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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방글라데시에 와서 한국사람으로서 보는 방글라데시를 정리해보았습니다.
타고르
'동방의 등불 코리아'라는 시구를 통해 한국을 스스로 빛을 발할 줄 아는 민족으로 알린 아시아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타고르. 인도 캘커타에서 공부한 그는 놀라울만큼 지금도 방글라데시 일반인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그의 시로 만든 노래는 사람들의 일반생활속에 살아있어, 즐겨듣는 가요속에 꼭 그의 시가 들어가 있다.
앉아서 소변보는 남자들
'남자는서서, 여자는 앉아서'라는 편견을 깼다. 거리의 공중화장실은 시멘트로 칸막이한 정도. 일을 보고 손씻기 위함인지, 식수용 펌프 옆에 만들어진 그곳에 사람들이 쭈그리고 앉아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시멘트 화장실이 아니더라도, 거리 양옆에서 치마같은 룽기를 걷어올리고 앉아 있는 남자들이 많다. 정류장이 아닌데 한 번은 장거리버스가 갑자기 섰다. 몇몇 남자들이 내린다. 종기종기 앉아 풀밭에 볼 일 보고 다시 출발.
홍수... 이것이 강이여? 논이여?
심한 홍수 끝무렵 방글라데시에 도착해서, 아주 좁은 길을 달렸다. 선배왈, [이것이 논이여]. 길 좌우로 죄다 물 뿐이다. 건기가 되어, 다시 그 길을 지날 때, 지평선과 땅일구는 농부들을 보았다. 홍수로 더욱 비옥한 땅이 된단다. 사실은 모래를 쓸고 내려와 더 땅이 황폐해지고 있다는 설도 있다. 건기때 논에 살던 사람들은 매년 어떻게 살까. 대부분 물이 닿지 않는 도로에 대나무로 임시집을 짓고 산단다.
돌광
방글라데시는 'Rockless land'이다. 산이 있는 치타공 지역을 제외하면 돌이 없다. 가장 단단한 돌은 인도국경지역으로부터 Pyong 강에 의해 장마때 쓸려 내려오는 돌로 실렛지역에서 볼 수 있다. 건물, 다리, 댐, 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돌이 필요하기 때문에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그야말로 돌을 캐러 강에 뛰어든다. 한 배에 세 명이 조를 이루어 한 사람이 강에 들어가 돌을 캐내고 다른 두 사람은 돌을 정리해 한 배가 차면 돌상인들이 기다리고 있는 강변으로 나와 거래한다. 한 배는 보통 200TK(5000원 정도)를 버는데, 하루에 배는 약 3번정도 뜬다. 돌이 차츰 줄어들면서 인도국경사이에 무인지역으로까지 침범하여 총성이 있기도 했다. 방글라데시에서의 색다른 풍경중의 하나는 우산 밑에서 하루종일 망치로 빨간벽돌깨는 사람들이다. 돌이 비싸 흙으로 구운 벽돌을 깨서 돌대신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교통수단...릭샤, 베이비택시, 템포, 밴, 버스
방글라데시가 자전거로 여행하기 좋은 나라라 한다. 산이 없이 평지에 자전거가 고장나도 걱정이 없으니까. 그것은 자전+인력거 릭샤가 주요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릭샤를 끄는 릭샤왈라들은 노동에 비해 수입이 너무 적다. 두명이 기본으로 타는데, 세명이나 아이까지 4-5명도 탄다. 이국적이긴 하지만, 깡마른 릭샤왈라를 뒤에서 보기란 처음 타기에 그리 낭만적이거나 마음 편하진 않다. 베이비택시와 템포는 공해의 주범. 오토바이를 개조해 만든 2인용 베이비택시와 10인용 템포는 그 안에 앉아 있으면, 그 매연을 다 뒤집어써야한다. 장거리 이동시에는 에어컨버스가 있다. 자리가 넓어 꽤 쾌적하게 여행할 수 있으나, 지나친 서비스 정신에 방향제를 너무 많이 뿌려 역겨울 때가 많다.
