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겅퀴
-약초 20, 잡초와 약초, 가치감정(價値感情)-
글 수필가
인애가한방병원 이사장 김덕호
학술세미나가 있어 모교를 잠깐 방문했다.
산림테라피에 대한 한의학적 근거를 다지기 위해 산림청과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이 주최한 대회였다.
연자들끼리 대화를 나눈 후 얕은 뒷산인 고황산 자락을 둘러보기로 했다.
대학시절 약초의 생태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뒷산을 수시로 오르내렸던 적이 있었다.
당시 시험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본(약)초였다.
영주에서 한의원을 경영하시던 선대와 산야를 이리저리 다니면서
주위로부터 주워듣고 경험한 정보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 때와 현재의 고황산 생태가 어떻게 변했나 궁금하기도 해 미술대학 부근을 거쳐
‘평화의전당’ 뒷쪽으로 갔다가 한의학관으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초여름 늦은 오후인데도 오솔길을 따라 걷는데 여느 곳보다 나비들이 부지런히 날아다니고 있었다.
나비들이 모인다면 꽃이 있다는 것이고 꽃이 있다면 벌 또한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십여미터쯤 갔을까, 키가 훤칠하고 짙은 홍자색 꽃을 피우고 있는 엉겅퀴가
소나무 사이 양지바른 곳에 무리지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비와 벌이 분주하게 꽃 주위를 에워싸는 이유가 꽃이 화려하고 예뻐서일까
꽃과 꽃가루 주머니가 많기 때문일까 새삼스러운 질문을 던져보았다.
가시돋힌 잎사귀와 수백개의 침이 꽂힌 방패로 무장한 꽃잎들이 사람에게는 혐오스러운 존재이다.
하지만 꽃이 흔치 않은 여름, 곤충에겐 엉겅퀴의 존재 가치가 더없이 클 것이다.
이래서 그때 농부가 표독하다 했던가?
대학병원 재직시절 엉겅퀴에 얽힌 사연하나가 생각난다.
“왜 그걸 그냥 뽑아 버리세요? 우리나라에서는 그 풀을 고혈압과 간질환 치료제로 개발중이에요.”
깜짝 놀란 독일의 약리학 교수가 엉겁결에 흥분하면서 말을 꺼냈다.
“잡초를 어디에 쓰겠소? 표독한 놈이라 아주 씨를 말려야지.”
밭에서 일하고 있던 농부가 통역내용을 듣고는 면식도 없는 외국인이 자신이 하는 일에 참견하는 게 기분 나빴던지
퉁명스럽게 말을 받았다. 그리고는 밭둑에까지 낫으로 베어버렸다.
국제동양의학 학술대회에서 같이 연자로 참석하고 있던
그와 다자간 학술정보교환 협의차 경희대 본교에서 수원캠퍼스 쪽으로 가던 중에 있었던 광경이다.
당시 캠퍼스 주위에는 논밭과 구릉지가 있어 엉겅퀴가 군데군데 자생하고 있었다.
“한국 엉겅퀴는 독일보다 훨씬 더 큰 걸 보면 유효성분도 더 많아서 부가가치가 높겠어요.
한국도 독일처럼 발전해서 엉겅퀴 연구에 집중했으면 좋겠어요.”
다국적 제약회사에 약리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던 그가
진심어린 한국 사랑을 계속한 것은 약초 외에도 그의 친구 때문이었다.
친구는 내과전문의였다. 한국 간호사와 결혼한 그의 친구는 한국을 일년 마다 방문하였고
부인 때문에 한의학에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부인이 B형간염 진료를 위해 한방병원에 내원하였고
그때 팜플릿을 보고 남편에게 한의학 공부를 권유하였다.
남편은 간경변으로 악화될 뻔 했던 부인의 호전상태를 경험하고는
서양의로서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강좌에 참석했던 것이다.
약 1년간 한국을 왔다 갔다 하면서 적극적인 치료로
간염수치가 상당히 안정 범위까지 되었다고 부부가 좋아서 어쩔줄 몰라했다.
