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차시(茶詩) 이야기
겨울, 기쁨과 감사의 차
박숙희 / 한문교육학 박사, 우리 협회 충북지부장
흰눈이 내린다. 나뭇가지마다 흰눈이 맺히며 또다른 장관을 이루고 있다. 온 세상을 흰빛으로 뒤덮는 신비로운 아름다움. 어떤 추위가 이 아름다움과 맞설 수 있을까. 탄성을 지르며 마주해 본다.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애 속에 뛰어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시인 문정희님의 <겨울 사랑>이다. 자연은 참으로 신비롭다. 모든 번민을 잊고 그 속에 몰입하게 하는 힘을 갖는다.
원감국사의 진솔한 차시(茶詩) <한시랑(韓侍郞)이 내가 조계(曹溪)의 자리를 이어 받았다는 말을 듣고 시를 보내 축하하기에 그 운을 따라 답하다(韓侍郞 聞予嗣席曹溪 以詩寄賀 次韻答之)>는 겸손하고 욕심 없는 모습을 그대로 표현한 시이다. 자연 속에서 자연을 즐기며 자연스럽게 삶을 관조하는 고아한 기풍이 넘치는 아름다운 시이다.
誰敎窮子濫傳家 누가 부족한 나에게 넘치게도 가업을 잇게 했나
愧把巴音續郢歌 속된 노래로 영 땅의 품격 높은 시문 잇기에 부끄럽기만 하네
若問山中何事業 만약 산중에서 어떤 일 하는가 묻는다면
一盂蔬了一甌茶 한 발우 나물 먹고 한 사발 차 마실 뿐이라네
원오(圓悟)국사의 법을 이어 수선사(修禪社) 제6세 국사가 된 원감국사(1226~1293)는 9세에 경서(經書)를 외웠으며, 19세에는 과거에 장원을 하고, 벼슬이 금직옥당(禁直玉堂)에 이르렀지만, 29세에 선원사(禪源社)의 원오국사 문하에서 승려가 되었다.
41세에 김해 감로사(甘露寺)의 주지가 되었고, 61세에는 원오국사가 왕에게 수선사의 사주(社主)로 그를 추천하고 입적하자, 스승인 원오국사의 뒤를 이어 수선사(修禪社)의 6세 법주(法主)가 되었다. 후에 명성이 퍼져 원(元)나라 세조가 그를 초청하여 극진히 대접받고 금란가사와 백불(白拂)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선승으로서의 뚜렷한 입지를 가지게 되었으며 법랍 39세로 입적하였다. 문장으로도 유명하여 《원감집(圓鑑集)》을 남겼다.
이 시는 제목이 말해 주듯이 한시랑(韓侍郞)이 국사가 조계(曹溪)의 자리를 이어 받았다는 말을 듣고 축하의 시를 보내와 답신으로 지은 시이다. 원오국사가 입적하여 대중들이 법석 잇기를 간청하니 조정에서 강당을 열게 하여 수선사의 6세주가 된 것을 축하한 것이다.
국사는 자신을 결코 자랑하지 않았다. 스스로 ‘궁자(窮子) 즉, 부족한 자식’이라 하였다. 궁자는 『법화경(法華經)』 「신해품(信解品)」의 <장자궁자유(長者窮子喩)>에 나오는 빈궁한 아들을 가리킨다. 집을 나가 궁핍하게 떠돌던 아들을 찾아 부자인 아버지가 반가이 맞아들이려 해도 스스로 거부하며 받아들이지를 못했던 아들. 결국 머슴으로 지내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아들임을 받아들인 부족한 자식. 국사는 자신의 모습이 마치 궁자와 같이 부족하기만 하다고 하였다.
그는 ‘누가 부족한 나에게 넘치게도 가업을 잇게 했나’라고 반문하며 ‘대물림(傳家)’ 받은 자신을 돌아보고 있다. 해탈을 향한 끝없는 방황과 고뇌 속에서 방황하다 궁자차럼 모든 것을 이어받은 자신은 어쩌면 아직도 끝없이 정진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추스르며 만인의 귀감이 될 자질을 연마하고 있다.
‘속된 노래로 영 땅의 품격 높은 시문 잇기에 부끄럽다’며 국사는 자격이 부족한데도 법통을 이은 것은 부끄럽기 그지없다는 겸손함을 거듭 표했다. 겨우 유행가 가락이나 부를 줄 알지 수준 높은 노래는 감히 따라하지도 못하는, 부끄러운 재량을 갖춘 이에 불과하다고 스스로를 낮추고 있다.
영가(郢歌)는 전국시대 초나라의 고상하고 아취 있는 노래나 시를 말한다. 파음(巴音)은 ‘파인(巴人)의 노래’로 보통의 유행가를 이른다. 옛날 초나라의 서울인 영(郢)에서 노래를 잘 부르는 어떤 사람이 처음에는 보통 유행가를 불렀더니 따라부르는 사람들이 수백명이었다. 그러다 수준 높은 노래를 부르니 따라서 합창하는 사람이 10여명에 지나지 않았고 최고급의 노래를 부를 때는 따라 부르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는 이야기를 인용하였다.
‘누군가 산중에서 어떤 일 하는가 묻는다면 그저 차나 마실 뿐이라’고 답할 밖에. 평상심이다. 평상에서 도를 닦으며 자신을 매만지며 중생구도에 매진한다. 자신의 구도의 평상적인 삶을 직접 보고도 알지 못하는 우리에게 국사는 질문을 던진다. 보고도 알지 못하는 우매함이여. 그러나 우리는 국사에게 같은 질문만 한다. 산 속에서 어떻게 사는지.
한 발우의 나물과 한 사발의 차는 평상의 깨달음을 대변하는 소박함이다. 삶을 영위하는 욕심 없는 평상의 음식. 한 잔의 차로 자신을 씻으며 수도에 정진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이른 봄 차나무 잎을 따서 만든 차 우린 물은 물빛이 주는 정갈함처럼 탈속의 제재이자 수양의 상징이다. 봄, 여름, 가을을 지나 한겨울이 찾아와도 늘 같은 빛깔, 같은 향기, 같은 맛이다.
국사에게 조계육세(曹溪六世)라는 자리는 무엇이었을까. 우리에겐 영광스러운 듯 보이지만 속세를 떠난 산중에서는 단지 한 그릇의 나물과 차 한 잔의 일상일 뿐이다. 그 또한 평상(平常)의 삶일 뿐인데 사람들은 진리를 보지 못하고 떠벌리며 축하를 해온다.
고요한 겨울날이다. 한결같은 모습으로 희노애락에 흔들리지 않는 그 평상심을 마음 가득히 되새기고 싶은 날이다. 따끈한 차 한 잔을 우려 마신다. 온몸을 휘도는 온기가 따사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