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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 막걸리를 한 모금이라도 마셔본 사람은 안다. 뭔가 목구멍에서 걸린다는 것을. 술잔을 보면 허연 씨앗 같은 게 동동 떠다닌다. 바로 잣이다. 여느 막걸리와 달리 고소한 듯 묘한 맛을 낸다. 이 때문에 누구든 술보다 먼저 잣향에 취한다. 귀한 잣을 술에 듬뿍 띄울 수 있는 고장이 가평군이다. 가평의 상징 군목이 바로 잣나무다. 관내에서도 축령산 자락의 상면 행현리 일대가 유명하다. 잣 생산량은 전국 평균적으로 약748천kg 인데 그 중 경기도의 생산량은 460천kg으로 약 61%를 차지하고 있다. 가평군의 잣 생산량은 330천kg으로서 경기도 생산량의 약 72%를 차지하고 전국 총생산량의 45%를 차지할 만큼 잣의 고장이다. 이상하게도 ‘가평 잣’이라는 이름으로 시중에 나온 물량은 약 80%나 된다. 상당수 업체가 가평 잣의 절반값 수준인 중국산 잣을 섞어 쓴 탓이다. 잣에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등의 영양성분은 물론 무기질과 비타민까지 골고루 갖추고 있어 완전한 식품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특히 지방과 단백질의 함량은 잣의 100g당 각각64.2g과 18.6g으로서 다른 식품과도 비교가 안될 만큼 높다. 잣의 지방질 함유량은 62.0%로서 대단히 높은 편이며 불포화도는 6.0으로서 식물성 지방질중에서 가장 높다. 특히 잣에는 불포화지방산인 올례산과 리놀산. 리놀레인산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레시틴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레시틴은 양질의 불포화지방산으로 뇌와 혈관에 좋은 성분이며 현대병이라고 할 수 있는 고혈압. 당뇨병 등의 원인이 되는 동맥경화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잣은 예로부터 귀한 식품으로서 기운이 없을 때 입맛이 없을 때 잣죽을 먹으면 기운이 나고 입맛을 찾게 하는 효과가 있어 노약자나 환자에게 널리 애용되어 왔다. 농가 소득 증대는 물론 올바른 가평 잣을 보급하기 위해 2000년 5월 행현리의 33개 잣농가가 모여 ‘가평축령산 잣 영농조합’을 만들었다. 이수근 조합장은 “우리는 100% 가평 잣만 사용한다”고 강조했다. 품질관리를 위해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경기지원 가평출장소에서 나와 매달 검사를 한다. 잣은 다른 농수산물에 비해 국산ㆍ중국산을 구별하기 매우 어렵다. 출장소에서 잣 원료 비축량과 상품 생산량까지 비교해가며 중국 잣을 끼워 넣었는지 확인한다. 순박한 농민들은 고장에서 엄선한 재료로 성심껏 만들면 그냥 팔릴 줄 알았다. 그러나 조합 결성 후 2년 동안 마땅한 판로를 못 찾아 애를 먹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1년 태풍 ‘루사’가 몰아친 계곡 주변에 잣나무가 도미노처럼 넘어지는 피해를 봤다. 순식간에 수십 년의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지는 듯했다. 잣나무는 수령 20년은 돼야 본격적으로 잣을 생산한다. 잣은 약 35~40년짜리 나무에 가장 많이 달린다. 다행히 지난해부터 가평 잣의 진가가 제법 알려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1월 일본 요미우리TV에서도 ‘잣으로 만드는 음식’이란 주제로 축령산 잣을 소개했다. 내친 김에 앞으로 일본 시장도 개척할 생각이다. 여전히 값싼 중국산과 경쟁해야 하지만 최고의 품질을 앞세운다면 승산이 있다고 본다. 잣나무는 5월에 한 나무에서 암ㆍ수 꽃이 피어 이듬해 8월 열매가 익는다. 대개 9~11월 3개월간 수확한다. 솔방울은 가지 끝이나 20~30m 높이 꼭대기에 달린다. 일일이 나무에 올라가서 장대를 들고 두드려야 한다. 나무에서 떨어질 위험도 있다. 잣을 전문으로 따는 사람들은 속칭 ‘사가리’라는 등산용 아이젠 비슷한 쇠꼬챙이를 신발 아래 차고 나무를 오르내린다. 한 사람이 하루 15~20그루씩 수확한다. 외지사람들에게는 이런 것도 작은 볼거리가 된다. 현재 영농조합 옥상에는 잣 체험장을 짓고 있다. 올 8월까지 공사를 끝내고 9월쯤 문을 열면 잣을 이용한 각종 요리를 직접 만들고 먹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가을 수확철에는 관광객들에게 축령산 백림 아래서 직접 잣따기 기회도 제공한다. 어린 묘목이 20년을 자라야 어른이 되는 잣나무. 봄에 송홧가루 날리면 다음번 가을에야 햇과일을 맛볼 수 있다. 가평 행현리는 이런 잣 익는 마을이다. 왜 슬로 푸드(slow food)인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발췌 : epostwebzine 2004/8월호 |
『 오늘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