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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로병사와 동서양 의례
이향만
1. 들어가는 글
매일매일의 삶은 생로병사와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사람은 태어나기 어렵고, 쉬 늙으며, 오래 앓고, 고통스럽게 죽는다. 출산율과 성형 그리고 연명의료나 자살 같은 시사적인 사안이 이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이러한 시사적 사안은 불안정한 사회 현상을 대변한다. 나아가 인간사회는 예기치 않은 재해와 질병, 폭력에 빈번히 노출되어 있다. 때문에 살아가는 일은 두렵기까지 하다. 또 이러한 위험 가운데 요행으로 살아 있는 자신의 삶에 대해 회의가 일기도 한다. 그런 까닭에 자연스런 생로병사는 행복한 일로 여겨진다. 그만큼 현대인은 위기 속에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위기의 원인에 대해 여러 관점에서 진단이 가능하겠지만 위기를 가중시키는 사회적 원인 중의 하나는 의례의 상실이다. 의례는 본래 사회적 관계의 형식으로 본분에 따른 인격적 표현을 통해 사회적 유대와 결속을 강화시켜주는 역할을 담당했다. 전통적으로 의식을 고양시켜 상호 생명을 존중하고 공동체적 삶의 가치를 향상시켜왔다. 그러나 더 이상 전통적 의례에 의존하지 않는 현대사회는 새로운 의례를 정착시킬 만한 문화적 여유를 갖지 못한다. 사람들은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할 뿐 의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간다. 이렇게 해체된 의례는 단지 균형 잃은 사회현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뿐이다.
그런데 현대인이 느끼는 고통은 자각에 의해서가 아니라 왜곡된 사회 풍조가 요구하는 외적 자아에 의한 결핍의 고통이 더 크다. 노화를 염려하는 것은 단지 육체적 쇠약함 때문만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관계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인간은 외적으로 드러나는 노화를 감추기 위해 지나친 위장으로 돌이킬 수 없는 곤경에 빠지기도 한다. 노화를 자연스런 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 풍조로 말미암아 갖게 되는 심리적 부담이 실로 크다. 노환이 고통스러운 것은 환자 당사자의 고통 못지않게 가족에게 끼치는 정신적․육체적 수고와 경제적인 부담 때문이다. 대부분의 질병은 감염이나 지나친 노동 그리고 심리적 중압감으로 발병한다. 그리고 현대의료는 이러한 질환에 잘 대처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그러나 고도로 발전한 선진 의료 기술로도 치료하기 어려운 중독이나 암 등 과중한 심리적 부담으로 인한 질환 역시 늘어가고 있다. 또한 예기치 않은 불의의 사고로 인한 죽음으로 말미암아 본인의 불행은 물론이거니와 가족과 동료가 정신질환에 시달리기도 한다. 나아가 우리나라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자살이나 고독사는 개인의 선택이라기보다는 사회복지와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발생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이는 이기적 문명생활이 가져온 폐해다.
이렇게 현대인은 자기 앞에 놓인 위기를 자각하지 못한 채 힘겨운 일상을 살아간다. 죽음 역시 태어남과 같이 자각할 수 없는 생명현상이다. 죽음은 한 생애의 귀결이며, 그 자체로 생명의 마지막 응답이다. 그러므로 죽음은 존엄한 한 개인의 삶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이다. 이 과정은 부여받은 생명에 응답하는 실존적 과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의 삶에서 온전한 죽음은 왜곡당하고 거부당한 채, 부조리함의 한가운데 있다.
현대인은 자신의 실존적 상황을 감추고 어빙 고프먼이 말하듯 자기과시나 위장이 요구되는 자아 연출의 사회에서 살아간다. 현대사회에서 의례는 자아 연출로 대체되었다. 자아 연출은 하나의 의식이라 할 수 있지만 의례는 아니다. 의례에는 자아 연출뿐 아니라 자기 수행이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 수행이 없는 연출은 일시적인 지향성만을 강조할 뿐, 다양한 연출의 주체가 누구인지는 쉽게 망각하기 때문에 자아 정체성의 문제를 야기한다. 따라서 현대인의 자아 상실은 지나친 자아 연출, 그리고 자기 수행의 결여에 있다.
관계의 대상을 제대로 인식하고 존중하려 하지 않는 사회에는 과장과 기만이 자리 잡기 쉽다. 그러나 참된 자아 인식과 진정성 있는 관계는 어떤 전제 위에 마련되는 것이 아니다. 의례 자체가 인식의 과정이요, 이해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모든 고통이 잘못된 인식에 있다는 불교의 팔정도의 가르침은 의례를 통한 인식의 과정을 잘 설명해준다. 따라서 종교적 명상이나 관조가 아니더라도 일상의 깊은 사려는 참된 인식을 위한 수행 의례라 할 수 있다. 수행의 차원에서 바라보면 인간이 겪는 고통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며 이를 깨달은 사람들은 자신을 구속하던 억압의 요소들로부터 하나하나 해방될 수 있다. 의례를 상실한 시대를 살며 전통적인 동서양 의례의 의미를 살피는 일은 자기회복을 위해 필요한 일이며, 이 작업 자체가 의례적이기에 의미가 있다.
2. 생명현상과 의례로서의 생로병사
생로병사는 인간이면 누구나 겪는 삶의 여정이다. 석가는 이 여정의 무상함을 극복하기 위해 고집멸도의 사성제 가르침과 이에 이르는 팔정도의 길을 제시했고, 예수는 현세적 삶의 한계를 극복하고 하늘나라에 이르는 진복팔단의 길을 가르쳤으며,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을 수 있다(朝楣, 夕死可矣)”는 말씀처럼 도와 일치된 삶을 궁극적 가치로 삼아 인간의 길을 제시했다. 종교문화적 관점은 생로병사를 한편으로 극복의 대상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인간으로서 응당 겪어야 할 생명현상이자 과정으로 수용해야 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영원한 삶을 추구하는 종교적 열망이나 열반에 이르고자 하는 염원, 혹은 도와 일치하고자 하는 희구는 모두 생로병사의 과정을 통해 다가갈 수 있을 따름이다. 삶의 여정인 생로병사는 인간이 의지로써 선택한 일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필연적으로 당면하게 되는 삶의 조건이자 보편적 생명현상이다. 따라서 삶의 가치는 이 자연스러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생로병사의 각 과정은 서로 필연적인 인과관계를 맺고 있다. 누구나 태어나면 생리적으로 나이를 먹고 병이 들고 죽기 마련이다. 문제는 인간으로서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나이를 먹고, 어떻게 병들고, 어떻게 죽어 가느냐다. 이 ‘어떻게’라는 구체성을 띤 물음에 사회적 관습으로서의 의례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인간의 사회문화적 행위로서 의례는 인간됨의 정체성과 생명 문화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그 기능을 수행한다. 나아가 인간은 의례를 통해서 생로병사를 삶의 주기로만 보지 않고 계기로 보고, 생리적인 현상으로만 보지 않고 의식 현상으로 심화하면서 일상에서 압축적으로 전 과정을 경험하며 살아간다고도 할 수 있다. 매일매일 의식하는 새로운 삶과 노화와 고통과 죽음은 다른 생명체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인간 삶의 본질을 잘 나타내준다. 인간은 사회적 행위를 통하여 이 삶의 과정을 계기로 삼고 여기에 의미를 부여한다. 삶을 의미화하는 이런 사회적 행위를 의례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의례는 신화학, 인류학, 종교학, 심리학, 사회학 등 여러 학문 분야에서 인간을 이해하는 중요한 사회적 행위로 여겨 깊은 관심하에 다루어졌다. 민족에 따른 다양한 통과의례, 종교적 제의, 사회적 관습으로서 의례에 대한 연구는 문화적 존재로서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를 새롭게 했다. 그러나 의례를 의례 자체만으로 파악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 앞의 분과 연구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의례는 생명현상을 문화적 차원에서 표현한 것으로 다른 문화 요소와 함께 살펴볼 때 그 현상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예를 들어 하위징아로부터 비롯된 의례와 놀이, 의례와 서사, 의례와 축제의 상관성은 생명 의례에 대한 서양문화적 접근을 열어주었고, 유교문화의 영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의례와 정치, 의례와 언어, 의례와 교육의 관점은 생명의례에 대해 동양문화가 갖고 있는 문화적 지평을 열어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의례와 다른 문화적 요소 간의 상관성으로부터 미리 추론할 수 있는 바는 생명현상이 의례와 더불어 직관적 의식 작용을 통해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의례는 차이를 통해 다양성 안에서 조화를 이루고 생명의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의례가 내포한 정해진 절차에 따른 서사구조와 상징은 성스러운 가치로 그 사회 구성원의 생명 의식을 고양시키며, 의례를 통해 인간의 생명성은 거룩한 표징을 갖추게 된다. 나아가 의례의 반복성은 삶의 의미를 심화시키고 현재화한다. 이러한 의식 작용은 베르그송이 말하는 “생명의 약동(élan vital)”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의례과정은 연행성(演行性)을 통해 삶을 극화하고,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가운데 생명성을 약동시킨다. 생명의 약동은 연속적인 의식의 흐름 안에서 시간과 공간의 질화(質化)를 이루고 창조적 진화를 기약한다. 여기서 의례가 추구하는 윤리적 지향성에 다다를 수 있다. 궁극적으로 의례는 관계적 생명을 확인하고 도덕적 삶을 이끌며 인간 생명을 미적으로 승화시키는 생명 문화의 바탕이 된다.
