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옥 후임병이 박영태병장님이 기억나지않는다고 하여 댓글을 달다보니 한줄메모장의 댓글수가 300자로 제한되어 있어서 이쪽으로 옮겨서 적어봅니다.
박병장님은 규옥씨와는 8개~9개월정도 같이 근무하고 대학교 교련혜택 6개월인가 받고서 79년초에 전역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규옥씨와 군생활 겹치는 부분은 8~9개월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정보작전과에 근무하셨고 그후임이 김평중이와 김봉규 입니다. 박영태병장님은 행정과 문서수발병이었던 박성록 병장과 중,고동창이구요.(그당시 정보작전과는 행정부 사무실 맨끝에 당직사령실과 같은사무실을 나누어 썼었던 기억이 나고요)
박영태 병장님은 교련혜택 받아서 전역할때 후입병들 앞에서 앞에서 본인의 전역소감을 한마디씩 하는데 그당시에 혼자서 전역을 하셨던것 같고 그당시에 입었던 박병장님의 예비군복이 상당히 잘 어울렸던 것으로 기억이 남네요.
규옥씨가 잘 기억 해보면 어렴풋이라도 기억이 날거예요. 박영태 병장님의 사수분은 키카 약간 크시고 구부정하시며 말도 느리게 하시던 안경쓰셨던분으로 기억 합니다(성씨는 기억이 정확히 안나는데... 박씨였던것으로 추측됨, 이름은 용석이었던것으로 기억 )그리고 행정과 전령병이었던 박성록 병장님은 문서수발하러 진해시내에 나갔다가 오면서 무학소주 비서실 여직원과 사귀었었는데(우리가 시내로 문서수발후에 부대로 들어오면 데이트 했냐고 물어보면 대답은 하지않고 씩 웃기만 했었는데...) 그후로 어떡해 되었는지 궁굼 하네요
박영태 병장님 전후의 군번의 사병들은 박성록(행정과 문서수발병 일명 ; 전령),신철(경기도 안양, 교수부장 당번병),이희술(서울출신,경리과 우리동기 김재호의 사수), 김종복(서울출신,행정과 병력계), 김정렬(교무과, 안경쓰시고 약간까칠), 최종원(군수과)님 등이 있고 그이전의 논산군번으로는 최인종(정훈병,정천수 사수,부산출신),이명수(군수과 소속으로 알고있슴),조영태(교무과 차트병,안성출신,한때는 14초소 근무나가면서 수치아가씨를 짝사랑함)님등이 기억나네요.(계급은 변환이 계속되어 생략함)
그리고 취사병으로 박병장님보다 선임인김성기,염동균(부산출신,부산대 재학중 군입대로 알고있슴)이라는 선임병은 식판거꾸로 넣으면 밥주걱으로 머리를 가격 하였고 국당번일때는 맘에 안들면 국자로 머리를 가격함. 본부근무대 후임병들은 일단 한두번의 경고를 날렸지만 교도대대의 운전,정비조교들을 한번에 바로 머리로 날라갔고 그날그날 기분이 상당히 좌우를 했습니다, 본부근무대 후임병이라도 그날 기분이 안좋으면 그대로 머리로 날라 옵니다. 그리고 착하고 싫은소리를 별로 하지 않았던 조종철(인천부평출신, 제대후 인천에서 차몰고 가는것을 두번정도 본적이 있슴)님, 그리고 전라도 사투리를 쓰면서 키는 별로 크지 앟으면서 눈이 동그랗고 얼굴이 예쁘장하게 생겼던 강신규(일종계)님이 생각나네요. 강신규 선임과는 전입온지 얼마되지않아 통제부 옆으로 부식수령가서 같이 맛나게 먹었던 낙지볶음이 생각나네요.
그리고 이영숙(행정과 근무)님이 진주아가씨와 사귀던것도 기억이 납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후임병인 박영태병장님인가 박성록병장님인가 ??? (맞는지 모르겠네넹?) 펜팔하던 아가씨를 인터셉트하여 사귀었었던 것으로 알고있으며 진주간호전문대학인가 재학중이었고 진주에서 자주 면회를 왔는데 그후로 이영숙병장님이 전역을하고 몰래 튀어서 이영숙병장님의 소재지를 알기위하여 후임인 군수과 정진화에게도 여러번 면회를 왔었던 그다지 예쁘지는 않았고 얼굴에 주근깨가 있으며 키도 작았었던 우리가 진주조X라고 불렀던 이영숙 병장님의 로맨스도 떠오르네요.
장군당번병이었던 박종영 선임에 대하여..... 논산훈련소에서 수송학교로 전입와서 얼마되지 않아서 일이 있어서 수송학교장 이었던 임영훈장군님 관사에 갔었는데 그곳에 사복을 착용한 박종영 선임이 근무하고 있었다. 그때 박종영 선임병보다 고참인 병사가 박종영 선임에게 말을 놓으면서 나에게도 민간인이라고 말을 까라고 했었는데 아무래도 머리도 짧고 분위기가 이상하여 존댓말을 썼었는데 박종영 선임은 교장관사에서 생활하는 본부근무대 소속 사병이었습니다.
