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강연 후 진행된 일문일답이다.
질문 1. 주변에 교사가 여럿 있는데 무력감을 느낀다는 말을 많이 한다. 학생들의 속 얘기를 듣다 보면 무당 같은 생각이 든다고 한다. '그저 원(怨)을 달래주다 끝나는 것 아닌가'라는 회한이다. 그 순간에는 도움이 전혀 안 된다는 자괴감 또한 섞여 있다. 아이들에게 언제까지 견디라고만 말할 수는 없지 않나.
이계삼 : 학생들만 견뎌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교사들도 견디고 있다. 한 교사가 메일을 보냈는데, 주변 교사들에게 아이들을 장악하지 못 한다고 비난을 듣는다는 내용이었다. '장악'(掌握)이라는 말은 손바닥에 꽉 쥔다는 표현인데, 교육학에 없는 말이다. 학생을 장악한다는 것은 파시즘적인 발상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선생님들은 아주 중요한 사상적 투쟁을 하고 있다. 몸이 아픈데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억지로 야자를 해야 했던 체험은 아이에게는 큰 상처가 된다. 자신의 절실한 바람을 '힘'에 눌려 유보했던 이들은 절실한 문제를 유보하는 일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힘센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밀고 나가는 것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심리적 기반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사들은 두발이든 야자든 아이들의 절실한 바람을 존중해 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중요한 반파시즘 투쟁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 학교에서 '호구'로 지냈다. 교사 사회에서 아이들에게 허용적인 태도는 다른 말로 '무능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호구로 지낸 교사 생활 11년에 전혀 후회가 없다. 이 자리에 온 교사들에게 '저처럼 호구가 되어 주십사' 부탁하고 싶다. 또 같은 학년 안에 '호구 동맹'이 맺어졌으면 좋겠다, 야자가 되든, 두발이 되든, 학교라는 체제의 억압적인 것들로부터.
잘했다고 생각되는 것의 또 한 가지는 아이들이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하게 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민주주의는 원래 복잡하고 '불순물'이 많고 혼란스러운 것이다. 학교도, 학생도 민주주의가 되려면 늘 자기 말이 많고 다소 어지러운 상태여야 한다. 그게 정직한 것이다.
그런데 막상 교사들이 그것을 못 견뎌 한다. 타인의 시선, 자기의 평가, 자기 에고의 문제다. 흔들린다는 것은 출렁이는 것이고, 굉장히 기분 좋은 교육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일사불란한 체제에서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에너지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날 교사들이 좀 더 무능한 호구였으면 좋겠다,
질문 2. 딸이 6학년인데, 반에서 일어난 몸싸움을 아이가 경찰에 신고했다. 결국 당시 현장에 있던 학생들의 학부모가 경찰에 불려 가 쓴소리를 들었다. '학교폭력 신고하라'며 배운 대로 한 행동이지만, 그 일로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했다. 엄마 입장에서도 과연 옳은 행동이었는지 판단이 안 선다. 어떤 일이든 자기 자식에 대한 것은 상황판단을 하기 어렵더라. 부모로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나.
이계삼 : 우리 아이도 지난 1학기 때 따돌림을 당했다. 그 반은 힘이 센 아이 중심으로 돌아갔는데, 아이가 그런 상황이 불편했는지 다른 반으로 도니까 힘이 센 아이가 따돌림을 명했다. 아이가 계속 아프다며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길래, 어른이 개입해야 되느냐를 놓고 아내와 오랫동안 고민을 했다.
조금 더 가면 우울증 걸리는 것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심각했는데 결국은 개입하지 않았다. 그 기간이 열흘 넘게 2주 정도 지나니 풀렸다. 아이도 견뎠고, 우리도 견뎠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힘이 센 아이가 해제를 명했다고 한다. 2주 동안 아이는 쉬는 시간에도 다른 반에 가지 못하고 교실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조증으로 보일 만큼 활발해졌다.
부모가 아이 상태를 직접 검사하려는 것은 안 좋다고 본다. 사실 말이지만, 오늘날 어른들도 조금씩은 다 ADHD(주의력결핍장애)가 있지 않나. 특히 스마트폰이 나온 이후로는 더 그렇지 않나. 그런데 아이가 그렇다고 낙인을 찍으면, 언어가 존재를 규정하게 된다.
부모 입장에서 아이에게 우울증이 생길 만큼 바라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아이도 그 과정을 견디면서 한 단계 성숙해졌다고 본다. 아이는 그 경험을 계속 기억하며 살 것이다. 이런 상처가 거세된 시공간을 상정해서 쉽게 가려고 피해 가려는 태도는 올바르지 않다. 사실 말이지만,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저, 지켜봐 주는 것이다. 지금 이 땅에서 교사로 부모로 지내는 시간은 기본적으로 고통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하고, 주고받고 공감하는 그 언어 속에서 다른 행동이 시작되는 것이다.
질문 3. 이계삼 선생님이 사직했다는 얘길 들었을 때 좋은 교사를 잃어 슬프다라고도 생각했지만, 좋은 학부모를 얻어 기쁘다라는 생각도 동시에 했다. 교사 생활 중 안타까웠거나 기억에 남는 일은?
이계삼 : 학교에 있으면서 교사 집단과 잘 안 맞았던 게, 교사성(性), 교사됨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교사들은 늘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고, 자신 아닌 누군가를 탓하지만, 잘 듣다 보면 결국 자신이 '교사'라는 사실에 안도하는 이야기로 귀결되더라. 결국 현실이 어떻다, 교육이 어떻다 말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은 '안전한 정규직 교사'라는 계층적 안정감으로 귀결되는 것이었다. 그게 불편했다.
기억에 남는 일은 아이들하고 야자하면서 떡볶이와 오뎅을 먹던 시간이다.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 그림을 참 좋아하는데, 슬프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하고, 그렇다. 여럿이 모여서 같이 먹는 게 그냥 좋다. 공자께서 말씀하신 '대동(大同)' 사회도 결국 '모두 모여서 함께 밥 먹는 것'을 뜻하는 것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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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