생로병사를 생명의 보편적 현상이라고 할 때, 생명현상에 대한 동서양의 이해 차이를 살펴보는 것은 생명 문화를 구성하는 요소와 원리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같은 개념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문화적 맥락에 따라 이해의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점을 살피는 것이 동서양 생명의례의 차이를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1) 삶의 주기로서의 생로병사
생로병사는 계절처럼 자연의 순리를 나타내는 삶의 조건이자 현상이다. 그러나 인간은 쉽게 이 생명의 조건에 굴복하고 이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지 않는다. 대부분의 신화는 이 생명의 주기를 극복하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신화 속 영웅들이 생명의 조건을 극복하듯이 인간은 일상 속에서도 변화의 계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주어진 조건을 극복해나간다. 특별한 의미를 생성하는 이 과정에 의례가 자리하고 있다.
근동 연구가인 훅(Hooke)과 그의 동료에 따르면 죽음을 극복하는 주제는 신화와 종교에 잘 표현되어 있다. 이집트, 바빌로니아, 가나안의 종교는 의례를 통해 공동체의 복지를 유지하는 신적 존재인 왕의 죽음과 부활의 극을 재현했다. 일련의 파종과 수확의 의례에서 왕은 굴욕을 당하고 상징적 죽음을 맞이한 뒤 지하세계로 하강했다가, 혼동의 세력을 무찌르고 지상의 질서를 다시 세우는 과정으로 연출되었다. 죽음과 되살아남의 모티프는 근동의 신왕(god-king)의 신화뿐 아니라 고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의 풍요와 출산의 축제에서도 재현되었으며, 여러 신화와 드라마에 영향을 미쳤다. 시어도어 개스터(Theodore Gaster)는 비극시인 테스피스(Thespis)연구에서 죽음과 재생의 신에 관한 모티프를 세계질서를 새롭게 하고 재활시키는 모든 의례에 내재된 규칙적․계절적 패턴을 포함하는 주제로 전환했다. 이 계절적 패턴에는 고행과 정화에 관한 비움(kenosis)의 의례, 활력과 환호에 관한 채움(plerosis)의 의례가 포함되어 있다. 죽음과 소생의 계절적 패턴은 문명의 가장 초기 형태의 지층에 귀를 기울이도록 하는 인간 경험의 통일성을 잘 드러낸다.
시간성과 생명성의 문제가 함께 논의되는 것은 그리스 크로노스의 신화에서 처음 발견된다. 농경의 신인 크로노스는 아버지 우라노스를 제거하고 왕위를 차지했다. 그가 든 낫은 수확과 죽음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크로노스는 자식을 삼킴으로써 노화와 죽음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드러낸다. 그러나 그의 아들 제우스가 시간의 지배자인 아버지 크로노스를 추방함으로써 영원한 시간성을 획득하게 된다. 또한 구체적인 시간성은 계절의 주관자인 제우스의 누이동생이자 배우자 데메테르를 통해 그 의미가 굳어진다. 데메테르는 올림포스의 열두 신 가운데 한 명으로 계절의 변화와 결혼생활의 지속을 관장했다. 곡식의 성장에 비춰 계절의 변화를 인식할 수 있듯, 가이아와 마찬가지로 대지에서 자라는 곡식의 어머니로서, 데메테르는 유대를 통해 수확을 이루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삶의 구체적 의미를 나타내는 신이라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농경 축제가 데메테르와 연관되어있음은 이를 잘 설명해준다. 신화가 반복해서 암시하듯 신은 영원한 생명성만으로 존재할 수 없다. 대지의 생성과 변화를 일으키는 생식과 사랑을 통해, 모든 존재는 시간성의 의미를 갖게 된다. 그러므로 대지로서 가이아는 생명의 변화로 하여금 시간성의 의미를 부여하는 바탕이 된다. 이에 따라 모든 존재는 새로운 생명성으로의 전환을 이루어낸다. 영원한 생명이라는 개념처럼 시간성과 생명성은 의존적이기 보다는 상호적이다.
2) 삶의 덕목으로서의 원형리정(元亨利貞)
어린이를 새싹에, 노년을 황혼에 비유하듯 동양에서도 생로병사는 유비적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위시하여 표현되어왔다. 계절의 변화는 시간성을 부여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성장과 노화의 과정을 확연히 인식하게끔 한다. 또한 반복되는 계절의 패턴은 죽음 이후 새로운 생명에 대한 기대와 확신을 품게끔 하기도 한다. 따라서 계절에 대한 축제와 의례를 통해 노화와 죽음이 단지 소멸이 아닌 생명현상의 일부분으로 이해되었으며 후세대의 새로운 탄생을 위한 필연적 과정으로 받아들여졌음을 알 수 있다.
계절을 나타낸 십이벽괘(十二辟卦)를 살펴보면 고대 중국인의 계절에 대한 분석이 철저했음을 알 수 있다. 가을의 끝을 의미하는 박괘(剝卦)와 겨울의 시작을 의미하는 곤괘(坤卦) 그리고 이어지는 복괘(復卦)는 생명의 마지막이 어떻게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박괘의 상구(上九)에 석과불식(碩果不食)이라는 효사(爻辭)가 나온다. 새 생명을 이룰 씨알이 보존됨을 말해주는 것이다. 곤괘는 마지막 양(陽)을 붙들지 않는다. 그렇게 하여 양효(陽爻)가 양효되게 하는 것이 바로 곤의 역할이다. 완전히 내어줌으로써 새로 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지뢰복괘는 새로운 생명의 생성을 의미한다. 내어준 양을 다시 씨알로 품고 있는 형상이다. 이것이 바로 “곤도의 순함이며 하늘의 변화에 따라 행하는 것(坤道其順乎, 承天而時行)”이다. 복괘의 초구(初九)는 자연의 순환으로 싹이 돋아났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그 순환을 어기지 않음이 길함(不遠復无祗悔)을 나타내는 효사다.
사계절은 『역경』의 「문언전」에 나타난바 원형리정(元亨利貞)으로, 하늘(天)의 순환적 덕목을 의미한다. 이는 만물이 생겨나서 자라고 완성되는 과정을 말하고 있다. 공자 역시 천을 언급했을 때 “사시가 운행되고 모든 만물이 거기서 난다(四時行焉, 百物生焉)”고 했다. 인간은 자연의 보편 생명과 그 순환의 원리를 같이함으로써 자연의 덕목을 좇아 인의예지의 덕을 함양하게 된다. 그러므로 “천지의 큰 덕은 생이고 성인의 큰 보화는 위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즉 생성과 변화는 모든 존재가 순응해야 할 삶의 조건이다. 여기에 완전한 소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존재자는 새로운 변화를 통해 자기 존재성을 지속시킨다. 생명체는 변화를 통해 자기완성을 도모한다. 그러므로 노자는 “도는 만물을 낳고, 덕은 이를 기르며, 물은 모습을 갖추게 하고, 세는 이를 이루게 한다. 그러므로 만물은 도를 존경하고 덕을 귀하게 여기지 않음이 없다”고 했다. 『역경』은 요약하기를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것, 그것이 대역이다(易而不易, 不易而大易)”라 하는데 여기서 그 변하지 않는 것은 생명성이라 할 수 있다. 동아시아적 사유에서 변화를 중시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한편 인간의 삶에서 변화에 계기를 부여하는 것이 통과의례다. 방주네프(Arnold van Gennep)가 밝혔듯이, 인생의 통과의례는 비슷한 시작과 끝의 연속적 단계―출생, 사회적 사춘기, 혼인, 아버지가 되는 것, 죽음―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하나하나의 사건에서 의례가 행해진다. 이때 행해지는 의례의 근본 목적은 개인이 어떤 명백한 지위에서 또 다른 명백한 지위로의 통과를 가능케 하기 위한 일생의례와 천체의 변화, 즉 달, 계절, 해의 변화 등과 관련된 세시 의례 그리고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의 영역을 통과하는 영역 의례로 세분화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의례는 본질적으로 생명의례다. 변화의 계기와 의미를 파악하려는 전통은 점술 행위로부터 발전되어왔다. 점은 삶의 정황을 파악하고 궁극적으로 변화와 관계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 낼 것인가를 모색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점을 치는 행위는 개인적으로 가장 고양된 수행적 의례다. 『역경』의 가르침대로, “지(知)는 높이는 것이고 예(禮)는 낮추는 것이니, 높이는 것은 하늘을 본받는 것이고, 낮추는 것은 땅을 본뜨는 것이다. 천지가 위를 베풀어 역이 그 가운데서 행해진다. 그러므로 성품을 이루고 보존하는 것이 도의의 문이다.”