그리고 김양균(정보작전과에 근무한 것으로 알고있슴)인가 하는 약간 퉁퉁한 몸매를 가졌고 눈이 둥그렀던 선임도 생각나네요. 그당시 대학교 재학중에 군입대한것으로 알고있는데 우리 내무반에는 똑똑한 병사들이 많았는데도 굳이 나에게 한글단어가 영어로 스펠링이 뭔지 자주물어봤던 기억이 납니다.
군항제를 영어로하면 Naval Port Festival이라고 합니다.
마산출신의 두꺼운 안경테와 약간 검은얼굴에 진한경상도사투리를 쓰던 신수철 상병님(내가 처음 전입와서 일병달기 직전에),경리과엔가 근무하던 안양출신의 상병달고 근무하던 선임병은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마 철도학과(나중에 이동관리학과로변경됨)에 근무하였던 차계선님(전라도 출신)도 논산군번으로 알고있구요. 군생활 같이하던 논산군번 선임병들 이름을 무작위로 적어 봤습니다. 군에서 같이 생활한지도 벌써 30년이 지났네요.
이규옥 후임병이 박영태병장님에 대한 기억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고하여 이곳에 몇줄만 추가하려 했는데 길어져 버렸네요.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하며 어떵게 살고 있는지 궁굼 합니다.
추가 안양출신 선임병 이름이 기억이 났네요. 나 일병달고 근무할때 김국현 상병님이라는 기억이 스쳐지나 가네요.
그외에 육군수송학교 근무시 같이 근무하였던 여군에 대한 추억들....
여군들은 하사들로 본부근무대 소속이었으며 처음에 전입오니 들고서 기록하는 현황판에도 점호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여군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전입온지 몇일 지나지 않아서 아침점호후 교육평가실 심재원병장님이 교육평가실로 나를 데리고갔다. 그당시 심병장님은 전역을 몇달 남지않은 왕고참으로 전역하기전에 조수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었고 내가 보직을 받기 이전이라서 교육평가실에서 나를 테스트 하였다. 심병장님은 여러가지 질문과 테스트를 하였는데 나는 주산은 5급정도라고 하였고 암산으로 숫자를 불러주고 서너번정도 답을 말하라고하여 답을 맞추었더니 네가 교육 평가실로와서 근무하기만 하면 여군과 같이 근무하게 되고 오는순간부터 아침에 사무실에 근무하러오면 여군하사가 모닝커피를 타주고 뭐 볼에다가 모닝키스도 해준다나 어쩐다나 하면서 나를 꼬셨다. 거의 넘어갈뻔 하였는데 몇일후에 근무하기 최고편한 부서인 교수부 수로학과로 명령을 받아서 그곳에서 근무하였다.(그당시 다른 고참병들이 수로학과 근무하는것이 제일 편하다고 하였다), 처음에 심재원 병장님이 호출할때 수로학과를 가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나의 귀에는 수로학과가 술어학과라고 들렸다. 엥 주어학과는 없고 술어학과만 있는것인가? 요상한 과도 다있네 라고 나혼자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여군은 2명이 있었는데 꼽쓸머리인 박한순 하사와 또한명은 날씬한 여군이 있었다. 날씬한 여자하사는 군종병 동철이의 선임이었던 조경환병장과 결혼한것으로 동철이에게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군시절에 나는 제대후 사회생활을 하게되면 군항제때나 아니면 평상시에라도 군생활을 추억하기 위하여 꼭 진해를 한번 방문할려고 계획하고 있었고 저녁때 수치에있는 13,14초소를 방문하여 초소 근무를하면서 수고하는 후임병들에게 맛난것도 사다추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실천을 하지못해 많이 아쉽네요. 사회생활을 하다보니까 마음은 많았지만 실천하기가 쉽지가 않더라구요. 저번에 박영태병장님과 처음으로 통화할때 박병장님은 수치에 가봤는데 조선소가 들어서고 옛모습이 아니고 너무많이 바뀌어서 실망스런 발길로 돌아섰다고 하던데.... 오늘은 초소근무나가서 소주와 함께 맛나게 먹었던 수치해수욕장 횟집(상점도 같이운영)의 도다리,전어,숭어회가 생각나네요(그당시 그횟집에 고3정도 여학생이 있었는데 비위좋은 병사들이나 방위병들은 그곳에 회와소주,라면등을 사러가면 여자쥔장에게 장모님이라고함)그리고 나무를 돌로 잘라서 피운 연탄불위에서 냄비로 끓여먹었던 맛있는라면, 라면먹은후에 라면국물에 건빵과 같이넣어 끓여먹었던 건빵탕, 안주가 모자라면 13초소밑에 위치한 멸치 건조하는 집에서 얻어다 술안주로 먹었던 반건조 멸치등도 그리워 지네요.