그 후부터 한국한의학의 홍보대사로서 한국과 독일 사이에 가교역할을 톡톡히 해오던 중에
친구 교수를 강좌에 소개했다.
친구 또한 강좌수료 후에 한국 한의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후 국제 학술대회에 연자로 초청된 것이다.
당시 외국 의료인들을 위한 동양의학 강좌를 책임 맡고 있었다.
한국 한의학 체험 및 세계화 프로그램 일환으로 기초분야와
임상분야를 나누어 강의와 실습을 병행했다.
분위기는 매우 진지했고 관심도가 높아 질문이 끊이질 않았다.
어떤 경우는 주제 하나를 놓고 밤늦게까지 토론하는 일이 잦았다.
서양과 동양의 사고, 철학, 관습, 문화가 다른데다가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의 잘병관에 따른 원인, 치료가 달라서 논쟁은 늘 뜨거웠다.
천하로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을 다루는 직업관은 동서양이 없을 정도로 프로정신들이 나름대로 충만했다.
결국 하나의 질병을 놓고 동과 서의 관점은 다르지만
정확히, 신속히, 부작용 없이 치료하고자 하는 목표는 같으며,
이를 위해 서로 협력하고 보완하기 위한
기초 작업을 해 나가고자 하는데 동의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 가운데도 독일에서 온 의사들이 열심이었다. 내과, 신경과, 예방의학, 약리학을 전공한 개업의와 기초교수들이었다.
귀납적이고 분석적이며 미시적인 서양의학의 사고틀에서 연역적이고 종합적이며
경험적인 질병관을 가지고 있어 훨씬 친해지기 쉬웠다.
독일인이 많았던 이유는 상대 학문에 대한 열린 마음이었다.
유럽에서 한의학의 침술이 오래전부터 광범위하게 알려져 있는데다가
겸허한 자세를 가지고 있는 국민성 때문이었다.
세계대전 전에는 어땠는지는 잘 모르지만 패전국으로서 유럽경제를 선도하기까지는
철저한 자기반성과 이웃 피해 국가들과의 동반성장 정책을 펴온 결과로 승승장구 해온 것이라고 여겨진다.
당시 제국의 욕심을 갖고 전쟁을 일으켜 주위 국가에 큰 고통을 준 엄청난 범죄행위를 일삼은 나라들 중에
과거사를 인정하기는 커녕 지우려고 진실을 왜곡하고 은폐하려는 나라와는 대조적이었다.
그들은 강좌 뒷풀이에서도 매우 신사적이었다.
약리학을 전공한다는 바로 그 교수가 침구학에 관심 많은 개업의와는 달리
그때 이미 한약에 호기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엉겅퀴는 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겉모습 때문에 그런지 이름도 가지각색이다.
수없이 베이고 밟힌 자리마다 돋은 가시가 돋보인다.
심장이 베인 것 같은 섬뜩함을 노래한 가사가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엉킨 데를 풀어준다거나 피를 엉키게 하여 지혈을 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잎마다 날카로운 가시가 있어 ‘가시나물’ 또는 ‘항가시’라 한다.
고양이를 닮았다고 해서 ‘야옹화’, 닭벼슬 같다고
계향초, 소 주둥이 같이 생겨 ‘우구자’또는 ‘소왕이’라는 별명도 있다.
꽃대가 자기방어를 위해 흰털과 끈적끈적한 점액으로 덮여있는 것도 특징이다.
효과적인 번식을 위해 곤충이 꽃에 앉으면 꽃가루를 내밀어 다리에 묻혀 옮긴다.
바람이나 사람이 꽃을 살살 건드리면 떡고물 같은 하얀 꽃가루가
조금씩 꽃위로 올라오는 모습도 엉겅퀴만이 가지는 특징이다.
세계 여러 곳에 분포하며 우리나라에서는 20여 종류가 있고
1m넘게 자라면서 꽃은 6~8월에 핀다.
아주 드물게 돌연변이종으로 흰 것이 있다.
