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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향 푸른 이야기/이문자 강릉이 꽃띠 이름표를 달고 명품도시화에 나선 건 2009년부터이지 싶다. 지경부 주최 ‘굿-디자인상’을 비롯해, 이듬해「한글문화연대」에서 실시한 ‘우리말사랑꾼’ 선정에서 ‘솔향강릉’이란 브랜드명으로 깃발을 올리면서, 저탄소 녹색 시범도시 지정이라는 엄청난 프로젝트까지 선물로 안았다. 이는 2만 8079ha의 송림 면적을 점유하며 천년 숨결을 간직해 온 ‘강릉 소나무’의 넘볼 수 없는 존재감 때문이며, 시민들의 각별한 소나무 사랑에서 묻어나는 긍지와 기개가 가져다준 쾌거라 생각된다. 이제 강릉은 세계적인 패러다임으로 제기되는 환경 친화적 도시로 변신할 날이 멀지 않아 그야말로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 중이다. 대관령을 관통해서 강릉의 관문에 들어서면 1km 구간에 도열해 있는 명품 소나무의 위용에 그만 압도당하고 만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간택된 백열한 그루의 사열을 받다보면 귀빈 나리로 초대받아서 입성하는 유쾌한 상상까지 하게 되고, 강릉을 다녀가는 이들에게 집총(執銃) 자세로 환송식에 나와 준 위병 행렬을 방불케 하여 강릉을 가장 확실하게 각인시켜주는 주역을 맡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아름다운 가로수 길로 칭송 받아 마땅하고 솔향의 자존심을 대변하는 파수꾼 역할을 이보다 더 잘해낼 수 없다는 게 모두의 정평이다. 나라 안 어느 곳에나 널린 게 소나무지만 강릉의 솔이 남다른 건, ‘문향·예향’으로 일컬어오는 동안 강릉 특유의 향토정서로 함께 동고동락해온 내공으로 봐야 한다. 충절과 지조를 지엄한 가치로 여겨왔던 임영의 선현들이 혼을 담아 지켜온 강릉의 솔이야말로 타 지역의 추종을 불허하리만큼 넉넉한 가치를 지녔다고 본다. 태곳적 신비를 품어 전국 일품으로 꼽는 대관령 휴양림, 「솔향수목원」의 우람한 금강송이 그러하고, 굳이 천연 숲 본연의 경관을 놓고 따지지 않더라도 문화 예술적 차원의 경지에 있는 고고한 상징성을 봐서도 그러하다. 동해안을 따라 초록을 두른 세계 제일의 풍치림은 해풍에 영글어 통통하게 살이 올라 늘 생기로 넘쳐난다. 사철을 두고 솔빛의 변신 또한 절묘하여 산책에 나선 사람들과 송림의 어울림이 차로 지나면서 보아도 가히 환상적이다. 담청색 수채화가 되었다가, 때론 청록 물감 덧칠한 유화가 되어 희희낙락 파도와 어울리는 해파랑 숲은, 바닷가 찻집에서 노을까지도 자리를 뜨지 못하는 이들을 매료시킨다. 강릉 사람이라서 행복하고, 대관령을 넘어온 수고의 보상이 흡족하여 독립영화 한 편에 출연하는 주인공인양 착각에 빠져보는 것도 그럴싸하다. 경포 호반을 에워싸고 높고 낮은 구릉을 비단결이듯 감싸 안은 송림 사이로는 이웃으로 뚫린 빼뚤한 길이 이리저리 숨어 있다. 일방통행 오솔길이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는 건, 이 길로 솔바람소리 동무해 학교 길을 오갔었고 저녁 어스름 마다 부모님 마중 나오시던 그리운 길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고샅길을 더듬어 노송으로 빼곡한 한 초가에 이르면 투박한 나무주발에 담겨 나오는 소박한 못밥 메뉴를 맛볼 수가 있다. 또한 진품명품의 반열에 드는 반닫이에서 본채 노마님이 꺼내 읽으시는 아슴한 새댁 시절을 덤으로 듣고 가니 그 여운 오죽 하겠는가. 초당 마을 깊고 서늘한 노송 숲엔 요절 여류시인 허초희의 문학 혼을 기리러 생가를 찾는 이들의 걸음이 잦은 곳이다. 고택을 돌아보고 담 너머로 드리워진 솔숲 그늘에 앉으면, 옛 천재 시인의 불운함이 떠올라 내방객의 가슴은 아련한 슬픔에 젖기도 한다. 그 처연함 때문에 철이 바뀌어도 초당 송림은 내게 있어 항시 서늘함이다. 하지만, 대관령 준봉을 불어내리는 된 바람에도 초당 숲은 조용해서 무시로 찾게 된다. 강릉 솔의 자존감을 천혜의 풍광으로만 논하기엔 부족하다. 전통의 맥을 이어온 고장답게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는 곳엔 어김없이 여백의 미를 연출해내는 소나무가 의연한 자태를 드러낸다. 임영관지에 들었던 어느 가을날, 서향으로 들어 올린 동헌 추녀에 눈길을 주다가 그림처럼 시계(視界)에 들어온 노송 한 그루에 심취해 4행시를 지어본 일이 있다. 임영 고을 서기 어린 동헌 뜨락에 영겁의 세월 품어 푸르른 솔아 관동절경 시인 명사 가을에 취해 지고지순 임영 향기 그윽하누나 감격의 순간에 나는 자신의 화폭에다 솔가지를 화룡점정으로 처리해낸 화가의 신기(神技)가 아닐까 여길 정도였고, 이후 내 강릉의 솔 이야기는 더 풍성함을 담아내게 된 것 같다. 강릉 솔은 저 혼자서도 영험한 가치를 창출한다는 역설로……. 지금 행복도시를 향한 솔향강릉의 걸음이 더욱 빨라지기 시작했다. 녹색성장을 근간으로 하는 관광휴양 도시를 겨냥해 경포호 수변공간에 이미 솔향기 공원이 조성되어 무한 사랑의 명소로 등극했고, 방대한 컨셉의 생태 습지원, 유수지 생태공원이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내면서 시민들은 설렘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솔향강릉이 환경·경관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선 경포관광의 세계화나 강릉단오제의 국제화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쾌적한 녹색도시에서 향기로운 삶을 누리기 위한 성숙한 시민의식이 전제되어야 하고, 소나무의 고장 푸른 강릉을 향해 모두가 함께 하는 수고로움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솔 내가 그리울 때 새소리 바람소리 맑은 송림을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곳, ‘솔향강릉’이 이처럼 미덥고 고마운 것도 강릉사람으로 살아가는 복이며 도리라 여기면서 말이다. 솔향 푸른 이야기! 이는 푸른 솔향과 깊은 사랑에 빠진 아름다운 강릉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이고 교류이며 고백이기도 하다. |
첫댓글 4행시 돋보입니다.
모두가 즐거움이네요.
감사합니다!1 케네디님.
솔향 강릉... 이문자님 솔향 강릉. 강릉사랑의 구구절절의 글. 님의 감성과 강릉의 자연과 전통문화가 어울려서 한층 좋은 글로 거듭 승화되었읍니다. 수고하셧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