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빌 브라이슨은 미국 출신의 유명한 여행가이자 에세이스트다. 애팔래치아 산맥, 호주,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쓴 그의 여행기들은 탁월한 인문서로서도 평가를 받는다. 더구나 그는 셰익스피어 평전을 쓰고 영국 왕립학회 창립 350년을 기념하는 앤솔로지 ‘거인들의 생각과 힘’의 공식적인 편자로서 이름을 올리는 당대의 세계적 지식인 중 한 사람이다.
그가 3년 동안 공들여 준비한 최신작은 놀랍게도 과학서, 그것도 한없이 다양한 의문을 제기하는 저자가 빅뱅에서 인류 문명의 출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것의 이해에 도전하는 과학서이다.
[모든 것의 역사'를 쓴 빌 브라이슨. 까치글방 제공]
과학은 딱딱하고 재미없는 분야라고 흔히 이야기한다. 자연에 숨겨진 신비를 이해하는 과학이 사람들에게 왜 그런 인상을 주게 되었는지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수식으로 가득한 딱딱한 학교 교육에서 과학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침내 그 의문을 해결할 수 있었다. 과학이 딱딱하고 재미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 의미와 중요성을 부드럽고 재미있게 알려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의 전문적인 지식에 젖어버린 과학자들이 과학의 엄청난 의미를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해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시각과 관점에 집착한 나머지 다른 사람들이 요구하고 있는 시각과 관점이 무엇인가를 이해하지 못했다.
제1부는 우주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광대한 우주의 신비를 어떻게 벗겨냈는가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대폭발(빅뱅) 이론과 팽창 이론은 물론이고 다중 우주론에 이르는 거의 모든 우주론을 소개하고 있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의 구조와 생성에 대한 소박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양성자는 그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작은 원자의 아주 작은 일부분이다. 양성자는 알파벳 i의 점에 해당하는 공간에 5000억 개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작다. 5000억이면 5만 년에 해당하는 시간을 초 단위로 표시한 것보다도 더 큰 숫자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잘 표현하더라도, 양성자는 지나칠 정도로 작은 셈이다.”
제2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 대한 것이다. 도대체 지구의 크기를 어떻게 측정했을까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해서 지질학의 역사, 지구 생성의 역사 그리고 지구를 구성하는 원소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뉴턴의 중력법칙을 비롯한 고전물리학과 지질학, 화학을 가볍게 소개한다. 서양에서 자연사 박물관의 변천사까지도 빠짐없이 들어 있다.
“중력 때문에 행성이 궤도를 따라 회전하고, 낙하하는 물체가 충돌하게 되기 때문에 중력이 상당히 큰 힘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태양과 같은 육중한 물체가 지구와 같은 다른 육중한 물체를 붙들고 있을 때에만 강하게 보일 뿐이다. 그러나 작은 규모에서의 중력은 놀라울 정도로 약하다. 우리는 책상에서 책을 들어올리거나, 바닥에서 동전을 집을 때마다 지구 전체가 미치는 중력을 이겨내고 있는 셈이다. 캐번디시는 새털처럼 지극히 가벼운 수준에서 중력을 측정하려고 했다.
캐번디시는 지구의 질량이 오늘날의 단위로 표시하면 1.3×1022파운드, 즉 60억 톤의 1조 배에 해당한다고 발표했다(1톤은 1000킬로그램 또는 2205파운드에 해당한다).”
제3부는 20세기의 이야기이다. 현대물리학의 기초인 열역학, 양자론, 상대성 이론은 물론이고, 원자의 구조, 소립자와 초끈 이론에 대한 이야기가 어렵지 않게 소개된다. 지구의 판 구조론과 관련된 내용도 흥미롭고, 지구의 역사를 밝혀내는 수단인 연대 측정법을 소개하면서 현대 기술의 오용과 남용에 대한 경고의 내용도 함께 담겨 있다. 판 구조론과 관련되어 소개된 지구의 모습도 새롭다.