전통의상...샤리, 샬로와르 까미즈, 볼카, 룽기, 빤자비
남성들은 서양의복과 혼용하여 입지만, 여성들의 경우는 티셔츠와 바지나 발목을 드러내놓는 치마를 입을 경우, 귀찮은 언어세례를 받아야한다. 샤리는 기혼여성이나 행사용 옷으로, 6미터 정도의 긴 천으로 몸을 감는 식인데, 재단이나, 바느질 없이 옷하나가 된다. 그 안에 달라붙는 블라우스(배와 등을 반정도 가림)와 패티코트(일반 스커트식)를 입는다. 샬로와르 까미즈는 처녀들의 복장으로 파자마 바지와 무릎까지 내려오는 스커트형 블라우스에 오르나(긴 천으로 가슴부분을 가림)로, 천이 얇을 경우는 시미즈라는 속옷을 받쳐 입는다. 볼카... 이것은 샤리나 샬로와르 까미즈 위에 주로 검은색으로 눈만 내놓고 덧입는 것으로 절도있는 집안 풍습을 보인다. 룽기와 빤자비는 남자용으로, 룽기는 원통 치마형식으로 손으로 매듭져 입는데, 그 안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는다. 남자들이 귀가하면, 옷걸이에 외출했던 바지와 함께 속옷이 같이 옷걸이에 걸린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집에서 편안하게 룽기를 입는다. 빤자비는 까미즈와 비슷하지만, 허리선이 없는 남성옷 형식이다.
저녁밥시간, 10시
한국에서 저녁먹은 시간인 6시경 이곳에서는 튀김이나 차, 비스켓등으로 약간의 요기를 하고, 저녁을 밤 열시나 열한시에 먹고는 잔다. 그리고, 쌀은 찰기가 없다. 듣기론 추수하고 쌀을 찐 후 다시 건조시킨 그 쌀로 다시 밥을 하는 것이란다. 찰기가 있는 밥이 되면, 망쳤다고 걱정한다. 젓가락으로 먹느니 차라리 손으로 먹겠다.
산이 없다. 반면 그와 어우러진 하늘의 장관
미얀마 근접지역에 산이 있긴 하지만, 방글라데시의 대부분은 평지이다. 그래서, 정난한 지평선을 볼 수 있다. 한국인으로서 이 곳에서 살다보면 산이 그리워지지만, 장마철 저녁 노을과, 일출, 별 등은 그림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다. 하늘의 광경을 이구동성으로 방글라데시의 아름다움으로 꼽는다.
빤
일종의 기호식품으로, 잎파리위에 열매말린 것 같은 것과 작은 알갱이들, 소다를 얹고 오래도록 씹어 그 즙을 빨아먹는다. 입과 이빨을 빨갛게 물들인다. 약간의 중독성이 있고, 배가 부를 땐, 빤을 먹으면 속이 편해진단다. 거의 평생을 먹어 오거나 빤을 즐기는 사람들의 이빨은 검은 자국과 이빨사이 잔찌꺼기가 있어, 보기는 좀 흉하다.
정전
특히 장마철에 하루에 한 번이상은 정전이 된다. 초나 충전용 비상등은 필수품이다. 한여름에는 에어컨도 없이 천장에 붙은 선풍기로 살아야 하는데, 전기가 나가면 대책이 없다. 그러나, 현지인들보다 더위도 덜타고 추위도 덜타는 편이다. 크리켓 월드컵 기간 중에는 절대 정전이 되지 않는다. 중계를 해야하니까.
피부가 희면 미인이다
한국 여성들이 오면 다른 것이 하나 있다. '아름답다, 이쁘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듣는다. 그래서, 공주병 걸리기 똑 좋다는데. 피부가 검은 그들은 백인의 핑크빛 피부보다 동양의 밝은 피부를 선호해 사실 피부색 하나로도 어딜가나 눈에 띈다. 곱슬머리가 많아 직모에 길고 검은 머리를 이쁘다고 한다.
왼손과 오른손
오른손으로는 밥을 먹고 왼손으로는 화장실에서 그것을 처리한다. 그래서, 왼손으로 음식을 받아먹거나 악수를 청하거나, 손을 흔들어주거나 하지 않는다. 서로의 발이 닿아도 입을 손에 가져가며 먹는 시늉을 한다. 천한 부분을 닿았다는 의미인지.
겨울엔 전기장판이 필요하다?
