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의 중국 베이징( 北京)일대가 고조선 강역인 것 같다●
필자의 원래 전공은 원예육종이다.
한때는 태양종묘상사라는 육종회사를 설립 소유 한바 도 있었다.
거시경제를 공부한 것은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부터 지금까지 중국을 약170여회를 주로 동북삼성을 업무차 돌아다녔고, 러시아 는 주로 연해주 포함 극동러시아를 1989년이후 230여 회 다녔다.
두곳을 돌아다니면서 문득 문득 초등학교
에서 배운 단군 할배 역사가 절대로 신화가 아니고 사실임을 느낄수 있었다.
왜, 단군왕검께서는 보잘 것 없는 강화도 마니산(468m)에 참성단 만들고 동해아닌 서해바다 용왕님께 제사를 뫼셨는지?
또, 渤海(대진국)는 지금의 연변조선족지역과 두만강 일대에 존재하고 일본의 奈良(나라국)에 흰콩(白豆)을 수출하는 무역국가였는데 막상 渤海는 압록강 하구에서 지금은 중국 청진과 위해 쪽 서해 바다 상류쪽을 발해만이라고 하는지 나름데로 눈여겨 보고 의문 된 것을 논 해본다.
이것은 농학자의 눈으로 만 판단한 것이라서 지극히 미천할수밖에 없음을 이해 바란다.
☆.단군 할아버지 께서는 왜, 마니산 참성단애서 제사를 지냈을까?
강단 사학자들이 만든 중. 고등학교 교과서인 지리부도에는 삼한( 진.마.변한)이 한반도 안에 존재한 것으로 저술되어 있는데, 필자가 흑용강성 역사 박물관에서 본 것은 지금의 동북삼성과 러시아 연해주일대가 단군왕검 할배가 통치한 辰韓 國이었고, 이 것은 홍산 문화 유적이 발굴된 적봉산 구역 덕보박물관에서 도 확인 할수 있었다.
또 다른 자료에서 발해만 일대와 중국 靑島~濟南~石家庄~呼和浩特을 이어 지금의 몽골 까지의 북쪽 땅이 弁韓 國이였고, 지금의 한반도는 馬韓 國 이라는 것도 알았다.
단군왕검 재위 51년 (BC 2283년)에 진한국 수도 아사달에서 친히 마한땅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에서 제사 모시는 것은 마한땅이나 변한땅은 자신이 통치하는 좌.우 연방 또는 연맹 같아서 순회하는 것은 당연지사.
그런데 수많은 명산인 금강산. 묘향산. 칠보산등을 외면하고 굳이 마니산을 찾은 것은 큰 이유가 있다고 보았다.
마한의 장산 곳이 있는 옹진반도에서 변한국 제일 가까운 청도까지 뱃길이 일직선이 되질않고 당시에는 뗏목에 돗단배 같아서 해류에 따라 약간 남하하여 청도에 도착했을 것 같고, 역시 청도에서 출발한 배도 약간 밀려 강화도 교동 쪽으로 오질 않았나 판단된다.
당시의 자료 살펴보면 마한에서 변한( 어떤자료에는 번한으로 표시한 곳 도 있음) 가는 사람보다 변한에서 마한으로 온 사람 훨씬 많았다는 기록도 있다.
단군왕검 께서 변한쪽 바다를 보고 용왕제를 뫼신 것은 변한의 國泰民安을 위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14세 고불 단군께서 조사한 삼한 (진. 변. 마한지역)지역 가구수는 1억 8천家口라는 기록 있다.
인류가 조직한 고대집단 이후 또는 국가조직 이후 중도에 멸망하질 않고 1,000년 이상 유지된 곳은
이집트 왕조 약3천년, 단군 왕조 47대 2096년, 다음은 인도제국의 인더스문명 약2천년, 그리스 로마제국의 에게문명 약1,600여년.우리나라 통일 신라도 미처 천년이 되질 않는다.
천년 이상 나라를 유지계승하려면 국토가 넓고 인구가 많고 백성들 먹거리가 충분히 자급자족 되어야 하고, 당시로서는 첨단무기인 청동무기 또는 철기 무기로 군대가 무장해야 하고, 당시로서는 오늘날의 자동차 같은 말이 끄는 전차와 말들이 출전병사 5명당 한마리 정도 되어야 한다 라는 기록도 본 것 같다.
이와 더불어 元나라 이전에는 중국 漢族들의 수도는 오늘날의 西安. 洛陽. 南京 등에 있었음을 확인했다.
원나라 이전의 北京은 弁韓땅임이 증명되는 것은 이곳에서 생산된 식량 들이 碣石山 넘어 북쪽인 진한 땅으로 운반한 사례도 나온다.
이제 戶口에 따른 家口와 人口 조사및 국토넓이를 논해본다.
코끼리 키우는 집은 한마리당 사람10명, 낙타는 한마리는 사람 두사람. 말과 소는 1대1로 계산하여 가구라고 하는 것은 이집트.인더스.에게문명권의 공통적 조사 사례다.
단군조선 시대에는 코끼리와 낙타가 없었기 때문에 추정하면 마한국 가구수가 800만 이라는 수치가 있다 . 대충 말과 소가 1백5십만 마리로 추정했고, 변한국인 지금의 중국 북경 이북에서 요하까지에는 1억가구중 말과소가 절반인 5천만 마리라서 사람들은 5천만명이 된다.
반면에 진한국은 말과 소가 사람보다 더 많은 7천만가구중 4천만마리가 되어 땅이 너무넓고 변한과 마한을 통치하는 역마와 관리들 업무용으로 사육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단군 할아버지 통치권역인 3한의 전성기 시절 총인구는 약8천650만명이나 되어 오늘날의 지구총 인구1/100 이나 되는 초 강대국이다.
요약하면 인구숫자는 단군 3한 시절이 이집트 문명 권 1억명 보다는 적지만, 인더스와 에게문명 권 보다는 많다는 것이다.
당시 3한 조선 넓이는 지금의 몽골국토와 유사한 한반도 78배가 되는 면적이다.
이내용을 강단 사학자들이 보면 나를 완전 또라이 취급할 것이나 중국역사에서 대충보고 기억한 것을 토로하는 내 자신도 이것에 대하여 의심한다.이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단군조선 왕검에 대한 관심가져 주시는 것만으로도 소기의 목적 달성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2024년 10월27일( 음력9 25일)
이병화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