“그 결과는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우주는 모든 방향으로 빠르고 균일하게 팽창하고 있었다. 그런 사실로부터 우주가 한 곳의 점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영원히 텅 빈 공간이 아니라 태초가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종말이 있을 가능성도 있게 되었다. 스티븐 호킹이 말했듯이, 그 전에는 아무도 팽창하는 우주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신기하다. 뉴턴을 비롯해서 그 이후의 천문학자들에게 당연한 것처럼 보였던 정적인 우주는 그 스스로 수축되어버려야만 했다. 그런 정적인 우주에서 별들이 무한히 타고 있다면 그런 우주는 엄청나게 뜨거워졌어야만 한다는 문제도 있었다. 팽창하는 우주의 개념은 그런 문제들을 모두 해결해주었다.”
제4부는 소행성과 혜성의 충돌에서 시작해서 지진과 화산 그리고 지자기 반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소개된다. 옐로스톤의 이야기로부터 지구 내부의 활발한 움직임을 생생하게 읽어낼 수가 있고, 심해생물처럼 극한 상황에서 살아가는 생물의 이야기에서 생명과학의 필수 수단이 되어버린 PCR에 대한 소개도 흥미롭다.
“대기권에 진입한 운석은 1초 이내에 지표면에 충돌한다. 한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맨슨의 사람들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일상생활을 하고 있던 곳에 말이다. 운석 자체는 순간적으로 기화해버리지만, 그 충격으로 수천 세제곱킬로미터의 돌이나 흙과 함께 엄청날 정도로 뜨겁게 가열된 가스가 바깥쪽으로 분출된다. 하루 만에 적어도 15억 명 이상이 사망할 것으로 추정된다. 전리층이 심하게 교란되면서 모든 통신시설이 작동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생존자들은 무슨 일이 생겼는지도 알 수가 없고, 어디로 몸을 피해야 하는가도 알 수가 없게 된다.
사실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도 않는다. 어느 사람이 말했듯이, 도망치는 일은 ‘죽는 순간을 조금 늦추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지구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은 어느 곳에서나 마찬가지로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피난 노력으로도 사망자를 크게 줄이지는 못할 것이다.’ 충돌과 그 이후의 화재에 의해서 생기는 그을음과 떠다니는 재가 햇볕을 차단할 것이다. 그런 상태가 몇 달 또는 몇 년 동안 계속되면 식물의 성장 사이클이 파괴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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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의 모든 것의 역사(2003)' 책표지
제5부는 지구상의 생명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구에 살고 있는 생물은 어떻게 그 생명을 이어가고 있으며, 푸른 지구에 어떻게 생명체가 존재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과학적 설명은 다른 데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내용이다. 대기와 바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에 이어지는 생명 출현의 역사도 정말 흥미롭다. 생물의 분류학, 세포의 기능, 다윈의 진화론 그리고 DNA를 중심으로 하는 생명과학의 역사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훌륭한 이야기이다.“DNA는 ‘지구상에서 가장 놀라운 분자’로 알려져 있다. DNA는 DNA를 만든다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존재하며, 우리 몸 속에는 엄청나게 많은 DNA가 들어 있다. 거의 모든 세포에 대략 1.8미터에 이르는 DNA가 들어 있다. 각각의 DNA는 23억 개의 암호로 되어 있어서, 크리스티앙 드 뒤브의 말에 따르면 ‘모든 가능성을 고려하면 유일한 유전 정보가 될 수 있도록 하는’ 103,480,000,000가지의 조합이 가능하다.
