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린도전서 13장 13절, 골로새서 3장 14절
그러므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 <공동번역>
그뿐만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사랑은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완전하게 합니다. <골로새서 3장 14절, 공동번역>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창조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필연적으로 영원한 것을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추구해야 합니다. 말씀을 우리의 양식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추구하는 자는, 말씀을 양식으로 삼은 자는 반드시 '이것'해야 합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바로 '이것'이 오늘 고린도전서 본문에서 '가장 위대한 것'으로 소개하고 있는 '사랑'입니다.
영원한 것을 추구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과 말씀 그리고 사랑을 추구하며 살 수 있는 존재여야 합니다. 하나님 역시 말씀으로, 말씀대로, 사랑하시었습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과 말씀과 사랑의 연관성을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스스로 언약을 지키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사랑이야말로 하나님을 표현하는 가장 큰 방법이라 할 것입니다. 스스로 만드신 말씀을 지키셨습니다. 말씀을 자기 입맛에 맞게 바꿀 수도 있을 것이고, 삭제해도 될 위치에 있으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영원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이상하게 느껴야 합니다. 인간을 지은 창조주가 피조물인 인간 손에 죽는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이야기란 말입니까? 이 가능성을 가능성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사랑'을 빼놓고서는 한 마디도 할 수가 그래서 없는 것입니다.
믿음도 영원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믿음은 영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믿음도 폐할 때가 있습니다. 믿음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믿음은 변질될 때가 찾아오곤 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영원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영원의 것에 가장 가까이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희망(소망)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꿈꾸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언제나 '희망(소망)'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희망도 불씨를 다 할 때가 있었음을 역사를 통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믿음을 이야기해도 믿지 못했던 시기가 있었고, 아무리 희망(소망)을 노래해도 함께 춤추지 않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실로 십자가를 지신 그 날 밤과 같이 믿음과 희망이 단절되어 있던 침묵 속에 그저 어두운 날이 있었습니다.
믿음과 희망(소망)은 명사입니다. 물론 사랑도 명사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명사가 아닙니다. 사랑은 동사입니다. 믿음과 희망(소망)은 개인적 신념일 수 있습니다. 개인이 가지고 있기만 해도 되는 것이기에 발현되어 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은 다릅니다. 사랑은 반드시 '동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사랑은 반드시 표현되어야, 그제서야, 사랑인 줄 압니다. 그것이 부모에게서든, 가족에게서든, 공동체에서든, 개인간이든, 이성간이든, 표현되지 않는 사랑은 '사랑'으로의 효용가치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언제나 'Must와 Do'를 포함합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받는 게 우선이 아닙니다. 사랑은 하는게 우선입니다. 반드시 사랑을 함으로서 결과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천지의 창조가 바로 그 하나님 사랑의 결과물입니다. 우리의 존재가 바로 사랑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의 사랑으로 인해 수많은 것들이 존재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다못해 죽어 있던 종이 한 장도 사랑을 하면 세상을 울릴 영화 한 편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시작되면 죽음의 땅도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믿음과 희망(소망)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믿음과 희망도 항상 있을 것이라 생각할 만큼 중요합니다. 하지만 사랑이 없으면 존재가 의미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기에 '믿음'은 자연스럽게 존재합니다. 말씀이 있기에 '희망(소망)'은 늘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말씀을 통한 희망은 '사랑'으로 반드시 실현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이 이 땅에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다면 아무리 믿음과 희망(소망)이 있다고 외쳐도 그저 울리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믿음과 희망(소망), 사랑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 세가지 중에 사랑을 제일이라고 하시는 줄 아십니까? 믿음과 희망(소망)을 모두 포함하는 단어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반드시 희망(소망)이 있지 않고, 사랑하며 살지 않습니다. 희망(소망)이 있다고 반드시 믿음으로 살거나 사랑하며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랑은 신기합니다. 사랑하면 믿음이 자연스럽게 생겨버립니다. 사랑하면 희망(소망)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와서 인사합니다. 그래서 제일은 사랑입니다.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모든 것을 소생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사랑은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완전하게 합니다. <골로새서 3장 14절, 공동번역>
영원한 것을 추구하며 삶의 완전함을 위해 달려가고 싶으십니까? 여기 고린도전서에서 알려주고 있는 'KEY'가 있습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 땅에 보여줄 유일한 방법입니다. 삶이 완전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사랑'입니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사랑을 하셔야 합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사랑해야 합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삶을 원하든 그 삶에 한 걸음 더 성큼 다가서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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