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가(校歌)의 전변(轉變): 친일교육 탁란과 각인된 민족의식
자연현상으로 탁란(托卵)이란 뻐꾸기처럼 다른 종에게 알을 맡겨 부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민민물 고기 감돌고기도 꺽지의 산란장에 탁란하여 꺽지 알 보다 먼저 부화해서 나온다. 교육현장에서도 이러한 탁란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 같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우리의 민족의식을 말살하기 위해 부단한 친일정책을 펼쳤다. 급진적인 정책과 점진적인 것, 직접적인 것과 간접적인 것을 교묘히 배합하였다. 직접적이고 강력한 정책은 단기간에 기대효과를 보지만 부작용을 동반하고, 점진적이고 간접적인 정책은 장기간에 걸쳐 정착된다. 매국과 배족의식 차원에서 친일이 청산이 깔끔하지 않았던 교육현장에서는 일제의 기대효과는 우리들의 의식에 각인(刻印)되고 체화(體化)된 현상으로 굳어지어 왔다. 예를 들자면, 각 급 학교에서의 교육관행, 특히 교가(校歌)를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근자에 일고 있는 교가의 변신, 교과의 전변(轉變)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2000년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 방문 당시 순안공항에서 군악대가 환영의식으로 연주했던 ‘용진가(勇進歌)’가 전북 전주에 있는 신흥고등학교 교가와 똑같은 사실이 밝혀지면서 탁란 같은 요상함이 밀려오며 민족의식에 대한 자각과 자성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환영식장에서 연주한 곡은 우리에게는 독립군들이 부르던 ‘용진가’이고, 북한에서는 ‘유격대 행진곡’으로 불리지만 같은 곡이다. 이 곡을 듣고 가장 많이 당황한 곳은 전주의 신흥학교의 졸업생과 재학생들이었다. 갑자기 모교의 교가가 울려 퍼지자 당황하게 되었고 당연히 매스컴을 타게 되었다. 가사는 조금씩 다르지만 곡조는 같은 것이다. 독립군의 ‘용진가’나 북한의 ‘유격대행진곡’이나 ‘신흥학교 교가’나 모두 같은 곡이고 가사만 약간씩 다르다. 이 곡의 원조는 미국에서 남북전쟁 막바지 시기인 1865년에 헨리 클레이 워크(Henry Clay Work)가 작곡한 '조지아 행진곡'(Marching Through Georgia)으로 알려졌다.
‘용진가’는 1910년대 만주에서 투쟁하던 독립군의 대표적인 군가이지만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의 작사/작곡(?)이란 '유격대행진곡'으로 1930년대 항일빨치산들이 부르던 혁명가요로 알려져 있다. 1910년 이후 '조지아 행진곡'의 번안곡은 독립군에서 군가로 불렀고 개신교회에서도 다양한 가사를 붙이어 찬송가로 불렀다. 독립군의 군가나 항일가는 명곡이나 유행가를 부르기 쉽게 행진곡으로 편곡하여 부르는 것도 일반적이었고 일본 가요를 개사한 항일가도 많았다.
독립군가인 용진가와 ‘유격대 행진곡’, 그리고 독립군 사관학교이었던 만주의 ‘신흥무관학교’와 독립 운동가들이 주축이 되어 세운 전주 ‘신흥학교’의 교가는 가사만 다를 뿐 곡조는 같다. ‘유격대 행진곡’은 북한의 모든 행사에서 행진곡으로 연주되고 있다. 그리고 군가 ‘용진가’도 1910년대부터 부르던 독립군 군가인 ‘용진가’와 6.25때 많이 부른 국방경비대의 ‘용진가’(1947, 예진수 작사/작곡)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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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가는 어느 학교 교가든지 천편일률적으로 틀에 박힌 가사와 멜로디 이다. 무슨 산, 무슨 강, 무슨 벌판, 받은 정기, 기상, 오랜 역사, 자유, 진리, 영원히 등등 판에 박힌 단어이다. 몇 단어만 바꾸고, 몇 소절만 변형하면 외우기도 쉽고, 배우기도 쉽다. 학교주변의 유명한 산이나 강을 끌어다대고 그것도 적절하지 않으면 백두산도 모셔오고, 한강도 들러리다. 대개 열심히 공부해서 학교 이름 빛내자는 4단 구조로 되어 있다. 대개가 4분의 4박자이고 행진곡풍이다. 가사의 형태도 대부분 2절까지며 대부분 후렴을 둔다. 작사자와 작곡가는, 마치 연고도 없는 유명한 사람을 주례로 모시는 결혼식처럼, 유명한 음악가가 대부분이다. 그렇다 보니 이상준이 작곡한 보성학교 교가와(이광수 작사, 이상준 작곡) 휘문학교 교가가(최남선 작사, 이상준 작곡) 서로 비슷한 선율로 나타난다.
