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의 둘째아내 코지마 바그너(Cosima Wagner, 1837~1930)
헝가리 출신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Ferenz Liszt, 1811~1886)의 딸로 태어난 코지마는 1857년에 독일 음악지휘자 겸 작곡가 한스 폰 뷜로프(Hans von Bülow, 1830~1894)와 결혼하여 두 딸을 낳았다. 하지만 1863년 그녀는 뷜로프와 친했던 리하르트 바그너를 만나면서 바그너와 사랑에 빠져들었다.
1868년 뷜로프와 이별한 그녀는 스위스 중부에 위치한 루체른(Luzern) 호수 연안의 트립셴(Tribschen)에서 리하르트 바그너와 1866년 3월30일부터 1872년 4월22일까지 동거했다.
1870년에는 뷜로프와 정식으로 이혼절차를 밟은 코지마가 바그너와 결혼식을 거행하면서 바그너의 둘째아내가 되었다. 코지마 바그너는 리하르트 바그너와 결혼하기 전인 1865~1869년에 이미 리하르트 바그너의 자녀들인 이졸데(Isolde, 1865~1919), 에바(Eva, 1867~1942), 지크프리트(Siegfried Wagner, 1869~1930)를 낳았다.
1869년 4월에 코지마는 바그너와 함께 독일 남동부 바이에른주(Bayern州; 바바리아주Bavaria州) 북부의 소도시 바이로이트(Bayreuth)에서 이른바 ‘바이로이트 음악축제(Bayreuther Festspiele)’를 개최하기로 계획했고, 1872년에는 남편과 함께 바이로이트로 이사하여 축제극장의 건축을 주도했다.
1876년에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족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가 초연되면서 개관된 이 축제극장을 중심으로 이후 매년 7~8월에 음악축제가 열렸는데, 코지마는 리하르트가 사망한 후에도 20여 년간 이 축제를 주관했다.
니체는 1868년 11월 처음 그녀를 만난 후부터 그녀와 바그너가 살던 트립셴을 자주 방문하여 그녀에게 선물을 주곤 했다.
그녀는 니체로부터 받은 편지들을 나중에 모두 파기했지만, 그녀의 일기(1869년 5월17일~1877년 12월 2일)에는 니체가 여러 번 언급된다.
니체는 1889년 1월에 코지마에게 써보낸 이른바 “광기편지(狂氣片紙; Wahnbriefe; 광인편지)”에서 그녀를 ‘아리아드네(Ariadne)’(왼쪽그림)로 호칭할 만큼, 그리고 예나의 정신병원에서는 자신의 담당의사에게 “나의 아내 코지마가 나를 이곳으로 데려왔소”라고 말할 정도로 그녀를 사랑했다.(《니체 자서전: 나의 여동생과 나》 제2장 제2절 참조) 그러나 1878년에 그녀는 니체와 바그너의 우정관계를 결정적으로 갈라놓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읽고 실망한 후부터 니체와 멀어졌다. 그녀는 1930년 바이로이트에서 향년 93세에 사망했다.
* 출처: 프리드리히 니체, 《니체 자서전: 나의 여동생과 나》(까만양, 2013), 12~1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