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각자 나름대로 개성이 있지만 창조성을 회복하는 과정에는 누구나 알 수 있는 공통분모가 있다. 이 과정을 진행하면 처음 몇 주 동안에는 상당한 도전과 흥분이 표출된다. 이 진입단계가 지나면 바로 폭발적인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중간단계가 뒤따른다. 분노 뒤에는 슬픔이, 그다음에는 저항과 희망의 파도가 번갈아 이어진다. 정점에 올랐다가 다시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이런 흐름은 일련의 팽창과 수축, 즉 강렬한 자신감과 방어적인 회의를 번갈아 겪는 탄생의 과정이다.
이렇듯 변동이 심한 단계를 겪으면, 이 과정을 포기하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일어난다. 달리 표현하면 타협기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그만두고 싶다는 유혹에 빠진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끈질기게 유혹하던 자아도 굴복하고 만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다음 두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하나는 자율성이 강화되고 회복력과 기대감, 흥분을 장착한 새로운 자아가 출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구체적인 창작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이것은 엄청난 정서적 변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지나치게 함부로 다루고 잘못 썼던 자신의 창조적인 에너지를 다시 핵심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 그전에 효과적인 창조성 회복을 위해서는 반드시 애도 기간을 거쳐야 한다. 지금까지 함께해왔던 자아의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서는 깊은 슬픔이 꼭 필요하다. 눈물은 미래의 성장을 위한 수분을 제공한다. 이런 창조적인 수분이 없다면 우리는 황폐한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다. 한 차례의 고통이 엄습하리라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번개가 치면 주위가 환해지는 것과 같은 유용한 고통이다.
기본 도구 : 모닝 페이지와 아티스트 데이트
모닝 페이지
당신 외엔 아무도 당신의 모닝 페이지를 읽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당신도 처음 8주 동안에는 자신이 쓴 모닝 페이지를 읽으면 안 된다. 그냥 세 쪽을 쓰고, 그리고 다음 날 또 세 쪽을 쓴다. 모닝 페이지에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다. 거르거나 줄이면 안 된다. 기분에 좌우되어서도 안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을 쓸 기분이 되어야 뭔가를 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세 쪽을 가득 채울 때까지 무슨 말이든 쓰는 것이다.
아티스트 데이트
매주 두 시간 정도 시간을 정해두고, 이 시간에는 당신의 창조적인 의식과 당신 내면의 아티스트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것이다. 아티스트 데이트는 소풍 같은 것, 즉 미리 계획을 세워 모든 침입자들을 막는 놀이 데이트의 형태를 띤다. 아이들이나 연인과 뜻 깊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쩌면 두려운 일이다. 당신의 창조성은 어린아이이다. 어린아이에게는 부모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좋은 물건을 사주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잡동사니가 가득 쌓여 있는 고물상에 가보기, 해변에 혼자 가기, 옛날 영화 보러 가기, 수족관이나 미술관에 가기 등의 일을 하는 데는 돈이 아니라 시간이 필요하다. 꼭 지켜야 할 것은 시간을 낸다는 것임을 기억하기 바란다. 그 아이가 원하는 것은 사치스런 여행이 아니라 관심이다.
무엇보다도 창조성이라는 어린아이가 이 여행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지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예를 들어 고상하고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유익한 곳으로만 데리고 다닌다면, 그 아이는 "이런 심각한 것은 싫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아이는 당신 작품에 좀 더 재미있는 흐름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계약서
나 문소은은 나의 창조성과 강렬한 만남을 가질 것이다. 나는 12주 동안의 과정을 충실히 수행할 것을 약속한다. 나 문소은은 매주 이 책을 읽고, 날마다 모닝 페이지를 쓰고, 매주 아티스트 데이트를 할 것이며, 매주 과제를 충실히 해낼 것을 약속한다.
나 문소은은 이 과정이 내가 감당해야 할 문제와 감정을 유발한다는 것을 잘 이해한다. 나 문소은은 이 과정을 진행하는 동안 알맞은 수면과 식사, 운동, 욕구 해소 등을 통해 나 자신을 잘 돌볼 것을 약속한다.
서명 문소은
날짜 22-11-29
1주 | 안정감을 되살린다
내면의 어린 아티스트 보호하기
자신에게 요구해야 할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너무 멀리, 너무 빨리 나아가는 것은 스스로를 망치는 일이다. 창조성을 회복하는 과정은 마지막 1마일을 빨리 달리기 위해서 10마일을 천천히 달리는 마라톤과 같다. 이것은 자아의 성질과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빨리 훌륭해지고 싶지만 창조성의 회복은 그렇게 단기간에 일어나지 않는다. 실제 회복과정은 어색하고 불확실하며 당혹스럽기조차 하다. 그 과정이 자기 자신에게 혹은 다른 사람에게 별로 좋아 보이지 않을 때도 많다. 하지만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는데 뛸 수는 없지 않은가.