3. 의례의 어원적 접근
동서양 의례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개념사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의례를 말할 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영어 개념 rite와 ritual은 본래 그리스어 ta hiera의 번역어인 데 반해, 동아시아에서 사용하는 의례(儀禮)는 본래 관제(官制)에 해당하는 주례(周禮), 그리고 교육과 관련된 예기(禮記)와 더불어 생활 습속을 일컫는 말이다. 의미에 있어서 문화적으로 서로 상당히 근접한 개념이며 적절한 번역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개념적 기원에 있어서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이 차이를 살펴보는 것은 개념의 파생과 의미의 심화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우선 의례 개념이 고대 그리스와 중국에서 어떻게 발생했고,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타 히에라, 타 호시아(ta hiera, ta hosia)
그리스 도시 국가에서 시민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필요했던 자질은 공적 사안에 대한 적극적 참여(Methexis)였다. 이에 반해 히에라hiera와 호시아hosia는 빈번히 폴리스와 관련된 본질적인 모든 것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이 개념 안에서 어떻게 시민권을 나타내고 표현하는가가 중요했다. 폴리스가 신과 인간과의 계약에 의해서 형성되는 것이기에 시민권은 이에 상응하는 관계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했다. 공적인 일 이외에도 경신에 참여하는 일이 도시민의 역할로 강조되었다.
경신과 관련해 그리스인은 헤로도토스의 『히스토리아』에 기록된 대로 군인들이 전쟁에 임하기 전에 점을 치는 의례인 타 히에라ta hiera와 희생제를 바치는 의례인 타 스파기아ta sphagia를 중요하게 여겼다. 또한 타 히에라는 제한됨이 없는 거룩한 의례를 위한 희생 제물로 표현되기도 했다. 이때 타 히에라는 신에게 속하는 신의 물건으로, 그들의 힘을 나타낸다. 그것들은 인간에 의해서 신에게 봉헌된 것이기 때문이다. 히에라는 사원, 희생, 봉납물과 신의 창조력과 보호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신에게 바쳐진 선물이다. 확장해서 타 히에라는 봉헌과 선물의 의례과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의례와 축제는 항상 특별한 개념인 테레타이teletai와 헤오르타이heortai로 지칭되었다. 따라서 신과 인간 사이의 교환으로 신에 속하게 된 히에로스는 일반적으로 하그노스hagnos, 하기오스hagios, 셈노스semnos 등 선천적으로 순수하고 신성한 것들과는 구분된다. 로버트 파커(Robert Parker)에 따르면 타 히에라는 ‘종교’에 가장 가까운 개념이다. 한편 히에라에 참여하는 것은 폴리스 안에서 폴리스의 그룹 정체성을 정의한다. 타 히에라와 타 호시아와의 병치는 의례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도출해낸다.
호시오스hosios는 인간 행동의 일련의 특별한 기준과 규칙인 호시에hosie를 따르는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신을 기쁘게 하는 인간의 행동과 말과 소유를 언급하는 가치 있는 개념이다. 호시에는 그 자체로 인간 행동의 규칙을 말하며 특별히 인간이 신에게 갖추어야 할 마땅한 의례에 적용된다. 호시에는 칭찬할 만한 행동에 대한 일련의 규칙이나 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호시오스가 인간에게 적용될 때, 그들은 폭넓은 윤리적․사회적․종교적 의미에서 이러한 규칙을 존중한다.
의례와 관련된 또 다른 개념인 드로메논dromenon은 ‘행해진 어떤 것’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고대 그리스 종교에서 차용된 것이다. 동일한 어원인 드라메인(dramein, 달리다․뛰다)에서 파생된 행동의 구체적인 내용인 드라마drama는 무대 위에서 재현된 행위를 일컫는다. 고대 종교에서 신비는 레고메논(legomenon, 말해진 것), 다이크뉘메논(deiknymenon, 보여진 것) 및 드로메논(dromenon, 행해진 것)을 포함하고 있다. 여기서 의례는 자연세계의 신비를 반복하고 재현하면서 시간을 관리한다. 이를 통해 의례가 가져오는 효과는 ‘비유적으로 뭔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 행동을 실제로 재생산하는 것이다.
2) 예(禮)와 의례(儀禮)
예의 어원적 의미를 살펴보면 시(示)는 신을 모시는 제단이고, 예(豊)는 제물이 많은 것을 의미한다. 『설문해자』에 따르면, “리(履)다. 신을 섬겨 지극히 복을 비는 것이다. 시와 예로 이루어져 있으며, 예 또한 소리다”라고 했다. 리(履)라는 것은 사람이 땅을 밟아 길을 내듯이 도를 닦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즉 신적 존재를 꾸준히 섬기는 수행을 말하는 것이다. 신령한 존재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복을 비는 행위를 의미한다. 『주역』의 리괘가 이를 분명하게 설명해준다. 「서괘전」에 “만물이 쌓이고 난 뒤에는 예가 있으니, 그러한 이유로 리로써 받아간다(物畜然後有禮, 故受之以履)”고 했다. 앞의 소축(小畜)괘가 물(物)이 모이는 것을 말했으므로 다음의 리괘는 분별함을 말한다는 것이다. 이 분별에 대하여 괘사(卦辭)에서 “호랑이 꼬리를 밟고 있어도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으니 형통하다”고 했다. 이렇게 두려워하고 삼가는 분별과 행동이 예이며 예를 말미암아 어떤 재난도 피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백서(帛書) 『주역』에서는 리를 예로 표현했다. 따라서 고대에는 두 개념이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대 하·상·주 삼대 문화에 나타난 삶의 양식은 위정자가 백성의 삶을 이끄는 가운데 형성되는 ‘예’ 개념의 생성과정을 보여준다. 『예기』 「표기」 편에 따르면, “하나라의 도는 하늘의 명을 존숭했고 귀신을 섬기고 공경했으나 멀리했다. 사람들이 서로 친근했고 녹을 주기를 좋아하고 위세를 뒤로 했으며 상주기를 좋아하고 벌주기를 뒤로 했다. 서로 친하여 존중하지 않음이 있었으며 백성들의 폐단은 게으르고 어리석으며, 사납고 거칠며, 순박하고 꾸밈이 없는 것이다. 은나라 사람들은 귀신을 존숭하여 백성을 이끌고 귀신을 섬겼다. 귀신을 먼저하고 예를 뒤로 했으며 벌을 먼저하고 상을 뒤로 했다. 존숭했으나 친하지 않았다. 백성의 폐단은 혼란하고 고요하지 않았으며 이기려하고 부끄러움이 없었다. 주나라 사람은 예를 존숭하여 시행했고 귀신을 섬겼으나 멀리했다. 사람들이 서로 친근했으나 멀리했고 상벌을 주는데 작위와 서열이 있었다. 친하여 존중하지 않았다. 백성들의 폐단은 이로움을 찾고 교묘해지며 꾸미고 부끄러움이 없었으며 남의 것을 빼앗아 감추었다.”
후대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지만 삼대 문화의 구분에 나타난 예에 관한 내용은 이미 종교적 의미가 사라지고 사회적․인문적 의미가 강조되어 감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식적인 측면에서 예기에 “제례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라고 했듯이, 제례는 예의 시초이며 발단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까닭에 가례(家禮)나 국조례(國朝禮)에서는 제례를 가장 주된 의식으로 여겨왔다. 제례의 범위는 천지와 조상이다. 즉 제천(祭天)‧제사직(祭社稷)‧제산천임택(祭山川林宅)은 상고시대의 자연 숭배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는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를 표현하고 있다. 반면 인륜관계를 나타내는 조상 제례는 원시시대의 ‘가례’에서 시작되었다. 그런가 하면 종법제 국가가 수립되고 나서 세습왕조에 대한 조상제례는 국조례로 전환되기도 했다.
