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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속사터의 매화꽃을 감상한 뒤 산청 남사마을에 자리한 진양 하씨 고택에 들르면 600년생 매화나무가 꽃을 피운 채 반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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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향기는 ‘귀로 듣는 향기’라고 한다. 어디선가 떨어지는 바늘 소리도
들을 수 있을 만큼 마음이 고요해야만 비로소 그 향기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매화의 고고한 기품과 은은한 향기를 제대로 느끼려면 아무래도
인적 드문 산사가 제격이다. 연륜 깊은 산사 치고 매화 한두 그루 없는 곳이 드문 것도 바로 그런 연유 때문이다.
산청 단속사터
수령 600년 정당매 유명
남사마을 돌담길도 좋아
지리산 자락의 첩첩산중 마을인 경남 산청군 단성면 운리에는 고즈넉한 옛 절터가 하나 있다. 신라 경덕왕 때에 창건됐다가 조선시대 정유재란 당시 불타
버렸다는 단속사의 옛터이다. 오늘날 폐허로만 남은 절터에는 쌍탑(보물 제72호, 제73호)과 당간지주만 쓸쓸하게 서 있다. 게다가 지리산에서 흘러내린 연봉들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어 속세와 단절된 듯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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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속사터의 정당매. 가지가 부러졌는데도 해마다 꽃을 피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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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사터에는 수령 600년의 ‘정당매’라는 매화나무가 있다. 고려 말 단속사에서 공부하던 강회백이 심은 나무인데, 훗날 그의 벼슬이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이르자 ‘정당매’라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지금도 이 정당매와 쌍탑
주변의 어린 매화나무 몇 그루는 해마다 3월 중순이면 고결하고도 은은한 매향을 절터 가득히 흩뿌린다.
단속사 초입의 20번 국도변에는 남사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즐비한 이 마을에는 밀양 박씨, 성주 이씨, 진양 하씨 등이 모여 산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투박한 돌담길이 정겹게 이어지고, 높다란 돌담 위로는
화사하게 꽃을 피운 매화나무가 군데군데 서 있다. 몇 백 년씩 묵은 이 마을의
매화나무는 대부분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한 옛 선비들이 심은 것인데, 특히
진양 하씨 32대손이 사는 ‘분양고가’의 600년 묵은 매화나무가 기품 있어
보인다.
■ 숙식 = 산청군 단성면 일대의 맛집으로는 단성면 창촌리의 강변횟집(민물매운탕, 055-972-5023)과 시천면 사리의 팔도한우촌(소갈비구이, 973-0092)이 권할 만하다.
단속사터 부근에는 숙식이 가능한 운곡관광농원(973-1550)이 있고, 남사마을과 산천재 사이의 20번 국도변에는 비너스모텔(973-3993), 구만장(973-6461), 삼광파크(973-6070) 등의 숙박업소가 있다.
■ 가는 길 = 대전~통영 고속도로 단성나들목(20번 국도) →남사마을 →호암교 →단속사터 →호암교 →산천재
순천 선암사
3월 말부터 매화꽃 만발
토종매화 짙은 향기 일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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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암사의 대웅전 뒤뜰에 핀 매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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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의 명산 조계산에는 두 곳의 명찰이 있다. 송광사와 선암사(061-754-5247)가 바로 그곳이다. 삼보사찰의 하나인 송광사는 구구한 설명이 새삼스러울 정도로 유명한 반면, 선암사는 태고종의 총본산인데도 비교적
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절 자체의 운치와 분위기만큼은 우리나라의 어느 고찰 못지않게 그윽하고 예스럽다.
선암사에는 꽃과 나무가 유난히 많다. 그것도 근래에 심은 것보다도 오랜 옛날부터 제 자리를 지켜온 노목들이 더 많다. 나무의 종류도 동백·매화·산수유·영산홍·차나무·수양벚나무·무화과나무·소나무·전나무·은행나무
등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다양하다. 그래서 선암사의 경내는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순차적으로 꽃망울을 터트리는 화초들로 늘 화사한 봄빛이다.
