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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증권 나폴레옹 원정대장. | ||
△ 전주천(全州川)과 세내(삼천천-三川)
전주의 물길 전주천은 임실군 관촌면 슬치리의 경계인 슬치(瑟峙-250m)에서 시작돼 전주시를 관통한 뒤 전주시 전미동 진기 마을 부근 속칭 합수물에서 고산천, 소양천과 만나 만경강이 되기 전까지 장장 32km 긴 내를 말한다.
이 긴 내는 흐르는 곳에 따라 상관천(上關川), 남천(南川), 공수내(攻水川) 등으로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운다.
세내는 한자를 바꾸는 과정에서 삼천(三川)이 됐는데 보광재 서쪽 평화동의 맏내(長川)와 모악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중인천, 구이면 백여리에서 시작되는 용복천의 세물이 만났다는 뜻이다.
세내는 삼천교에서 처음 만나고 우림교와 서곡교 밑을 지나 추천대 사이에서 전주천과 합류, 가리내란 이름으로 불리운다.
△가리내(추천-楸川)
추천대에서 전주천과 삼천이 만나 물길은 물길을 북쪽에서 동쪽으로 바꾸니 풍수에서 말하는 서출동수(西出東水)가 된다. 추천대에서 고산천과 소양천, 전주천이 만나는 합수(合水)번지까지를 우리는 가리내(추천)이라 부른다.
▲ 춘향전의 이몽룡이 암행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지나가며 밟고 갔다던 돌다리가 지금은 마을의 이정표 노릇을 하고 있다./정지영 전문위원. | ||
△추천대(楸川臺)와 이경동(문화재 자료8, 전주시 덕진구 팔복동 3가 26)
추천대는 조선 성종때 대사헌과 예조참판, 동지의금부 도사를 지낸 추탄(楸灘) 이경동이 낙향하여 추천에 낚시를 드리우고 만년을 보낸 곳이다. 이곳에 후손인 정호가 사방2칸의 누정을 세우고 ‘추천대’라는 현액을 걸었다. 상량에 ‘세 기해2월 11일 건립 주상량’ 이란 글로보아 광무3년 (1899)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1947년에 공의 후손들이 그 자리에 정자를 세웠다.
추천대란 현액은 벽하 조주승이 썼다고 전해진다.
△평리입석(立石)(시대미상, 덕진구 고랑동 평리마을)
평리는 삼례교에서 제방을 따라 약 2Km 쯤 가면 전주천 제방 아래에 있는 마을로 옛지명이 ‘쥐업정이’이다. 제방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부분 제방에 ‘평리’라고 씌어진 돌기둥이 세워져 있는데 이 입석은 본래 마을 가운데를 흐르는 개울을 건너는 다리로 쓰였다고 한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의 일환으로 다리를 콘크리트 다리로 만들면서 옆에 방치하였다가 수년전 다리를 확장하면서 이 돌을 가져다가 마을 입구에 이정표로 세웠다.
원래 이 길은 한양에서 전주 부중으로 들어가는 길이였다. 춘양전에 보면 이 도령이 과거 급제 후 암행어사가 되어 남원을 가던 중 ‘주엽정이’와 ‘가리내’를 지나 전주부중 선화당으로 향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쥐업정이’가 바로 ‘평리’마을이고, 이 돌다리가 이 도령이 밟고 지나갔던 다리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 입석은 춘향전의 배경을 담고 있어 그 민속적 가치가 높다고 하겠다.
이 돌기둥은 높이 1.95m, 둘레 1.5m의 사각 기둥 형태이다.
▲ 전주천과 삼천이 만나는 지점에 이경동이 낙향해 낚시를 드리우며 지낸 자리에 후손이 누정을 세우고 추천대란 현역을 걸었다./정지영 전문위원. | ||
△팔복동의 유래
원래 완주군 조촌면 지역이었던 팔복동은 1957년 전주시의 시세확장으로 동곡리, 동신리, 신복리, 여의리의 일부와 유제리를 편입하여 새로운 동을 만들면서 전주 팔현을 기리는 정자인 팔과정의 팔자와 신복리의 복자를 한자씩 따서 팔복동이라 이름 지었다.
첫댓글 익산에 살아서인지 바로 곁 전주인데도 지명이 생소합니다. 이 무식을 어찌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