예의 의미가 주대에 주공에 의하여 문화적으로 완성되었다고 하는 것은 고대의 경신행위가 사회적 규범으로 확장되어 왔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예의 개념을 비로소 철학적으로 성찰하게 된 것은 공자에 이르러서다. 공자는 춘추시대의 혼란이 예악이 무너진 데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므로 예악을 바로잡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였다. 공자에게 예는 바로 인의를 담는 제사 그릇이었으며 그 대상은 신령한 존재가 아니라 사회였다. 그러므로 『춘추좌전』에 “효(孝)는 예의 시작이고(문공 2년), 경(敬)은 예를 싣는 수레이며(희공 11년), 충신(忠信)은 예를 담는 그릇이고, 비양(卑讓)은 예를 실천하는 데 있어 으뜸이 되는 방법이다(조공 2년). 의(義)의 규범이 되는 것 역시 예이기 때문에(희공 28년) 예는 모든 덕의 지침이며 윤곽으로 간주되었음을 알 수 있다(희공 27년)”고 했다. 즉 예는 모든 정치사회적 관계를 규정짓고 유지하는 근본 개념이 되었다.
4. 생명 문화의 요소로서 의례
의례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대로 서양의 관점에서 의례와 놀이 그리고 축제, 의례와 서사의 상관성을 살필 필요가 있으며 동양의 관점에서는 중시된 의례와 정치, 의례와 교육, 의례와 언어의 상관성을 살피는 것이 유익하다. 공통적인 관점에서 삶의 양식으로서의 의례는 상관성을 살핌으로서 생명 문화의 중요한 요소로서 의례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일이다. 이는 의례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동서양의 생명 문화의 주안점이 어디에 있는지 드러내며 각각의 문화가 갖는 특성을 구분할 수 있게 한다.
1) 의례와 놀이(축제)
원시 의례를 놀이의 관점에서 고찰한 학자는 하위징아다. 의례의 놀이 요소는 의례가 곧 놀이에서 발전했음을 보여준다. 고대인은 계절과 자연의 변화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경외하며 성스러운 공연을 수행했다. 프로베니우스의 표현대로 “식물과 동물의 생장과 소멸, 시간과 공간, 계절의 변화, 태양과 달의 운행에 관한 우주의 이행질서를 신성한 놀이 속에서 놀이하게 되었다. 창조와 소멸의 자연적 리듬의 현실은 고대인의 의식을 붙잡았고, 이것이 필연적으로 반사행위에 의하여 그러한 정서를 어떤 행위 속에서 재현하도록 이끌었다.” 프로베니우스에 따르면 놀이와 재현은 어떤 것을 표현하는 것인데, 그 어떤 것이란 우주적 사건에 의하여 ‘붙들리는 것’을 말한다. 놀이의 극화가 의례라는 사실은 그에게 2차적인 의미를 갖는다.
하위징아는 자연현상에 의한 ‘붙들림’에서 시작하여 의례적 공연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한다. “원시사회는 처음서부터 질서, 긴장, 운동, 변화, 엄숙, 리듬, 환희 등 놀이의 여러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사회 발전의 후기 단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놀이는 ‘생활’이나 ‘자연’ 속에 표현되는 아이디어들과 결합하게 되었다. 원시사회의 놀이는 말없는 놀이로서 시적인 형태를 취했다. 놀이의 형태와 기능은 그 자체로 독립된 실체였고 목적도 합리성도 없었다. 자신이 사물의 시성한 질서 속으로 들어간다는 느낌, 그것이 놀이에서 최초이자 최고의 지고한 표현을 얻은 것이다. 놀이가 신성한 행위라는 의미는 그 후에 서서히 놀이하기에 스며들었다. 그리하여 의례는 놀이와 결합되었다.”
하위징아는 놀이의 특성이 갖고 있는 진정성이 의례의 본질적 특성과 같다고 보았다. 그는 의례가 놀이라는 사상을 플라톤으로 부터 끌어냈는데 플라톤의 『법률』에 따르면 “하느님만이 최고의 진지함을 행사할 수 있다. 인간은 하느님의 놀이를 놀아주는 자이고 그것이 그의 가장 좋은 역할이다. 따라서 모든 남녀는 이에 따라 생활하면서 가장 고상한 게임을 놀이해야 하고 지금과는 다른 마음을 가져야 한다.” 진정성이 목적 없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례와 놀이의 거룩한 관계는 하위징아가 언급했듯이 로마노 과르디니가 잘 설명해냈다. 그는 자연물에게 존재의 목적이 없다는 사실로부터 예술 및 고등한 전례에 목적이 없음을 밝히고 있다. “의례에 ‘목적’이 없다는 것은 단지 목적의 관점에서는 의례의 본질이 파악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의례는 어떤 특정한 효과에 도달하기 위해서 적용될 수 있는 수단이 아니라 적어도 어느 정도까지 목적 자체다. 의례는 외부에 놓여 있는 어떤 목적에 도달하는 과정이 아니라 삶에 깃든 세계다. 이것은 중요하다. 만일 사람들이 이를 간과한다면 그들은 의례 안에서 어떻게든 놓여 있기를 바라지만 본질적이지 않은 각종 교육적 의도를 발견하려고 악착같이 일할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의례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을 위해서가 아니라 신을 위해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의례 안에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신에게 주의를 기울인다. 눈길은 신을 향하여 있다. 인간은 의례 안에서 교육되어야 하는 게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보는 것이다.” 과르디니는 어린이의 놀이와 예술가의 창작에서 신성한 의례의 무목적성을 발견했다. “놀이에서 어린아이는 무엇에도 도달하려고 하지 않는다. 어린아이는 목적을 알지 못한다. 그의 어린 힘이 작용할 때 움직임과 말과 행위의 목적 없는 형태 안에서 어린아이의 삶이 자라는 것이지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려는 것이 아니다.” 진정성은 목적 없이 행위 그 자체가 될 때 나타난다. 에티오피아의 한 마을에서는 가뭄에 기우제를 위하여 처녀들이 높은 언덕에 올라서 마치 지금 비가 내리듯 기뻐 춤추며 뛰논다. 여기서 춤이 지향하는 목적성을 생각하기보다는 위기 속에서 그 춤이 갖는 의미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진정한 기우제 의례는 의례 자체가 삶의 위기를 극복하는 목적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양에서 의례는 정해진 신성한 곳에서 진지하게 진행되어 환희와 자유스런 분위기 속에서 놀이로 끝을 맺는다. 의례는 공동체의 안정과 번영을 위하여 수행된다. 그라네가 제대로 보았듯이 고대 중국의 민속에 나타난 노래와 춤은 세계의 운행을 정상적으로 유지하고 자연이 인간에게 축복을 베풀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한해의 번영은 신성한 의례를 잘 수행했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었다. 이러한 의례적 이상은 『중용』에 나타난 대로 천지인이 화육하고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고대 시가를 분석한 후 그라네는 동아시아의 봄과 가을의 축제를 생명의 축제로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강을 가로지르기도 하고 언덕을 오르기도 하고 좇아가기도 하고 꽃과 나무를 주워 모으기도 하는 많은 경쟁과 다툼의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유혹과 도전에 몸을 맡겼다. 그러나 이렇게 만났던 젊은이들의 소요가 무질서 속에서 행해지지 않았던 것도 확실하다. 다툼은 조금도 어지럽지 않았고 도전에는 혼란스런 함성이 조금도 없었다. 동작과 음성은 악기의 음과 잘 조화를 이루었다. 그들은 큰 북을 두드리고 질장구를 울렸으며 그 음률에 맞춰 강의 흐름을 따라서 작은 언덕을 오르고 노래를 부르면서 열 지어 춤을 추었다.” 중국 고대 의례에서 보듯 악이란 예와 떨어질 수 없는 짝 개념이다. 그러므로 공자는 고대 육예(六藝)의 교육과정에 속했던 예악을 문화적 상징으로 표현했다.
『논어』 「선진」 편에 따르면, 공자가 제자들에게 세상이 능력을 알아줘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질문하자 자로는 위기 속에서도 백성이 용기를 얻고 방도를 알도록 하겠다 답했고, 염유는 풍요롭게 하고 예악을 군자에게 맡기겠다고 했으며, 공서화는 배우고, 종묘의 일을 보며 제후의 모임에 술심부름을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증석은 “봄의 끝머리에 봄옷을 산뜻하게 차려입고 대여섯 청년과 예닐곱 소년과 함께 기수에 들어가 목욕하고 기우제를 지내는 제단 아래서 바람을 쐬고 노래를 읊으며 돌아오고 싶다”고 말했다. 공자는 제자들의 답변가운데 증석의 말에 동의했다. 증석의 답변은 봄의 축제와 의례와 놀이가 어우러진 답변이었다. 이상적 삶이 표현되었고 공자 역시 이러한 삶이야말로 사회적 가치가 있다고 보았다.