이 곳으로 떠나올 때, 가족이나 친구들이 하나같이 뜨거운 나라로 간다고 걱정들이었다. 그러나, 이 나라도 겨울이 있어 꽤 춥다. 전기장판이 없으면 곤한 잠 자기 힘들고, 더운 물 없이 샤워할 수가 없다. 더운 날들도 있으나, 아주 더운가 싶으면 비가 와 좀 식혀준다. 그래서, 이곳사람들은 겨울엔 외출했다가 샤워하지 않고, 아침 햇볕으로 좀 데워진 물로 샤워하기 위해 아침에 샤워한다. 조금만 추워지는가 싶으면, 망토를 두르고 목도리를 휘감는 등 기온에 굉장히 예민하다.
양장점문화
기성복의 개념이 적어, 천을 사 남방이나, 청바지, 전통의상등을 만드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고, 더 낫다고들 한다. 아직도 여성들은 수놓고 바느질하는 문화가 이어져오고 있어 옷에 직접 수를 놓고, 뜨개질을 하고, 가방을 만들어 들고 다니고, 아기 옷을 눈대중으로 만들어낸다. 색깔도 원색적이고 다양해, 남자들의 바지도 보라색등 원색이나 무늬있는 옷감을 흔히 본다. 기성복이 아니라서 그런지 굉장히 딱달라붙게 만들어 입는다.
선거풍경
방글라데시의 문맹률은 거의 70%에 가깝다. 그래서, 선거포스터엔 파인애플, 우산, 의자, 자전거 등의 그림이 후보자의 얼굴과 함께 들어가있다. 글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림을 보고 후보자를 지명한다.
닭을 죽이느니 안먹고 말지
다카에서는 서울에서와 비슷한 시장보기를 그래도 할 수가 있다. 가령 가공된 우유, 냉동닭 등이다. 그러나, 지방으로 가면 소에서 바로 짜낸 우유를 녹슨 식용유통에 담아 자전거 타고 다니면서 파는 사람한테 사야한다. 사서 세 번 정도는 끓여야 하기 때문에 번거로워 먹기가 어렵다. 닭고기를 먹자면, 생닭을 사야한다. 사서 현지인들처럼 머리를 자르고 그 처리를 다 해야하는데, 역시 엄두가 나지 않아 아주 급할 때만 현지인들에게 부탁한다. 소고기는 그날 잡아 그날아침에 가장 신선하게 구해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후강직의 개념이 없다. 육류파트에 가면 피냄새가 역해 소고기 사기또한 꺼려진다. 아직 거의 대부분의 시장 풍경은 1kg, 500g, 50g 등의 추를 사용한 흥정이며 거래다. 열무를 다듬다보면 그 안에 진흙을 동그랗게 만들어 무게를 더 나가게 하려고 숨겨놓은 농부의 상술이 보인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메밀묵~ 찹쌀~떡'처럼 계란장수, 야채장수, 티밥장수, 닭장수 등이 내는 그 특유의 콧소리에 잠이 캔다.
로자와 이드
로자는 종교중에서 유일하게 무슬림종교에 있는 한달 금식기간이다. 새벽 3시경 전국적인 사이렌이 울리면 아침을 먹고 새벽부터 저녁 5시30분경까지 물도 마시지 않는 금식을 한다. 이것은 배고픔을 나누고 알라를 기쁘게 하고자 하는데 의미가 있다. 저녁 사이렌이 울리면, 비쓰밀라를 말하고 준비된 이ㅍ딸 음식들을 먹는다. 이 한달의 로자기간이 지나면, 우리의 설만큼 큰 명절처럼 모두 새옷과 신발등을 장만하고 여기저기 방문하며 로자의 끝을 나누고 즐긴다.
신발없는 사람이 많은 나라. 거지의 나라
방글라데시 하면 '가난'을 떠올리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신발이 없어 유독 이 사람들의 발은 험하게 굴려졌다. 공항에서내려 이 나라에서의 첫인상 중의 하나가 탁막히는 습기와 함께 복시시(팁의 일종)를 요구하는 손의 행렬이었다. 수도인 다카가 가장 심해, 시장을 가면 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대신 시장바구니 역할을 해주겠다고 매달리는 아이들에서부터, 도로에서 신호가 바뀌는 것을 기다릴 때 아가를 안고 다가와 차창문을 두드리는 애엄마, 다리 팔이 잘린 장애인의 구걸. 너무나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보통은 복시시로 1-2따까(25원 - 50원)를 주면 되는데, 주는 사람이 알라의 축복을 받기 때문에 좋은 것이라 감사의 의미가 없다.
