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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문
모든 법의 본체는 텅 비어〔諸法體空〕 본래 생겨남이 없고〔無生〕
평등하며 적멸(寂滅)한데, 지금 이내 이 곳을 내 버리고 저 곳을 좇아
아미타부처님이 계시다는 서방정토에 왕생하길 바란다면,
이 어찌 이치(진리)에 크게 어긋나지 않겠습니까?
또 경전에 이르시기를,
“만약 정토를 구하거든 먼저 자기 마음을 정화시킬지니,
마음이 청정하면 곧 불국토도 청정해지니라
(若求淨土, 先淨其心 ; 心淨故, 卽佛土淨).”고 하셨는데,
그러면 이 말씀은 어떻게 뜻이 통하겠습니까?
◀답변
이 의문에 대한 답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소.
첫째는 전체(총론)적인 답이고, 둘째는 개별(각론)적인 답이오.
첫번째 전체적인 답은 이렇게 말할 수 있소.
그대가 만약 아미타부처님의 서방정토에 왕생하길 구하는 것이
이 곳을 내버리고 저 곳을 좇는 행위로 이치(진리)에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대가 이 곳에 매달려 서방정토에 왕생하길 구하지 않는 것은,
거꾸로 저곳을 내 버리고 이 곳에 집착하는 행위로,
이것 또한 이치에 맞지 않고 병(病 : 잘못)이 된다오.
또 전계(轉計:사람인지 책인지 미확인)가 이렇게 말했소.
“저 곳에 왕생하길 바라지도 않고
또한 이 곳에 생겨나길 바라지도 않는다고 하는 것은 단멸견(斷滅見)이다.”
그래서 금강경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소.
“수보리여, 그대가 만약 아누다라삼먁삼보리심(阿 多羅三 三菩提心)을
내는 사람은 모든 법이 단멸(斷滅)이라고 설한다고 생각하거든,
이런 생각일랑 하지 말게나.
왜냐하면 보리심을 낸 사람은 법에서 단멸의 모습(斷滅相)을
(보거나) 말하지 않는 법이기 때문일세.”
두 번째 개별(각론)적인 답은 이렇게 말할 수 있소.
무릇 ‘불생불멸(不生不滅)’이란 (모든 존재가) 생겨나는 인연〔生緣〕
가운데 모든 법이 조화롭게 합쳐질〔諸法和合〕 따름이며,
자기 성품을 지키지(고집하지) 않소〔不守自性〕.
따라서 생겨나는 본체〔生體〕에서 뭔가 찾으려 해도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소.
이 생명이 생겨날 때 어디서부터도 오는 바가 없기에〔無所從來〕,
그래서 ‘불생(不生)’이라고 일컫는다오.
또 ‘불멸(不滅)’이란, 모든 법(존재)이 흩어져 사라질 때,
역시 자기 성품을 지키지(고집하지) 않기에
내가 흩어져 사라진다고 말하지 않소.
이 생명(존재)이 흩어져 사라질 때도 어디로도 가는 바가 없기에〔去無所至〕,
그래서 ‘불멸(不滅)’이라고 일컫는다오.
인연이 조화롭게 합쳐져 생겨나는 것 이외에
따로 ‘불생불멸(不生不滅)’이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극락정토에 왕생하길 바라지 않는 것을
가리켜 ‘무생(無生, 無生法忍)’이라고 일컫지도 않소.
이러한 까닭에 (龍樹보살이 지으시고 구마라집이 漢譯하신)
중론(中論)의 게송에 이런 말씀이 있소.
인연으로 생겨나는 법(존재)일랑
나는 곧 텅 비었다고 말하노니,
또한 가짜 이름이라고 일컫기도 하고
또 다르게는 중도의 이치라고 일컫기도 한다.
因緣所生法 我說卽是空
亦名爲假名 亦名中道義
중론(中論)에는 또 이런 말씀도 있소.
모든 법(존재)은 스스로 생겨나지도 않고
또한 다른 것으로부터 생겨나지도 않으며,
남과 함께 하지도 않고 원인이 없는 것도 아니니,
이런 까닭에 생겨나지 않는 줄 안다.
諸法不自生 亦不從他生
不共不無因 是故知無生
그리고 유마경(維摩經)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소.
비록 모든 부처님 나라와 중생이
죄다 텅 빈 줄은 알지라도,
항상 정토(법문)를 수행하여
모든 중생들을 교화한다네.
雖知諸佛國 及與衆生空
而常修淨土 敎化諸群生
또 유마경에는 이런 비유도 있소.
“예컨대 어떤 사람이 큰 궁궐을 짓는다고 하자.
만약 그가 텅 빈 땅에 의지(기초)하여 짓는다면,
아무 어려움 없이 뜻대로 이룰 것이다.
그러나 만약 허공에 의지하여 지으려 한다면, 끝내 성공할 수 없다.”
모든 부처님의 설법은 항상 두 가지 진리〔二諦〕에 의지하신다오.
즉 가짜 이름〔假名〕을 깨뜨리지(떠나지) 않으면서도
모든 법의 진실한 모습〔實相〕을 설하시는 것이오.
지혜로운 이는 치열하게 극락정토 왕생을 간구하면서도,
생겨남(왕생)의 본체〔生體〕는 (텅 비어) 얻을 수 없는 줄 훤히 통달하므로,
이것이 진짜 생겨남이 없는 무생(無生)이오.
이런 걸 일컬어 “마음이 청정하면 불국토도 청정해진다.”고 말하는 것이오.
반면 어리석은 자들은 생겨남(또는 왕생)에 얽매여,
생겨난다는 말을 들으면 생겨난다고 알아듣고,
생겨남이 없다〔無生〕는 말을 들으면 생겨남이 없다고 곧이 듣소.
그래서 생겨남이 곧 생겨남 없음이며, 생겨남 없음이
바로 생겨남인 줄은 전혀 모른다오.
이러한 이치를 훤히 깨닫지 못하기에 함부로 시비를 다투며,
남들이 극락정토 왕생을 구하는 것에 대해 핏대를 올리면서 비판하기까지 하니,
이 얼마나 커다란 잘못이오?
이러한 자들은 바로 정법을 비방하는 죄인이며,
삿된 견해〔邪見〕에 빠진 외도(外道:異端)일 따름이라오.
출처:천태지자대사(天台智者 大師) 정토십의론서(淨土十疑論序)
송(宋)나라 무위자(無爲子) 양걸(楊傑)
글: 보적(寶積) 김지수 옮김/전남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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