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http://kma21.net/zero/view.php?id=anbo&no=130 (육사 21기 동기회)
김훈 중위, 두 번 죽여서는 안 돼
박용옥 평안남도지사
전 국방부 차관
전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부총장
1998년 2월 24일 판문점 경비소대(JSA)에서 경계근무중이던 김훈 중위(육사 52기)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이 청년장교의 죽음을 둘러싸고 지난 10여 년 간 자살로 결론지으려는 군(軍) 조사당국을 상대로 벌인 김 중위의 부모의 반론투쟁은 실로 처절했다.
그 투쟁은 부자(父子)간 혈육의 정을 못 이겨 벌인 감정 투쟁만은 아니었다. 군 고위장성을 지낸, 군의 선배로서, 또 군인가족의 일원으로서 ‘국민을 위한, 국민의 군대’로 정도(正道)를 걷기를 촉구하는 한 예비역 육군중장의 결연한 의지의 투쟁이었다.
유족과 군(軍)선배들의 의지의 투쟁
이는 또한 외로운 투쟁만도 아니었다. 육군사관학교 총동창회, 육사 21기 동기회, 육사 52기 동기회 등 군의 선배들과 동기생들이 김중위 유족의 투쟁정신과 정의감에 공감했다.
이 뿐이 아니었다. 국회국방위원회, 대법원판결,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국회국정감사, 국민권익위원회 등 주요 국가 기관들은 철저한 조사와 심의를 통해 김 중위의 죽음은 자․타살 어느 한쪽으로 결론 지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국방당국에 김 중위의 명예로운 순직처리를 권고했다.
그 결과 국방부는 금년 7월1일부로 군복무중 자살한 경우라 해도 심의를 거쳐 순직처리할수 있도록 관련법규를 개정, 시행중이다. 이는 우리 군이 ‘국민의 군대’로 발전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획기적인 조치라 할 수 있다. 국방당국은 어떤 경우에도 장병의 안전과 관리 책임을 면할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조치인 것이다.
한편, 일부 언론 보도에 의하면 우리 군 조사당국에서는 아직도 김중위의 사망원인을 자살로 결론지으려는 입장을 버리지 않고 있다. 객관적 사실과 과학적 근거에 의한 결론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심지어 ‘정신질환에 의한 자살’로 결론지으려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내용이 사실이 아닐 것으로 믿지만 만일 사실이라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 중위 사망과 관련한 국당국의 조사는 결과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것이 물론 기본이다. 하지만 그보다 조사대상인 한 청년장교, 그것도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젊은 장교가 최전방 경계근무중에 당한 의문의 죽음을 결코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군조사당국의 기본 정신과 자세가 더 중요할 수 있다.
‘군 중심’ 벗어나 ‘국민 중심’으로
더욱이 군조사당국의 초동조사가 부실한 상태로 시작됐고, 그후의 철저한 조사활동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100%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라면, 군조사당국은 국회,법원,관련위원회등 주요 국가기관들의 신중한 심의와 권고, 그리고 그 정신과 취지를 진정으로 존중하는 자세로 필요한 조치들을 취해야 할 것이다.
우리 군은 과거의 잘못된 관행과 폐습에서 서서히 탈피해 가고 있다. 우리 군이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국민의 군대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군복무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장병들의 신체적 안전과 건전한 군인정신을 함양하는 일에 최우선적인 비중을 둬야 할 것이다. 이는 물리적인 전력증강보다 더 중요한 정신전력과 전투력의 필수요건이다.
또 국민을 위한 군이 되려면 아들, 딸의 군입대 후 마음을 졸이며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장병 부모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는 군이 돼야 할 것이다. 지금은 ‘군 중심’의 생각보다 ‘국민 중심’의 생각이 요구되는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