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8. 8. 17. 02:09
■조선통신사 수행 화원(朝鮮通信使 隨行 畵員)
◈수행화원은 일본 측의 요청에 의해 동행하게 되었으며, 선발 기준은 명확한 것이 없고 도화서 화원들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임무는 쓰시마(大馬)에서 에도(江戶)까지 이르는 여정에서 접하는 일본 풍경을 스케치하고 기록한다.
또한 조선 정사의 요청에 의해 일본 지도를 모사하기도 했다.
◈일본인들의 서화(書畵) 구청(求請)에 응해 휘호(揮毫)와 석화(席畵)로 그려준다.
휘호(揮毫)는 붓을 휘둘러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이며, 요구하는 대로 즉석에서 그려주는 그림을 석화(席畵)라고 한다.
◈화원들이 문화사절단의 역할로 일본에 많은 시 서화(詩 書畵)를 남겼으며, 중국 남종화풍을 그려서 일본의 남종화가 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차시 | 使行 간지 | 실시연도 | 수행 화원(畵員) | 특이 사항 |
정사(正使) |
1차 | 정미 (丁未) | 1607년(선조 40) | 이홍규(李泓虯) (생몰연대 ?) | ◽도화서 화원출신 ◽임란이후 통신사 수행화원으로 최초로 선발된 인물, ◽아들 이기룡(李起龍)은 5차 수행 화원임 |
여우길(呂祐吉) |
2차 | 정사 (丁巳) | 1617년(광해군 9) | 유성업(柳成業) | ◽도화서 화원으로 사과(司果)를 지냈으며 수행화원으로 일본에 다녀 옴. ◽1627년에 이징, 김명국과 함께 소현세자가례반차도(昭顯世子嘉禮 班次圖)> 제작에 참여. |
오윤겸(吳允謙) |
3차 | 갑자 (甲子) | 1624년(인조 2) | 이언홍(李彦弘) | ◽공식적인 임무는 쓰시마에서 끝났으므로 에도까지 갈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교토에 대기하는 하인들의 인솔책임자로 남았다고 함. |
정립(鄭岦) |
4차 | 병자 (丙子) | 1636년(인조 14) | 김명국(金明國) (1600-1662) | ◽도화서 화원교수 ◽일본 당대의 최고화가 <가노탄유(狩野探幽)>와 교류로 그림을 그림. ◽백로도(鷺圖) / 달마도(達磨圖)를 그렸다. |
임광(任絖) |
5차 | 계미 (癸未) | 1643년(인조 21) | 김명국(金命國) (1600-1662) 훗날 개명함 | ◽도구가와(德川)막부(幕府)는 김명국을 다음 사행에도 파견해 줄 것을 요청. ◽일본에서 명성이 대단했음. |
윤순지(尹順之) | 이기룡(李起龍) (1600- ? ) | ◽1차 수행화원 이홍규(李泓虯)의 아들. ◽도화서 화원교수로 수행화원으로 일본애 가서 <송암비우도(松巖飛羽 圖>를 그렸다. |
6차 | 을미 (乙未) | 1655~6년(효종 6~7) | 한시각(韓時覺) (1602- ? ) | ◽도화서 교수로 지낸 한선국(韓善國)의 아들임, 도화서 교수로 통신사 수행화원으로 일본에 다녀옴. 인물화를 잘 그린 이명욱(李明郁)의 장 인이기도 하다. |
조형(趙珩) |
7차 | 임술 (壬戌) | 1682년(숙종 8) | 함제건(咸悌建) | ◽도화서 화원 교수이며 수행원으로 일본에 가서 <竹菊圖>를 그렸다. |
윤지완(尹趾完) |
8차 | 신묘 (辛卯) | 1711~2년(숙종37~38) | 박동보(朴東普) | ◽도화서 화원으로 부사과(副司果)를 거쳐 동지중추부사를 지냄. ◽일본에서<수묵산수도><浩然訪梅圖>그렸다. ◽막부의 전속화가 가노쓰네노부(狩野常信)와 교류를 가졌으며,조태억 상(趙泰億像)을 그렸음.(국립중앙박물관소장) |
조태억(趙泰億) |
9차 | 기해 (己亥) | 1719~20년(숙종45-46 | 함세휘(咸世輝) | ◽함제건(咸悌健)의 아들이며 도화서 별제(別提)를 지냈다. ◽일본에 가서 <부사산도(富士山圖)>와 부용도(芙蓉圖)를 그렸음. |
윤치중(尹致中) |
10차 | 무진 (戊辰) | 1747~8년(영조23~24) | 이성린(李聖麟) (1718-1777) | ◽도화서 화원으로 주부(主簿)와 첨사(僉事)를 지냄 ◽함제건(咸悌健)의 외 증손임 ◽오사카에서 문인화가 오키슈운보쿠(大同春朴)와 서로 그림 교환 ◽화사회요(畵史會要)에 묵죽(墨竹), 묵매(墨梅)가 실려있다. |
홍계희(洪啓禧) | 최북(崔北) (1712-1760) | ◽연자발령의모도(延子髮齡依母圖)를 모사해 왔다. ◽최북과 이성린의 작품을 사회요(史會要)라는 목판서 가운데 중국화가 와 나란히 등재됨 |
11차 | 계미 (癸未) | 1763~4년(영조39~40) | 김유성(金有聲) (1725-?) | ◽도화서 화원 출신 ◽정사 조엄이 김유성에게 <왜국지형도(倭國之形圖)>를 모사하도록 했다. ◽문인화가 이케노다이가(池大雅)가 김유성의 후지산을 그릴때 어떤 준법(峻法)을 쓰는 것이 좋을지 서면으로 물었다. ◽일본의 여러 화가들과 교류를 했다. ◽금강산도 낙산사 그림(일본 靑見寺에 소장) |
조엄(趙曮) |
12차 | 신미 (辛未) | 1811년(순조 11) | | |
김이교(金履喬) | 이의양(李義陽) (1768- ? ) | ◽도화서 화원 출신 ◽대마도에 다녀옴. 일본 남화의 대가인 다니분초(谷文晁)의 그림을 보고 그린 수묵산수화 <도화소조도(桃花小鳥圖>를 모사했다, ◽쓰시마 주변을 묘사한 사생첩(寫生帖)=대마사부도(對馬寫府圖). ◽송호도(松虎島)(간송미술관 소장_ |
※동래부 소속 변박(卞璞)
1763~1764년 11차에는 정사 조엄(趙曮)의 요구에 의해 정식 화원이 아닌 동래 부 소속 변박(卞璞)이란 사람을 데려와 제3기 선장의 역할을 맡기고, 문자에 능하고 그림을 잘 그려 , 쓰시마의 지도와 인쇄된 일본 지도를 구하여 모사하도록 했다.
이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