2) 의례와 서사
의례와 서사의 관계에 대해서는 신화연구에서 의례의 중요성을 간파한 신화의례학파의 관점이 중요하다. 로버트슨 스미스(Robertson Smith)는 신화를 의례에 대한 설명으로 나타냈는데, 이는 의례의 주술적 의미가 잊힌 이후의 일이다. 신화는 의례의 대본으로 의례와 더불어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신화는 실행된 제의, 행해진 것에 상응하는 발화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대로 신화는 레고메논(legomenon, 말해진 것)이며, 이는 드로메논(dromenon, 행해진 것)에 대조되거나 관계된다. 그러므로 후크(Hooke)는 “의례와 함께 의례의 본질적인 부분으로서 나타나는 것은 이야기의 낭독이며, 이 이야기의 개요가 의례에서 행해진다. 이것이 신화이며 신화의 반복은 의례의 수행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고 적었다.
세상과 사물의 기원에 대해 언급하는 대부분의 신화에서 가장 먼저 발견하게 되는 표현 방식은 의인화다. 의인화는 은유의 한 형태로 생명의 생성과 변화를 이해하도록 돕는다. 모든 창조 설화는 생명의 근원인 신적 존재를 의인화하여 표현한다. 『성경』의 「창세기」, 헤시오도스의 『신통기』, 『리그베다』의 창조의 이야기, 나아가 우리의 단군신화를 읽어봐도 쉽게 의인화를 발견할 수 있다. 신적 존재의 의인화는 인식의 한계를 고백하고 경외를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되었으며 의례적 행위의 근거가 되었다. 의인화는 신적 존재뿐 아니라 인간 의식의 추상적 표현과 자연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세계 이해에 관한 인간의 표상은 생명의 의미와 가치를 모호하면서도 풍요롭게 만들었고, 그것을 공동체가 쉽게 공유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의인화가 암시하는 내용은 표현 대상과의 관계를 긴밀하고 복합적으로 유도한다. 의인화에서 발전된 우화(寓話)나 우언(寓言)은 좀 더 분명하게 도덕적 가치와 바람직한 삶의 양식을 제시하며 열린 텍스트로서 독자의 관심에 따른 고유한 해석의 의미를 열어준다.
인간과 관계하는 대상의 의인화는 인간과 동일한 생명성을 부여함으로써 관계의 장을 형성하고 대상이 인간 생명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성과 역사성을 갖게 한다. 창세기의 뱀을 비롯해 문학작품에 빈번히 나타나듯, 의인화는 삶의 새로운 가치를 불러일으키고 독자로 하여금 그 가치에 더 친밀하게 다가가도록 돕는다. 서사과정에서 나타나는 인간 덕성의 의인화는 『구약성경』에 자주 나타나는데 하위징아가 발견한 대로 「시편」 85장에 자비․진리․정의․평화의 4개념이 의인화되어 입 맞추었다고 되어 있다. 세네카는 프레스코 벽화에 나타난 세 여신 카리테스의 춤을 통해 의인화된 자비(Gratia)가 즐거움을 경유해 표상됨을 적절하게 설명했다.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는 가난과 결혼했다고 하여 의인화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의인화는 연출의 형태로 놀이이자 의례의 양식을 그대로 재현한다. 힐데가르트 폰 빙엔은 미덕의 의인화를 표시하고, 가장하고, 설명하고, 의미하고, 예시하는 관계라고 말했다.
고대에 의인화가 가장 잘 발전된 형태는 동물과 인간의 융합과 신과 인간의 융합이다. 동물과 인간의 융합은 변신으로 나타나며 신과 인간과의 융합은 육화로 표현된다. 동물과 인간의 융합은 인류사에서 가장 먼저 나타난 의인화 형식이다. 고대인은 토테미즘에 나타나듯 동물의 영험한 능력에 힘입어 생명을 보존하고자 했다. 이 과정은 동물의 탈을 쓰고 사냥하여 생존하는 단계로부터 동물로 인간을 신성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단계까지 아우른다. 스핑크스같이 영적인 단계를 보여주는 종교적 차원과 일시적인 변신을 보여주는 ‘늑대인간’의 형태도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12지신 상을 통해 생명을 보호하는 동물의 영험한 영역을 인정하고, 이를 사람이 태어나는 해, 달, 날, 시간에 이르기 까지 영향을 미쳐 성품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였다.
이렇듯 고대 시인들의 서사는 연출을 위한 대본처럼 역할을 부여하고 고유한 생명성을 표현하고 의미화했다. 그들의 주술은 연출에 몰입하여 자아상실에까지 이르렀는데, 이는 신적 경지에 이르는 방도 가운데 하나였다. 따라서 플라톤이 지적하듯 시인들은 신적 존재와 소통할 수 있는 경신의 특별한 수단과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하위징아의 말처럼 “고대 문화에서 시인들의 언어는 가장 효과적인 표현의 수단이었으며 문학적 열망의 충족이라는 비좁은 기능보다 더 넓고 중요한 기능을 발휘했다. 시인들의 언어는 의례를 언어로 옮겨놓았고 사회적 관계를 조정했으며 지혜, 정의, 도덕의 수단이 되었다.”
서사와 의례의 상관성은 선후의 문제라기보다는 내용과 형식으로 서로의 의미를 규정하고 완성시켜준다. 한 인간의 생명의 서사는 의례를 통하여 기술된다. 원시문화의 성년 의례에 나타나는 격리, 제례적 상처/시련, 통과의례, 귀환은 생명이 성숙해가는 서사를 말해준다. 이 서사는 써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써가는 서사다. 그러므로 서사에는 개인의 생명력이 나타나 있다. 동아시아에 일상에서 사용하는 ‘이력’이라는 말은 바로 발로 쓰는 서사를 말하고 있다. 신화에 나타나는 영웅들의 여행 이야기, 종교에 나타나는 영적 여행은 자아를 찾는 과정이요, 그것을 회복하는 여행이다. 캠벨이 말하듯 이러한 서사를 쓰는 영웅들은 자기 시대의 관습적인 사유로부터 자유로우며, 사변적 사유의 어둠 속으로 모험을 떠나고, 창조적 힘을 발견하여 자신을 변화시키며 이를 타인과 공유하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부처와 그리스도는 세상에서 자신이 겪은 서사를 공유하기 위해 돌아온다. 부처의 미래불, 그리스도의 부활은 바로 이런 의미를 띤다.
동아시아의 고대 서사 역시 의례와 깊이 결합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서경(書經)』의 「상서(商書)」 편에 탕 임금의 소반(小盤)에 새겨진 “진실로 날로 새로워지려거든 나날이 새롭게 하고 또 새롭게 해야 한다”는 명문(銘文)은 생활 의례와 자기 서사의 상관성을 적절히 말해준다. 예를 완성함으로써 공자가 경모하게 된 주공의 삶은 천자의 지위에 오르나 다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주공은 백성의 마음을 살피고 그 마음과 하나가 되는 것을 정치로 삼았다. 그는 예로 정치를 하고 예로 물러났다. 그의 서사는 예로 시작하여 예로 끝났다. 공자가 주공을 사표로 삼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3) 정치와 예
유교 문화권에서 인간은 탄생부터 죽음과 사후세계에 이르기까지 의례라 불리는 명백한 공동체적 행동 규범에 따라 살게 된다. 예기禮記에 “예의 본질은 구별에 있다. 구별하기에 서로 공경한다”고 했다. 이는 사회적 관계와 역할에서 예가 발생함을 표현한다. 가정의 가례에서 마을의 향례, 국가의 국조례에 이르기까지 예를 통해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여기서 국가의 인도적 통치 수단으로서의 예를 주례(周禮)에서 발견할 수 있다. 공자는 이러한 의식적인 예절을 삶의 기본적인 형식이자, 인도적인 통치의 기본으로 보았다. 따라서 공자는 항상 통치자가 신하와 영토를 형벌로 다스리기보다는 예를 통해 다스리기를 소원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규정으로써 인도하고 형벌로써 정돈하면, 백성들은 이를 피해나가며 죄책감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덕으로 인도하고 예로써 정제하면 백성들이 양심을 갖고 선에 이르게 된다.” 예를 통한 덕의 통치는 스스로 따르는 자율성을 기반으로 한다. 이는 후대에 나타나는 타율적 형정과는 반대된다.
