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세계 순례
정양모 신부 / 신약학
숨 돌릴 틈이 있는 이들은 성지순례를 가고 싶어 한다.
무작정 떠날 것이 아니라 한숨 돌리고 마음을 가다듬어 순례길에 오르면
더없이 충만한 시간이 되리라.
성경을 익히는데 지름길이 어이 따로 있을까마는 성경의 세계를 살펴보는게 매우 큰 도움이 된다. 매 년 우리나라 가톨릭 · 프로테스탄트 교우들 3만여 명이 이스라엘 성지를 다녀온다. 이스라엘 유대인들과 팔레스타인 아랍인들 사이에 평화 기운이 무르익으면 이스라엘로 가는 순례자들이 더 늘어날 것이다. 머지않은 시일에 서울과 텔아비브 간 직항로가 개설되면 순례자들은 더욱 불어날 것이다. 아직은 300여 만원이나 되는 소요경비가, 많은 교우들에게 부담스럽지만 우리나라 경제가 계속 성장하면 부담감이 줄어들면서 이스라엘을 비롯한 성경의 세계를 순례하는 교우들이 더더욱 증가할 것이다.
단순히 신심 위주로 또는 관광 삼아 떠나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이런 이들에게는 이 글줄이 아무짝에도 소용없으니 처음부터 읽지 말기 바란다. 그러나 순례객들 가운데 더러는 성경의 지리와 역사, 풍습과 문물 등을 익혀 성경공부에 보탬을 얻으려고 순례길에 오를 것이다. 나는 이런 아리따운 교우들을 섬기려고 몇 자 생각나는 대로 적는다.
이스라엘과 이집트, 요르단과 시리아, 터키와 그리스 등 중동성지들을 찾아보는데 연중 적기는 두말할 것도 없이 봄철이나 가을철이다. 이도저도 안 되면 부득이 무더운 여름철이, 춥고 비가 자주 내리는 겨울철보다는 훨씬 낫다. 20여 일 일정이라면 한꺼번에 한 두 나라만 자세히 살펴보는 게 상책이다. 두 번 찾아가기 힘든 곳이라는 구실로 세 나라를 여행한다면 못 이기는 척 눈감아 줄 수 있다. 그렇지만 한꺼번에 네 나라, 다섯 나라를 보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주 무모한 짓거리이다. 과욕은 절대 금물이다. 혼자 또는 뜻이 맞는 몇이 어울려 여행할 수도 있으나, 볼 것 제대로 못 보고 배울 것 제대로 못 배우고 아까운 외화만 낭비하기 십상이다. 그러니 단체 생활에서 오는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단체 여행을 택할 일이다. 잘만 택하면 실보다 득이 훨씬 더 많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잘 택하는 것인가, 진실로 이게 큰 문제이다.
어느 때고 단체 여행을 제대로 하자면 우선 공신력이 있는 여행사를 찾아야 한다. 성경공부를 위해서 성경의 세계를 찾아보고자 하면 공신력에다 학술 안내를 할 수 있는 전문 안내자를 갖춘 여행사를 찾아나서야 한다. 서구에는 유능한 안내자를 확보한 전문 여행사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에는 성경의 세계를 제대로 소개할 수 있는 전문 안내자를 갖춘 여행사가 단 하나도 없다. 그러니 비싼 외화 들여 성지를 순례하고 돌아온 교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무척 감명 깊었다느니, 여러 나라를 거치면서 굉장히 많이 보았다느니, 결국 남는 건 사진뿐이라느니, 이런 식이다. 우리의 형편이 이러한 까닭에 나는 내 나름대로 다음과 같이 성경의 세계 여행을 기획하고 실천한다.
1.1992년 7월 1일 – 24일에는 사도 바오로의 발자취에 관심이 있는 교우 26명과 함께 터키를 순례하는데, 사전에 검토에 검토를 거듭하여 여정을 짜고 나름대로 자료를 모으기도 하고 손수 쓰기도 해서 “터키 문화 탐방”이란 안내서를 만들어 돌렸다. 그러나 이는 내가 책상에 앉아 짠 여정이요 안내서인지라 안심이 되지 않아, 이스탄불 대학교에서 10여 년째 이슬람 신학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심양섭씨를 소개받아 현지 실정에 맞게 여정을 조정하고 안내를 부탁했다. 아울러 여정 순서대로 이스탄불에서도 안내서를 만들도록 당부했다. 한국과 터키에서 각기 만든 두 가지 안내서를 갖고 터키의 문화유적과 사도 바오로 전도지역을 살피면서 참으로 산 역사공부를 했다.
돌이켜보면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 앙카라에 있는 아나톨리아 박물관과 이스탄불에 있는 고고학 박물관은 소장품의 양과 질도 엄청날뿐더러 성경과 관련되는 것이 적지 않은데 미처 학예관 수준의 박물관 안내원을 따로 확보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대로 박물관 유물들을 공부할 수 없었다. 도록(圖錄)이나마 구해서 공부할까 했지만 도록조차 너무나 빈약했다. 둘째, 우리의 터키 여행을 주관한 세익여행사(사장 이운익 마태오)는 나름대로 성의를 다했지만, 이스탄불 현지에서 교포가 경영하는 태극여행사가 매우 불성실해서 우리 일행은 에어콘 작동이 시원찮은 찜통 버스 안에서 무려 20여 일 동안 터키탕을 당했다.
