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줄곧 지구상에 인류의 등장과 생멸(生滅)을 함께해 왔다고 할 것인 바, 해서리 인간의 역사에서 종교와의 관계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공동체적 관계일 수밖에 없었다고 하겠다.
그런데, 동서양의 각 종교마다 신도들이 믿고 받드는 신(神)은 대체로 하나, 즉 유일신이라는 게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두고두고 두통거리를 만든다. 예컨대, 기독교는 하느님, 불교는 부처, 이슬람교는 알라, 조로아스터교는 아후라 마즈다를 유일신으로 떠받드니, 그들이 보기에 다른 종교들의 신은 한 마디로 개털일 뿐이라는 것이다(물론 신의 백화점이랄 수 있는 힌두교는 예외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기독교의 유일신이자 질투의 화신은 '나 이외의 신을 믿지 말라(출애굽기 20:3)'고 못을 박아 아예 다른 신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무섭게 협박하고 있으니...
하지만 각 종교의 신들은 타 종교의 신들을 개무시하면서 자신을 지극정성으로 떠받드는 신도들로써 만족하면 좋겠는데, 신들이 보기에 이 신도들이 도대체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도들에게는 자신의 신과 마찬가지로 지극정성으로 받들고 모셔야 할 대상인 부모(父母)가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신도들이 자신만 바라보고 온 마음을 바치길 원하는 신에게 신도들의 부모는 그야말로 '눈엣가시'가 아닌가?
그래서 세계의 여러 종교에서 인식하는 효도관(孝道觀)을 살펴 보면 의외로 빈약하기 짝이 없음을 인식하고 새삼 놀라게 되는 건 나만의 과잉반응은 아닐 터...기독교의 효(孝) 사상은 출애굽기(20:12), 레위기(19:3), 신명기(5:16), 에베소서(6:1~3)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그들 가르침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부모를 공경하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간단하고도 단순한 진술이 아닌가? 물론 잠언록(23:25~26)에선 점잖은 가르침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사뭇 협박조로 '네 부모를 기쁘게 하라.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에게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고 하지만...
한편 기독교보다는 훨씬 관대하다고 볼 수 있는 불교에서도 마찬가지로 효에 대한 진술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데... 우리가 불교 서적에서 찾을 수 있는 효도관은 대체로 대륙에 전파되어 들어가면서 중국의 유가사상(儒家思想)과 버무려져 만들어진 결과물들로 보인다. 석가의 제자 목련존자가 죽은 어머니의 악업(惡業)을 속죄받기 위해 스님들에게 공양을 바쳤다는 가르침이 중국에 전래되면서 음력 7월 15일 절에서 연례적으로 치르는 중요행사인 우란분절(盂蘭盆節)이 되었다는 게 그러한 사례가 되겠다.
신들의 질투에 의해 대개의 종교가 부모에 대한 효도관이 미약하다는 기존 인식에서『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편자미상, 최은영 역, 홍익출판사, 2019)이란 책은 제목부터가 눈에 번쩍 띄는 게 사실이다. 아니?! 다른 종교들과는 달리 불교가 부모에 대한 효도를 이렇게나 강조하고 있단 말이지? 해서리 큰 기대와 설렘을 안고 책을 처억 펼치는데...
첫 장부터 이 책에 대한 역자의 30여 페이지에 걸친 소개가 장황하게 기술되는 게 심상찮게 여겨졌는데, 결론적으로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이란 책은 출처가 불분명할 뿐 아니라 이곳저곳에서 가져온 내용들을 짜깁기한 책이라는 것이었다.
편자는 당초 이 책의 내용이 부모님의 크신 사랑과 보은의 길을 기술한 것이라 소개하고 있지만, 기실 이 책은 우리나라 조선시대 때 간행된『대광편불보은경』을 번역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또한 9개의 품(品)으로 구성된 내용에서도 효행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없고 대개는 윤회사상(輪廻思想)을 설파하는 석가의 가르침을 기술하고 있다.
불교의 사례가 이러할 진대 한 하늘에 태양이 두 개일 수 없듯, 역시나 모든 종교는 부모에 대한 효도를 소홀히 다루고 있음은 확실한 듯하다. 오죽하면 기독교가 하느님 뒤에다 아버지란 이름을 처억 갖다 붙였을까? 불세출의 선구적 지식인이었던 마광수 교수의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자유문학사, 1989)에 수록된 시「효도에」가 뭍 종교들이 인식하는 효도관을 요약해서 보여주는 건 아닌지...
어머니, 전 효도라는 말이 싫어요.
제가 태어나고 싶어서 나왔나요? 어머니가
저를 낳으시고 싶어서 낳으셨나요.
'낳아주신 은혜' '길러주신 은혜'
이런 이야기를 전 듣고 싶지 않아요....(이하략)