공자의 가르침을 계승한 맹자는 통치자의 선한 의도는 법과 제도의 형태로 수행되지 않는다면 쓸모가 없다고 말했다. “위에 있는 임금이 도로써 모든 일을 헤아리지 않으면 아래 있는 신하가 법으로써 자기 직책을 지키지 않을 것이며, 또 조정에 있는 백공이 법도를 지키지 않을 것이다. 또 군자가 정의를 어기면 소인들은 형법에 어긋나는 범죄를 저지를 것이다.” 여기서 법과 제도는 도를 본받는 것임이 드러난다. 또한 통치자의 도는 백성의 삶에서 그 효과가 실질적으로 드러나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법으로 나타난 정치 의례는 백성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으며 이는 통치자의 덕성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렇듯 유가(儒家)에게 예는 개인의 행동 규범에서 국가의 통치 질서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적용되었고 특히 순자(荀子)는 “예는 나라를 잘 다스리는 규범이자, 강하고 굳세지는 근본이며 위세를 펴는 길이고, 공적과 명성을 올리는 요체다. 임금이 예를 따르면 천하를 얻는 근거가 될 것이고, 예를 따르지 않으면 나라를 잃는 근거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순자에게 있어 예는 당연히 법의 상위개념이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법이란 본래 『도덕경』 25장에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스러움을 본받는다.(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고 한 것처럼 그 질서를 본받는 것이다. 맹자에 이어 순자도 법을 예의 실천 방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법가에 이르러 법은 상앙의 이목지신(移木之信)과 같은 강제적인 형정(刑政)에 이르게 되었다.
앞에서 보았듯이 동양의 정치적 의례에 특별히 주목한 드 베리는 법과 상관되는 관점에서 의례를 바라보았다. 이는 의례가 갖는 관제의 의미를 이해하도록 돕는다. 우리는 공자가 예와 법의 개념을 상당히 중복해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맹자는 예 혹은 법에 관해 언급된 적절한 공동체나 체계 모델과 개인의 덕이 균형을 이루면서 공자의 기본적인 가르침과 분리되지 않았다. 순자가 예에 대해 가장 이론적인 정당함을 이야기할 때 그는 예가 국가의 명령과 부합을 보장하거나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내부의 감정을 수양하거나 높이거나 세련되게 하는 데 기반을 두었다. 그러므로 그 역시 맹자와 같이 기본적인 덕의 상관성으로 공자가 이미 언급한 예와 함께 개인적인 동기 부여의 내부적 근원과 전체적 동등함이라는 양자를 강조함으로서 뒷받침하고 있다.
여기서 서양 정치의 기원과 관련해 의례를 살펴보면, 전통적으로 예법에 상응하는 고대 그리스의 개념은 노모스(Nomos)의 복수 노모이(Nomoi)라 할 수 있다. 노모이는 인간에게 부여된 질서의 관습과 성문화된 법칙으로 인간의 삶을 가능하게 한다. 에렌베르그(Eherenberg)는 “노모이는 단순히 인습이나 관습뿐 아니라 폴리스에서 실현된 전통, 폴리스에서 실현된 정신의 표현, 폴리스를 창조한 정의의 정신인 디케(Dike), 그리고 부끄러움과 겸손의 정신인 아이도스(Aidos)의 표현이다”라고 했다. 실로 프로타고라스에게 디케와 아이도스는 정치적 아레테(Arete, 덕)의 기초였다. 이렇게 고대에 노모스는 관습과 인습, 그리고 옛 법의 고수를 의미했으며 또한 좋은 의미에서는 사회의 기본적인 힘을 뜻했다. 그러므로 헤시오도스는 “옛 관습은 가장 좋은 것”이라고 했다. 노모스의 본래의 의미는 도그마 폴레오스(dogma poleos; opinion of state)로 정치적인 영역에 있었다.(Plato, Minos 314.c) 여기서 노모스와 중국 예악의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예가 정황에 따른 유연한 질서이며 악이 그 조화인 반면, 노모스는 당위적인 질서의 의미를 강하게 띠고 있다. 이는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그 차이를 드러낸다. 중국의 정치가 예의 정치를 추구하는 과정의 정치라면 그리스의 정치는 내적 자연인 아이도스와 디케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라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 3권에서 “모든 기술과 학문 가운데 으뜸인 것이 정치 기술과 정치학이며 이것의 목적은 최고선(最高善)이며 정치 분야에서의 선은 정의, 즉 공동의 이익이다”라고 했다.”(1282b) 정치적 정의는 교육과 덕성에 따라 직분과 명예가 부여됨으로써 나타나게 될 것이다. 8권에 따르면, 궁극적으로 국가가 유덕해지는 것은 지식과 원칙의 과업으로 모든 시민이 유덕한 경우에 가능하게 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시민이 유덕하게 되는 세 가지 조건은 본성(physis)과 습관(ethos)과 이성(logos)이다.”(1332a) 여기서 이성은 정의와 부정의를 명시하여 인간의 사회적 삶을 가능케 하는 언어 능력을 말하기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인간이 동등한 본성을 갖고 태어나지만 습관과 이성에 의해서 변한다고 보았으며 이를 조화시키는 것을 교육의 과제로 삼았다. 결과적으로 여기에 나타난 습관과 이성도 의례적 관점에서 접근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4) 의례와 언어
예는 예를 불러일으킨다.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은 늘 타자를 부른다. 그를 바라보고 그에게 귀 기울이며 말하고 행동한다. 그 모든 것이 서로에게 마땅할[宜] 때 비로소 예가 된다. 인의(仁義)가 예의 본질이 됨이 여기에 있다. 함께 서는 데서 예가 완성된다. 그러므로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네가 서고 싶거든 다른 사람을 서도록 하라. 네가 다다르고 싶으면 다른 사람을 다다르도록 하라. 가까운 것으로부터 유비하는 데 인의 길이 있다.” 예를 따르는 사람은 홀로 잘 살 수도 못 살 수도 없다. 가정에서부터 사회에 이르기까지 함께 서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삶에 있어 사회 참여는 필연적이다. 그런데 사회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언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수사술』에서 언어의 실용적 측면을 보이긴 했지만, 그는 줄곧 명제적 진술을 중시했다. 언어를 의례적 관점에서 바라본 것은 유가적 언어관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공자가 정치를 하게 된다면 이름을 바로잡겠다(正名)고 한 것은 사회가 언어의 단계에서부터 안정되어야 함을 말해준다. “명(名)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고, 말이 순조롭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악이 진흥되지 못하고, 예악이 진흥되지 못하면 형벌이 적절하지 못하고, 형벌이 적절하지 못하면 백성이 편히 살 수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명을 바르게 한 다음 반드시 말을 하고 말을 하면 반드시 행하는 법이다. 에임스는 정명론을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 “이름을 부르고 정함은 그 안에서 이해를 통해 삶의 존재 구조와 정의를 정하게 되는 일이므로, 이름과 불리는 대상의 조화는 항상 연관성의 변수 안에서 유동적으로 존재하고 항구히 새로운 결정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이 결정은 끊임없이 사회에 대한 내면적 해석을 동반하게 된다.”
사람들은 표현 양식을 배우기 위해 외부의 사물을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놀이 개념처럼 사회적 상황 안에서 수행을 통하여 적절히 표현하는 방법을 알도록 이끄는 관습을 연습한다. 여기서 예와 언어의 깊은 상관성을 볼 수 있다. 신중한 언어 사용은 의례의 일부분을 이룬다. 의례에 내재된 서사가 경외와 삶의 진정성을 나타내듯 사회적 삶에서 상호 신뢰와 존중의 언사는 몸동작과 마찬가지로 효율적인 행위를 구성해낸다. 이점에서 언어는 행위다. 그러므로 오스틴이 모든 언사가 수행적이라고 한 것은 타당하다. 의도한 일을 이룰 수 있는가의 여부는 언사에 달려 있다. 상호간의 언사가 예에 합당할 때 공동의 목적을 이루고 덕을 완성하게 된다. 그러므로 언사의 목적은 단순히 지칭하고 진술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행위를 부르고 요청한다. 인간의 모든 언사는 도덕적 응답(response)이라고 봄이 적절하다. 그러므로 공자는 “자기가 모르는 일에는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부름과 응답 사이에서는 늘 사회적 정황이 조절된다. 소통의 과정에 상대방에 대한 신의와 존경이 내재되어 있다면 의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조율의 의미가 바로 예악의 악으로 표현된다.
