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잘쓴 감상문이란 일단 책에 대한 간단한 소개, 줄거리나 내용을 요약하고 거기에서 받은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그 책에 대한 장점과 단점으로 분리, 정리하고 그것을 토대로 막판에 가벼운 비판적 터치를 입혀준다면 아마 어디 가서 더럽게 못썼네 하는 그런 소리는 듣지 않을 거다.
그런데 그렇게 쓰는 감상문 또는 서평이란 아무래도 '정답적'이어서 별로 재미가 없다. 그런건 마치 숙제 같아서 내 타입이 아니다. 게다가 에코의 이 책, 장미의 이름과 푸코의 진자는 사람을 압도하게 만드는 엄청난 정보와 상징으로 넘쳐나면서 도대체 정리, 요약이라는 게 가당키나한건지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든다. 요컨대 에코가 보여주는 세계관이란 뭐라 정리하기가 힘들 정도로 총체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에코의 두작품을 읽으면서 소설은 성숙한 40대 남자를 위한 장르다라고 한 말이 생각나는데 그만큼 에코의 소설은 요약불가능한 거대한 산문정신을 보여주는 것 같다. 즉 중요한 것은 요약되고 정리된 몇가지 명제가 아니라 그러한 명제들로 접근해 가는 광범위한 사고의 틀이다.
따라서 내 감상문이란 이쯤에서 끝내면 좋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그렇듯이 좋은 작품 엉뚱하게 읽기겠지만, 죽이되든 밥이되든, 뭐라도 하는게 안하는거 보다 나을 때가 있다. 죽 쒀서 개를 줄지언정, 아니 된밥 처먹고 덜된 소리나 씨부리든 어쨌든, 책을 읽었으면 내 식대로 정리한다. 그래야 소화가 되는 법.
장미의 이름이 중세 카톨릭을 소재로 한다면 푸코의 진자는 현대의 미신을 소재로 한다. 장미의 이름이 르네상스의 세례를 받기 이전의 암울하고 벗어날 길 없는 종교의 강력한 중력권을 소재로 한다면, 푸코의 진자는 종교가 비워진 현대의 무중력상태에서의 신의 자리, 그 중심을 차지하고자 하는 인간의 어리석은 헛된 욕망을 소재로 하고 있다. 장미의 이름이 아포칼립소의 묵시록적 종말론에 따라 얘기를 진행하고 있듯이 푸코의 진자는 유대 카발리즘의 창조론인 세피로트 나무를 따라 이야기를 전개한다.
하지만 결국 둘다 종교 이야기다. 인간의 상식적 윤리를 상실한 정신나간 광신자들이 등장한다는 점도 같다. 요점은 뭐가 참된 신앙이냐가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 두 소설이 본격적인 종교소설이냐하면 전혀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종교를 소재로 활용하여 인간과 인간군의 다양한 국면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 같다. 왜?
재미로... 아무리 봐도 이 소설은 에코가 스스로 재미있어서, 넘치는 자기 재미에 주체할 수 없는 미소를 머금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듯한 모습이 떠나지를 않는다. 세상에 각주가 두 소설을 합하면 800개가 넘으니 원... 이만하면 악취미가 아닐까...생각될 정도... 사실 좀 널럴하게 써도 될텐데...작가정신? 뭐 그렇게 얘기한다면 할말 없지만서도.
장미의 이름도 술술 읽히는 편은 아니지만 푸코의 진자보다는 낫다. 장미의 이름은 그래도 추리형식을 따르면서 집중력이 있는데 비해 푸코의 진자는 이야기가 너무 난삽하게 진행되는데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내가 읽고 있는 건지 따라가기조차 벅차다. 한참 읽다보면 내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읽고 있나 자문하게 된다니...이런 소설은 아마 난생 처음인것 같다. 게다가 푸코의 진자에서는 이야기 전개의 핵심부가 후반부에 와서야 전광석화같이 진행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장미의 이름보다는 푸코의 진자가 낫다. 물론 개인적으로...
장미의 이름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부, 이른바 골계미라는 뭐 별로 재미없는 소재인데 비해 푸코의 진자는 내 개인적인 호기심의 대상인 '신비주의 종교관'를 소재로 하고 때문. 에코는 후반부에서 신비주의 종교관을 매우 친철히 설명해 준다. 아니 설명이라기보다는 상징과 알레고리로 가득차 있긴 하지만 어쨌든 그가 보여주는 이해의 폭이 결코 만만치 않다. 랍비가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다. 거기에 비하면 세상의 온갖 형편없는 미신들, 기성종교에 마음편히 기댄 종교적 광신도들. 세상에는 허접쓰레기들이 너무 많다.
이 책 보면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우리에게도 에코같은 작가가 있다면 하는 그런 아쉬움이다. 에코처럼 동양의 고전을 이리저리 종횡무진 넘보면서 이야기를 풀어낼 작가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작가가 있다면 동양고전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질텐데 하는 아쉬움...
추운 겨울을 에코와 함께... 이제 '전날의 섬'과 '바우돌리노' 차례. |
첫댓글 즐거운 마음이 최고의 행복이니^^* 언제나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보내세요~^^
건강한 하루되시기 바랍니다._()_
오늘도 좋은 날 되시고 행복이 가득하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