연한 줄기나 어린 순을 나물로 해먹거나 찌개에 넣어 먹기도 하고
뿌리를 절임요리로 하거나 술을 담그거나 한다.
특히 잎 가시가 잘잘한 ‘고려엉겅퀴’의 근생엽은
흔히 ‘곤드레’라는 이름의 산채나물로 애용되어 온 구황식물이기도 하다.
척박한 땅에서도 살아가는 생존력이 뛰어난 건 보릿고개를 넘을 때 홀로 ‘외로움’을 이겨내면서
억세고 악착같은 의지로 살아남으려 했던 과거 우리네 모습과 닮았다.
여물수록 고개를 숙이듯이 꽃자루가 길어지고 꽃의 무게가 무거워지면 고개를 숙인다.
겸손함의 예의도 차릴 줄 아는 것을 보면 아름다운 나눔과 베품의 속마음을 가지고도 있다.
꽃은 꿀로, 여린 잎은 나물로, 그리고 철저한 자기방어로 자신을 지켜왔던
씨, 뿌리, 줄기 등 모든 것을 약으로 기꺼이 내놓는다. ‘고독’과 ‘근엄’이라고 붙여진 곷말의 의미를 알만하다.
겉모습은 표독스럽지만 그 속에는 한없이 따스함과 부드러움이 숨어있는 풀이다.
약제로 쓰일 때는 대계(大薊) 또는 지정(地丁)이라는 생약명을 별도로 갖는다.
어릴 때 들이나 산에서 놀다가 엎어져서 다치면 잎이나 줄기를 잘라서 나오는 하얀 진을 바른다.
찰과상에 피가 송글송글 솟아나는 상처에 잎을 깨끗이 씻고 짓찧어 바르면 바로 멋기도 하고 덧나지 않는다.
유효성분 ‘실리마린’의 간질환 개선효과 외에도
지혈, 부인병, 이뇨, 혈압강하, 해독, 소염진통작용도 있다.
유럽과 미국 등 서양에서 오히려 연구개발이 활발한데
우리도 한약 산업화 차원에서라도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같은 풀인데도 이처럼 일반인에게는 귀찮고 저주스러운 잡초에 불과하다.
그러나 전문가에겐 유익하고 복스러운 약초이다.
가치판단의 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잡초와 약초의 거리가 멀다가도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상이치도 그렇다.
첫댓글 그러네요 가치판단의 눈도 중요하지만 정신과 마음도 또한
오늘 지인들과 곤드레밥을 먹고 왔는데 미리 알았더라면
많은 지식과 깨달음을 느끼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밟고만 다녔던 엉겅퀴가 널리 유익을 주는 식물이였네요.
아무리 하찮은 것일라 할찌라도 쓰임이 있다는것 흥미로왔습니다.
또 한가지를 배웠어요.
제목이 매력포인트
신조어인줄 알고 검색하니 아니네요
많이 배웁니다. 오늘고 즐겁고 행복하소서
이또한지나가리라님,좋은 눈으로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에스더님,세상에 하찮은 것이란 없더라구요.하찮게 보는 눈이 문제죠.잡초도 하나 버릴 것이 없는 세상이 오겠죠.과학이 더발달하 면 하찮은것에서 의외의 귀한 성분이 밝혀 지겠죠.
엉겅퀴는 구약성경 창세기 4장에서도 나오는 저주받은 풀이죠.하지만 저주속에서도 숨어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엿볼 수있죠.거기에 대해서도 따로이 글을 쓸겁니다.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마가렛님.
"엉겅퀴"가 아니라 "가치감정"이란 제목을 말하는거예요
"가치감정"에서 묘한 ~ 말로 표현할 수가 없네요
바쁘실텐데 답글까지.
그러나 대단하신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창세기4장이 아니라 3장18절인데 목사님도 아니신데 어떻게 울 직원이 대단하시데요
엉겅퀴 참 좋은 약초였군요.. 오늘도 한 가지 배움을 얻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