞으니
다음 기회를 기대해 보아야겠다. 탑을 보거나 불상을 보거나 내가
알고 있는 명칭과 조그만 상식들을 딸에게 얘기해 주며 관심을 가지도록
하였다.
이곳에 왔었다는 표시로 아빠와 나란히 사진도
찍어주고 (나는 사진에 안찍힙니다^^) 꽃무릇 잎이 무성히 올라와
있는 부도군앞을 지나 선운사를 뒤로 하였다. 도솔암을 보지 못하면
선운사를 못 본 것과 같다는데 도솔암까지 3.2Km, 족히 왕복 2시간이
걸릴 것 같아 아쉬운 채 돌아섰다.
선운사 동구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니다 그것도 목이쉬어 남었습니다
미당 서정주 시 (서정주님
생가가 고창에 있어 서정주님의 선운사 사랑이 묻어있다) |
선운사에서 15분 거리에 떨어져있는
고창읍 죽림리의 고인돌군(지석묘군)은 2000년 11월 세계문화유산 으로 지정되었다.
그냥 마을옆의 넓은 들인가 했더니 커다란 자연석 같은 것이 곳곳에
흩어져 있고 하나 하나 번호가 붙여져 있다. 어떻게 고인돌인 줄
알았을까. 커다란 돌밑을 보면 그래도 조그만 돌로 고여 놓아 고인돌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모두 440여기의 다리가 짧은 남방식 고인돌군이다.
30톤이 넘는 고인돌의 거대한 돌을
운반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남성 인력이 필요 했을지. 그 남성인력을 이끌어 나가는
족장의 권력은 어떠했을까. 그 집단의 조직력은 얼마나 철저했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돌의 채집과
운반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 지 청동기 시대의 이러한 집단은 후에 나라를 이루는
모체가 되지 않았을까.
 고창
죽림리의 남방식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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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넓은
들에 넓게 퍼져있는 고인돌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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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림리
남방식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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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에 있는 집의 감나무에
커다랗고 탐스런 대봉감이 한 개 달려있다. 남의 것 따올 수는
없고 카메라에 담아오는 것은 괜찮겠지. 개 짖는 소리가 심상치
않다.
가을 벼추수가 한참인 들판에 볏단을 말리는 모습이 한가로운데
길가마다 벼를 말리고 있는 곳에는 노인 한분이 꼭 지키고 계신다.
벼를 가마채로 훔쳐가거나 차에 커다란 흡입기를 달고 벼 펴놓은
멍석옆을 한번 지나가면 그 일년 농사벼가 눈깜짝할 사이에 다 없어져
버린다나. 노인들만 남아 농사짓는 농가가 모두 비상이다.
 난
여행 내내 남의 집 감만 탐내고 다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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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리굽은
노인이 길가에서 벼말리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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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상경해야 할 남편이 어디로 가야 기차를
타고 쉽게 서울로 갈 수 있을지 의논했다. 원래 우리의 계획은 내장산
단풍을 보는 것이었으나 내소사나 선운사의 단풍정도면 굳이 갈 필요가
없을 것 같아 광주박물관으로 결정을 보았다.
고창읍을 거쳐
담양, 장성 방면 15번 도로를 타고 호남 고속국도로 진입하여 서광주로 나오니
바로 옆이 광주 국립 박물관이다. 남편과 잘 아는 박물관장님이 반겨주신다. 이제는
이곳에서만 전시하는 해저 신안 유물도 보고 마침 조선시대 풍속화전을
특별기획전(10.8 - 11.10.2002 까지)으로 하고 있어 평소에 접하지
못하던 민화도 많이 보았다. 김홍도의 <기와이기>, 신윤복의
<연당의 여인>, 그리고 윤두서의 밭갈기등 모두 귀한 민속도들이다. 국립박물관이라
규모도 크고 유물도 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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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신윤복(1753?-1813이후) <연당의
여인> 당시 한량과 기녀, 풍류, 남녀애정등을
표현한 풍속화가.
下-김홍도(1745 ~ ?) <기와이기> 인물,
풍속, 산수, 민화, 불화 등에 능하고 생활풍습의 익살스런
표현, 풍자로 유명한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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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두서(1668-1715) <나물캐는
여인>
다양한
인간들의 삶의 모습을 진실되게 화폭에 담아 활기찬
사회분위기를 보여준 화가.
이
외에 <짚신삼는 노인> <목기깎기>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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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서울 출장 계획이
있는 관장님과 남편은 서울로 향하고 우리 둘은 더 어둡기 전에 조계산
송광사로 차 머리를 돌렸다. 광주에서 호남 고속국도를 이용해 순천
방향으로 1시간 30분 거리, 주암 IC로 나오니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데
송광사 표지가 잘나오다가 꼬불 꼬불 산길에서는 전혀 사인이 나오지
않는다. 25분쯤 들어가니 그제서야 좌측으로 가는 송광사 이정표가 나 오고
안심이 된다. 산에는 어둠이 더 일찍 찾아오는 지 6시 30분인데 새까맣다.
광주에서
먹은 오리고기가 든든해서인지 배가 고픈 것 같지는 않았으나 여행중의
건강 을 위해 전통 찻집에서 하는 녹차 수제비로 저녁을 대신했다. 산사
밑의 모텔은 다 그렇다. 딸에게 좀 미안하지만 내일은 좀 더 좋고
편한 곳에서 자야지.
내일은 송광사와 선암사를 보고 여수
오동도로 내려간다. 지도를 펴놓고 예습을 하고 메모도 하고...아침에
또 복습을 해야할 것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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