특히 무우전과 팔상전 주변의 해묵은 매화나무들이 한꺼번에 꽃을 피우는 3월
말부터 4월 초순 사이에는 그윽한 매향이 온 경내에 진동한다. 이곳의 매화는
모두 토종 매화인데, 수령이 600여 년에 이르는 고목도 10여 그루나 된다. 개량 매화는 가지마다 빽빽하게 꽃눈이 맺히지만, 선암사의 토종 매화는 작은
꽃송이가 드문드문 맺힌다. 그래서 화사하다기보다는 소박해 보인다. 하지만
선암사 토종매화의 단아한 기품과 짙은 향기만큼은 개량 매화가 따라오지 못한다.
꽃이 없는 철에도 선암사는 늘 화사하다. 설선당 문짝에는 탐스럽게 핀 모란꽃이 그려져 있고, 원통전의 문살에는 꽃과 잎이 풍성한 모란이 조각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선암사에서는 사시사철 어느 때라도 꽃구경이 가능하다.
■ 숙식 = 선암사 주차장 부근의 상가지구에는 산호산장(061-754-5234), 장원식당(754-6362), 길상식당(754-5599), 선암식당(754-5232) 등의 음식점이
있다. 주로 조계산 자락에서 채취한 산나물을 재료로 해서 산채백반, 산채비빔밥, 도토리묵, 토종닭백숙 등을 내놓는다.
선암사 상가지구에는 선암장(754-5666), 초원장(754-5811), 새조계산장(751-9121) 등 장급여관이 여럿 있다. 그밖에도 선암사 인근의 승평호반에 아젤리아호텔(754-6000)과 장군봉모텔(754-5415)이 있다.
■ 가는 길 = 호남고속도로 승주나들목(22번 국도) →승주읍내(857번 지방도) →죽학분교 삼거리 →선암사 주차장→선암사
완주 화암사
주변에 야생화도 활짝
산자락엔 온통 꽃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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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암사의 뒤란에서 활짝 꽃핀 매화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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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사(063-261-7576)는 전북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의 깊은 산중에 들어앉은 고찰이다. 신라 때에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수도했다는 이곳은 절 자체의
고요한 분위기도 좋지만, 절에 이르는 길이 매우 인상적이다.
절로 가려면 숲 속의 공터에 차를 세워 두고 농로 같은 시멘트 도로를 따라가야 한다. 시멘트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조금 더 오르면, 가파른 골짜기의 물길을 따라 가느다란 오솔길이 이어진다. 비탈진 골짜기에는 나무가 무성하고
인적마저 드물어 산새들이 부스럭거리는 소리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 일쑤다. 그야말로 산사를 찾아가는 길답게 적막하고 호젓하다.
도무지 절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산중턱에 자리한 화암사는 우선 번잡하지 않아서 좋다. 관광객은커녕 절간 사람들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우화루(보물
제662호)와 극락전(보물 제663호), 그리고 두 채의 요사채에 둘러싸인 절 마당에 들어서면 뒤란의 늙은 매화나무에서 풍겨오는 매화 향기가 온몸을 휘감는다. 조선의 실학자 홍만선의 말마따나 “사람을 감싸 뼛속까지 싱그럽게 하는 향기”이다. 매화나무는 몇 그루 안 되는데도, 매향은 온 산자락과 골짜기에서 느껴질 정도로 강렬하다.
매화가 만개하는 4월 초순에는 각종 야생화도 앞 다퉈 피어난다. 절 주변의 산비탈마다 한창 절정에 이른 진달래·얼레지·생강나무꽃이 곱디고운 꽃 빛깔과 눈부신 자태를 한껏 뽐낸다. 그래서 깊은 산중 고요한 산사에서의 봄날은
실제보다 훨씬 더 짧게만 느껴진다.
■ 숙식 = 화암사 주변에는 음식점과 숙박업소가 없다. 화암사에서 승용차로
20여 분 거리인 운주면 산북리의 대둔산 상가지구와 17번 국도변에 있는 아리랑식당(산채백반, 063-263-9120), 통나무집(훈제오리구이, 263-9224), 강변가든(메기매운탕, 263-4919), 대둔산관광호텔(263-1260), 성남황토방여관(263-2210) 등 음식점과 숙박업소가 많다. 경천저수지 주변에 위치한 화산식당(참붕어찜, 263-5109)은 소문난 맛집이다.
■ 가는 길 = 호남고속도로 논산나들목(68번 지방도) →가야곡(643번 지방도) →화산 →종리 삼거리(17번 국도) →경천 →가천 →화암사
글·사진=양영훈(여행작가 travelmaker@hanmi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