“악(樂)은 덕의 꽃이다”라고 하는 것은 인격적인 사회적 소통의 반영을 말하는 것이다. 악에는 조화와 조율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예를 미적으로 완성시키는 것이 바로 악이다. “악이란 단지 종(鐘)과 북(鼓)의 소리가 아니다”라는 공자의 언급은 이를 잘 대변한다. “악은 같게 하고 예는 다르게 한다”는 말은 악으로 조화를 이루고 예로 분별하여 행동한다는 뜻이다. 또 다른 뜻으로 예가 수직적 구분의 질서라면 악은 수평적 조화다. 홀로 가는 것이 아니고 함께 가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보조(步調)’를 맞춘다고 한다. 악은 천지 안의 성품을 서로 조화시키는 다양성 안에서의 통일을 지향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것을 “천지(天地)의 화(和)”라고 하며 “화(和)한 까닭에 백물(百物)이 화(化)한다”고 한 것이다. 여기에서 인간 교화의 의미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악이라는 것은 덕을 본뜨는 것”이기 때문이다. “악이란 성인이 즐거워하던 바다. 이것을 가지고 민심을 선하게 하고 사람을 감동시켜 풍속을 바로 잡았다.” 그러므로 “음악이 지극하면 원망이 일어나지 않고, 의례가 지극하면 상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사람은 진정 조화 가운데 사는 보람을 느낀다. 이는 기호와 욕구의 충족이 아닌 상호간의 일체감을 느낄 때를 말한다. 「계사전」의 다음 구절은 이를 대변하고도 남는다. “두 사람이 마음을 합하면 그 예리함이 쇠라도 자를 수 있고, 마음을 같이하는 사람의 말은 그 향기가 난과 같다(二人同心 基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
5) 교육으로서의 예
고대 그리스의 교육은 플라톤의 『국가』가 보여주듯 이상국가 건설을 위한 유용한 시민의 양성에 초점을 두었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와 피타고라스의 생활양식을 종합하여 아카데미아를 설립한 데에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 그것은 무엇보다 영향력 있는 인물을 교육하여 도시의 정체(政體)를 개선하는 데 있었다. 이에 비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사회적 역할 수행과 관련된 덕을 중시하고 이를 함양하기 위한 여가와 관조의 삶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플라톤과는 달리 광범위하게 대중과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삼아 철학적 행복을 위해 가르쳤다. 철학적 행복은 공적 활동에 참여하여 덕을 실천하는 가운데 얻는 행복과 달리 정신활동에 온전히 바쳐진 정관적 삶(theoria)의 일종에서 얻는 자유로운 행복이다. 그리스의 교육 이념에 이은 로마의 대표적인 교육사상가 키케로도 교육의 목적을 인문주의적 교양을 지닌 연설가의 육성과 교육을 통한 덕과 행복의 실현을 강조했다. 공교육이 중심이 된 그리스와 달리 로마에서는 가정에서 여성의 교육적 역할이 중시되었으며, 아이들은 경건하고 품위 있는 여인으로부터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고상한 관습을 교육받았다. 15세가 되면 성년토가를 받고 단체에 가입하고 공회에 참석하며, 법률가와 관계를 맺고 정치집회에 참석했다. 이 점에서 로마의 교육은 가족 정신, 가족사, 법률 질서, 국가 행정으로 구성된 역사의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이로부터 그리스와 로마의 교육이 관습으로서 의례를 중시한 점을 추론할 수 있으나 교육 자체를 의례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다고 할 수는 없다. 서양과 달리 교육을 의례의 관점에서 받아들인 것은 유교 교육관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공자의 네 가지 가르침은 고전 공부, 실천, 성실성, 그리고 신의(文行忠信)였는데 이를 통해 덕성을 함양하고자 했다. 그러나 교육은 우선 경제적 생활 수준이 안정된 다음에 가능하다고 보았다. 위나라를 방문했을 때 백성이 많음을 보고 공자는 우선 경제적으로 이들의 삶을 윤택하게 해야 하고 다음에 덕성을 높이기 위해 가르쳐야 한다고 한 것은 교육에도 선결해야 할 전제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또 교육 대상과 관련하여 유교무류(有敎無類), 즉 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에 사람의 차별이 없어야 함을 강조했다. 즉 누구나 교육의 혜택을 받아야 함을 역설한 것이다. 정치와 교육의 관계에서 “백성을 가르치지 않고 죄를 지은 사람을 사형에 처하는 것을 학정이라 하고, 미리 훈계하지 않고 잘못된 결과를 책망하는 것을 포악이라 하며, 법령을 엉성하게 하고 기한을 촉박하게 하는 것을 적해라 하고, 백성에게 줄 출납을 인색하게 하는 것은 낮은 관리의 짓거리다”라고 했다. 사회적 책임으로서의 교육의 역할을 강조한 말이다.
예를 교육적 차원에서 기술한 경서인 『예기』에서 『대학』과 『중용』은 유교의 교육 철학과 인간 생명의 본질에 대해 적절히 요약하고 있다. 이상적 인간상을 제시한 『대학』에 제시된 명명덕(明明德), 신민(新民), 지어지선(止於至善)의 삼강령에 나타난 교육 원리는 인간의 도덕적 본성이 사회적 관계를 통해 완전한 선에 다다름을 말한다. 이어서 제시된 팔조목은 이에 이르는 교육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대학』은 철저히 덕성 교육에 기반하여 사회적 의례를 수행할 수 있는 지성적인 관료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밝힌 『중용』은 우선 본성을 사회적 소명이라 했으며(天命之謂性), 그 소명을 따르는 것을 인간의 길이라 했고(率性之謂道), 그 길을 닦는 것을 가르침이라 했다(修道之謂敎). 『중용』의 첫 구절은 유가 본성론이 수행적 차원에서 내재적 지향성으로 설명되고 있음을 잘 나타내준다. 이점에서 『대학』과 『중용』은 교육의 씨줄과 날줄로 완전한 인격체를 이루는 요체라 할 수 있다.
유교교육의 특징은 개인의 수행적 의례를 중시하는 것이다. 『대학』 경문에 “머물 곳을 안 뒤에야 안정됨이 있고, 안정된 뒤에야 조용하고, 조용한 뒤에야 편안하고, 편안한 뒤에야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한 뒤에야 얻을 수 있다”고 한 것은 덕성 교육이 타율적인 교육이 아니라 자율적인 수행 의례로부터 시작됨을 설명해준다. 머물 것을 안다는 것은 바로 ‘입어예’의 정신이다. 마지막에 “생각한 뒤에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예가 도덕적 분별을 통해 덕으로 완성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중용』은 좀 더 도덕적인 차원에서 자기 수행의 의미를 드러낸다. “군자는 보이지 않아도 경계하고 삼가며 들리지 않아도 두려워하고 조심한다. 감추어진 것보다 더 드러나는 것은 없고 작은 것보다 더 뚜렷한 것은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홀로 있음에도 삼간다.” 의례가 윤리 도덕으로 나아가는 길이 여기에 있다. 인간 존재는 홀로 있음에서부터 이미 사회적 존재로서 성찰적 인식과 개인 의례가 수행되는 것이다.
인간 본성의 외재적 지향성은 수신제가로부터 치국평천하에 이르는 방도가 교육에 있음을 통해 명시되어 있다. 드 베리가 적절히 파악했듯이 유교 문화권에서 제도적으로 가족과 국가를 잇는 곳은 학교다. 서구와 달리 동아시아에서 학교의 기능은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가족과 국가 사이에서 인재를 배출하여 통치자의 권력을 통제함으로써 긴장을 완화하고 소통을 조율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교육자는 단순한 지식 교사가 아니라 국가 현안에 대한 통찰과 건의가 학자의 도리임을 보이고, 학생들이 이를 모범으로 삼도록 하는 인격 교육이었다. 이러한 교육관에 의거하여 불의에 항거하고 목숨을 버릴 수 있는 것은 유학자에게는 당연한 도덕적 의무였다. 따라서 교육은 인간에게 부여된 생명성이 궁극적으로 어떻게 발현되어야 하는지가 예교(禮敎)의 방식으로 삶 전반에 걸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6) 삶의 양식으로서의 예와 경신(敬神)
공자는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인간 삶의 기본 양식이다. 그런데 예가 아니면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은 예가 바로 삶의 규범이라는 것이다. 이 규범은 정해진 도덕률이 아니라 스스로 본분과 정황에 맞게 행동해야 함을 말한다. 여기서 예는 더 이상 신적 존재에 대한 경배 행위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조율하는 규범으로 나타나 있다. 핑거렛(Fingarette)이 지적했듯, 공자의 관점에서 보면 사회는 하나의 거대한 예식 수행의 현장이며 정교하고 치밀한 종교적 의례가 갖는 온갖 신성한 아름다움을 갖춘 거룩한 예식 그 자체다. 인간의 존엄성과 고귀함은 내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신성한 사회적 의식에 참여하는 데서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서 군자는 인간이 지향해야 할 이상적 인간상이며 능동적인 사회적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개인의 도덕의식으로부터 사회적 윤리로 나아가는 길이 예에 함축되어 있다.
정황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예의 분별 능력을 말해준다. 이때의 예는 정해진 규범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그 정황에 적절히 맞도록 행하는 것이다. “어찌해야 하는가, 어찌해야 하는가(如之何 如之何)” 스스로 묻는 순간 예가 사회적 의례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 공자가 “예로 선다(立於禮)”고 했을 때 이는 바로 정황에 따른 선택을 의미한다. 선다는 것은 끊임없이 반성하며 개선하는 인간의 고유한 수행 양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공자는 『논어』 「요왈」 편에서 “예를 모르면 설 곳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예로 인한 개인의 분별력에 나타나는 도덕성과 창의성은 바로 인격으로 나타난다. 세상에 동일한 정황이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예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고 신중한 인격적 행동을 불러일으킨다. 예로 인한 성실성과 창조성이 인간생명의 의미를 규정한다. 그러므로 공자는 “도에 뜻을 두고, 덕을 바탕으로 하고, 인에 의지하여, 예로 향유하라” 했다.