거리의 아이들
수많은 아이들이 거리에, 강둑에, 기차역에, 그리고 빈민가에 떠돌고 있다. 영양부족, 의식주 기본이 해결되지 않는 자신의 상황에 대한 아무 개념없이 아이의 모습 그대로 동정에 의존하며 살아가고, 거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관찰하고 데모가 일어나면 함께 돌을 집어들고 나선다. 이들은 대부분 시골에서 빚지고 원금이며 이자조차 갚지 못하고 도망쳐온 부모의 자식이거나, 이혼당한 여자의 아이들이다. 이들의 이러한 손상되고 비정상적인 생활은 그들이 사회에 적응하는데 방해가 되어 악순환이 반복된다.
제2의 무슬림국가
방글라데시는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큰 무슬림국가이다. 힌두국가인 인도와 대치한 상황에서, 근접한 인도네시아를 생각해, 이슬람교를 국교로 공표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루 다섯번의 기도시간이 있고, 매주 금요일이면 기도하러 오가는 빤자비에 두삐(기도용 모자)를 쓴 남자들을 많이 본다. 아잔(기도시간을 알리는 코란을 읽는 소리로 전국적으로 퍼짐)이 울리면, 수업을 듣던 학생들도 오르나를 머리에 두르고, 기타치던 손도 멈추고, TV소리를 없애고, 음식을 먹지 않는 등 굉장히 뼈대 굵은 종교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나라다.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자기의 종교로 받아들여 그 문화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아잔이나 금토요일이 휴일이라는 것, 큰 무슬림 행사를 빼고는 평소에 무슬림 국가라는 이미지가 적다. 그러나, 종교로 묶인 그들의 단합력은 대단하다.
하탈
하탈은 방글라데시에서 정치적으로나 다른 목적으로 하는 집단휴업이나 집회등을 말한다. 하탈이면, 릭샤가 안다니기 때문에, 영 급하면 걸어서 가겠지만, 보통 학교나 가게가 문을 닫는다. 실제로 위험하기도 해서, 폭탄 비슷한 것을 맞고 죽었다는 둥, 팔목이 잘렸다는 둥하여 현지인들도 바깥출입을 삼가한다. 실제로 수도인 다카에서는 여야간의 싸움이 심해 총전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선거를 앞두고는 하탈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더 심하다.
터무니없는 바가지
아주 짜증스럽고 신경질나는 요소이다. 외국인이면 아주 순진한 사람도 한 번쯤 어설프게 가격을 올려부르곤 한다. 방글라말과 시세를 알고 따지면, 방글라말을 잘한다면서 자신들도 웃어 버린다.
짐과 사람
'짐이 떨어지면 차가 서지만, 사람이 떨어지면 그냥 간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머리수가 많으니, 그 가치가 없다는 말일거다. 이 곳에서 낯선 장면은 버스위에 잔뜩 사람과 짐이 타고 간다는 것이다. 위에 타면 가격이 더 싸다. 평균 삼개월에 한번꼴로 도로변에 교통사고로 뒤집어진 버스를 본다. 도로 사정이 안좋을뿐더러 운전도 거칠어 사고가 많다.
꼬마 노동자들
일곱살쯤 되었을까. 손에 기름 묻혀가며 어른의 손놀림으로 능숙하게 일처리하는 꼬마들을 여러 가게에서 볼 수 있다.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일을 가르쳐 싼 노동력으로 사용한다. 열살 남짓한 아이가 릭샤를 끌기도 한다. 먹여주는 조건으로 집에서 잡일을 시킨다.