이러한 수치스런 역사를 엿볼 수 있는 교가를 가진 학교에서는 그 동안 학교 홈페이지에 올렸던 교가 악보와 동영상을 내린 학교들이 많아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가의 새로운 변신 움직임이 나타났다. 맨 먼저 등장한 것은 2004년, 신라대학교가 개교 50주년을 맞아 새 교가의 작사·작곡을 의뢰받은 윤종신은 '꿈, 그리고 한 가지'라는 부제를 붙인 "신라인의 노래"라는 제목의 교가를 만들었다.
그 후 KBS1에서는 교육현장에서 친일청산의 일환으로 “대한민국 60년 특집 교가 변신 프로젝트”를 방영하였다(2008.8.15(금) 16시). 이 방송은 교육계에 새바람을 일으키었고 교육계는 친일잔재 청산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KBS창원방송총국의 '대한민국 60년, 교가변신 프로젝트'(2008.11)에서도 1000여 곡이 넘는 교가들을 분석하여 천편일률적인 교가의 문제점과 일본군 군가를 교가로 부르는 현실을 지적하였다. KBS창원방송총국에서 방영되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 ‘소.화.제’에 출연한 김현철은 전교생 24명의 작은 산골 학교인 경남 함양 금반초등학교 어린이들을 위해 새로운 교가를 만들어 주었다(2008.6).
이 밖에도 교가의 변신 중 가장 돋보이고 새로운 교가의 모범처럼 들불같이 번져나가는 교가가 있다. 바로 간디학교 교가이다. 간디학교학교는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에 있는 기숙형 대안 학교이다. 2002년 9월에 ‘간디청소년학교’로 개교하였고 우리 사회의 대안적 가치를 꿈꾸며 실현해온 학교이다. 이 학교 교가는 전형적인 교가에서 벗어나 아름다우면서도 철학적인 가사가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노래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계기는 1990년대 등장한 간디학교가 2001년도에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 간디학교를 되살리기 위한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는 음악회가 열렸다. 당시 학생이 부른 노래가 ‘꿈꾸지 않으면’이었다. 이후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급속도로 이 노래가 퍼졌고, 플래시로 제작되어 초등학교 교실에서, 학예회에서, 졸업식 노래로 불리어졌고 심지어는 유치원에서도 불려졌다. 현재는 초등학교 6학년 음악 검정교과서에서도 등장하고 있다. 아이와 교사와 학부모가 함께 만들어 나가는 학교,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이라는 가사를 음미하면 뜨거운 감동이 밀려온다. 꿈을 꾸는 교육을 염원하는 마음이기에 어디서나 부를 수 있고, 대안 교육 현장에서는 이 노래를 '교가'처럼 즐겨 부르는 곡이 되었다.
그 동안 교가는 숭엄하고 장엄한 격식을 갖춘 것이었고, 전교생들이 운동장 땡볕에 줄을 맞추어 차렷 자세로 군가처럼 불렀던 교가에 대한 추억이 남아 있다. 이제는 시대가 변하였으므로 늦었더라도 교육환경이나 교육 인프라에서 친일유산을 깔끔이 지워야 할 때다. 우리의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일제의 교육전략이 탁란으로 밝혀지고 친일교육으로 각인된 세대도 저물어 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사조가 교가에도 밀려오면서 학생들의 정서에 어울리는 새로운 곡으로 전변하고 있다. 시대환경에 맞게 신세대 감각으로 변신한 교가가 등장하고 다채롭게 활용되면서 학교 교육에 활력을 보태고 있다. [2021.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