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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man, a better Christian in all but the dogmatic sense of the word, than almost any of the ostensibly Christian sovereigns who have since reigned, persecuted Christianity.
그 말의 교조적인 의미서만 아니지 모든 면에 있어서 제국을 다스렸던 외면적으로 기독교인인 어떤 군주들보다 더 좋은 기독교인이었던 이 사람이 기독교를 박해했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지 않았을 뿐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유사한 그의 철학을 따라서 살아간 것을 볼 수 있다. 313년에 로마에서 기독교가 공인된 후로 로마에 기독교를 신봉하는 황제들이 있었지만 실질적인 의미에서 어떤 황제보다도 더 좋은 기독교인이었다.
Placed at the summit of all the previous attainments of humanity, with an open, unfettered intellect, and a character which led him of himself to embody in his moral writings the Christian ideal, he yet failed to see that Christianity was to be a good and not an evil to the world, with his duties to which he was so deeply penetrated.
열려 있고 구속되지 않은 지성과 그의 도덕적인 저술들에서 자신도 모르게 기독교적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서 자신을 몰아간 성격을 가지고 그 이전 인간애의 모든 성취들의 정점에 위치 지어졌지만 그가 너무나 깊숙이 침투되어 있던 의무들을 가지고서는 기독교가 세계에 좋은 것이고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는 데에 실패했다.
열려 있고 구속되지 않은 지성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는 기독교적인 사상이라고 해서 배척하거나 받아들이기를 주저하지 않고 수용해서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그럼으로써 인간애에 관한 최고의 저술을 하게 되었다. 그가 황제로서 행해야 할 의무들을 고려하면서 기독교가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지 못했다. 자기 자신은 기독교의 사상으로 자연스럽게 물들어 있었지만 이 세계를 위해서 기독교가 좋은 것이라는 점을 보는 데에는 실패했다. 자신의 의무를 행해야 한다는 의식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Existing society he knew to be in a deplorable state.
그는 실존하는 사회가 개탄스러운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existing society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데 아우렐리우스가 살던 당시의 시대가 마치 살아있는 존재인 것처럼 표현하고 있다. 그 사회에 대한 아우렐리우스의 애정을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But such as it was, he saw, or thought he saw, that it was held together, and prevented from being worse, by belief and reverence of the received divinities.
하지만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신들에 대한 믿음과 경배로 말미암아 그 사회가 그 정도나마 단결되고 더 악화되는 것이 막아지고 있다고 보았다, 혹은 보았다고 생각했다.
or thought he saw라는 부분은 아우렐리우스가 사태를 정확하게 보고 있었다기보다는 정확하게 보고 있다고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다고 말해준다. 아우렐리우스가 자기의 주관적인 생각에 치우쳐서 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음을 암시하고 있다.
such as it is[they are] : 이런 정도지만, 변변치 않지만
As a ruler of mankind, he deemed it his duty not to suffer society to fall in pieces; and saw not how, if its existing ties were removed, any others could be formed which could again knit it together.
인류의 통치자로서 그는 사회가 분해되는 것을 겪지 않도록 하는 것을 그의 의무로 여겼다. 그리고 그 사회의 실존하는 끈들이 제거된다면 그것을 다시 봉합할 수 있는 다른 어떤 것들이 어떻게도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서도 existing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매우 현실적인 실체처럼 사회를 묶어주고 있는 것이 있고 그 실존하는 것이 없어지게 되면 그것을 다시 찾을 수 없는 것으로 아우렐리우스가 그렇게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표현하고 있다.
The new religion openly aimed at dissolving these ties: unless, therefore, it was his duty to adopt that religion, it seemed to be his duty to put it down.
새로운 종교는 드러내놓고 이 끈들을 풀기를 목표로 삼았다. 따라서 그의 의무가 그 종교를 채택하는 것이 아닌 한 진압하는 것이 그의 의무가 되는 것처럼 보였다.
아우렐리우스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던 것은 기존에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신들에 대한 신앙과 경배였는데 새로운 종교인 기독교는 그 신들에 대한 신앙과 경배가 모두 잘못된 것이고 기독교만이 유일한 종교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기독교는 아우렐리우스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던 점을 공략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가 기독교 때문에 무너질 것으로 보았고, 사태가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졌고 기독교를 진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에 있게 된 것이다.
Inasmuch then as the theology of Christianity did not appear to him true or of divine origin; inasmuch as this strange history of a crucified God was not credible to him, and a system which purported to rest entirely upon a foundation to him so wholly unbelievable, could not be foreseen by him to be that renovating agency which, after all abatements, it has in fact proved to be; the gentlest and most amiable of philosophers and rulers, under a solemn sense of duty, authorized the persecution of Christianity.
한편 그에게는 기독교의 신학이 참되고 신적인 기원으로 보이지 않았으므로, 십자가에 못 박힌 하나님의 이상한 역사와 그에게는 신뢰할 수 없었고 전적으로 그가 전혀 믿을 수 없는 기초 위에 있다고 칭하는 체계가 개혁하는 기관이 될 것이라고 그에 의해서 예상될 수 없었으므로(온갖 비하 이후에(=아무리 평가절하해도) 기독교는 사실상 개혁의 기관이라는 것을 입증한다) 철학자들과 통치자들 가운데 가장 신사적이고 가장 정감 있는 이가 의무의 엄숙한 의미 아래에서 기독교 박해를 승인하였다.
To my mind this is one of the most tragical facts in all history.
내 생각에 이것은 전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실들 가운데 하나이다.
It is a bitter thought, how different a thing the Christianity of the world might have been, if the Christian faith had been adopted as the religion of the empire under the auspices of Marcus Aurelius instead of those of Constantine.