2.1993년 6월 22일 – 7월 10일에는 역시 성경의 세계에 관심을 가진 교우 43명과 함께 그리스 · 이스라엘 · 키프로스를 순례했는데, 1992년도 같은 요령으로 여정을 짜고 내 나름대로 “그리스 · 이스라엘 · 키프로스 문화탐방”이란 안내서를 만들었다. 역시 세익여행사가 주관했고, 예루살렘 현지에선 아랍계 천주교 신자가 경영하는 가이딩 스타(Guiding Star)가, 아테네 현지에선 교포가 경영하는 서울여행사가 협찬했는데 모두 정성을 쏟아서 편안하고 유쾌하게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이스라엘서는 히브리 대학교에서 9년간 고고학을 전공하고 얼마 전 고고학 박사학위를 받은 김성씨가 꼬박 열흘 동안 우리 일행을 안내했다. 김 박사는 성경과 고고학 현장은 물론이요 이스라엘 사회와 유대교 현황에도 매우 밝았다. 내가 1969년과 1985년 이스라엘에 장기 체류하던 때에 여러 나라 출신 석학들의 안내를 받아보았지만 김 박사만큼 깊이 있고 조리 정연한 분을 보지 못했다. 김 박사는 1993년 8월에 귀국하여 연세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성서고고학을 강의하고 있다. 김 박사는 이스라엘 고고학 현황을 파악코자 때때로 이스라엘을 찾아 갈 터이니, 이스라엘을 잘 알고 싶은 분은, 특히 이스라엘 고고학 현장을 답사코자 하는 분은 빌고 빌어서라도 김 박사를 따라붙을 일이다.
그리스에선 아테네 대학교에서 10년 넘어 정교회 신학을 전공하는 김현수 전도사의 안내를 받았다. 김 전도사는 그리스 문물에 밝을 뿐더러 정교회 역사와 신학에 정통하여 우리 일행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주었다. 1993년 여행에서의 큰 차질은 키프로스의 라르나카 공항 파업 때문에 비행기가 너무 늦게 도착해서 키프로스를 제대로 돌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3.1994년 6월 22일 – 7월 14일에는 터키(만 10일)와 그리스(만 4일)의 사도 바오로 발자취를 살펴본 다음에 그룹을 둘로 나누어 일부는 이스라엘(만 5일)로 가서 성지를 순례하고, 나머지 일부는 프랑스(만 5일)로 가서 예술적 가치가 있는 성당들(앗시의 은총의 성모 성당, 방스의 로사리오 경당,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과 생 샤펠), 니스와 방스의 미술관들(샤갈 미술관, 마티스 미술관, 매그 재단 미술관), 파리의 박물관과 미술관들(루브르 박물관, 도르세 미술관, 로댕 미술관, 피카소 미술관, 퐁피두 센터)을 돌아볼 것이다. 터키 앙카라의 아니톨리아 박물관과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견학 때는 학예관 수준의 전문 안내인을 따로 모실 예정이다. 니스와 방스에서도 미술 전문 안내인을 모실 생각이고, 특히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경우에는 학예관 수준급 이집트관 전문 안내자와 메소포타미아관 전문 안내자를 찾아볼 생각이다.
이렇게 해보았자 사전준비 없이 그냥 훌쩍 떠나면 별로 배우지 못한다. 사전에 미리 성경의 세계를 익히고 떠나야만 제대로 준비하는 것이다. 다행히 1994년 여름철 성경의 세계 순례를 준비하는 모임이 이미 결성되었다. 곧, 서울 흑석동 ‘성서모임’(phon.824-4363)에서는 1994년 한 해 동안 애정을 갖고 사도 바오로의 서간집을 공부할 예정인데, 공부하는 도중에 터키와 그리스에 있는 바오로의 유적지들을 답사키로 했으니, 어느 순례단보다 제대로 준비하고 순례길에 오른다 하겠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유홍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창작과 비평사 1993, 236쪽).
끝으로 지중해에 널려 있는 성경의 세계 순례에 도움이 될 만한 안내서들을 소개하겠다. 시중 서점에 「세계를 간다」따위 여행 안내서들이 더러 있으나 그 내용이 매우 간략하거나 관광 위주여서 성경의 세계를 익히려는 독자들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한다. 우리말 안내서로 추천할 만한 것은 다음 여섯 가지밖에 없다.
1)정양모 · 이영헌, 「이스라엘 성지 어제와 오늘」. 생활성서사 1988.
2)정양모. “사도 바오로의 발자취를 따라 ”「생활성서」. 1997.
3)박준서. 「성지순례」. 조선일보사 1992.
4)알란 밀라드 지음/정태현 옮김. 「성서 시대의 보물들」. 성바오로출판사 1992.
5)강태용. 「동방정교회. 역사와 신학」. 입산출판사 1991.
6)장긍선. 「이콘. 신비의 미」. 기쁜소식사 1993.
성경 유적들을 다루는 영어 전문 안내서로는 다음과 같은 것은 것들이 있다.
1)Blake, Everett C. & Edmonds, Anna G. Biblical Sites in Turkey. Istanbul : Redhouse Press 1977.
2)Yamanchi, Erwin M. New Testament Cities in Western Asia Minor. Grand Rapids, Michigan
Baker Book House 1980.
3)Meinardus, Otto F.A. St. Paul in Greece. Athens : Licabettus Press 1973.
4)Murphy-O’Connor. Jerome. The Holy Land · Archeological
Guide. Oxford : Oxford University Press, 2nd ed.1986.
영어로 씌어진, 여행 안내 총서로는 London의 A. & C. Black와 New York의 W.W.Norton에서 공동으로 펴내는 “Blue Guide’ 총서가 일품인데 1993년 현재 Egypt, Jerusalem, Turkey, Greece 여행 안내서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