또 박영태 병장님이 전역한후에는 항공학과 출신 교관이었던 박광수중위와 굉장히 친하게 지냈다. 저녁에 박중위가 다른 당직사관에게 나를 내보내 달라고 부탁해서 외출을 나갔다. 그때 덕산동근처의 허름한 식당에서 술과함께 정말로 맛있게 먹었던 아구의 애를 포함한 부드러운 아구내장수육 맛을 잊을수가 없네요.
댓글 옮겨서 약간만 추가하여 쓴다는것이 쓰다보니 이것저것 주저리 주저리~~~
끝에 부분은 이야기가 먹는것으로 의도하지않은 방향으로 흘러버렸네요.
그리고 회원모든분들이 이 카페에 방문하실때 고향에 온듯한 느낌과 30여년전의 군생활 그시절을 회상하는 추억의 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추가 ; 가만히 생각해보니 안경을 쓰셨던 이의식이라는 분도 계셔구요. 군수과 강신규 선임병과 일종계 담당하시던 전라도 말씨를 쓰시고 얼굴에 점이있었고 복장도 털털하게 하고다니면서 말도 털털하게 하던 마음씨 좋으셨던분과 앞에 언급한 취사장의 세분과 전후의 군번으로 알고있으며 취사병으로 근무하셨던 눈끝이 쪽 찥어진 선임병분의 이름은 기억이 나질 안네요.
2010,12,28 추가로 ; 논산군번은 아니지만 전남 보성출신의 김상호 병장님과 전남 영산포출신의 김인식 병장님도 이름이 떠올라서 기록해 봅니다.
첫댓글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그런데 왜 저는 일부만 기억이 날까요? 이유는 머리가 안따라주니까.....
과찬 입니다, 기억이 나서 적어 봤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규옥씨는 종합행정학교에서 후반기 교육을 두달정도 받고 처음에 전입와서부터 본부근무대에 타자를 아주 빠르게 잘치는 병사가 없어서 일과후에도 일하러 사무실에 많이 불려 올라가서 내무반 생활을 덜 해서 인것 같아요.
정병장님은 군복무당시 일기를 썼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정확하게 써내려갈 수가 없으니까요. 정작과에 근무할때 최고 고참은 박재수병장, 그밑에 김재경병장 김양준일병, 박용석일병이 있었습니다. 정병장님이 김국현이라고 했던 분은 조국현으로 경리과에 근무했었지요. 지난 11월28일 진해에 들를 일이 있어 옛날 해안초소인 14초소에 가보았습니다. 우리가 근무하던 때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문짝은 없었고, 실내도 더 폐허가 되었지만 옛모습은 그대로 남아있어 잠시 추억에 잠기기도 했었습니다. 그곳에서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었고, 전우들의 얼굴들도 스쳐지나갔었습니다.
일기는 쓰지는 않았습니다. 하나하나 기억나서 일단 적고서 나중에 약간의 수정을 하였습니다. 이글을 쓰면서 추억의 군시절로 돌아간 기분도 드네요. 왠지 두근거리기도 하고 말입니다. 누구나 지나간 추억들은 아름다운 법이죠. 경리과에 근무했던 조국현님도 경리과 특성상 바빠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후임병들을 별로 간섭하지 않았던분으로 기억됩니다. 고참병때 저녁해가 지기전에 13초소나 14초소에 근무나가서 앞의 바다와 섬(음지도,우도,괘도,초리도등,우리처음 전입하여 초소근무할때 이름이 잘 외워지지않던 섬들 )들이 있는 경치를 보면 너무 아름자운 자연경관을 가진곳이었던것 같네요.
김정렬님은 말을 하다가 자기맘에 안들면 말하는 중간에 후임병의 말에 가끔씩 태클을 걸기도 하였고 혜은이가 불렀던 향수에 젖어서라는 노래 ( 향수에 젖어서 하늘을 보면은 구름이 흘러가네 솜같은 구름입니다. 라라라라 라라라라 솜같은 구름입니다. 옛날이 그리워서 풀피리리 불면은 ~~~)를 손으로 바닥을 두드리면서 자주 불렀엇는데.....
정병장님 덕분에 저와 비슷한 시기에 입대한 전우들의 얼굴이 생각납니다. 김정렬씨 얼굴이 하얗고 안경을 썼던 분 생각이 납니다. 지난 2003년 가을에 내장산단풍구경 갔을 때 우연히 박종영병장을 만났는데 목사님이 되셨더라구요. 이영숙병장과는 진주에 같이 놀러갔었는데 여장을 하면 여자보다 더 예뻤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하곤 했었습니다. 제대후 정훈장교였던 분한테 전화가 왔었는데 목회일을 하고 있었는데 이름을 김영생으로 바꾸셨더라구요. 후임 정훈장교분과는 진해시내에서 같이 식사도 하고 술도 마셨던 기억이 납니다.
박병장님이 언급하신 두분의 정훈장교분중 한분은 경상도 사투리를 쓰시며 우리때 대위로 근무하셨던 류시화 대위님이 아니신가요? 우리가 근무할때 소령인가 중령분이 류대위님을 언급하며 다른병사에게 류시화인가 류화시인가를 데리고 오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