만약에 콘스탄틴 대제의 주도가 아니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후원 하에 기독교 신앙이 제국의 종교로 채택되었다면 세계의 기독교는 얼마나 다른 것이 될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은 씁쓸한 생각이다.
(원주) 콘스탄틴(272-337) : 306년부터 재위한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로 알려진 그는 기독교로 개종한 첫 번째 황제였고 제국 전체에서 종교적 관용 정책을 선언하는 밀라노 칙령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서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 모두의 통치자였고 ‘새로운 로마(nova Roma)’라고 명명했으나 콘스탄티노플로 알려지게 된 비잔티움에 황궁을 지었다. 밀의 논평은 콘스탄티누스가 어쨌든 태만했다(=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하는 의견보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불관용 정책에 대한 생각에 강조점이 놓여 있다.
But it would be equally unjust to him and false to truth, to deny, that no one plea which can be urged for punishing anti-Christian teaching, was wanting to Marcus Aurelius for punishing, as he did, the propagation of Christianity.
그러나 반-기독교적 가르침을 처벌하기 위해서 주장될 수 있는 어떤 사유도 기독교의 보급을 처벌하기 위해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결여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그에게 부당하며 그와 동시에 진리에게도 거짓될 것이다.
기독교에 반하는 가르침을 처벌하기 위해서 내세워질 수 있는 이유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기독교의 보급을 처벌하기 위해서 내세우는 이유가 같다는 것이다. 반기독교의 가르침을 박해한 자들은 기독교의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거짓에 빠지는 것이고 사회의 해체를 조장한다고 해서 처벌했고, 아우렐리우스는 다신교의 신들을 믿지 않으면 거짓에 빠지고 사회의 해체를 조장한다고 해서 기독교적 가르침을 처벌했으므로 둘의 박해 사유가 똑같다. 이런 사실을 부정하게 되면 아우렐리우스만 부당하게 박해한 자로 보는 것이 되기 때문에 아우렐리우스에게 부당하게 대우하는 것이 된다. 또한 진리에도 거짓된 것이 된다.
- plea : (법원에 제출하는) 이유[사유서]
No Christian more firmly believes that Atheism is false, and tends to the dissolution of society, than Marcus Aurelius believed the same things of Christianity; he who, of all men then living, might have been thought the most capable of appreciating it.
기독교인이 무신론이 거짓이고 사회의 해체로 향하고 있다고 굳게 믿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기독교가 그러하다고 것을 믿었다. 그 당시 살던 사람들 가운데 그것을 가장 잘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그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자기도 모르게 자연적으로 그의 지력과 통찰을 통해서 기독교의 가르침을 가장 깊이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면 기독교의 가르침과 같이 무신론이 거짓이고 사회를 해체시키는 것이라고 믿어야 하는데, 오히려 기독교가 거짓이고 사회를 해체시키는 것이라고 믿었다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믿고 있는 진리에 반해서 행동한 것이다.
- there is no more A than B : B보다 더 A한 것은 없다
Unless any one who approves of punishment for the promulgation of opinions, flatters himself that he is a wiser and better man than Marcus Aurelius—more deeply versed in the wisdom of his time, more elevated in his intellect above it—more earnest in his search for truth, or more single-minded in his devotion to it when found;—let him abstain from that assumption of the joint infallibility of himself and the multitude, which the great Antoninus made with so unfortunate a result.
의견의 공표에 대한 처벌을 승인하는 자는 누구든지 자기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보다 더 지혜롭고 더 훌륭한 사람이라고―자기 시대의 지혜에 있어서 더 깊이 정통하다고, 지적 능력에 있어서 자기 시대 위에서 더 고상하다고―진리를 탐구함에 있어서 더 성실하다고 혹은 그것이 발견되었을 때 그 헌신에 있어서 더 전일하다고―자만하지 않는다면, 위대한 안토니우스가 그런 불행한 결과를 낸 자기 자신과 다수의 합쳐진 무오류성의 가정을 그만두도록 하라.
(원주) 안토니우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온전한 이름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우스 아우구스투스이다.
Aware of the impossibility of defending the use of punishment for restraining irreligious opinions, by any argument which will not justify Marcus Antoninus, the enemies of religious freedom, when hard pressed, occasionally accept this consequence, and say, with Dr. Johnson, that the persecutors of Christianity were in the right; that persecution is an ordeal through which truth ought to pass, and always passes successfully, legal penalties being, in the end, powerless against truth, though sometimes beneficially effective against mischievous errors.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정당하다고 하지 않을 어떤 논의를 가지고서도 무종교적인 의견들을 제지하기 위한 처벌의 사용을 방어하는 것의 불가능성을 알고서, 종교적 자유의 적들은 심하게 압박을 당하면 이따금 이 결과를 받아들이고 존슨 박사와 더불어서 이렇게 말한다. 기독교 박해자들은 옳음 가운데 있었다. 그 박해는 진리가 통과해야만 하고, 언제나 성공적으로 통과하는 시련이다. 법적인 처벌은 때로는 해를 끼치는 오류들에 대해서는 유익하게 효과적이지만 진리에 대해서는 결국 무력하게 되기 때문이다.
(원주) Dr. Johnson : 사무엘 존슨 박사(Dr Samuel Johnson(1709-84)은 사전 편찬자, 작가, 재담가이다. 보스웰(Boswell)의 책 『존슨의 생애(Life of Johnson)』(1777년 5월 7일)을 보라: ‘선생, 종교적인 진리가 세워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순교에 의한 것이다. 통치자(magistrate=치안판사)는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집행할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진리를 인식하고 있는 이는 고통을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
This is a form of the argument for religious intolerance, sufficiently remarkable not to be passed without notice.
이것은 주목하지 않고 지나쳐질 수 없을 정도로 충분히 주목할 만한 종교적 불관용에 관한 논의의 한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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