남자와 여자, 그리고 결혼
차심부름도 남자, 요리사도 남자, 장사꾼도 남자, 장보기도 남자, 재단사도 남자. 여자의 사회생활이 지극히 제한되어 있어, 집안을 벗어나는 여자가 거의 없다. 어떤 현지인은 대놓고 남자는 밖의 사람이고 여자는 방바닥의 사람이란다. 무슬림에서 남자는 네 명의 아내를 가질 수 있다. 여자측 부모가 사위의 미래나 딸에 대한 책임여부를 따지지 않고, 생선 몇 마리와 유리 장식품 몇 개면 결혼예물로 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마을에서 결혼하고 저마을에서 또 결혼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무슬림의 종교법상 남자가 세 번 이혼을 거론하면, 그 이후로 그 여자는 더 이상 그 집안 사람이 아니다. 또한, 여자가 아이들을 감당해야 한다. 그렇다고, 여자가 친정부모나 형제집에 갈 수도 없다. 결국 여자가 아이들을 부양해야 하고, 배운 것과 기술이 없는 상태로 거리로 내쫓겨야 한다. 또한, 무슬림에서 아이를 지운다는 것은 알라께 역하는 짓이며, 알라가 생명을 주셨으니 먹을 것도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생기는대로 낳아 버린다. 특히, 남자아이인 경우는 가족의 노동력에 한 몫하기 때문에 오히려 득이라 믿고,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실망의 기색이 역력하다. 정부에서 행하는 가족계획에도 문제가 있는데, 거의 모든 홍보가 라디오나 텔레비전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런 미디어를 접할 수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그 효용이 없다.
극심한 빈부의 격차
누구는 신발도 없고, 입던 옷도 고맙게 받아 있는데, 누구는 일반 사람들의 한달 월급으로 한끼를 식사한다. 누구는 1500따까짜리 샤리를 사 입고 즐거워하고, 누구는 병원등록비 10따까가 없어서 병원앞을 기웃거린다. 우리나라에서도 있을 법한 차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들의 차이는 눈에 띄게 극심하다. 실제 단원들이 전세를 내거나 주변에서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잘사는 상류층이다.
버리는 것이 없는 나라
주인아줌마가 플라스틱 그릇장사를 집앞에 세우곤, 안 입는 옷을 가지고 나온다. 장사꾼은 옷 들어 이리저리 살피고, 아줌마는 플라스틱 그릇을 고른다. 버리긴 아깝고 줄 사람이 없다고 걱정하지 않는다. 한 번은 현지인 가족과 식사를 했다. 닭고기를 먹었다. 요리조리 정확하게 닭뼈를 골라내고 있는데, 어디서 우지직 소리가 들린다. 뼈를 씹어 그 즙까지 먹는 현지인가족. 생선뼈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에서 가축의 내장을 먹듯이 여기도 소내장부터, 뇌, 버리는 것이 없다.
크리켓의 광
국가적으로 열광하는 스포츠는 크리켓. 그 성실한 건물지기들도 게임시간이 되면 슬쩍 옆집 텔레비전 앞에 앉고, 밤늦도록 열광한다. 세계 크리켓의 강국 파키스탄을 방글라데시가 이겼을 때, 수상이 반나절 국가공휴일로 공표하기도 했다. 방글라데시가 이기면, 한밤중에 거리에서 색물감을 던지고, 시위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다르게 살기
방글라데시에 오는 사람들은 누구나 말한다. 더럽고 무질서하고 제멋대로인 나라라고.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집 밖에는 쓰레기가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동물들은 제멋대로 길 위에 돌아다니고... 그러나, 오래지는 않았지만, 이 곳에 살다보니, 매일 같은 길을 오가며 보다보니 이들 나름대로의 질서가 있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쓰레기를 버린다. 집 앞 쓰레기가 모여있는 장소에. 조금 있으면 쓰레기를 담은 비닐 봉지가 하나도 숨김없이 헤쳐진다. 내가 뭘 버렸는지 세상이 다 알게... 쓰레기를 줍는 아이들이 나타나 쇠붙이며 플라스틱, 비닐봉지까지 다 가져간다. 닭이며 개, 염소, 양, 소들이 와서 먹을만 한건 다 먹어치운다. 그리고, 남은 쓰레기들이 도랑을 막을 양이면, 사람들이 나타나 넓적한 곡괭이로 도랑 밑에 갈앉은 것들을 퍼올리고, 물기가 빠질 쯤이면 다시 넓적한 냄비 같은 것에 쓰레기를 퍼이고 수레나 차로 치워간다. 이들은 이들 나름대로의 사는 방식이 있다. 우리와 다르다고 이들을 미개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획일적이고 규율적인 것에 우리는 너무 길들여져 있는건 아닌지. 현대화,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사는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려하는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