1 다음에 30억 개가 넘는 0이 붙는 엄청나게 많은 가능성이다. 드 뒤브에 따르면, ‘단순히 그 숫자를 인쇄하기만 해도 보통 크기의 책 5,000권 이상이 필요하다.’ 거울을 보면서, 몸 속에 1만조 개의 세포가 들어 있고, 거의 모든 세포에 거의 1.8미터에 이르는 DNA가 단단하게 뭉쳐져서 들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몸 속에 들어 있는 DNA가 도대체 얼마나 되는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만약 몸 속에 들어 있는 모든 DNA를 한 줄로 잇는다면, 그 길이는 지구와 달을 한두 번 왕복할 정도가 아니라 수없이 왕복할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어떤 계산에 따르면, 몸 속에 들어 있는 DNA를 모두 합치면 그 길이가 2000만 킬로미터나 된다고 한다.”제6부에는 인간이 견뎌왔던 기후의 역사와 인류의 역사가 담겨 있다. 우리가 흔히 믿고 있는 것과는 달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기후는 다양한 이유에 의해서 크게 변해왔다는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인류의 출현에 대한 고고인류학 이야기와 첨단 생명과학이 접합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 흥미를 더해준다. 인간에 의한 무의식적인 생물 멸종의 역사는 이 책을 덮으면서 과학을 통해서 엄청난 위력을 가지게 된 우리에게 냉정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우리 역사의 다음 단계에서는 우리가 얼음을 만들어내기보다는 많은 양의 얼음을 녹이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대륙빙이 모두 녹으면 해수면은 20층의 건물과 맞먹는 60미터나 올라가서 세계의 모든 해안도시들은 물에 잠길 것이다.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남극 대륙의 서부에 있는 대륙빙이 녹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50년 동안에 그 주변의 수온은 섭씨 2.5도나 올라갔고, 대륙빙은 놀라운 규모로 붕괴되기 시작했다. 그 지역의 지질학적 특성 때문에 대규모의 붕괴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해수면은 세계적으로 평균 4-6미터 정도 올라갈 것이다. 그런 일은 아주 빠르게 일어날 것이다.더욱 놀라운 사실은 앞으로 우리가 추위에 얼어죽게 될 시대를 맞이할 것인지, 아니면 마찬가지로 푹푹 찌는 더위가 찾아올 것인지를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우리가 칼날 위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1979년에 「침몰하는 방주(方舟)」의 저자 노만 마이어스는 지구상에서 인류의 활동 때문에 일주일에 약 2종 정도의 생물이 멸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1990년대 초에 그는 그 숫자를 일주일에 600종이라고 주장했다(식물, 곤충, 동물을 비롯한 모든 것을 포함한 숫자이다). 일주일에 1000종이 넘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1995년에 UN은 지난 400년 동안에 알려진 멸종의 총수는 동물의 경우에 500종이 조금 안 되고, 식물은 650종이 조금 넘는다고 발표하면서, 특히 열대생물의 경우에는 ‘거의 확실히 과소평가된 것’임을 인정했다. 몇몇 사람들은 대부분의 멸종 규모가 엄청나게 부풀려진 것이라고 믿는다.진실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짐작조차도 할 수가 없다. 우리가 언제부터 그런 일을 하기 시작했는가도 알 수가 없다.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현재의 활동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지구가 하나뿐이라는 사실과, 상황을 충분히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생물도 단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에드워드 윌슨은 ‘생명의 다양성’에서 우리의 상황을 더 이상 간결할 수 없는 ‘하나의 지구, 하나의 실험’이라고 표현했다.이 책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이곳(지구)에 존재한다는 것이 엄청난 행운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이라는 뜻이다. 우리의 우주에서 어떤 형태이거나 상관없이 생명을 얻는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성과이다. 물론 인간인 우리는 두 배의 행운을 얻은 셈이다.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특권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그 가치를 인식할 수 있고 다양한 방법으로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이제 겨우 이해하기 시작한 능력이다.”이 책은 이미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 이후 가장 대표적인 과학교양 베스트셀러 중의 하나가 되었다. 558페이지의 대단한 두께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출간된 지 10년 만에 13만 부 이상을 판매하는 장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는 조선일보 서평에서 “이 책에는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과학에서 다뤄야 할 거의 모든 것에 대한 개념과 그것이 형성되는 과정 속의 온갖 갈등과 화해가 흥미진진하게 묘사되어 있다. 대학 입시의 논술이나 면접의 질문거리를 찾는 교수님들이 제일 먼저 구해 뒤적일 책일 것 같다”고 썼다.
- 까치글방 편집부 이인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