아티스트로서 되살아나기 위해서는 형편없는 아티스트가 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 자신이 초보자임을 인정하고 기꺼이 형편없는 아티스트가 됨으로써 진정한 아티스트가 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아마도 시간이 지나면 정말로 훌륭한 아티스트가 될 것이다. 강의를 하면서 이 점을 지적할 때면 자신을 방어하는 적대감에 부닥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림을 잘 그리게 될 때쯤에는 제가 몇 살이 되는지 아세요?"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그 나이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이제 시작해보자.
내부의 동맹: 자기긍정의 힘
이제 써놓았던 부정적인 믿음들을 다시 보자. 그것들은 창조성을 되살리는 데 아주 중요한 도구이다. 그것들이 지금까지 당신을 구속해온 것이다. 이제 당신은 그것들을 풀어야 한다. 다음에 나오는 '창조적인 긍정' 중에서 어떤 것이든지 이용해보자.
<창조적인 긍정>
1. 나는 신의 창조성의 통로이고, 내 작품은 결국 훌륭해질 것이다.
2. 내 꿈은 신에게서 나왔고, 신은 그것을 이루게 할 힘을 갖고 있다.
3. 창조적인 작업을 하며 거기에 귀 기울일 때 나는 창조성으로 인도될 것이다.
4. 창조성은 나를 향한 창조자의 의지이다.
5. 나의 창조성은 나와 다른 사람을 치유한다.
6. 나는 자신의 창조성을 키워야 한다.
7. 몇 가지 간단한 도구들을 사용하다 보면 나의 창조성은 발전할 것이다.
8. 나의 창조성을 통해 나는 신을 섬긴다.
9. 나의 창조성은 항상 진실과 사랑으로 나를 인도한다.
10. 나의 창조성은 나를 너그럽게 만들고 나 자신도 용서하게 만든다.
11. 나를 위한 하늘의 계획이 있다.
12. 내 작품을 위한 하늘의 계획이 있다.
13. 내 안에 있는 창조주의 말을 따르면 나는 창조성으로 인도된다.
14. 내 안의 창조성에 귀 기울이면 나는 창조주에게 인도된다.
15. 나는 기꺼이 창조할 것이다.
16. 나는 기꺼이 창조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배울 것이다.
17. 나는 기꺼이 신이 나를 통해 창조하도록 할 것이다.
18. 나는 기꺼이 나의 창조성을 통해 봉사할 것이다.
19. 나는 기꺼의 나의 창조적인 힘을 경험할 것이다.
20. 나는 기꺼의 나의 창조적인 재능을 사용할 것이다.
점검
당신은 매주 점검을 해야 한다. 각 질문에 대한 대답은 손으로 쓰는 것이 가장 좋으며, 모닝 페이지를 써놓은 공책에 점검을 해도 좋다. 이 점검은 당신의 창조성 여행의 항해일지를 쓰는 것이다.
1. 이번 주에 모닝 페이지를 며칠이나 썼는가? 7일 모두 썼기를 바란다. 모닝 페이지를 쓰는 동안 어떤 것을 체험했는가?
2. 이번 주에 아티스트 데이트를 했는가? 물론 했다는 대답을 기대한다. 무엇을 했고, 그 느낌은 어땠는가?
3. 이번 주에 창조성 회복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사건이 있었는가? 그것을 적는다.
2주 | 정체성을 되찾는다
창조적 자아를 되살리는 과정에서는 밀물과 썰물처럼 회복기와 침체기가 반복된다. 자신감이 붙는 만큼 회의감도 밀려든다. 이런 과정을 겪는 것이 정상이다. 강한 회의감을 오히려 회복의 조짐이라고 생각하자.
아마도 창조성이 막혀 있는 그들은 동정이나 구걸하며 자기비하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열심히 작업하고 있는 사람들보다 자신이 훨씬 더 창조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나 하면서 우월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태도는 지금의 당신에게 정말 해롭다.
회복이 진행되면 당신의 창조주와 당신 안에 있는 창조자를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믿게 될 것이다. 글을 쓰지 않는 것보다는 쓰는 것이, 그림을 그리지 않는 것보다는 그리는 것이 더 쉽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창조성을 갈고 닦는 즐거움도 발견하고, 결과가 아닌 과정에 관심을 쏟게 될 것이다. 당신 자신의 치유가 다른 사람들에게 가장 큰 희망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
실상 창조적인 삶이란 끝없는 관심의 연속이다. 관심이란 우주와 나를 연결하고 살아남는 방식이다. 릴케의 말을 빌리면 우리 모두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외롭다". 나는 고통에 빠져 있는 동안, 미래를 생각하기에는 너무 두렵고 과거를 돌이키기에는 너무 고통스러울 때는 현재에 관심을 기울이는 법을 배웠다. 내게는 지금 이 순간만이 가장 안전했다. 홀로 남겨진 매순간이 언제나 견딜 만했다. '언제나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괜찮다. 과거의 결혼은 끝났을지 모른다. 내일 그 고양이는 죽을지 모른다. 연인의 전화는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그 모든 것이 괜찮다. 나는 천천히 숨을 쉬고 있다.' 이런 것을 인식하면서 나는 매순간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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