전통적으로 유교 문화권에서는 관혼상제를 중요한 생활 의례로 여겼다. 이밖에도 출산의례, 작명례, 회갑례 등이 있지만 사회적 의미가 발달된 관혼상제는 생활의례로 특히 중시됐다. 의례는 단순한 모방과 반복에서 시작되나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참여하는 사람들의 의식에 변화를 불러일으켜 새로운 인격을 갖추게 한다. 전통적으로 관례(冠禮)는 사회적 존재로서 자기 극복(克己復禮)의 계기를 부여하고, 혼례(婚禮)는 “삶의 모든 도리가 부부에게서 비롯된다(造端乎夫婦)”는 『중용』의 가르침대로 윤리적 삶을 이끌고, 상례(喪禮)는 죽음을 인식하는 존재로서 인간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할 바(人道)를 깨닫게 하고, 제례(祭禮)는 조상이 마치 살아 계신 듯 예를 다하는 가운데 생명의 근원과 가족의 결속을 일깨웠다. 생활의례는 그 수행성과 연행성을 사회적으로 확장하는 데 의미가 있었다.
공자에게 삶의 양식이 예이듯 소크라테스의 삶의 양식 또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아도가 삶의 양식으로서의 철학이라 했듯이 여기서 철학이란 사변이 아니고 경신(敬神)이자 의로운 삶이다. 크세노폰의 『메모라빌리아』에 따르면 히피아스가 소크라테스에게 자신은 항상 새로운 것을 말하려고 애쓰는데 왜 “늘 같은 주제에 같은 말만 되풀이 하느냐”고 지적한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그에게 정의와 같은 불변의 주제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히피아스는 소크라테스가 남의 의견을 논박만하고 조롱해왔으니 먼저 말하지 않으면 답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나는 내가 정의로 여기는 것을 끊임없이 보여주었소. 다만 구변이 아니라 행동을 통하여 보였던 것이오”라고 말했다. 아도가 정리한 대로 이 말의 참뜻은 정의가 무엇인가를 가장 잘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정의로운 인간의 삶과 실존이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에게 철학은 정의(定義)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롭게 사는 것이다. 이점에서 정의로운 삶은 그의 말대로 경신(敬神)이며 의례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모든 이가 경신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시에도 니키아스나 플라톤처럼 소크라테스의 말을 따르는 사람들과 알키비아데스나 아니토스처럼 그의 말을 거역하여 그를 고발한 사람들이 있었다. 소크라테스가 사형 판결을 받아들인 것은 아테네인을 향한 불의에 대한 변론의 형태이며 저항의 방식이다. 소크라테스의 철학 방식은 대중 삶의 양식에 들어가 그들을 일깨우고 그들을 대변하는 삶이다. 그러므로 그의 죽음에는 아테네인의 죽음이 내재되어 있고 철학적 경신을 통해 다시 윤회할 아테네인의 삶이 약속되어 있다.
5. 나가는 글: 비판적 성찰
앞서 살펴본 동서양 고대 의례관은 더 이상 수행되지 않거나 변형되어 현대사회에서는 제한적 의미만을 가질 뿐이다. 또한 과거의 시점에서도 드 베리가 지적한 대로 권력 구조가 서로 다른 중국의 역사족 환경에서 공자나 맹자가 규정하는 모델은 수용하는데 한계가 있다. 그것은 주나라의 봉건제도와 토지, 가족 제도에 근거한 계급적인 귀족 정치 자체의 존재를 가정하는 것에 기반을 두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의례는 중세에는 주자에 의해서 그리고 근대에는 서구 문물의 유입으로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현대사회에서 전통적인 유교 의례는 형식상으로는 일부 남아있으나 대부분 그 형식과 의의를 상실해가고 있다.
서구에서도 전통적으로 그리스와 로마의 양식을 수용한 그리스도교의 종교 문화가 생활 의례 전반을 지배해왔으나 현대사회에 이르러 종교적 의례는 단지 신앙인의 의례로 한정되어 유지될 뿐이다. 본래 그리스도교에서 행하는 성사 의례는 신앙인에게 특별한 종교 체험을 갖게 할 뿐 아니라 삶의 여정을 단계적으로 넘어서게 하는 통과의례의 성격을 지닌다. 그리스도교 신앙인은 출생을 절대자의 축복으로 죽음을 영원한 생명으로 넘어가는 문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교의는 더 이상 보편적이지 않다. 현대신학도 개인의 구원으로부터 공동체의 구원으로 의미를 확장하고 있다. 신앙인이 종교의례에 참여하는 비율도 점차 낮아지고 고령화된다. 이러한 사회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 사람들이 생명의 문제를 더 이상 종교적 의례에 의존하여 따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례는 사라지는 것인가? 여기서 다시 새로운 질문이 떠오른다. 인간이 의례 없이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의례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의례로 패러다임의 변화를 겪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의례를 구성하는 요소가 현대적인 의례 안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회적 의례와 개인적 의례
사회 현상을 의례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새로운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는 것을 사회적 통과의례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획득된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부단한 자아 연출과 자기 발전을 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아 연출과 자아 발전을 통해 형성된 사회적 자아는 변화하는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지속적인 개선을 꾀하게 된다. 그러나 경쟁적이며 다층적인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은 자아 연출과 발전의 한계와 예기치 않은 사회적 지위의 상실 속에서 사회적 자아의 유지와 생존에 위기를 느끼게 된다. 면직, 사직, 해고, 퇴직과 같은 사회적 지위의 상실은 삶의 의욕을 상실케 하고, 경제적 결핍에 처하게 함으로써 생명을 위협한다. 사회적 의례의 기능에는 개인이 사회에서 스스로 수행하는 연행적 측면, 그리고 사회가 개인의 삶의 양식을 유지하도록 장을 마련해주고 그를 보호하는 제도적 측면이 있다. 이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룰 때 개개인의 생명의 서사가 제대로 구성되고 기술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언론에서 사회복지와 소외된 사람들의 삶에 대해 대중의 지속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킬 때 이는 제도적인 측면에서 사회 의례의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장애인과 소수자, 노약자에 대한 관심은 사회적 관계의 망을 건실하게 하고 사회적 연출의 장을 넓혀준다. 사회 구성원이 개인의 생존을 넘어 자발적으로 제도를 구축하기 위한 삶을 영위할 때 사회적 생명의 차원이 열린다. 소통과 연대 그리고 봉사와 희생으로 나타나는 적극적 사회 참여는 현대사회가 필요로 하는 중요한 사회 의례의 정신이다. 소극적인 사회 참여의 형식이지만 배려와 관용 또한 사회 의례의 중요한 속성이다. 이를 통해 다양한 삶의 양상이 존속하고 조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 교육의 차원에서 사회적 의례의 중요성에 공감하고 매 정황에 따른 의례의 형식을 서로 구성해낼 필요가 있다.
또한 개인이 사회 의례에 올바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개인 의례가 준비되지 않으면 안 된다. 개인 의례는 자아 연출의 연행성과 자기 극복의 수행성이 갖추어져야 한다. 공자의 “극기복례” 가르침처럼 의례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 극복의 수행이 이루어져야 한다. 자기 극복이란 외적으로 드러나는 사회적 자아와 달리 자기 정체성과 통합성을 이루는 내적 자아의 완성을 의미한다. 동서양 철학과 종교가 보편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관조적 삶은 바로 이러한 자기 수행을 의미한다. 관조적 삶은 철저한 자기 성찰이며 자기 고발이다. 『중용』의 “신독”과 같이 스스로 거짓 없이 자기 성실에 이르는 것이다. 현대사회에 만연한 자아 연출만 있고, 생각하지 않는 삶, 성찰 없는 삶으로는 개인 의례가 이루어 질 수 없다. 개인 의례가 제대로 구성되지 않을 때 공동체의 사회 의례 또한 구성될 리가 없다. 그렇다면 현대사회는 의례를 상실한 사회라 진단할 수 있다. 매스컴이 전하는 매일매일의 소식은 무례한 사건들이다. 무례하다는 것은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이고, 인간답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교육적 차원에서 예를 가르친다 함은 무엇보다 자기 성찰적 삶의 양식을 가르침이다. 자기 성찰을 통해 자아 의식을 고양시키고 생명의 관계를 재인식하도록 돕는 것이다. 인간이 단순히 생존의 차원에 살지 않고 도덕적인 생명을 지향하는 존재임을 인식할 때 개인의 삶은 사회적 삶의 지평 속에서 그 의미를 발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